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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든지 아니 듣든지

LNCK 2023. 7. 20. 11:53

◈듣든지 아니 듣든지          겔2:7, 3:17            설교3편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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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냐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 모든 것으로부터 듣고 배우는 사람이다!

겸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듣고 배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인천에 있을 때, 교회가 좀 작고 빈약해서 교회 사무실이 없었어요.

그래서 손님들을 만날 때면, 부득불 동네를 걸어 내려가서

대로변 다방에서 만났어요. 과거엔 다방이 많았죠.

은성다방 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인천으로 저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때마다, 거기 가서 만나고 했는데

하루는 설교하면서 보니까,

거기 나이 지긋한 고참 마담이 예배당에 나와 맨 뒷 자리에 앉아 있는 거에요.

제가 '예수 믿으세요. 교회 나오세요'

뭐 그렇게까지는 말한 거 같지는 않아요.

제가 깜짝 놀라서 속으로 '웬일이지?' 하면서도, 그날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 분은 교회 와서 늘 맨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축도 하자마자 뒷문으로 제일 먼저 나가 버려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부끄러워서 그렇대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시일이 흐르면서, 그 분이 점점 점점 앞으로 나와서 앉아요.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물었어요. '저 뒷자리에 앉았더니

왜 이제는 앞에 와서 앉습니까?'

그랬더니 정말 잊을 수 없는 귀한 얘기를 합니다.

'저 뒤에 앉으니까 목사님 설교가 사람의 소리로 들리고,

앞으로 가까이 가니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고...'

이거 놀라운 얘기 아니에요?

'가까이가서 말씀을 들었더니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더라..'

이렇게 해서 열심히 나오고 교회 봉사하다가, 나중에 교회 집사가 됐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이렇게 정말 자랑스러운 얘기였습니다.

(*오페라, 연극 공연을 가도, 연주자나 배우의 얼굴 표정이 보여야 재미가 있고,

큰 강당 맨 뒷줄에 앉아서 연주자 표정이 안 보이면, 별로 재미없습니다.. 같은 원리죠..)

▲여러분, 며칠 전에 괌 Guam 에서 큰 태풍이 일어나서 관광객 3천 명이

발이 묶여서 나오지 못하고 며칠 동안 고생했다는 뉴스가 있었죠.

제가 과거에 괌에 부흥회 인도차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그 교회 목사님이 '드라이브를 한번 합시다' 하더니,

그저 들판으로 산으로 이렇게 빙빙 돌다가,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멈췄어요.

그래서 차에서 내려가지고 숲 속으로 아주 울창한 정글로 들어갔는데,

그 속에 동굴이 있었어요. 바위로 된 굴이었는데

그 동굴이 바로 일본군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가 28년 동안 살았던 동굴이래요.

1945년 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일본군 요코이 쇼이치는 *1944년 당시 29세, 하사

낡은 총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이 동굴 속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계속 괌에 주둔하면서 훈련도 하고, 대포도 쏘고,

비행기도 떴다 내리고 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라고 혼자 생각한 것입니다.

1945년에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끝났다는 걸 몰랐습니다.

'다 죽었는데 나 하나만 살았다'고 생각하고 아주 감격하면서

그 굴 속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다.

1944년에 숨어 들어가서, 1972년에 발견되었으니 28년을 살았던 셈이지요.

 

거기에 원시림이기 때문에 과일이 많아요.

숲속에서 여러 가지 과일을 따먹으면서 27년을 살았는데

지나가던 관광객이 그 이상한 모습의 사람을 우연히 발견하고

결국 그 동굴 속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28년 동안 가지고 있던 총, 그 유품, 그 옷 이런 것을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가서 자세히 구경을 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세요. 발견 당시 57세였어요.

28년 그 청춘의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고생하며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딱 한마디 '종전되었다. 전쟁은 끝났다' 하는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운명은 이렇게 비참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다 처리되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복음을 듣지 못해서,

요코이 쇼이치처럼, 오랜 세월을 그렇게 흑암의 동굴 속에서

스스로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에스겔 3장 본문에는 파수꾼의 얘기가 나옵니다.

파수꾼, 즉 보초병은 불침입니다. 군대에서 '불침번' (잠 안 자는 당번)이라 부르죠.

파수꾼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적이 오는가 하는 정세를 잘 살펴야 됩니다.

이 보초 한 사람을 세워놓고

나머지 사람은 수백 명이 막사에서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그 보초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오늘날 순장, 진장, 목회자는.. 이런 사명으로 늘 깨어있어야 하는 거죠.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보초병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이 막중합니다.

