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영적 리듬을 세워가라 창2:7 위 설교 듣고 요약, 정리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데,
영이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좀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야 돼요.
오늘 그 얘기 (영적으로 살아나는 법)를 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이세요.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있는데
그 생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하나님만 지으실 수 있으세요.
왜냐면 하나님만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생명이 아닌 분이, 생명을 줄 수 없죠)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 코에, 우리 인간에게,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이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놓으시기 이전까지는
우리는 무엇입니까?
그냥 흙위로 뭉쳐진 하나의 존재일 뿐이에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 왜 의미가 있냐면,
하나님의 형상인 영으로 우리를 지으셨는데
'영으로 지으셨다'는 의미는 무엇이냐면
아무것도 아닌 그냥 흙덩어리 같은 존재,
또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주님이 그 속에 생령을 부으셨다는 거예요.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 난 존재가 되었다는 거예요.
본문의 '생령이 되니라'
히브리어로 '하야-하이-네페쉬' (중요하진 않습니다)
'become-living-soul'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
'아 그래,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구나' 하고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생령이 되니라'라는 말씀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서 숨쉬는 존재가 되었다.. 를 뛰어넘어
-'살아있는 영이 되니라'
즉 '하나님을 강렬하게 갈망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호흡을 주셨다'는 의미에요.
그 전까지는 우리는 그냥, 눈 뜨고 살아가는 그런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부여하신 것은
-강렬하게 하나님을 갈망하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150:6절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성경은 '호흡이 있는 자는' 찬양할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호흡이 없는 자는' 찬양하지 않습니다.
누가 찬양할 수 있는가 하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이것은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마다',.
'살아있는 생명을 소유한 사람마다'를 뜻합니다.
단순히 허파로 숨을 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창2:7절이나, 시150:6절은
모두 '영적 호흡'을 뜻하죠. 그냥 '숨 쉬는'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갈망할지어다. 할렐루야!'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호흡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갈망을 주셨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이거예요.
주님이 은혜로 내게 호흡을 주셨는데
너무 감사한 것은, 영이 죽어있던 나에게,
사망 가운데서 달려가고 살아가고 있었던,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내게,
죽은 영을 살려주시고, 생명을 주신 거예요.
여러분, 살아 있는 존재가 다 똑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중환자실에 병상에 누워 계신 분도, 살아 계신 거에요.
요양병원에 누워서 꼼짝도 못 하고,
자기 손으로 밥 한 숟갈 떠 먹을 수도 없는 그 존재... 그 분도 살아계시지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간신히 숨을 쉬며 누워계신 분들도.. 다 아직 살아계십니다.
우리 영혼이 그 지경에 이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계속해서 '육적인 호흡'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호흡'을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우리 신자들가운데, 살아있다고 하나.. 거의 죽은 자와 방불한
그런 호흡을 간신히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아주 많다는 거죠.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1
여러분, 건강한 사람은 식욕이 넘칩니다.
육신적 식욕만 넘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식욕, 즉 영적인 갈망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주님께서 살리셨으나, 죽은 것 같이 누워있는 신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시135:15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18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17절, 열국의 우상은.. 아무 호흡도 못 한다고 말씀합니다.
18절에, 그 우상을 섬기는 자도.. 아무 호흡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호흡'을 뜻하는 거죠.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영은 죽어 있는 거죠.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근데 문제는, 우리 신자들, 성도들이
영적으로 호흡이 가물가물 한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하나님은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셨는데'
그리하여 '살아있는 영이 되게 하셨는데' 창2:7
영혼의 양식(말씀)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혼의 호흡(기도+찬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마치 우상을 섬기는 자와 같이.. 영의 호흡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호흡은 살아있겠죠. 운동을 많이 해서 몸이 건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예배 시간에 노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진정한 찬양은 못 드리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호흡하고, 성령으로 호흡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호흡이 있어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150:6
우리 가운데 영적인 갈망이 살아나길 축복합니다.
우리 가운데 영적인 호흡이 살아나길 축복합니다!
영적인 호흡이 죽어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즐거움(영의 즐거움)이 없으면, 삶에도 즐거움이 없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잠깐'이죠.
그에게는 하나님이 원래 에덴동산에서 주신 즐거움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영이 죽은 상태와 비슷하거든요. 에덴이 즐거움 pleasure 이란 뜻이죠.
여러분, 혹시 의무감으로 교회 나오지는 않습니까?
설교를 들어도 지루하고 하품만 나옵니까?
자기 영적이 상태를 진단하셔야 됩니다.
자기 영이 죽어 있거나, 병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0~20년을
이렇게 영이 계속 죽어있는 상태로, 병들어 있는 상태로
산소호흡기 끼고 교회다니는 분들이 있다는 거죠.
자기 상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저 의무감 또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게 5~10년 이상 지속되면.. 그건 문제라는 거죠.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거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실 때
우리의 영혼을 살리신 그 주님의 뜻은
우리로 말미암아 이 땅을 '다스리는' 거라는 거예요. *'섬긴다'는 뜻
번성하고 이 땅에 충만하게 되는 걸 원하시는 거예요.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렇게 되려면, 우리 코에 생기가 충만해야 돼요.
