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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 2

LNCK 2023. 7. 24. 01:52

 

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2: 영적 둔감함 [마가복음41] - YouTube

◈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 2          막14:32~42

 

◑서론                  *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 1

 

막14장부터 15장 중반까지 "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이라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독특한 영적인 어떤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십자가에 가까이 가는 사람,

아니면 십자가가 우리 인생에 가까이 다가오던,

하여간 십자가에 가까이 갔을 때

"우리 안에 있는 것들, 민낯들이 다 드러나게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무엇을 처리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처리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본인도 인지할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 안에 있는 민낯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막14~15장 중반까지.. 짧은 시간이었어요.

길어야 15~16시간, 하루 24시간도 안 되는 기간인데,

그 동안 십자가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안에 있는 모습들이

다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드러나는 모습들은 다 추악한 우리의 민낯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현실들, 죄와 연약함과 배신... 이런 모습들이죠.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드러나는 모습을 제가 대충 카운트해보니까

거의 한 40 여 가지나 되는.. 인간의 아주 다양한 죄들...

무슨 전시회 박람회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모든 종류의 죄들, 그리고 죄들이 서로 콜라보레이션 하면서 일어나는

그 추악한 모습들이,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십자가는 동시에 그 모든 죄들을 덮으시고

치료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이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연약함,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덮으시고 살리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본론

 

본문에서 드러나는 제자들의 민낯은 <영적인 둔감함>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영적인 둔감함>에 대해서 저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또한 마리아의 옥합 깨뜨림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이때가 잡히시기 바로 직전입니다.

 

아마 목요일 밤 쯤 되는 때죠. 잡히시기 직전 이셨어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시고는

혼자 기도하러 가십니다.

 

막14:32~34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자 여기 보면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서 깨어 있으라. 내가 심히 고민되어서 죽게 되었다'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육체가 깨어서 잠자지 마라 하는 뜻만이 아니라,

그것 이상의 의미죠.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에 보면 '깨어있고 기도하라' 이렇게 말씀하시죠.

즉 '영적으로 긴장한 상태있어라' 이런 뜻입니다.

 

왜냐면 여기서 어떻게 보면 예수님 생애에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었냐면 '예수께서 심히 놀라고 슬퍼하셨다'

또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렇게 영적으로 아주 예민한, 아주 치열하고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시고 말씀하시지만

'(나를 위해) 중보하라고 부탁하신'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는 데는

여기 밖에 없어요.

 

뭐 정확하게 '나를 위해 중보하라' 이렇게 워딩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거죠.

즉 그 시간이 정말로 절박하고, 중요했던 순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영적으로 민감하고,

예수님 생애 가운데 가장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순간에

제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참 황당한데요, 졸고 있었어요.

 

37절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 중차대한 순간에, 이 삼엄한 영적전쟁의 한복판 속에서

제자들은 졸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육적으로 묘사하면

막 전쟁이 벌어져 가지고서, 사방에 폭탄이 터지고, 막 폭격이 일어나고

총알이 왔다 갔다 하는 생사의 기로에서,

태연하게 졸고 있었다는 것이죠.

 

예수께서 이제 십자가에 오르시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모든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아닙니까.

 

모든 인류 역사상,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인류 구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뭐 이렇게 비슷하게 중요한 순간도 과거에 없었어요.

역사장 가장 중요한.. 다른 어떤 것하고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그 순간에

제자들이 졸고 있었다는 거에요.

영적인 감각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은 뭐냐면

<영적인 둔감함>이에요. *이 설교의 주제

 

지금 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 인생을 뒤흔들만한 그런 중요한 순간이 와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때는 반대로 별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은 그런 허접한 순간에도

마치 큰 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이 십자가에 십자가가 드러내는 민낯들 중에

<영적인 둔감함>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첫번째 특징은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지 모른다>는 거에요.

 

반대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될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이제 십자가가 다가옵니다. 십자가는 위기입니다. 그렇죠.

물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 허락하신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우리 삶가운데 큰 위협이고, 위기로 다가오는 일들입니다.

 

자 이 위기 앞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따로 시간을 떼어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하나님 자신이신 분도,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생의 큰 위기 앞에서, 그 위기가 비록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위기라 할지라도..

큰 위기 앞에서 예수님이 보이셨던 반응은 명확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깊게 기도하신 거에요.

 

자 그런데 그에 반해서, 제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기도 대신에 졸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와, 둔감한 자를 가르는 차이입니다.

 

차이는 여러분, 다른 많은 요소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에요.

