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런던에서 올림픽 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지만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더위를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요 경기가 밤중이나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잠을 설쳐 직장에서 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휴가를 내고 새벽에 하는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서론 : 스포츠 관람의 지혜 사실 스포츠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하는 종목도 이기는 것도 있고 지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하는 경기 중에 이기는 경기는 참으로 신이 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본과의 축구 경기 우리가 이겼습니다. 영국과의 축구 경기에서도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런 경기를 보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고 신이 나는 일입니다.
보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들떠 있습니다. 그러나 지는 경기를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짜증나고 안타깝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지는 경기를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심장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장 중계는 안 본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경기에 이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재방송을 보고, 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스포츠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지는 경기를 보면서 짜증을 내거나, 기분 나빠하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더욱이 소중한 시간까지 낭비한 셈이니, 이중 삼중으로 손해입니다.
그러니까 밤중에 일어나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사람들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잠 푹 자고 인터넷에서 경기 결과를 보고, 졌다고 하면 보지 말고, 이겼다고 하면 조마조마할 필요 없이 신이 나고 즐겁게 보면 됩니다. 그게 인생을 즐겁게 사는 요령이며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줄 모르지만 올림픽 헌장에 보면, 올림픽 게임은 개인 중심, 경기종목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별로 메달 경쟁을 하거나 금메달을 딴 선수의 국가를 연주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금년 올림픽에도 금메달을 딴 선수의 국가를 연주하고 나라별로 메달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올림픽이 상업주의로 타락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많은 감동적인 뒷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금메달을 안겨 준 김OO 선수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들리는 말로는 매일 11시 11분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1111 기도로 꼭 1등으로 우승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선수는 매일 10시 4분에 기도했다고 합니다. 1004 천사가 와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재범 선수는 금메달을 딴 뒤 ‘지난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죽기 살기로 경기했더니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이번에는 죽기로 연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했더니 실패했는데, 죽기로 했더니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금메달은 죽기 살기로 해서는 안 되고 죽기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꽂히는 말입니다.
(*몇몇 선교사들이 간증하기를, 선교사역이 벽에 부딪힐 때, 난관에 빠질 때 순교의 각오로 한다고 합니다. 아예 죽을 각오하고, 순교의 각오로 부딛치면 죽지 않고 살 길도 생기고, 또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공부할 때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로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로 해야 잘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고 죽기로 살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되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죽기로 믿어야 제대로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소위 ‘십자가 정신’입니다. 유도에서 금메달을 따는데도 죽기로 해야 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그러셨겠지만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선수는 역도의 장미란 선수였습니다.
장미란 선수는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4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4위를 한 장미란 선수가 온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영상에 보면, 장선수가 170킬로그램 짜리 바벨을 들지 못하고 실패하고 그 바벨에 사랑의 키스를 하고 그 라벨을 붙잡고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중을 향하여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되돌아서서 눈물을 흘린 후 다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장미란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괜찮은데 나 때문에 국민들이 실망했을까봐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감동적이고 사려 깊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입니다. 메달을 못 딴 것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것이 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상식적인 말입니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래야 합니다.
내가 분한 것, 내가 억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 나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한 후 선수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특별히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선수는 실패를 한 후에 기도를 했습니다. 장선수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아서 실패한 것에 대한 원망의 기도였을까요? 짐작컨대 장선수는 실패한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장선수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인생을 살면서 어처구니없이 실패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패배를 인정하고 잠시 눈물을 보이지만, 웃음을 짓는가요?
‘장선수처럼 실패한 후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저 자신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한 뒤에 무거운 바벨을 뒤로 하고 무대를 떠나며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내 역량은 여기까지다.’ 라며 훌훌 털고 돌아서는 장선수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끝내고 돌아설 때, 특별히 실패하고 돌아설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선수는 비록 금메달을 따는 데는 실패했지만 온 국민에게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가 금메달을 딴 것으로서 주는 기쁨과 자랑보다는 그가 실패함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깨달음이 더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 디모데후서4:6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 모두는 경주하는 경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금메달을 향하여 달려가는 선수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경기를 잘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금메달,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이란 운동 경기와 같아서 이기면 금메달(면류관)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제가 경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내 인생에 마지막에 어떻게 경주했는지 그 결과에 따라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거의 다 살아온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아하 나는 평생 동안 경주하는 삶을 살았구나.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구나. 내가 어떤 상을 받게 될지 그 결과를 뚜렷이 알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에 받게 될 평가, 내가 인생을 어떻게 달려왔는가 하는 것의 결과가 점점 뚜렷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온 동시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게 됩니다.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때 저렇게 살더니, 그 결과가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도 나에 대해서 평가를 하겠지요...)