또한 현명해야 됩니다. 통찰력이 있어야 됩니다.

무슨 소리가 날 때, 어디서 불빛이 보일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판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자기 피곤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피곤하고 잠 온다고, 보초가 자면 안 됩니다. 아무리 졸려도 보초병은 자면 안 됩니다.

좀 끔찍한 얘기입니다만 제 (곽선희 목사) 경험입니다.

제가 최일선에서 전쟁할 때 아침에 나가 보니까 보초의 모가지가 없어요.

적이 와서 목을 베어 간 거예요. 이 보초병이 졸았어요. 자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그걸 직접 본 사람이에요.

보초병이 졸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오늘날 영적인 파수꾼들이, 이런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은 남이야 뭐라고 하든 간에 사명감이 있어야 됩니다.

'보초를 설 때 내 사명이 막중하다.

여기에 있는 수백 명의 죽고 살고는 나 한 사람에게 달렸다!'

그런 철저한 사명감을 가지고 보초를 서야 할 것입니다.

겔3:17절에 보세요.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굉장한 권위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인 것입니다.

겔2:7절에 보면, 더더욱 엄중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하지?

후속 결과가 어떻게 될까?' 그런 거 생각하면 안 됩니다.

듣는 사람 중에 내 친구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모든 생명은 내 책임입니다. 파수꾼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뭐 그거 상관없습니다. 오직 내가 할 책임은 다 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끔 가족들이나 특히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씀으로 권면하면,

오히려 핀잔을 듣고, 반발을 살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듣지 않고', 내 생각에 옳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겔3:17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말을 들을 때.. 그들은 그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것입니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7

▲제가 가끔 북한에 가서 선교할 때 보면, 그들이 제게 그런 말을 해요.

'목사님, 그거 참 어려운 여건에서 왜 이렇게 자꾸 와서 도우려고 하십니까,

왜 그렇게 애를 많이 쓰십니까?'

그러면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요. 내가 당신들을 살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한 지혜도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살아야 우리도 사니까..

당신을 살리고야 우리가 살아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거지,

내가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이런 게 아니라고요...'

여러분 잊지 마세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 것은,

파수꾼의 사명으로 하는 거예요.

'저도 살아야 나도 사는 거예요. 나도 살고 저도 사는 거예요.

나 혼자만 살지 못해요.'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어요.

'천당은 혼자 못 간다. 누군가라도 데리고 가야지 나 혼자는 못 간다'

하나님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자에게는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고 하셨죠.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내가 남을 살리지 못하면,

그의 죽음에 대한 피값을

하나님은 내 손에서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듣든지 아니듣든지' 말하는 것입니다. 2:7

▲소망교회 때 김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어요.

치과의사 하시는 분이에요. 어느 날 제게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저와 같이 한번 심방을 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순천향병원 병원실 앞에까지 갔습니다.

집사님이 설명을 합니다. (나중에 장로가 되셨죠)

'여기 우리 아버지가 지금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데, 고집이 세요.

아들 삼형제인데 제가 장자예요.

그런데 내가 예수 믿는다고..

이 놈이 나 죽은 다음에 제사 안 드리려고 예수 믿는구나..'

그래서 유산을 나누어 줄 때 자기는 뺐대요.

그리고 두 아들만 유산을 나눠줄 정도로 아버지가 고집스러워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목사님이 좀 가주세요'

집사님은 병원실 앞에서 제 손을 붙들더니

'우리 아버지가 또 벼락을 칠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기도하고 들어갑시다'

그래서 병실 문 앞에서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죠.

아버지가 반갑게 만나 주세요. '제가 소망교회 목사입니다.'

딱 한마디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이분이 묵묵부답 가만히 있습니다.

'천국에 갈 준비가 됐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제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어요.

그 집사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여러분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분이 잠잠하면 저들은 구원 받을 수가 없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심각하게 말합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복음을 전하라

안 들으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고, 들으면 네가 사람을 구원하리라' 2:7

'내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3:17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과거에 어느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여선생님이 있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애 셋을 데리고 살 길이 없었어요.

그래가지고 너무 힘들어서.. 또 자본이 없고 하니까 포장마차를 했어요.

포장마차가 그래도 수입이 괜찮으니까 그걸 했는데

이분이 포장마차를 하면서 많은 진리를 깨달았어요.

초저녁이 되면 슬슬 술 친구들이 모여들어요.

서로 반갑다고.. 오랜만이라고..

