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 - - YouTube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 삼하23:8~17
*30:30초부터 녹취
삼하28:8~9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
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본문을 읽을 때 생기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장수들이, 어떻게 해서 다윗을 섬기는 세 장수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을 자세히 볼 때, 이런 세 장수가
다윗을 주군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딱 하나 뿐입니다.
그 외 다른 사건이 성경에 안 나와요.
그것은 당대 최고의 전쟁 고수였던 블렛의 진영의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사건이에요.
이 세 명의 장수들을 어마어마한 사람들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세 장수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었던 적장이 골리앗이었죠.
그래서 골리앗이 밤낮으로 나와서 이스라엘 진영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해도, 어느 누구도 선뜻 나가서
골리앗을 향해서 싸울 수 없을 만큼...
팔백 명을 혼자서 쓰러뜨렸던 요셉밧세벳도 못 나간 거예요.
어마어마한 블레셋 군대가 밀려오는데, 그것을 돌파하고 나갔던 엘르아살도
막아섰던 삼마도.. 즉 최고의 세 용사들도
도저히 나가서 싸우지 못할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 바로 골리앗이었어요.
여러분, 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세 장수 마저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무명의, 전혀 알려진바 없는,
그것도 자신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었던 백전노장도 아니고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갓 떼어낸 청소년, 그래서 다윗의 용모를 설명할 때
뭐라고 얘기합니까? '얼굴이 붉었다'고 했죠. 삼상17:42
그것도 군인도 아니에요. 어린 목동이 물매돌 들고 나가서
자기들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골리앗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적장을
단 한 방에 쓰러뜨려버린 거예요.
이 아이가, 얼마나 이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 삼인방이, 다윗의 부하가 되었던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정규적인 군사훈련과, 어떤 시스템과 스트럭쳐 안에서
거의 찍어내듯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나온 사람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골리앗을
전혀 배경도 없는 어린 목동 한 명이 나와서 쓰러뜨려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이 세상의 시스템과 스트럭쳐,
이 세상의 스팩으로 쌓아온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 시스템과 스트럭쳐 안에서
세상이 제공하고 있는 스킬과 스팩안에서
똑같이 찍어내듯이 성장한 그 사람들과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이 견주어서 싸울 때.. 여러분, 절대 승산이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승산이 힘들어요. 왜?
그렇게 해왔던 세 장수도 감당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골리앗이 나온거에요.
근데 시스템과 스트럭쳐, 스팩을 통해서 길러내어지지 않은
전혀 엉뚱한 다윗이라고 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준비된 이 사람은,
나와서 그냥 골리앗을 쓸어버린 거예요.
저는 우리 가운데 이런 청년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 있었고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있었고,
헤롯대왕 밑에서 나름대로 권력잡고 세상적인 스팩 쌓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고 예비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어요.
대신에, 광야 한복판에서, 전혀 그런 배경하고는 상관없이
홀연 단순히 광야에서 돌파하며 준비됐던 세례요한이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받습니다.
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 합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시스템과, 스트럭쳐, 스팩,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그런 기술과 경험을 통해서는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을 이길 승산은 없어요.
그걸로 여러분은 못 이겨요.
그러나 '다윗'으로는 이길 수 있다는 거에요.
▲이 사건 이후에,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습니다.
16세 전후의 아이가 군대 장관이 된거에요.
다윗이 군대장관이 되면서부터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이 세 명의 장수들이
아마 다윗을 주목해서 봤을 거라고 예측합니다.
세 용사들은 함께 사울 왕밑에서,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 민족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이 장수들이 계속 다윗에게서 확인한 것은 전쟁 스킬이겠습니까?
잘 준비되고 훈련된 군사적인 어떤 그런 능력이겠어요?
다윗 속에서 뭘 봤겠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는 백전노장인 자신들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다윗의 안에만 있었던 것이 뭐겠어요?
하나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을 향한 열정!
그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않을 만큼, 담대하게 자기의 목숨을 내어던질 만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다윗가운데 있는 것을 본 거예요.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열정 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favour,
즉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 그를 승리케 하신' 것을
이 세 용사들이 다 지켜본거에요.
