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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게 주신 세 가지 축복

LNCK 2023. 7. 22. 17:06

◈인생에게 주신 세 가지 축복      전3:11          인터넷설교녹취, 정리

전도서 3: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아멘

지혜자 솔로몬이 생애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쓴 이 전도서,

가장 큰 지혜와 가장 부요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그가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해 아래서 헛되지 않는 것이 없도다..

이렇게 인생의 헛됨을, 아무것도 안 가져본 사람이 말했다면 모르겠는데,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가장 높게, 많이 누린 사람이

'내가 살았던 인생이 헛되었다'고 처절하게 부르짖는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그런데 이 헛된 세상 속에서, 헛되지 않게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힌트 몇 가지를, 본문에서 보여주십니다.

▲1.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도, 내 인생도.. 아름답습니다.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전3:1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궁창을 보시고, 땅과 바다를 보시고,

식물과 동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그 아름다움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정말 들판의 풀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냥 그 아름다움을 우리가 그저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에게만 열립니다.

*인간성이 회복되면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됩니다.

아직 복음으로 인간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또는 인간성이 병들면..

아름다운 것들을, 평소에 전혀 발견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이 안 보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의 피조물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

발달장애아동 엄마 수련회 마지막 날 만찬을 하는데,

소감을 발표할 때입니다.

그 날 탁자 앞에, 장미 꽃송이 하나 씩을 엄마들 앞에 모두 꽂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오늘 장미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처음 봅니다..'

이제껏 자기 앞에 장미들이 많이 지나갔거든요.

붉은 장미도 있었고, 흑장미도 있었고, 백장미도 있었고

장미 꽃다발도 여러 번 받아 봤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장미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형체일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 마음속의 아름다움(인간성)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그 장미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는 눈물로 감격하면서

장미를 새롭게 본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장미꽃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입니다.

그 중에 사람은 보통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죠. 창1:31

여러분 각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아름다운)

대상으로 창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미켈란젤로 작품 앞에 서면, 사람들은 말을 잊어버립니다.

그 아름다움에 압도돼서 그런 거죠.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스케치 하나만 해도 보물로 칩니다.

그 종이조각이 도대체 뭔데요?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데.. 그 가치가 있지요.

다빈치의 낙서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집니까?

왜냐면 그 낙서가 네오나르드 다빈치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그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와, 우리 하나님을 비교할 수 있겠나요?

여러분 각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인 줄 아십니까?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내가 누구 작품이라고요? 내 인생의 가치는 거기서 시작합니다.

미켈란젤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만드신, 빚으신 작품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아니 하나님 앞에 서지 않는다면,

동물하고 우리하고 다른 게 뭐예요? 똑같지요.

먹고 마시고 생식하고 배설하고 그게 전부인 인생!

그런데 우리가 동물하고 다른 유일한 사실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가 설 때입니다.

그때 내 가치가.. 폭발적으로 높아집니다.

▲2.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 생애를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전3:11

때를 따라 참 아름답게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정확하게 만드셨지만

그 "때"까지도 합당하게, 정확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만드셨지만,

그 시간까지도 딱 맞추어서 만드셨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가 그런 뜻입니다. '시기에 딱 맞게'라는 뜻이죠.

(*만약 빌게이츠가, 스티브잡스가 지금보다 1백전 전에 태어났으면,

아무 빛도 발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었는데,

예를 들면 '때를 따라 아름답게'가 그런 뜻인 거죠)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때'까지도 주관하십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헛된 인생'이 되고,

그걸 깨달으면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거죠,

나는 지금 환경이 몹시 어려운데요...

아니, 거기에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시는 때 일수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감옥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가면서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그 아름다운 시를, 마치 누예가 실크를 뽑아내듯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그가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없든지 있든지, 젊든지 늙든지

그의 때를 따라 아름다움을 살도록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걸작들을 향해서

그걸 못 보는..

색깔을 못 보는 색맹처럼, 권력의 안경을 쓰면,

색깔을 구분 못하는 인생으로 살아버립니다.

그래서 성공에 취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 없습니다.

또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내가 처한 내 삶 속에서

'어떤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려야 될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지금 때는 지금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리를 더 아름답게 여기신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남는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아름답다고 하시는데

정작 나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신 다른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바로 이 시간에 우리에게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장애인이나 장애아동들을 봐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아름다움이 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지으시고, 창조하시고, 보내신 것이고,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름답습니다.

저는 정말 마음으로 그들이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어찌면 우리하고 다르게, 특별하게 몸짓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참 순진하고 참 순수한 거 보면...