신약적 표현으로 하면, 성령이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돌무덤 속에 누워 있었을 때
예수님은 '죽은 게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 그 나사로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영혼이 자고 있는 사람들, 영혼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잠자는 자를 깨우신 일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 사람들은, 죽음의 숨을 내뿜고, 죽음의 표정을 짓고,
죽음의 아우라를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의 숨을 내뿜고, 표정이 생기로 살아있고,
생명의 아우라를 나타내 보입니다.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참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면 부러워하지요.
신앙생활 하고 싶어지고, 교회에 다니고 싶어집니다.
생명의 아우라를 보이며, 생기를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vice versa(그 반대는 그 반대로 됩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오늘 이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회복을 가져다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사도요한은 이 말씀을, 성경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씀은, 그저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즉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제가 지난 주일 날, 평소에 방문하고 싶었던 그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드리는데,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은 게 있었어요.
그 교회는 많은 다양한 세대들이, 또 다양한 인종들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유명한 교회입니다. 보니까 젊은 청년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젊은 청년들이 다들 아주 두꺼운 성경을 끼고 다니더라구요.
이들이 성경 말씀을 사랑하나 봐요.
성경 펴 놓은 것을 보니까, 속 종이도 너덜너덜해요.
오랫동안 말씀을 본 모양이에요.
요즘 청년들은 성경을 다 스마트폰으로 보는데,
그 교회는 문화가, 옛날 식으로 성경을 보는 거예요.
그 점이 참 새로웠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으로 대해야 한다는 거죠.
인격적인 존재로 마주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고, 그런 어떤 메시지로 대하든지,
내게 주시는 격려의 말, 격언으로 보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호흡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령' 즉 living soul .. 살아있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창2:7
단지 말씀을 읽는 삶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아는 삶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번에 3년반 가량 되는 코로나 재앙을 겪으면서
(*신기하게 계시록에 나오는 재앙이 3년반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신자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영이 살아서 호흡하는 성도들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호흡이 가물가물 하던 사람들, 또는 호흡이 아예 없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신 거예요. (물론 그 중에 앞으로 되돌아올 분들이 있겠지만요)
문제는, 이게 '재난의 시작'이라는 거죠. 마24:8
당연히 '재난의 끝'이 아닙니다.
그러면 앞으로 더 큰 재난이, COVID-19보다 더 강력한 것들이 닥칠 터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더 많이 떨어져 나가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 교회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전체 하나님 나라를 염려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살아있는 성도, 생기로 호흡하는 성도,
신약적 표현으로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고,
성령충만을 계속 유지하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아니면, 더 크고 심한 게 몰려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그저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 지식으로 기독교를 대하던 사람들은
다 나가 떨어지는 거예요.
지금부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으로 만나셔야 돼요.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렇게 생령이 된 사람은, 행하는 믿음으로 삽니다.
기독교를 단순히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반드시 자기 몸으로 살아냅니다.
병상에 누워서 겨우 숨만 쉬는 환자가 아닙니다.
살아서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가 됩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받기만 하면, 그것은 썩습니다.
주님이 주신 생기도, 우리가 들숨으로 들이마셨으면, 이제 내뱉어야 되는 거예요.
은혜의 생수도, 흘러 가지 않는다면, 고인물 썩는 물 되는 거예요.
흘러가길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 섬기는 '행하는 믿음'이 되어야 됩니다.
진정한 생기를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1:27~28절 말씀처럼,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교회 봉사로, 또한 다양한 면에서 세상속에 소금과 빛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속에 '생기'가 있습니다. '들숨, 성령'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섬김과 봉사의 삶을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속에 '들숨(들이쉬는 숨)'이 있는 사람은, '날숨(내뱉는 숨)'도 있게 됩니다.
사람이 먹기만 하고 배출하지 않으면, 변비 걸린다고 하잖아요.
만약 자기가 은혜는 받았는데, 봉사하지 않는다면, 모조품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진짜 은혜, 들숨, 성령, 구원을 받은 게 아닙니다.
내면적 신앙은, 반드시 외면적 섬김과 봉사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는 말
'생령이 된지라' 이 말씀의 뜻은
'(성령을) 호흡하는 존재가 된지라'
'(하나님을) 갈망하는 존재가 된지라'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생기를 불어넣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만약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면
금식이라도 하세요. 시간을 정해서 간절히 기도하세요!
'주님, 제 속에 갈망하는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이 우리 잠자는 영혼을 깨워주시고, 병든 영혼을 고쳐주십니다.
이게 뭐 하루만에 될 수도 있지만, 정도에 따라, 수 일, 수 주일이 걸리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 속에 성령의 호흡이 회복되고, 하나님 갈망이 회복되면
내 삶에 기쁨이 회복됩니다. 사람이 생기가 발산하게 되죠.
그러면 더 큰 갈망을 사모하게 되고요, 더 큰 은혜를 사모하게 되면서
삶에 더 큰 기쁨과 의미가 넘치게 되죠! 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