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수 많은 문제들 가운데 고민을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반응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다 너 때문이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 이 일은 나에게는 없었던 일이야 하면서 문제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런 문제로부터 아예 도피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방법들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런 방법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때, 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직면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삶의 문제를 피할 수 없으면 그 문제속에서 즐기며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모든 문제를 도피하지 않고, 또 그 문제를 덮어두거나 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지도 않고, 모든 문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한 가지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도’에 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열심히 기도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당신의 뜻을 주권적으로 이루실 것이다.’ 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꼭 틀린 생각만은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상관 없이,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질 수 없다’라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도’에 관해서 성경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 간절한 기도기도입니다.
① 감옥에 있는 베드로를 위하여 온 교회가 ‘밤새도록’ 기도를 합니다. 행12장 ② 삼 년동안 비가 오지 않자, 비를 오게 해 달라고 엘리야가 7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왕상18장 ③ 병이 들어 죽게 되자 기도함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왕상20장
이처럼 성경은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억울함, 자연재해, 질병과 같은 문제 속에서 무엇인가 결과를 기다리기 보다는,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적극적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본문 설명
본문은 유대인의 절기중에 ‘부림절(Purim)’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부림절’은 유대인의 절기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날입니다. 이날은 모세5경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절기와는 달리 비교적 세속적인 절기 로서,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시고, 가면 무도회와 시가 행진 등을 즐기는 등 문자 그대로의 축제일입니다.
그런데 이 부림절과 관련이 있는 ‘에스더서’ 를 읽다보면,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한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하만’입니다.
그 이유는 이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날짜를 '푸르(Purim)'라는 주사위를 던져 결정했다는 말에서 ‘부림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림절’이 되면 모든 유대인들은 회당에 나가서 ‘에스더서’를 공동으로 함께 읽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에스더서를 읽을 때 ‘하만’ 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이 지워질지어다.’고 함께 외친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하만’의 모함 때문에, 일어난 절대 절명의 위기속에서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옷을 찢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의 이 이야기를 통해, (특별히 교회의 직분자로 부름 받고 헌신하는 이 뜻깊은 주일에) 기도가 우리의 삶속에 왜 중요하고,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기도가 우리 삶속에 중요한 이유는, 기도는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흔히 한치의 앞을 내다보지도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항상 우리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그 현실의 문제만을 바라보고 그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읽다보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이 내 눈에 보여지는 현상만이 아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예를 들면, 창32장을 보면, 야곱이 20년 동안의 긴 객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이 소식을 듣고 400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때 야곱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된 야곱은 강을 건너가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두 패로 나누어, 에서가 공격을 하면 도망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야곱은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늘 현실, 그 현상만을 보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있게 묵상해 보면, 이런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문제의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에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해서 야곱을 미워하고, 분노하게 하고, 원수를 갚게하기 위해서 힘을 공급해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진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에서와 400인의 군대가 아니라, 에서의 마음속에서 계속적으로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하는 사단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야곱이 밤새 천사와 씨름을 하며 기도한 후에 에서를 만나는데, 그 에서의 마음이 처음과 너무 달라져 있는 것을 봅니다.
“… 에서가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 안고서, 입을 맞추고, 둘을 함께 울었다.” (창33:4)
처음에는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는데, 야곱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분노가 연민과 동정심으로 변합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동생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니 너무 불쌍합니다.
절름발이로 불구자가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새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했기에 입은 옷은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얼굴은 초췌해 있었습니다.
이런 동생의 모습을 본 에서의 마음속에는 이제 미움보다 연민과 동정, 뿐만 아니라, 깊은 사랑의 마음까지 생겨, 야곱을 만나자마자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엉엉 울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에서가 거느리고 오는 잘 훈련된 400명의 군사가 아니라, 에서의 마음을 분노케 만드는 사단이 문제였기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20년동안 에서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미움의 어둔 세력’을 묶어 버리고 결박시키신 것입니다.
결국, 그 분노와 원망의 세력을 묶고 결박하니까, 동생을 죽이려고 쫓아왔던 마음속에 미움 대신에 긍휼과 사랑이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문제들 때문에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현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영적인 세계와 싸우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세요. 유대 사람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만 입니다. 그러면 하만이 어떤 사람 입니까?
