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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의 가치를 인식하여 섬김

LNCK 2023. 8. 11. 10:37

섬긴다, 무조건 섬긴다! ㅣ2023.6.25 - YouTube

*위 동영상 약 27분경부터 녹취 *원제목 : 섬긴다 무조건 섬긴다

◈한 영혼의 가치를 인식하여 섬김     마25:31~46    ▣마11~28장설교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주님은 심판의 기준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심판 때 벌어질 일에 대한

답을 미리 가르쳐주고 계시는 거예요. 최후 심판의 기준!

'염소' 편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몰랐어요.

몰랐다고 막 그러는데 정말 몰랐을까요?

저는 이 예화가 우리에게 '주님이 (최후 심판 때의) 미리 정답을 가르쳐 주시는 거구나'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심판 때에 누가 의롭다 함을 받을지...'

그런데 제가 이걸 보면서..

저는 본문을 토대로 생각도 하고 상상도 해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긴 것이 곧 나를 섬긴 것이다'

'그것 때문에 너희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이다'

라고 주님의 칭찬을 들을 때,

제가 상상해 보면, 어쩌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무심코 섬겼던 그때,

약간 짜증이 났고, 약간 귀찮았고, 약간 좀 힘들어서

'어휴, 섬김을 계속 하지 말까?' 하다가

근데도 주님이 주신 마음의 어떤 부담감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생각나서

미적거리면서도 계속 섬겼던 그 사람...

그때 그 일이 생각나면서 뭐라고 했을까요?

'오 마이 갓, 세상에 맙소사, 그때 그 영혼을 계속 섬긴 게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내가 '염소' 될 뻔 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작은 자들을 섬기는 중에

갈등이 되고, 짜증이 나고, 힘들어도

결국 섬김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염소 편에 있는 사람들은, 통쳐서 '마귀' 취급 당함

반대로 이번에는 왼편에 있는 염소들을 향해서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런 문맥을 잘 봐야 돼요.

'너희들을 위하여 예비한 불로 들어가라'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불로 들어가라' 무슨 뜻이에요? :41

'너희 염소들은, 걔네(마귀)들과 똑같은 부류다'

이렇게 완전히 그냥 싸구려로, 도매값으로 같이

'너희들은 마귀와 같은 부류야' 분류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뉘앙스를 보면, 주님이 심판할 때는

얼마나 무섭게, 정확하게 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주님이 더 이상 긍휼, 자비하심, 은혜, 불쌍히 여겨주는 거 없어요.

왕으로서, 정확하게 판결을 내려서

오른쪽, 왼쪽으로 나눠버리고

왼쪽 사람들에게 향해서는 '너네는 마귀와 귀신에게 속한 부류야,

걔네들이 갈 곳으로 같이 가!' 딱 정리해버리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 사람들도 황당해 하면서 반문합니다.

44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여러분, 묵상을 하다 보면,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44절에서는 이 염소편,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황당해하고 또 충격적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아니 우리가 주님을 언제 안 섬겼냐고.. 주님을 언제 돌보지 않았느냐고?'

'주님이라면 당연히 섬겼겠죠. 주님이라면 당연히 우리가 돌보지 않았겠습니까?'

그에 대한 주님의 대답입니다.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 사람들은 '뭐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얘기를 해 주셔야죠'

예수님은 평소에,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과

세리와 창기와 어린 소자들을 돌 볼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염소 자기들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죠...

◑본문의 해석상 문제, '본문은 행위 구원인가?'

그럼 작은 자, 즉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갇히고, 병들고,

이런 자들을 도와주고, 돌봐주는 것은 (*일차적으론 영적, 이차적으론 육적으로)

본문이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그런 행위가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염소 편에 속한 자'가 된다는 건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단순합니다.

복음을 진심으로 경험한 자들에게는

주님이 가지시는 가치와, 똑같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니, 당연이 똑같은 가치를 갖게 되어있다.. 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 영혼의 소중함을 보는 그 가치가, 자기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게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이 가지시는 그 시각을, '양'들은 똑같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같은 가치, 주님과 같은 기준으로

한 영혼을 보는 중심이 있는가를

주님은 찾으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양과 염소를 가른다고 하는 기준입니다.

작은 자를 섬겼느냐, 안 섬겼느냐

섬기면 천국에 들어가고, 안 섬기면 안 들어가고...