이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저 손님들은 사이가 참 좋구나, 오늘은 참 축제 같은 기분이다..' 했는데

웬걸 보통 밤 10시만 되면, 손님들 사이에 시비가 붙고 싸운대요.

술꾼들이 대부분 저녁 6시에 모일 때는, 세상에 없는 친구사이인데,

10시만 되면 철천지 원수로 변하면서, 막 서로 싸우고, 언성 높이고

이렇게 되는 것을 보고, 이 선생님은 선생님 답게 연구를 했어요.

'도대체 원인이 뭘까? 왜 이럴까?'

'왜 그렇게 반갑게 만났다가, 왜 마지막에 이렇게 싸우면서 헤어질까?'

원인은 간단하더래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딱 한 마디 때문이래요.

서로 무슨 말을 하다가.. 듣는 사람이 "그러면 못 써!" 그런대요.

그러면 인격 침해가 된 거예요. 말하는 사람이 감정이 상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대판 붙는 거예요.

여러분 알아들었어요? 사람 얘기를 일단은 들어주어야 하는데,

한참 얘기하는 사람을 잘못됐다고 나무라니까... 그때부터 시비가 붙는 거죠.

그럼 말하는 사람이 울화통이 터지는 거예요.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일단 그의 사정을, 아무 소리 말고 들어줘야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제가 개인적으로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뿌리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도할 때마다 이것이 제게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요18:11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를 앞에 놓고 하신 말씀이에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는,

빌라도도 아니에요. 가야바도 아니에요. 가룟유다를 비판할 것도 없어요.

또 배반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원망할 것도 없어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이니, 내가 감사함으로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해석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더욱 귀중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12:24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제가 시카고에 갔을 때 시카고 박물관을 한 번 방문했습니다.

그 전에 제가 미라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미라를 열어 놓는 것은 거기서 처음 봤습니다.

그 3000년 전 미라를 보면, 참 놀랍습니다.

죽은 사람을 (염장해서 수분 빼고) 바짝 말려서 보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써 있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라의 손에 밀알이 있었대요. 밀알 몇 개가 있어서 너무 소중해서

그걸 갖다가 땅에 심어 보았더니 싹이 나더래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밀알이 그대로 있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지 못해요.

3천년 가까이 지나도 열매를 못 맺어요.

이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돼요.

'죽어야 열매를 맺느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신비예요.

내가 이 십자가를 질 때만,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고

내가 십자가를 바로 질 때만,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고

십자가를 내가 감수할 때만, 하나님의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죠.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내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지요.

'내게 주어지는 고난의 십자가' 이건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에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이에요.

피하려고 하지도 말고, 거절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건 꼭 필요한 것이요.

어쩌면 꼭 필요해서 내게 주시는 십자가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어지는 것'.. 그 속에 신비감이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고 합니다마는

꼭 잊지 말것은 '내게 주어지는 십자가'가 있어요.

그거는 벗으려 해서는 안 돼요.

십자가를 벗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다가 자기 일생이 다 망가져요.

십자가를 벗으려고 하는 것, 십자가를 안 지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불신앙이죠.

또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벗기 위해서 기도해요.

기도하는 내용을 가만히 분석하면, 자기 십자가를 벗겨 달라는 기도예요.

'십자가를 피해가게 해주세요. 십자가를 없애주세요.

십자가 없는 생을 살게 해주세요..'

죄송합니다만 그 기도에는 응답이 없어요.

그런데도 일평생 동안 그 기도하는 거예요.

자기 십자가가 자기 사명인데,

그 사명 감당하기는커녕, 그 사명을 벗어버리게 해 달라고.. 어리석게 기도하는 거죠.

응답도 안 되는 기도를 평생 하다가..

자기 사명 감당도 하나도 못하고.. 인생을 마쳐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 '내 몫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총이에요.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내게 축복하세요.

십자가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내게 역사하시거든요.

거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그 속에 감춰져 있는 거예요.

깊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내 몫의 십자가가 있는데

그걸 제때 알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그걸 제때 몰라요.

나이 50, 60대 되어서도 아직도 몰라요.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 가서야 알더라고요.

그때 가서야 '아 이 모든 고난은 내게 주시는 축복이었다.

내게 주시는 은총이었다. 아, 이 고난이 없었으면 오늘 내가 없다.

이 고난이 아니면 내가 그리스도를 못 만났을 거고

이 고난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거고

이 고난이 아니면 오늘의 내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죽을 때야 그걸 이제 비로소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 생전에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 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