그때부터 이 용사들의 마음이
마치 요나단과 같이, 다윗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그때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여
나중에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에 의해서 괴로워할 때...
'질투'라고 하는 연약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니까
그 질투의 연약한 문제를 통해서, 악한 신이 들어와
사울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쉽게 말해서 귀신 들린 거예요.
결국 그렇게 해서 자기의 충복이자 자기의 사위인 다윗마저도
창으로 던져서 죽이려고 하는 일이 일어나자
결국 다윗은 그때부터 광야 10년의 방랑생활 가운데 들어가는데,
이 세 명의 용사들이, 차츰 사울에게서 이탈해서, 다윗에게로 옮겨와
다윗과 함께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근데 여러분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뭐예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사건입니다.
이건 가히, 모든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이 이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됐던 배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전혀 다릅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처참하게,
광야가운데 거의 버려지다시피 그렇게 된 상황에서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가 16세 즈음이라고 보면,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던 시기는 13세 즈음이라고 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로 거의 3~4년 기간만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담대한 사람이 되고,
사울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때문에 사울이 괴로워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며 예배하는 그 자리에, 악신이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버립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임함으로 말미암아 악한 것들이 떠나는..
그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다윗이 바뀌어요.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고수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장수로 준비됩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가 어떻게 가능하냐 라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 알다시피 아버지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는
양 몇 마리와 함께 다윗을 거의 광야로 버려 버립니다.
그렇게 버렸던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이 했던 고백입니다.
삼상17:34~35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여러분, 광야에서 홀로 양을 치는 일이,
이리, 곰, 때로는 사자하고도 싸워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새가 이런 위험한 일을
막내 아들인 다윗, 그것도 13세 정도밖에 안 된 어린 아이에게
양 몇 마리를 붙여서 광야가운데 내보냈다.. 라는 것은
정상적인 가정 배경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버지가 정말, 이리와 사자와 곰하고 싸우는 일인 것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막내 어린아들에게 양 몇 마리를 붙여서
광야에 내보냈다는 얘기는... '너는 내 눈 앞에서 없어지라'는 얘기에요.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거니와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리이다' 시27:10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윗은 이새의 가문에서
굉장히 수치스러운 여인의 배경에서 태어난 사생아와 같은 아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머니는 다윗을 낳고 사라져버리고
아들을 버리고 그냥 도망갔다고 볼 수 있는 거고
아버지 이새는 그런 다윗의 존재가 탐탁치 않아서
양 몇 마리를 붙여놓고 광야에다 거의 버려버린거에요.
그래서 다윗이 시편에서 고백한 거에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거니와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리이다' 시27:10
또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던 적도 있죠. 시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여러분 정상적인 관계에서 애가 생기고 태어났을 때는
'내가 죄 중에 잉태되고 태어났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부끄러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태어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가 매우 수치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실수로 태어났던 그런 존재인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자기 눈앞에서 그냥 사라지라고
양 몇 마리와 함께 광야에 버려버린거에요.
여러분 13 살 전후에 아이가, 양 몇 마리와 함께 광야에 버려져서
얼마나 춥고,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아직 어린 아이인데...
엄마도 보고 싶었고, 아빠도 보고 싶었을 것이고
'나는 왜 형들하고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이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흐느껴 울면서 힘들어했을까요?
그리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세상을 향해서 저주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이런 불쌍한 소년이, 불과 몇 년 후에는
강력한 예배자와 하나님의 군대 장관으로 바뀌었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한 가지입니다.
그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광야 한복판에서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한 거예요.
하나님은 이 다윗에게 찾아와 주신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면 청년 여러분, 잘 들으세요.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여러분의 과거의 배경이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과 버림받음과
낙망과 좌절과 어떤 어려움이 있었던 간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도
여러분을 향한 가장 완전하신 뜻을 이루시기에
충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향한 최선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할 수 있도록, 개입할 수 있도록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면함이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한다 라는 거에요.
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만나는 유일한 조건은, 다른 게 없어요.