위기의 순간에, 무릎으로 기도하는 자리에 나가는 자는

결국 깨어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둔감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그 인생의 위기 앞에서, 십자가앞에서,

과연 기도로 반응하느냐, 아니면 기도 없이 그 위기를 통과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영적으로 민감하냐/ 둔감하냐는 것을 가르는 절대적인 차이가 되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 오든지 간에

결국 영적으로 깨어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결국 알아요.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아요. (기도 중에 깨달음이 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영이 잠자고 있으면

우리는 아무 대비없이 십자가를 맞이하게 되고

그래서 막상 십자가가 왔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면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십자가의 본질, 지금 내 앞에 있는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십니다.

그전에도 물론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지만

십자가앞에서 깊게 기도 하시면서

'아 이 순간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구나'

이 위기의 본질이 뭔지를 명확히 아셨어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게 되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돼요.

-'이 위기의 본질은, 사탄이 나를 공격하는 거구나!'

-또는 '이번 위기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나의 성숙을 위해서 허락하신 거구나'

-혹은 '아, 이 위기의 본질은, 내 죄 때문에 찾아온 결과구나!'

 

이렇게 우리가 깊게 기도할 때, 이런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분별이 오면.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사단이 공격하는 거라는 걸 이해하게 되면, 영적으로 대응해서 싸워야 되는 거죠.

-반대로 이것이 주께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어떤 특별한 연단 기간이라면

그것은 잠잠히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죄 때문에 닥친 결과라면

그것은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 거죠.

 

이렇게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가 명백해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요? 영적으로 깨어 있으셨거든요.

 

절대적인 열쇠입니다.

여러분 수많은 인생의 순간들을 우리가 통과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기도 하고, 위기를 통과하기도 하고,

사탄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죄값을 치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순간들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 모든 순간에 대해서 우리가 해야 될 태도는 하나에요.

'영적으로 깨어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어요. '깨어서 기도하라!'

 

예수께서 기도하신 결과, 이번 십자가의 사건의 본질은,

-내가 맞서 싸워야 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구나'

 

그 본질이 명확히 이해되니까

그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대응을 보십시오.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세요.

 

잠잠히, 묵묵히,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때려도 그냥 가만히 있으시고,

욕을 해도 대답을 안 하시고,

 

'너 자신에 대해서 변호하라' 그래도 그냥 잠잠히 침묵하십니다.

왜요? 본질이 뭔지를 명확히 아신 거예요.

 

이것은 자기를 변호하거나, 맞받아 싸워야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오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그 본질이 명확해지니까

자신이 해야 될 일도 명확해지는거에요.

 

이 장면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항상 그러셨어요.

복음서 전체를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뭐 당황하시거나

'어이쿠, 이거 미처 생각 못 했는데 큰일 났다' 이런 모습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하셔야 될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어요.

깨어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분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행하고 선택하시는 것에 있어서, 일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계십니까?

그래서 확신가운데 행하십니까?

이게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의 모습이에요.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강원도 태백시에서 <예수원>을 시작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의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밌는 말을 하십니다.

 

뭐냐면 '항상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고 계셨다'는 거에요.

 

계획을 막 치밀하게 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물 흐르듯이 사셨는데,

'오늘 두 시에는 뭘 하자' 그래서 그 때가 되어서 가 보면

정확히 해야 될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나중에 아는거죠. 그게 영적으로 너무 중요한 일이었어요.

 

또 '누구를 만나자!' 그래서 만나보면

정확히 만나야 될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너무 궁금했다는 거예요. 너무 궁금해서

'신부님, 신부님은 하셔야 될 일을 어떻게 그렇게 명확히 아십니까?'

그 비결은 기도로 성령과 동행하는 거였어요.

 

대천덕 신부님 뿐만 아니라,

성령과 동행하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당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명확히 알아요.

 

그래서 상황에 의해서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면서 당황하고 우왕좌왕

하는 것은, 영적으로 둔감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폭풍 속에서도 상황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 상황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확신가운데 행합니다.

절대로 당황해서 휩쓸려 다니지 않아요.

그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본질적 이해와 확신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당연히 성령께로부터 온 겁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눅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와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님께 이끌리시며'

 

눅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삶을 묘사하는데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성령께 이끌리어' '성령께 충만하여' '성령안에서' 입니다.

 

거의 모든 예수님의 행동마다 반복돼서 나오는 말이 '성령안에서'

특별히 누가복음에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거수일투족에

'성령께 이끌려,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성령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러니까 예수님의 삶의 본질은 뭐냐면 '성령께 이끌렸다'는 거에요.

