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jyoun24/220655342545
◈애양원의 양재평 장로님 스크랩 ▣ ‘소록도’ 관련글 모음
1924~2007
▲한센병은 천형이 아니라 천혜였어요
제(글쓴이, 황영준 목사)가 2003년 5월에
양재평 장로님(1924, 80세)을 만난 곳은
여수 애양원에 있는 성산교회 성경암송반 에서였습니다.
몇 해 전에 뵈었다가 오랜만에 찾아갔습니다.
한센병을 앓은 후에 시각장애까지 겹쳐서 앞을 보지 못하지만
환한 얼굴에는 예수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손을 잡아보니 오른손과 왼손에 손가락이 몇 개씩은 끊어져나가고 몽당손입니다.
그래도 무척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비교적 건강이 좋아서 나이만큼 늙어 보이지 않습니다. 신약을 통째로 암송한
그 생명의 양식 때문에 영혼이 건강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한센병이 발병한 것은 그의 어린 나이 15세 때였습니다.
부모도 처음에는 자식이 무슨 병을 앓는지 알지 못했다가
몹쓸 병인 것을 알고는 좋다는 약을 다 구해서 써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답니다.
1남5녀의 귀한 아들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은 아들이 소록도로 들어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섬에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는다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아무개네 재평이가 ㅇㅇㅇ이라네.' 하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재평이는 집안에 들어앉아서 출입을 금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피해 가는데
그 눈길들은 견디기 어려운 저주로 느껴졌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는 무서운 병이 슬프고도 서러웠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소록도로 갈 맘이 있느냐?"
지난번에는 스스로 가겠다고 해도 극구 말리던 아버지가
귀한 아들이지만 더는 한집에 데리고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고맙다."
부모라도 무서운 병을 고쳐줄 수 없었습니다.
사별보다 더 아픈 이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재평이는 인생의 모든 꿈을 접고 한없이 흐르는 서러움과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천형의 섬이라 말하는
그 'ㅇㅇㅇ 섬'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1942년 12월 25일 성탄절 그 날 소록도 아닌 예수촌 애양원에 들어왔습니다.
관계기관에서 안내해준 곳은 소록도가 아니라 여수 애양원 이었습니다.
김준곤 목사(전 CCC총재)와 동향으로 함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야무지게 성공을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지도島입니다.
양장로님과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믿음과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천국 소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려 했지요. 그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어요.
쥐약이나 양잿물을 먹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죽지도 못했습니다.
생명이 무엇인지...“
그 때를 말하는 양 장로님은 어린 소년 시절의 아픔과 외로움과
서러움과 가족의 한을 회상하는 듯 검정색 안경으로 가려진 얼굴에
잠시 슬픈 기색을 보였습니다.
흐르는 세월이 흐른 후에 뒤돌아 보니
지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자상하신 섭리였습니다.
성탄절에 애양원에 들어왔을 때, 예수 축제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그곳에 들어오면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날마다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주일이면 낮예배만 아니라
성경공부까지 네 차례나 나갔습니다.
욕할 줄 모르는 사람들, 서로를 돌봐주고 사랑하는 사람들,
믿고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인가 확실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믿고 깨달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지만
그 때는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로 양재평은 1978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1924년생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 천형(天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체적으로 사랑하시는 천혜(天惠)였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쉽게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으니
병든 우리까지도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소망으로 행복합니다.”
이렇게 양재평 장로는
이 세상에 사는 마지막 날까지도 벗어버릴 수 없는 몹쓸 병에 붙들려 살지만
그 병으로 인하여 예수 믿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80 고령에 살 날이 많지 않으니
잠시 후면 죽음과 함께 이미 썩어버린 육체의 장막을 벗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것을 소망이 큰 위로입니다.
그 믿음에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이에게 영원한 소망이며 위로입니다.
▲손가락 없어 점자도 못 읽으니 암송합시다
우리 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애양원 성경암송반 위로 방문에 나섰습니다.
한센병 형제들을 위로하러 간다지만 사실은 우리가 은혜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불우시설을 찾아가면 상대적으로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다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해안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주저앉아 살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그곳에 살아야 하는 분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의 소망으로 사는 형제들의 간증을 듣고
식어진 가슴에 은혜의 불을 붙이러 은혜의 성지로 가는 것입니다.
갈 때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과 그의 가족 묘지도 둘러봅니다.
양재평 장로님께 전화를 해서 무엇을 잡수고 싶으냐고 물었지만
미안하다며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약밥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감사할 뿐이랍니다.
지난번 소록도 남성교회를 방문할 때도 그렇게 준비했었는데 모두들 좋아했었습니다.
고향의 옛날을 생각하며 잡수실 것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과일과 약간의 위로금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암송반에는 60이 훨씬 넘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양장로님은 십여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간증할 때와 별 다름 없이 건강하십니다.
몇 분을 빼고는 모두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암송반에 모여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기도한 후에 성경은 암송반이 함께 합독하게 했습니다.
"장로님, 성경은 요한계시록 2장 8절로 20절까지입니다. 지금 합독해주세요."
했더니 모인 분들이 힘있게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막힘없이 내놓았습니다. 모두가 큰 소리로 "아멘!" 하고 화답했습니다.
놀라운 기억력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암송반이 1954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5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 40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이제는 태반이 세상을 떠났고
16명만 남아 계셨습니다,
성경을 읽어주는 봉사자가 한 주에 며칠씩 찾아와서 성경을 읽어주면
그것을 되풀이 하면서 신약성경을 암송한 것입니다.
양재평 장로님도 1945년에 실명했지만 이렇게 암송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늘 잊어버리기 때문에 반복해서 말씀을 암송한답니다.