간절함이에요. 간절함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광야한복판에서 절망과 절규와 원통가운데 부르짖었겠죠.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야웨 하나님의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왜 나를 이 광야 가운데 보내시고, 왜 나를 이렇게 살게 하셨냐고?'
광야 한복판에서 절규하듯 불르짖었겠죠.
그렇게 부르짖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거에요.
'다윗, 너는 버려진 자가 아니라, 나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자다.
너는 죄악가운데 잉태되어서, 죄악가운데 태어나서
죄를 짓다가 마치는 인생이 아니라
나의 택함을 받아,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자다.
너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인정 받는 존재가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데스티니 가운데 있는 자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근본적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스팩 아무리 많이 쌓아봐요.
그 스팩과 세상의 시스템과 스트럭쳐가
여러분이 누군지를 얘기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그분이 나를 무엇을 위해서 창조하셨고
무엇을 위하여 구원하셨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 여러분 스스로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해결받을 수 없어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스팩만 쌓는 거에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저 세상의 기준으로 정해 놓은
세상이 주는 더 높은 어떤 것을 추구하며 몸부림치지만
그 모든 걸 다 갖춘다 해도,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 공허함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얘기합니다.
'청년의 때, 내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빚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때가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알라'고 얘기합니다. 전12:1
창조자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이 누군지를 발견하시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 정체성 안에서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목적과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서 준비되어 쓰임받는 인생을 되기를 도전드립니다.
그 분명한 정체성과 목적성 위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준비하는 거예요.
▲다윗은 광야에서 이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의 인생이 바뀝니다.
가장 먼저 그는 예배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요. 예배하는 사람으로!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인카운터(조우, 대면)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첫번째 반응은.. 예배가 바뀌어요. 할렐루야!
그런데 여러분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간절히 부탁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예배를 드리는 이 공예배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여러분, 나머지 시간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건 제가 25년을 넘도록 신앙생활과, 사람들을 훈련한 결론으로 내릴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시간과 장소를 정하시고,
회중을 불러 함께 예배하는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과의 만남, 인카운터가 없고
하나님과의 만남에 감동이 없는데,
자기혼자 독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만난다는 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매주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이 예배시간을 사모하시길 도전드립니다.
이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도전드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도전드립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시길 도전드립니다.
▲여러분 결국 하나님과의 이 놀라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다윗의 삶가운데 예배가 회복되자, 그의 일상이 바뀝니다.
그래서 여전히 양을 치는 그 일을 대하는 다윗의 자세가
완전히 바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양 한마리의 가치가 바뀌기 때문이 아니라, 양은 똑같은 양이죠.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양인데, 양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양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일이라고 하는..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콜링, 부르심이라고 인정하고,
그는 그 작은 일에 자기 최선을 다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양 몇 마리를 치는 일이, 양이 소중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양 한마리 구하기 위해서
사자까지 뒤쫓아가서 그 입에서, 양을 구해낼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양 한 마리가 얼마나 한다고... 근데 왜 그렇게 해요?
하나님이 주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면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그렇게 하면서 다윗은
목동에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바뀌는 거에요?
당대 최고의 고수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거예요.
여러분, 양을 치는 이 일을 통해서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쓰러뜨리는 일로 연결하는 것은
우리는 못해요. 우리 인간적인 관점은.. 이건 연결이 안 돼요.
그래서 마치 '지금은 내가 이렇게 작은 일 하고 있고, 작은 회사에서 일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큰 회사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할 것이야'
이건 여러분 죄송해요.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야망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후에 크고 어마어마한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작은 일을 하지만 '내가 이겨내고 참아야지' 하는 관점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지금 이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다만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나를 향한 완전한 계획이 있으신 하나님은
내가 도저히 연결시킬 수 없는 영적인 점프를 하나님은 행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다윗은 그냥 열심히 양떼를 돌보다 보니까
어느 날 하나님이 다윗을 골리앗 앞에 세워놓은 거에요.
그때 기존의 스킬과 어떤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엘리트와 백전노장들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한 가지가
그 과정을 통해서 다윗 안에 준비되어 진거에요. 그건 뭐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되는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
자기 목숨을 내던지기까지 뛰쳐나갈 수 있는 이 열정이.. 다윗안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세 장수에게는 실력이 있고, 노하우가 있고, 스펙이 있었지만
다윗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목숨을 내어 던지기까지 하는
그 열정이 없었던 거에요.