에3:1절을 보면,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각’이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삼상15:8절을 보면 아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말렉 왕 아각은….”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완전히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는 ‘하만’이 바로 아각 왕의 후손이며 ‘아말렉’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출17:16절을 보면, 이 아말렉 사람은 하나님께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대대로 싸울 것이랍니다. 또한, 신25:19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아말렉의 자손을 하나도 남겨 두지 말라 다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왜요? 그들은 하나님께 원수이며,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멸망 시키려고 싸울 것이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과 전쟁을 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말렉과의 전쟁을 사단과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에서 모르드개와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싸움이 하만과 모르드개, 하만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만 뒤에 있는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아시고, 먼저 ‘하만’ 마음속에게 역사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결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을 놓고 기도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 뒤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낙심케 만드는 어둠의 세력을 묶고 결박하고 진압하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계시기에, 기도는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두번째 기도의 비밀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이런 말이 있습니다. “When man works, man works, When man prays, God works.”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모르드개와 유대 사람들이 간절함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6:1 “그 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서 자기의 통치를 기록한 궁중실록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자기 앞에서 소리를 내어 읽게 하였다.”
여기에서 ‘그날 밤’은 모르드개와 유다 사람들이 자신의 옷을 찢으면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그 날 밤입니다.
에스더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계속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그날 밤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모르드개가 장대에 높이 달려 죽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갑자기 왕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TV드라마를 보면 왕들이 잠이 않오면 보통 어떤 일을 합니까?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든지, 아니면 술상을 받아다가 믿을 만한 신하를 불러서 한잔을 하든지…” 이것이 보통의 왕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자기의 통치를 기록한 궁중 실록을 가지고 오라’ 고 명령을 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하필이면 재미있는 소설 책도 아니고, 그 재미없는 ‘궁중실록’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까? 그것도 다른 선조들 때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통치를 기록한 그 책을 가져오라고 말했을까요?
그뿐만 아닙니다. 가져온 그 책을 읽는데, 어느 부분을 읽습니까? 에6:2 “실록에는, 대궐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고 한 음모를, 모르드개가 알고서 고발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신하가 왕의 명령에 따라 그 앞에서 역사 책을 펴서 읽는데 하필이면 ‘모르드개’라고 하는 한 유대인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그 부분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묻습니다. “이런 일을 한 모르드개에게 나라에서는 어떻게 대우하였으며, 어떤 상을 내렸느냐?" 시종들이 대답하였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은 갑자기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아무것도 상을 내린 것이 없다니….” 그래서 내일 아침에 그 사람을 궁으로 불러 큰 상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때마침 신하가 들어오는데 바로 ‘하만’이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오늘 모르드개를 장대에 높이 달아 죽일 것을 알리기 위해서 왕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왕이 하만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보시오." 그런데 ‘하만’은 왕이 그런 특별한 대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인 줄 착각하고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에6:7-9 “임금님께서 높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시면, 먼저 임금님께서 입으시는 옷과 임금님께서 타시는 말을 내어 오게 하시고, 그 말의 머리를 관으로 꾸미게 하신 뒤에, 그 옷과 말을 왕의 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의 손에 맡기셔서, 임금님께서 높이시려는 그 사람에게 그 옷을 입히시고, 그 사람을 말에 태워서, 성 안 거리로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모는 신하에게는 '임금님께서는, 높이고 싶어하시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대우하신다!' 하고 외치게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제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이 상을 베풀 사람이 자신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왕이 ‘너 모르드개를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다면, 하만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 갖은 중상모략은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에서 끝입니다. 그런데 왕이 ‘내가 특별히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보라’ 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 만약 왕이 그날 밤 그냥 잠을 잤다면…. 또 잠이 오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신하들과 함께 술울 마셨다면… 궁중 실록을 가지고는 왔는데 신하가 읽은 곳이 다른 부분의 이야기였다면, 그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이렇게 왕의 목숨을 살려주고 이미 왕으로부터 상을 받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참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여러분, 이것이 모두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간절하게 금식하며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만’ 뒤에 역사하던 악한 어둠의 세력들을 결박하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직접 일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이처럼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속에 직접 개입을 하기 시작하시며, 그 분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가 중요하며,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속에는 기도보다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 앞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권사, 집사로 임명 받는 모든 분들에게 이런 권면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되십시요.”