 

만약 예수님께서 성령께 이끌리신 게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사셨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어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성령께 이끌려서 사신거라면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께서 무엇을 해야 될지를,

또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 지를 가르쳐주시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말지를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셨다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님의 삶의 비결이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들의 삶이 비결입니다.

 

성경은 예수 위에 임하셨던 이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데, 그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성령께서 임하시는데,

즉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속성이고, 특징이라는 거에요.

성령에 이끌리면, 이런 혜택을 모두 받아서 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그런 지식과 지혜의 영이시고,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가르쳐 주시는

총명과 모략의 영이시고,

그것을 알게 됐으면, 내가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 위에 이 성령이 임하셨죠.

사11:1~2절은, '성령의 7가지 속성 Seven Spirit of the Lord'으로 부르죠.

 

△반대로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성령과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코드를 따라가지 않아요. 왜 영적으로 둔감하니까.

 

그래서 늘상 자기 생각대로 살아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사탄을 대적해야 될 때인지

-겸손하게 인내해야 될 때인지

-죄를 회개해야 될 때인지 전혀 몰라요.

 

그래서 십자가를 맞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잠잠히 확신가운데 움직이시는 예수님과는 정반대로

당황해서 우왕좌왕합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를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칼을 뽑아서 말고에 귀를 자르지를 않나..

-또 나중에 보면 작은 여종 하나가 '너도 같이 있었지?' 하고 추궁하니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하고..

-또 무서워서 옷 벗어 던지고 도망가는 제자(마가)도 있었고...

 

기도해야 될 때에, 졸고 깨어있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2.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항상 타이밍을 놓친다>는 거예요.

 

41절 '세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영적인 삶에 있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만큼 중요한..

아니 그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언제 그것을 하느냐' 하는 <타이밍>이에요.

 

잠15:23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똑같은 말도, 때에 맞춰서 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거죠.

말도, 행동도, 선택도.. 정확히 해야 될 타이밍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타이밍이,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나, 선택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쉬운 예를 들면, 설거지 하는 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내가 '오늘 설거지 당신이 좀 해!'

이 얘기가 나오기 전에 설거지를 하는 것과,

 

이 얘기를 듣고 난 후에 설거지를 하는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같은 설거지 이지만,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얘기를 듣기 전에, 설거지를 하는 것은

아내를 향한 헌신과 사랑에서 나온 설거지이고,

 

이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 설거지를 하는 것은

설거지 하고 나서도, 별로 좋은 얘기를 못 듣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기도하는 사람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거죠.

 

영적으로는 더욱 더 그래요.

기도도 여러분 타이밍이 있고요. 헌금에도 타이밍이 있고요.

전도는 더욱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4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번째 오셔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말씀하십니다.

 

이 얘기하시는 걸 보면, 제자들이 그때 깨가지고

뭔가 야단 법석을 떤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제는 타이밍이 늦었다, 다 끝났다'고 하신 거죠.

 

그 전에 예수님께서 계속 기도 해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때는 계속 졸다가...

처음엔 졸았어요. 두 번째는 잤죠.

세번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이제 다 끝났다'

 

그때가 새벽이었겠죠. 그제야 제자들은 잠이 부시시 깨가지고

'아이고 기도하라 그러셨는데, 이제 기도할 게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 자고 쉬라, 끝났다' 하신 거죠. :41

 

그러니까 '지금은 더 이상 기도해봐야 소용없는 때라'는 거에요.

 

이렇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기도해야 될 때는 쉬거나 자고요.

쉬어야 될 때는 기도 하고.. 그럽니다.

 

근데 우리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꼭 그런 식으로 해요.

 

가야 될 때는 멈추고.. 멈춰야 될 때는 가고..

기도할 때는 뛰어다니고.. 또 움직여야 될 때는 기도한다고 앉아있어요.

 

말해야 될 때는.. 참는다고 잠잠하고,

잠잠해야 될 때는.. 말을 해서 오히려 일을 망가뜨려요.

 

영적인 일은 여러분 타이밍이 참 중요합니다.

 

정확히 기도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만 쉬라' 그러시잖아요.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받고 구원받고 하는 것도 타이밍이 있다는 거에요.

'지금'은 구원받을 만한 때이고,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라는 거죠.

그 때를 놓치면 어렵다는 거에요.

 

근데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특징은 뭐냐하면

은혜 받을 때를 알고서 기가 막히게 피해 다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영적으로 안 되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은혜받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 타이밍을 정말 기가 막히게 피해 다녀요.

마귀가 사실은 막는 거죠.

 

은혜받는 것뿐만 아니라, 헌신과 결단에도 역시 때가 있습니다.

이 때를 놓치게 되면, 헌신하고 결단하고 그래도.. 별 의미가 없어요.