주위에 있는 친구들, 나와 함께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인생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결과는 그가 살아왔던 인생의 결과로서 정직하게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올림픽에서만 경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 자체가 올림픽과 같은 시합이요, 경주입니다.
그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달려왔는가가 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인생을 살아온 마지막 지점에서 무슨 메달이 수여되는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인생이 마지막이 많이 남은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저처럼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이 온 사람은, 뚜렷하게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인생을 이렇게 살았더니 이런 결과가 주어지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살더니 저런 결과가 주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인생의 금메달리스트인가, 은메달리스트인가, 동메달리스트인가? 아니면 아무런 메달도 따지 못한 탈락한 사람인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생활에 금메달을 따고, 직장생활에 금메달을 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에, 권력과 명예를 얻는데 금메달을 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 것은 그렇게 애써서 딴 모든 분야의 금메달은 사실은 잠시 기쁨이고 자랑이지만,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0장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금메달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직장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은퇴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평생을 다닐 것 같은 직장, 내 가족과 나를 평생 지켜줄 줄 알았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밀려나게 됩니다.
대개 물러날 때 되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로패 하나 줍니다.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평생을 모든 것을 바쳐 살아왔던 직장이 나를 배신하고 나를 몰아냅니다.
자녀나 가정이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무거운 짐입니다. 권력이나 명예는 아침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종목의 금메달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풀과 같은 것입니다.
내 이름 세 자 위에 걸려질 영원하고 자랑스러운 금메달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것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영원한 금메달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에게 받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영원한 금메달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 때, 그 사람의 이름이 영원토록 기억되는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금메달이 주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모든 부귀영화가 다 없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내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할 금메달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위해 딴 금메달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착한 행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선한 행실을 하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서 얻은 금메달은 그의 목에서 영원히 빛날 금메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 말고는 우리의 이름을 빛낼 금메달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장례를 지낼 때, 대개 그가 살아온 삶, 경력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자리에 있었는가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좋은 학교를 나왔고, 어떤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하는 것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비우고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는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자신을 헌신하고 봉사하고 살았는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며 인생을 잘 산 사람, 금메달을 목에 건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위대한 인물 둘을 뽑으라고 하면, 모세와 다윗일 것입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금메달리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인생의 챔피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세상적으로 생각할 때 다윗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통일 이스라엘을 이룩했던 제국의 제왕이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었고 명예가 있었고 권력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꿈을 다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모세는 평생 동안 고생만 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도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의 나라 땅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무덤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그들의 마지막을 기록한 말씀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2:10절에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죽음에 대해서는 신명기 34: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을 닫을 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다윗 중에 누가 금메달리스트입니까? 다윗이 누렸던 부귀와 영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방 땅 광야에서 쓸쓸히 죽어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십일을 애곡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여러분이 죽었다고 할 때 누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식 손님 말고 내 죽음을 듣고 누가 찾아올 것인가, 누가 내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릴 것인가,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성적표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서 눈물을 흘릴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손을 꼽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 모두는 인생의 경주자들입니다. 아이들은 출발선에 선 경주자들이고, 청년들은 한참 열중하는 사람들이고 40-50대는 후반전을 뛰는 사람들이고, 경기 종료 직전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경기가 끝난 뒤에 연장전을 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잘 뛰어야 합니다. 축구 경기도 경기 종료 3-4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게임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경기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 하는 것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권력의 자리에 있었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고, 얼마나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 금메달을 따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은 점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챔피언이 되는데 필요한 점수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았는가, 그가 얼마나 선한 일을 힘쓰며 살았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며 봉사하며 살았는가,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누면서 살았는가, 얼마만큼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우리의 메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고는 메달을 딸 수 없고 챔피언이 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인생이 경주입니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은 메달을 따야 합니다. 우리들도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의 이름 위에 자랑스러운 메달이 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믿음을 지켰다. 이제 금메달은 따놓았으니 하늘나라에 가서 금메달을 받을 일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성적표는 어떠하십니까? 금메달을 받으실 것 같습니까? 챔피언이 될 만한 삶을 사셨습니까? 어떤 메달이 여러분의 이름에 달려질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면류관, 금메달 받을 일만 남겨놓았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이 아침 큰 깨우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경주자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어떻게 경주하였느냐 여러분이 골인하는 순간, 여러분의 인생이 마쳐지는 순간 평가가 내려지고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어떤 결론이 어떤 평가가 나에게 주어질 것인지 어떤 상이 나에게 주어질지.. 염두에 두시고, 인생을 잘 사시길 바랍니다.
죽기 살기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죽기로 살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도, 그저 시간이 되었으니 (습관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죽기로 각오하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죽기로 각오하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금메달을 딸 수 있습니다.
하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죽기로 각오하고 해야 합니다. 순교의 정신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인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이 달려가는 경주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금메달, 면류관을 받는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