성경암송을 시작했던 동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이 병들고 여러 가지를 잃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눈도 멀고 손가락도 없소.
손가락이 있다하여도 지문이 없어서 점자도 못 읽습니다.
이중 삼중의 장애를 입었지만 청각도 있고 기억력도 남았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듣기만하지 말고 암송합시다.
다섯 달란트를 갖지 못했지만 한 달란트는 남았습니다.
남아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해봅시다." 이렇게 권했답니다.
가능해 보이지 않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듣고 암송해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반복 또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성경이 한 장 한 장 외워지고 드디어 한권씩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작은 일로 하나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간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중 삼중 장애를 입었지만 오직 믿음 하나 붙들고 이렇게
열심히 삽니다. 당신들은 건강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하면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신답니다.
근래에는 어떤 말씀에 은혜를 받느냐고 물었더니
빌4:13절과 고전2:12절이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불가능해 보이는 암송을 시작해서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암송하여 내 심령에 담아두고
때를 따라 묵상하며 생명의 양식으로 살아온 그들의 인생입니다.
양 장로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요일이면 *2007년 소천
애양원 병원 직원과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합니다.
찬송가도 성경책도 읽을 수 없지만
이미 마음에 새겨진 성경과 찬송을 구구절절이 엮어가면서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애양원 성도들은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우리 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양재평 장로님이 인도하는
애양원 성경암송반을 방문했습니다.
암송반이 모이는 수요일에 방문해서 함께 찬양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암송반 14명이 모였는데 양재평 장로님과 몇 분은 시각장애자 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찌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너는 절망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여전도회원들은 위로가 될만한 내용의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병들어 일그러지고 늙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자매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양 장로님과 그분들도 복음성가에 감동되어 보이지 않는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신음하듯 '아멘, 으음- 아멘...' 하고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끝나자 그분들도 찬송했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이런 찬송을 하지만 성경 암송반은 다른 가사를 더 붙였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황제 루이스가 날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정금보다 귀한 진리 꿀 같은 말씀
암송하며 날마다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에게는 기도하는 사명 주셔서
간구하며 도고하며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하나님의 자녀라 불러주시어
천국복락 누릴 것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에 태어났지만 부모형제와 고향을 떠나야했고
사람들로부터도 버린바 된 사람들.
세상을 비관하고 원망하며 허사가를 불러야할 할 저들의 심령에서
이런 찬소이 나오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 십자가 구원의 능력입니다.
성산교회 교인들 평균 연령이 79세이니 장수의 복을 받은 것 같답니다.
그런데도 오래 살고 싶은 것은 과욕이요 분수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장수가를 부른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마음도 몸도 왕성합니다
칠십에 우리를 모시려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삽니다
여든에 우리를 모시려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아무것도 불만이 없이 삽니다
구십에 우리를 모시려오면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백세에 우리를 모시려오면 서서히 간다고 전해주세요
몇 해 전 소록도 남성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교회에는 하모니카 찬양팀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분들인데 모두 시각장애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찬양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노래처럼
잔잔하고도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소록도중앙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 때는 2천여 명이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손뼉을 치고 무릎을 구르며
뜨겁게 찬양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세상에서 보지 못하는 믿는 사람들의 천국을 보았습니다.
세상 등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와 찬양을 기뻐 받으심이 확실합니다.
◑내게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
"내게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 이런 저주를 내리셨단 말인가.
한센병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더니 시각 장애까지 겹쳐 앞을 보지 못하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답니다.
내 자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런 슬픔 가운데 살아가다가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다 잃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청각과 기억력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렇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죽자.
밥 먹고 화장실만 채우다가 죽지말자.
내 초등하교 동문인 김준곤 목사님이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귀한 그릇이 되었는데
내게도 비록 적지만 0.1 이라도 무엇이 있지 않은가.
성경을 암송하자. 말씀으로 은혜를 받자.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들께도 은혜로운 일을 말해주자.
이런 사람도 예수 믿고,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 가는데 당신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건강이 보배인줄 모르십니까.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간증하며 은혜를 나누고 싶었답니다.
양재평 장로님이 주동이 되어서 성서암송반을 모집했습니다.
50년 전 일입니다.
할 일 없이 살아가는 분들을 격려하며 도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 형편이 비참하고 불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찬송 받지 못할 일을 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못 고칠 병에 붙잡혀 사는 것이나
시각장애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원망도 사라졌습니다.
그 때부터 신약성경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자원봉사자가 찾아와서 성경을 읽어주면
지금껏 암송한 성경말씀을 재확인 하면서 은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활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 여러 교회의 초청을 받아 자신의 삶을 간증했습니다.
일본기독교구라회와 LA나성한인교회의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재평 장로님과 대화 중에 성산교회 예배당에서부터 찬송가 챠임벨이
울려 퍼집니다. 낮 12시였습니다. 이야기를 멈춥니다.
"목사님, 우리 정오 기도시간입니다. 2, 3분 기도합시다.
나라와 교회와 북한교회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기도합시다."
양 장로님과 그곳 성도들은 늘 그러했기 때문에 곧바로 통성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듣던 대로 이들의 정오기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그리고 북한 동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깊이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를 쉬지 않고 드린다더니
그 정오기도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예배당 종소리가 들리면 집에서만 아니라, 밭에서 일하던 성도들도 일손을 멈춥니다.
교인들만 아닙니다. 쟁기를 끌던 소도 종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춘답니다.
성도들의 기도생활에 가축까지도 길들여진 것입니다.
정오기도는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이 전도사로 교회를 담당하고 계시던
8.15 해방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일제의 핍박으로 어려웠던 시대에 구국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성도들을 돌보던 손양원 목사님은 6.25 때 순교했습니다.
애양원 성도들은 순교자의 그 신앙을 이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