 

용서를 구하는 것도 여러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게 되면,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용서도 안 되고, 또 회복도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 속에 타이밍을 캐치하지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마귀의 장난속에서, 그 타이밍을 피해갑니다.

 

▲3. 영적으로 민감/둔감한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깨어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지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육신의 요구를 쫓아갑니다.

 

14:35~36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위기가 다가왔을때

이 위기 앞에서 육신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뜻에 굴복합니다.

 

이게 여러분,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의 선택이에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상황이 어떻든, 내 이익이 어떻든, 내 욕구가 어떻든, 그것을 좇아가지 않아요.

깨어있는 사람은, 상황을 좇아가지도 않고요.

또 내 안에 있는 어떤 욕구를 좇아가지도 않아요.

 

깨어있는 사람은 항상 무엇을 좇아가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공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런데 반대로 둔감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위기 앞에서, 십자가앞에서,

아버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육체의 요구를 따라서 삽니다.

 

졸리면 그냥 자는 거에요. 그렇죠.

졸리면 그냥 자는 거에요.

 

영적으로 지금이 어떤 때이고..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에 깨어서 기도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과 관계없이, 그냥 내 육신이 피곤하면 자고..

내 육신이 원하면 먹고.. 내 육신이 또 원하면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항상 영적인 반응을 보이고요.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육체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냥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산다는 거에요.

환경이 이끄는 대로 따라산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위기가 위기인지도 모르고 멍하니 있다가

나중에 당황하기도 하고요.

아니면 육체의 방법대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그런데 이리 하던 저리 하던,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이 위기 앞에서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깊게 기도하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육체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에요.

뭐 열심히 하기도 하고, 사방에 다니면서 바람을 일으키는데,

딱 한 가지는 안 해요. 깊게 기도하지 않는 거예요.

 

혹시 여러분이 이 부류에 속해 있다면, 지금 깨어나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영적으로 이렇게 맹해 졌을 때

그때도 열심히 목회합니다. 뭐 연구도 하고, 설교도 하고, 집회도 인도하고

다 하는데... 딱 하나 안 하는 게 뭔지 아세요? 깊게 기도하는 걸 안 해요.

 

뭐 얕은 기도는 해요. 기도 안하고 목사가 어떻게 살겠어요?

얕은 기도는 하는데, 깊게 기도가 들어가지 않아요.

기도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냥 피상적인 기도만 하며 사는 거죠.

 

이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에요.

특별히 위기가 오잖아요. 특별히 십자가가 오고, 위기가 오면

사방에 뛰어다니면서 분주하게 활동하는데.. 기도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아요.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영으로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인생 최대의 위기, 십자가 앞에서 선택하신 것은

깊게 기도하는 밤이었어요.

 

그냥 단순히 '하나님, 도와주소서!'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따로 떼놓으셨어요.

 

성경에 보면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고 그랬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거의 밤새워 기도하셨죠.

밤이 맞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에 깊게 들어가셨다는 거에요.

 

영은 깊은 기도 가운데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피상적인 기도 말고요.

 

기도 안 하는데 어떻게 영적인 삶을 살아요?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거든요.

 

항상 영이 움직이는 원리는 명확합니다.

깊게 기도할 때, 영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제대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위기가 오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시간을 따로 떼요.

 

보통 위기가 오면 시간이 없지요.

그 위기를 해결해야 되니까 평소보다 더 바빠지거든요.

 

그런데 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바쁜 건 바쁜 거고

하여간 기도의 시간을 따로 떼서, 깊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래야 그 위기의 본질이 뭔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래야 성령께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그래야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확신이 생기고

그래야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여호와의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이 영이 임해야 *사11:2

그래야 우리가 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4. 네번째, 이런 특징들로 인해,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반드시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에 도달하게 됩니다.

 

40절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제자들이 당황한 거죠. 자다 깨가지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거예요.

이거 예수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한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둔감하게 되면, 그 끝은

민망하고, 난처하고, 난감한 상황이 다다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타이밍도 놓치고

-육체의 생각대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러다 보니까

결국 그 결과가, 난처하고 민망한 상황,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자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자녀들이 심하게 방황하거나 망가지기도 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아니면 기도 없이 운영하던 사업이 꼬이고 꼬여서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되기도 해요.

 

보통 목회자에게 상담을 요청할 때는 이 타이밍이에요.

참 좀 빨리 돌이켰으면 좋았을 텐데요...

민망하고 난감한 상황, 뭘 해야 될지 모르겠는 상황에 이르러야

즉 막장에 이르러야 결국 목회자를 찾아옵니다...