세 장수가 결국은, 다윗의 이 열정앞에 무릎을 꿇은 거예요. 아멘입니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스킬앞에 무릎 꿇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팩과 노하우때문에 무릎 꿇을 것 같아요?
내가 예언할 게요. 여러분이 아무리 몸부림친다고 해서
이미 시스템과 스트럭쳐 안에서, 스팩을 쌓아서 찍어내듯 준비되어진
세상 사람하고 여러분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이 부분을 몰라요.
'아이 그래도 난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해 보세요. 반드시 당신의 한계를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거 갖고 싸우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게 있어요.
왜요?
아주 무모한 일인 것 같고, 아주 보잘 것 없는 것 같고,
아주 가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그 단순하고 무모하고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우리의 열정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favour(호의)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
결국 이 사람들은 이거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젊은 목사님들이
지금 중동 난민과, 다음 세대 준비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물질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데
여러분, UN이나 세상의 NGO들이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재정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마치 '세 발의 피'와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중동에 있는 크리스천 리더십들이 누구에게 붙어요?
UN에 안 붙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나사렛 같은, 정말 시골 같은데 있는
우리 별 볼일 없는 목사들, 정말 연약하지만...
요르단과 레바논 크리스천 리더십들이 다 우리에게 붙고 있어요.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우리가 스킬이 있어서? 우리가 능력이 있고 노하우가 있어서?
그게 아니잖아요.
1400년만에 열린 이 난민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 *중동에 이슬람 발흥한지 1400년
그것 때문에 (대규모 난민 발생은 1400년만에 처음 생긴 일)
모든 교회재정, 인력,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가다 보니까
하나님의 favour가 여기 위에 임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이런 하나님의 영적인 돌파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기를 도전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실력, 그들이 갖고 있는 스탠다드,
여기에 맞춰서 뭔가 실력과, 노하우로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쳐 봐야
여러분 결국 그들의 하수인 밖에 못 돼요.
그런데 그런 시스템과 스트럭쳐 안에서
여러분들이 자유하고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모든 것에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역사하는 거에요. 그것을 여러분 청년 때에 사모하세요.
근데 여러분 이 일이 어떻게 됐어요?
열방을 바꾸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고, 그냥 양치다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상황, 환경, 주어진 일,
그것이 교회든, 여러분의 직장 현장이든, 어느 자리이든 간에
거기 안에서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인정받고 그 스킬과 노하우를 싸우려고
애를 쓰지 말고,
어떻게 하면 여기서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을 향한 헌신,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한 영혼을
향해서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과 섬김과 희생과 나눔과 배려와
이런 가치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 위에 역사하시는 favour(은총, 호의)가
어떻게 내 위에 임할 것인지.. 집중할 수 있기를 도전드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수준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하나님은 인도하실 거예요.
저는 우리 청년들가운데 이 비전의 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힌
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따라가는, 다윗의 이 첫번째 세 명의 용사와 같은 자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도전드립니다.
▲여러분들 재밌는 게, 오늘 본문에 이 아둘람 에서부터 시작한
이 첫번째 세 장수가 뒷부분으로 가서
다윗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조를 온전히 세워 갈 때쯤에는
첫번째 세 장수의 이름은 사라지고요.
두 번째 세 장수의 이름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다윗왕조가 이루어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확장 할 때는
30 명의 장수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게 놀라운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다윗이 초반에 힘들고 어려웠던 그 모든 고통과 아픔의
과정에서 함께 했던 일종의 개국공신과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나라가 안정적으로 틀이 딱 만들어져서
어떻게 보면 권력과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딱 됐을 때는
오히려 뒤로 싹 사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뒤에 다음에 두번째 새 사람들이
실질적인 모든 권력의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다 배려해 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또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그 뒷부분에 30 명의 장수들이 또 일어날 수 있도록 또 연결해주는 거에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장수들이 이 다윗 밑에서
여호와의 장수들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돼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