▲마지막으로 저의 짧은 간증으로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다 그렇듯이 인생에 힘든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곳 와싱톤에 와서 근 5년동안 여러분들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을 받다 보니 지금의 제 모습이 이렇게 좀 Luxury 하게 변한 것 같지만, 저에게도 참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제일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저는 미국 초창기의 유학생활 시절을 꼽고 싶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당시 저희에게는 보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파도 병원에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911이후로 학생들은 마음대로 밖에서 돈을 벌 수도 없었고, 참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에 생각하지 못한 아이가 생겼어요. 게다가 이 아이를 유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산’이라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서, 산후조리를 똑같이 해야 하는데, 저희는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유산 후에 제 아내가 자꾸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하혈을 하고, 하열을 할 때는 너무 배가 아파서 서 있기 조차 힘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너무 배가 아파서 응급실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비로소 아내의 병명이 ‘자궁 내막증 (Endometriosis)’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분은 아시겠지만, 이 병은 지금도 치료하기 힘든 병입니다. 게다가 아이를 잘 갖지도 못하게 하는 병일뿐 아니라, 배가 너무 아파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병입니다.
게다가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닌 그런 병입니다. 사실, 그 때 우리에겐 이미 큰 아이가 있었기에, 또 여러가지 형편상 아이를 더 원할 수 없었지만,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이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1년동안 아이를 달라고 .. 이 한가지 소원만을 놓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가 없는 몇 가정이 우리와 함께 ‘작정 기도’를 시작했는데 힘들다고 그만 중도에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1년 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아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생긴 아이라서 그런지, 정말 조심하며 거의 10개월을 누워서 지내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지금의 David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둘째도 생기고 아내의 병도 낳는다고 생각할 즈음, 아이를 낳은지 100일이 지났는데도 하열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이번에는 아내의 자궁에 혹이 안 밖으로 5개나 있다는 겁니다. 당시 의사의 말해 의하면 자궁내막증과 자궁 근종까지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하니 빨리 자궁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저희에게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저희에게 2명의 아이가 있었고, 아내는 더이상 자궁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저희와는 달랐습니다. 수술 당일 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마취 전문의가 와서는 갑자기 몸에 열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병원에서 쫒겨 났고, 그날 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날 다시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갔을 때 아내의 몸에 있던 자궁의 혹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저와 아내는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목사와 사모였지만, 이 사실이 너무 믿기 어렵고 또 두려워서 우리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차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왜냐면 잘못 이야기 했다가 이것이 ‘오진’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 저희에게 일어난 것임데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은, 당시 저희 아내의 병을 알고 그 치료를 위해서 기도하는 많은 중보 기도의 후원자들이 저희 가정을 위해서 간절함으로 계속해서 기도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단지 병치료만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위한 축복의 계획을 직접 이루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 때, 제 아내가 수술을 했었더라면 저희 집에 막내 Joshua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저희가 진심으로 깨달은 사실은 간절함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시지 않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문제 뿐만 아니라,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그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함으로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상 뿐 아니라, 그 뒤에 우리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만드는 영적인 문제까지 정리해 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2월13일 수요일이 되면 사순절 새벽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저는 저의 짦은 목회 기간중에 이 40일 새벽 기도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이 기간에 우리가 이 기간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묵상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벌써 기도로, 또 말씀으로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혹시 위기 가운데 계십니까? 힘든 광야와 같은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실망지 마시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이 힘들고, 위기이고, 마음의 아픔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 진실함으로 기도할 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속에 사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기도를 한다고는 했지만, 깊은 기도에 자리에 나아가지 못했으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읽기는 읽었지만, 그 말씀을 붙잡지도 못했고, 지키지도 못한 채, 하나님의 일보다는 세상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며 늘 염려와 불안속에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올해에는 더 깊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치고 실망스럽게 만드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과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으로 집중하게 하셔서,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우리에게 찾아온다 하더라도, 더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에서 승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