 

그러면 목회자도 민망해하고 난감해 합니다.

이번 기회는 뭐 뿌린대로 거두해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런데 그런 실패가,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결국 포인트 입니다.

 

그래서 보통 그렇게 목회자를 찾아오시면, 함께 짚어봐야 돼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내가 육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는가?'

'어디서부터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이 끊어졌는가?'

'어디서부터 내 안에 영적인 둔감함이 역사하기 시작했는가?'

 

그것을 짚어서 찾아내야 돼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이번에는 어떡하겠어요.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지요.

 

그래도 다음 번에는 그런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서 정말 영적으로 둔감해서 육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영으로 깨어서 성령과 동행하는 자가 되도록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방법은, 목회자를 찾아오던 / 찾아오지 않던.. 답은 똑같습니다.

기도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결국 답이 없어요. 왕도가 없어요.

 

깊게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보여주시고, 인도하시기를 구하는 것,

이거 말고 달리 뭐가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위기의 본질을 보여주시고,

그 위기의 십자가앞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은 "깊게 기도할 때" 알게 됩니다.

 

이게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이잖아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밤에,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이게 깊은 기도 거든요.

 

깊은 기도는, 여러분 일단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 깊은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15분.. 절대 깊은 기도가 안 됩니다.

15분만에 무슨 깊은 기도를 해요?

깊은 기도는 시간을 따로 떼야 돼요. 충분한 시간을 떼야 돼요.

적어도 한 시간은 떼셔야 돼요.

 

그래서 아침에 떼면 좋지만, 아침에 안 되면 밤에라도 시간을 떼세요.

예수께서도 밤에 기도 하셨잖아요.

밤이던, 새벽이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집중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거에요.

 

팁을 좀 드리자면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시면

깊게 기도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 깊게 방언으로 한 30~40분 기도 하다보면.. 기도가 깊어져요.

그게 방언 은사의 파워입니다.

 

그래서 깊게 기도에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경험이 보신 분은,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그 전까지는 내가 의지적으로 육신으로 계속 뭔가를 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깊게 기도가 들어가면..

이제 내 의지와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으로 계속 자연스럽게 기도가 나와요.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하는 일들이 쭈욱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깊은 기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에요.

 

▲5. 다섯 번째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의 특징은 <시험해 든다>는 거예요.

 

38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러니까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그 결과가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항상 시험에 들어요. 순서가 그렇습니다.

'아휴 하나님이 나한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감하고 민감한 상황에 처하면

시험에 듭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자기가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로 오래 지낸 결과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시험에 들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게 즐겁지가 않아요.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게 기뻐요...

 

마치는 말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십니까?

우리는 자기 영적 상태를.. 스스로 항상 점검하고 돌아봐야 됩니다.

 

뭐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해서, 계속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본문의 제자들도 그렇잖아요. 뭐 처음부터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이 순간에 지금 넘어진 거죠. 물론 곧 나중에 다시 일어나지만요...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반복하는 거죠.

 

지금 깨어계십니까/ 졸고 계십니까?

조금 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요즘 기도가 잘 되십니까/ 안 되십니까?

 

요즘 기도하면, 기도가 깊게 들어가십니까?

아니면 기도하면 자꾸 다른 생각이 나고, 속히 자리를 뜨십니까?

깊은 기도가 안 들어가지면..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인 것입니다.

 

성령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 영적인 둔감함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십시오!

영적으로 깨어있게 해주십시오, 더 깊은 기도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의지입니다.

예수께서도 겟세마네 에서 밤이 맞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기를

선택하셨듯이, 여러분도 선택, 결단하셔야 돼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선택, 결단할 때 성령께서도 도우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성령앞에 나아갈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이지...

내 의지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절대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없어요.

 

지금 여러분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시기입니다.

한국교회가 지난 50 년 사이에, 이런 영적 위기를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이것이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이긴 하지만 *2020년 설교

이유가 어쨌든지간에,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또 우리가 기존에 해오던 질서들이 다 새로 바뀌게 되는

큰 변혁과 변화의 위기 앞에 있는데.. 지금은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앞으로 10년, 20년

우리의 영적인 운명을 결정하는 타이밍인지 몰라요.

지금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5년, 10년, 20년이 결정된다는 거죠.

 

영적으로 둔감하게 살아가는 자는, 이 운명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변화의 파도를 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그렇게 되는 때라는 거죠.

지금은 더 깊게 예배하고, 더 깊게 기도하고, 더 깊에 성령님 앞에 머물러야 될 때입니다.

 

그럴 때 저희를 도우시기 위해서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의 영적인 운명들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풀어가지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