이건 또 다른 '행위 구원'에 대한 관점이고요.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 비유는, 행위구원을 주장하지 않고요,

이 비유는 '한 영혼의 가치를 소중하게 바라봐야 된다'는 거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그 은혜를 경험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씨앗이 그 심령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한 영혼을 바라보는 관점, 한 영혼을 대하는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본문의 주님의 주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종종 기도하죠.

'주님, 그 작은 자를, 주님으로 보도록 저의 눈을 바꿔주시옵소서.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처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도 그렇게 기도했던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근데 냉철하게 말씀드리면, 이건 또 하나의 영적인 쇼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안에 근본적으로 한 영혼에 대한 가치를 보는, 그 소중함을 느끼는

근본적인 내적인 변화가 없이

외적으로 보는 눈만 변화된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고,

이건 그냥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종교와 복음의 진리를 믿는, 믿음의 삶의 정확한 차이는 단순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믿는 삶의 본질은, 우리 내면의 변화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그 속사람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외적인 모습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뿐이지

근본적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될 것은

우리 안에 중심의 모든 가치의 기준,

이 기준이, 주님이 기준으로 삼는 것과 같아야 된다는 거죠.

이것(내면)이 바뀌지 않고, 외적으로만 흉내 내는 것은

전부 다 '종교 행위'이고,

주님은 그 당시에 바리새인,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이 정확하게

이런 종교 행위들에 충실(?)했다고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나'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하나 있어요.

본문에 나와 있는 이 지극히 작은 자..

여러분, 본문의 이 '지극히 작은 자'는.. 일차적으로 여러분과 저예요.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이 '지극히 작은 자'인 나를 지극히 사랑해 주신

그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로 구원 받은.. 그래서 이 복음의 씨앗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의 그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본질이 뭡니까? 우리 인생을

창조주이신 그 하나님이

그것도 멀쩡하고 선하고 의로운 인생이 아니라

죄로 찌들려서 도저히 소망이라고는.. 선한 것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 인생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죄의 삯인 사망의 값을 대신 지불해 줌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작은 자, 아무 가치도 없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진정 구원받은 자는 '한 영혼'의 가치를 보는 눈이 바뀝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증거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여러분, 이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 안에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한 가지는,

우리 안에 기존에 쌓여 있었던 모든 가치 체계, 가치의 기준,

이게 박살나는 겁니다.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창조주가 죄인을 위해서 죽어

그 죄인을 포기하지 않고,

그 소망 없는 인생을 끝까지 구원하시는 그 어마어마한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

기존의 세상의, 계산하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세워졌던 모든 가치관들이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복음 앞에서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할렐루야!

결국은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변화된 가치, 변화된 관점으로 인해서

우리의 인생이, 세상을 바라보고, 영혼을 바라보는 모든 관점들이

완전히 다 바뀌어 버리는 거 아니에요? 동의하십니까?

그런데 이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우리 안에 아무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

한 영혼을 향하여 바라보는 어떤 관점이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한다면,

'정말 복음의 씨앗이 내 안에 심겨진 것이 맞느냐?'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진리를 경험하고, 이해한 만큼

다 100점으로 살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갈등하지만, 때로는 힘들어하고 어려워하지만

결국 이 복음의 씨앗으로 말이야만

주위의 한 영혼을 바라보는 가치에 대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결국 그 한 영혼을 섬기는 방향으로, 그 길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어하지만, 갈등하지만, 때로는 어려워하지만

그렇게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결국은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갈등하면서도 하는 거예요.

고민하면서도 하는 거예요. (생각과 고민으로..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갈등하면서 하는 거예요. 고민하면서 하는 거예요.

때로는 짜증내면서도 하는 거예요. 어려워하면서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게 내 안에 복음의 씨앗이, 내 안에 생명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 과정을 통해서 더 놀라운 은혜가 뭔지 아십니까?

그렇게 하는 자기 자신을, 자신이 보면서

자기 스스로가, 예수의 생명의 복음으로 구원 받은 확증을

스스로가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뭘 봉사하기 이전에,

그렇게 결정하고 그 한 영혼을 향해서 내딛는 발걸음을 통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하늘에 속한 여러분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

그 소망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스스로 점검 받게 된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하시는 훈련을 받음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제가 솔직히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성향상 그리고 기질상, 여러분들이 보시다시피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거.. 이게 잘 안 돼요.