그들 앞에 서면 오히려 내 속에 더러운 것이 보여요(비교되어 드러나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 주위의 세상과 인생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는 시야를 열어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특별히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그 자녀 속에 아름답게 자라가는 그 아이들의 삶들을 보고

늘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아이들을 믿음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각자 하나님의 만드신 바요, 하나님은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또 (모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크게 후회하는 것은, 우리 손자 찬O이 사진하고,

우리 아들 세O이 어릴 때 사진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 키울 적에, 내 아들이 예쁜 거를 못 봤어요.

그런데 손자를 보면, 사진도 똑같고, 몸짓도 똑같아요.

그런 손자를 보면 얼마나 기쁜지...

그런데 지금 "손자"를 보면 그렇게 기쁜데,

그 젊었을 때, 왜 내 "아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을까요? (그게 아쉽습니다)

한참 젊을 때, 일에 취해가지고, 일 중독이 돼가지고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가까이 보내주신

내 아들의 아름다움을 못 보고... 그때 내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후회됩니다)

여러분,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주변을 보시고

가족을 보시고, 또 나를 보십시오.

햇볕 나면 햇볕 나서 아름답고, 비오면 비오는대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때를 따라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엡2:10

그래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이뇨?

(장애우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이니이다.

기독교인의 신앙고백 제1조입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놀라운 축복!

그분이 내 생애에 임마누엘 되셔서

내 평생을 인도하시는 축복을 오늘까지 누렸기 때문에

다윗은 가장 큰 고백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그가 돈이 많아서 '부족함이 없다'는 말 안 했습니다.

내가 뭘 얻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 안 했습니다.

딱 하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그 영혼을 사모해서, 하나님의 영원 속에서

그분이 나를 알고, 내가 그분을 알고, 그분과 사랑의 눈동자를 마주치는...

그래서 CS 루이스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은.. 날마다 만나도 가슴 설레이는 첫사랑의 기쁨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내가 창조의 걸작물이라고 확신되는 순간

내 소유가 내 주인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빚으셨기 때문에 걸작물임.

내 존재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명성 때문에 걸작품. 사실입니다)

권력이 내 주인이 못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히 여겨주신 진짜 나를 발견한 순간부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아름다운 생애가 펼쳐집니다.

▲3. 하나님은 우리로 시종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피조된 우리들은

일평생 하나님과 영원을 사모하며 살다가

그 영혼으로 내 생애는 마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여기서 출발하여 주님께 가는 것이 내게는 더 큰 유익이다' 빌1:22~23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위 23절에서 '떠난다'는, 이별의 의미가 아니라 '출발'이에요.

그 원어적 의미가 '장막 줄을 푼다'인데, 이사간다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출발입니다.

그럼 어디로? 우리 하나님의 영원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가지 더 축복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생을 살다가 그 영원을 만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하나님 하시는 일의 시종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고 말씀했습니다.

전3:11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니까 '아 내가 다 끝났구나' 그런데 우리는 시종(처음과 끝)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바꿔버리면 그냥 역전이 되어버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절망이 없는 이유는,

시종을 마지막으로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고, 그 분은 완전하십니다.

*시종 :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공동번역 :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서 모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쎄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손길을 펼치셔서 홍해를 쭉 갈라놓으니까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는...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 결론 내지 않았으면, 아직 결론 안 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 됐다'고 까불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아니라' 하시면, '다 됐다'고 하는 것도 다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정하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 모든 때를 따라,

내 삶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늘 바라 보십시오. 아름다우신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주입니다.

그 창조 안에서, 당신은

건강할 때 못 누렸던 아름다움을, 병약할 때 누릴 수도 있고

성공했을 때 못 가졌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여러분의 실패의 때를 통해서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아직 끝내지 않았으면,

시종을 주장하신 그분 앞에서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끝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또 우리의 축복입니다. 왜 축복인가요?

'만약 내 마지막 날이 결정됐다. 내가 죽을 날을 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럴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못된 일 다 마음대로 해보고

한 삼일 전에 회개 딱 하고,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려 할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종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우리 인생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시종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께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름답게 지으신.. 심히 좋으신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별 가치가 없다'고 말해도..

당신을, 가진 소유로 평가하려 하고..

당신을, 이룬 업적이나 성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너만 바라보노라' 하십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그렇지 않습니까.

'너는 심히 아름답다. 너는 내게 심히 아름다운 대상이다!'

그런 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아름답게 보심'이

우리 삶 속에 드러나야 됩니다.

그걸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영원'을 사모하는 시간으로 살며,

그때 ('오늘'이라는) 순간들이 빛나집니다.

여러분, 이 순간이(오늘 하루가), 순간으로 마모되어 없어져 버리고

찰라로 사라진다고 믿고 사는 사람과,

이 순간이, '하나님의 영원의 한 시점'이라고 믿는 사람 중에

누가 그 인생을 더 복되게 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찰라'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한 시점'으로

당신의 순간, 순간들을 내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온 분들도

영원의 한 시점으로서, 복되게 사십시오.

시종을 사람들은 알 수 없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