솔직히 잘 안 돼요.

워낙에 제가 타고난 기질이, 그냥 어떤 목적, 목표 중심이고

흔히 비전이라고 얘기하지만, 뭔가 좀 큰 것들을 이루는 것에

너무 자연스럽게 쏠리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에

한 영혼은, 좀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거추장스럽고 귀찮아보이는 것이... 그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저는 그런 부류입니다.,

사실은 제가 일본에서 선교할 때도

일본에 있는 영혼들, 대학생들을 전도하면서 주님께 인도하고 할 때

물론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많이 주셨지만

지금도 스스로 제 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그 한 영혼, 한 영혼들을 정말 사랑해서 그랬는가?

아니면 '선교 사역'의 성공을 위해서 그랬는가?'

제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일본에서 워싱턴 지구촌 교회로 돌아와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섬길 때

그때 중고등부가 한국어를 사용했어요.

이민 온지도 얼마 안 돼서 언어도 어렵고

또 부모님들은 미국이라고 하는 새로운 삶에서 삶을 시작하니까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아이들이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술, 담배는 기본으로 하고, 마약도 하는 그런 친구들도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 친구들을 밤 10시, 11시, 12시까지 내가 심방 다니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만나고

그 중에 힘 쓰는 애들을 데려다가 조용히 따뜻하게 터치하면서

'과연 그때 내가 얘네들 한 영혼, 한 영혼을 진실로 사랑하면서 그렇게 했는가?

아니면 내 사역의 성공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가?'

제가 솔직히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죠.

CG선교회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제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굉장히 혹독한 훈련을 한 8개월인가 시켰어요.

그 때 제가 23년 살던 메릴랜드를 떠나서 뉴저지 쪽으로 이사를 가서

그때 제가 고목사님을 통해서 우리 협력하는 목사님과 함께

호주와 여러 나라에서 집회를 할 때

그때 우리 집회나 사역이 어마어마한 열매가 막 돌아오던 때였거든요.

몇 천 명 모였을 때, 수백 명의 청년들이 헌신하고...

그리고 저는 미국의 집에 딱 돌아가면, 그때 청년이 딱 두 명 있었어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청년 두 명하고 제가 씨름을 할 때인데

그때 제가 주일 예배를 1부와 2부로 나눠서 드렸어요.

1부는 우리 아들 둘, 앞에 놓고 막 강력하게 하나님 말씀으로 선포하고

그 다음에 2부는 청년들 두 명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어요.

근데 얘네들은, 아침에 조기축구 갔다가 교회에 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씀을 시작하면, 바로 수면에 들어갑니다. 시작과 동시에.

근데 저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천명을 놓고 하나, 두명을 놓고 하나

똑같이 열정적으로 설교 하거든요.

와, 대단해요. 제가 그렇게 하는데도 쿨쿨 자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자면서도 계속 교회에 와요.

제가 이 과정 가운데 계속 딜레마에 빠지면서

'도대체 이 과정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지금 뭘 원하시는가?'

제가 머리 회전이 느려가지고, 나중에 비로소 깨달은 거예요.

'한 영혼에 대한 주님의 가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예 뼈에 사무치도록

8개월 동안 (두 명 데리고 설교하는 과정을 통해) 훈련시키셨어요.

한 영혼에 대한 가치를 깨달아라는 거죠.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두 명하고 8개월을 계속 예배드리는게

이거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기적이에요.

어떻게 한 명도 새로 안 오는 거 있죠...

지나가는 강아지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안 오더라고요.

이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하신 거죠. (한 영혼의 가치를 알아라고)

물론 나중에 부흥해 가지고 교회도 세우고, 넘겨주고..

하여튼 이런 것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는 두 명하고 8개월을 내리

씨름한 거예요. 그래서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달은 거예요.

그 가치가 조금씩 제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제 안에 그리고 깨달은 거예요.

'아들아, 그 한 영혼이 너야. 네가 바로 그 한 영혼이었어!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제가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왜요?

'그 한 영혼을 지긋지긋하게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내가 포기되지 않고 구원을 받았구나..'

▲지금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전혀 다른 가치의 기준을,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가치의 틀, 체계, 구조,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늘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요.

정신을 안 차리면, 세상의 기준에 따라, 세상적 가치의 기준을 만들어서

이 기준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계산하면서... 자신의 유익과 편리, 얻을 수 있는 거에 따라다니면서...

근데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좇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쫓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여러분 성경 곳곳에 보면 의도적으로,

구약에도 그렇고, 신약에도 그렇고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 강도 만난 자에 대한 예가

복음과 율법의 말씀에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몰라요. 왜요?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거든요.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마음이 없어요...

그러면 나는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을

무엇으로 확증할 수 있느냐는 얘기예요.

그 마음..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 강도만난 자,

지극히 작은 자, 아무 가치도 없는 자,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에 의해서

내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는데

지금 나는 그 영혼들을 볼 때, 아무 긍휼의 마음이 없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얘기예요.

다시 한번 갈등하면서, 고민하면서.. 왜 갈등, 고민합니까?

우리 안에 여전히 가진 육신적 가치관과 계속 충돌되는 거니까요.

그러나 결국은 이 복음의 씨앗이 내 안에 있는 게 맞다면

결국은 그 한 영혼을 향하여, 우리의 발걸음이 내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 작은 자를 섬기는 것들을 방해하는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 지극히 작은 자를 소홀하게 여기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너무 바빠서

-너무 귀찮아서

-너무 작은 자여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사랑은 효율이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은 그렇게 해 줄 만한 의미가 없어..

여러분, 그때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뭐예요?

그 작은 자가 누구였다고요? 바로 나였습니다.

그 작은 나를, 주님이 구원해 주신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그 작은 자는, 주님이 작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은혜를 받은 자다운 모습이요, 정체성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모든 고난당한 자, 작은 자, 빚진 자, 환난당한 자..

이 모든 사람들을 다 섬길 수 없어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죠.

내 삶의 영역으로 주님이 보내주신 영혼들...

내 주어진 삶의 환경과 영역 안에서, 하나님이 내 앞에 보내주신 영혼 만큼은

내가 끝까지 섬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왜요?

주님이 나에게 그 영혼을 위탁해 주셔서

내 삶의 영역으로 보내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리고 결국은 그 영혼을 섬겨서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영혼과 함께 손잡고 같이 천국에 들어가야죠.

그 영혼과 함께 주님의 보좌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죠.

그런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작은 자를 지금부터 보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우리의 관점이 바뀌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섬긴다, 무조건 섬긴다

제가 얼마 전에 너무 피곤해서 휴식 차원에서 드라마를 잠시 본 적이 있어요.

거기 보니까 베테랑 의사가 까마득한 젊은 의사에게 던지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대사가 제 뇌에 아예 딱 박혀버렸어요.

이게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다루는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응급실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정말 어떻게 보면 별로 안 중요한, 정말 죄 지은 사람들, 악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죠.

물론 굉장히 중요한 사람도 응급실에 실려 오고요.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젊은 의사가 베테랑 의사에게

'아니 이런 사람을 치유하는 거, 살리는 게 의미가 있냐고

이런 엉뚱한 사람 살리려고

세상에 저렇게 중요한 사람을 방치 할 수 있느냐?'고

막 따지듯이 얘기합니다.

그때 그 젊은 의사를 향해서, 이 베테랑 의사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나는 살린다, 살린다! 나는 무조건 살린다.

이 응급실에 들어온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막론하고

나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한다. 무조건 살린다!'

제가 그 대사를 딱 듣다가, 제 안에서 믿음으로 선포했어요. 화답했어요.

'나는 섬긴다. 섬긴다. 무조건 성긴다!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섬긴다!'

 

내 삶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영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이 영혼을 섬기면 내 사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영혼이 그렇게 섬김을 받으면 얼마나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든/ 말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삶의 영역 안에 보내주신 영혼 만큼은

무조건 섬긴다. 무조건 섬긴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삶의 영역 안으로 보내주신 영혼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과 함께 손잡고 주님 오실 때 같이

그 보좌 앞에 기쁨으로 즐겁게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봐요. '그 영혼은 언제 변화됩니까?' 저도 몰라요.

근데 한 가지는 분명해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의 때에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성기고 주님은 역사하시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 모두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할 때, 한 가지만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주님, 그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