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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인생과 세례요한의 인생

LNCK 2023. 8. 18. 20:41

◈헤롯의 인생과 세례요한의 인생      막6:14~29             2023.08.13.

*원제목 <3호실의 죄수>

오늘은 헤롯 왕과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던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 원합니다.

우리가 보통 성경을 읽을 때

사울 왕과 다윗이 있으면,

나는 다윗과 동일시에서 묵상하지마

'내가 사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헤롯을 여러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묵상을 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오늘 설교의 대부분의 내용은, 헤롯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세례요한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막6:14~16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제 제자들까지 파송해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시니까

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에 분봉왕 헤롯이 이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근데 단순한 호기심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게 돼요.

왜냐면, 자신이 목베어 죽인 세례요한의 환생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헤롯, 그는 누구인가요?

실질적으로 헤롯 가문을 시작한 사람은 마2장의 헤롯대왕 입니다. *Herod the great

본문의 주인공 헤롯의 아버지죠.

헤롯대왕은 정통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출신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정치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을, 현대식의 대규모 성전으로 증축해 줍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예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2장에 보면, 만2세 이하의 남아들을 살해하는 엄청난 유아살해극을 벌입니다.

그 헤롯대왕을 뒤이어서 세 아들이 영토를 분할해서 다스리게 되는데

헤롯 아켈라오, 본문의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2세 입니다.

이 세 사람이 영토를 분할해서 다스렸기 때문에, 분봉왕 이라고 부르죠.

분봉왕은 정식 왕이 아니라, 어떤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같은 개념입니다.

그 세 사람 중에서 본문의 헤롯 안디바가

가장 권력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소문의 주인공인 예수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기억 속의 세례요한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가, 왜 현재를 살면서

현재를 살지도 못하고, 과거속에 묶여 있었을까요?

세례요한은 이미 죽었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미 요한은 과거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과 얽혀 있는 자신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과거가

자꾸 환영처럼 되살아나기 때문이었어요.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현재를 사는데, 현재를 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이 기회의 시간을, 온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매여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가 자꾸 소환되는 상황들이 있어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1) 첫 번째, 가족들과의 여름 휴가가 어떠셨나요?

날마다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또 아이들 키우고

그렇게 정신없이 살 때는 모르죠.

근데 갑자기 가족들이 한자리에 다 모여 앉아 있는 시간이 되면,

서로 덮어두었던 과거의 사건들이 올라오고

상처와, 트라우마, 아픔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랜만에 즐겁게 교제하고, 즐거운 시간 갖자며 여행을 갔다가,

대판 싸우고 돌아오는 가족들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보고 싶은데, 가족과 만나기를 꺼려하는 자녀들이 있잖아요.

그런 자녀는 '왜 얘만 이렇게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는 것일까?'

여러분, 그 자녀는 부모인 당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치료되지 않은 거예요.

아직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을 보고 싶기는 한데, 가족을 만나는 자리가 두려운 것이죠.

2) 두 번째 그런 상황을 보면, 큰 병이 발병해서 병원에 가는 날...

한국 사람들은 인생을 열심히 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서, 자기 건강도 돌보지 않고 달리는 거잖아요.

때로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다 보면,

그것을 술로 해결하려고 하고, 또 오히려 더 일 중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사 앞에 앉게 되는 날,

내 마음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데,

내 몸은 과거의 상처가 고스란히 누적되어서 (병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죠.

3) 세 번째, 내가 현재를 살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가 드러나는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복한 것처럼,

평안한 것처럼 꾸미며 살 수 있죠.

또 자기 자신에게도, 아무 일도 없이 괜찮은 것처럼 포장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스스로도 그것을 기억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요.

그러나 내 영혼의 밑바닥과 속사정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감사한 것은, 내 영혼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나를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치유 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선하신 뜻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내 상처를.. 하나님은 자꾸 드러내시는 거죠.

막6:17~18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세례요한이 떠올랐죠.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와 재혼하기 전에 첫 번째 결혼한 여인이 있었어요.

원래 나바테아 인들의 왕인 아레타스 4세의 딸과 결혼을 했었습니다.

나바테아 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사해 남부에 있는 에돔사람들의 거처를 밀어내고 차지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헤롯은 그 에돔 족속 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고향 땅을 빼앗은 나바테아 인들의

왕의 딸과 결혼 한 겁니다. 당시의 정치적인 실권자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정치적인 실력자와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 정략적 결혼을 한 거죠.

그러니까 헤롯 안디바는, 왜 본 처와 이혼을 하고

갑자기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와 재혼을 했을까요?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략결혼은,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디바가 본처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느껴졌을리 없죠.

무의미하고 불행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아름다운 제수씨(동생의 아내)를 보는 순간

야, 이게 진짜 사랑이다' 생각한 거에요.

그 사랑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리고는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재혼을 한 겁니다.

뭐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한 거죠.

그러나 사실 이 헤롯 안디바 와 헤로디아의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서막에 불과했어요.

△헤롯 안디바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현재 예수의 소문을 듣고도,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잖아요.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부인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어리석은 것이죠.

근데 우리가 인생이 나태해지면, 이런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는 거죠.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된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하세요.

'이 사람 때문에 내 인생 힘든 거 같은데...'

아니에요,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게 아니에요.

영적으로 방황하고, 내면적으로 방황하는, 나 자신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어떤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야만, 내 행복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면 행복할 수 있어요.

누구를 만나도 행복할 수 있고, 그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할렐루야!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선의 자리라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판교에 하프타임(주중 점심시간 직장인 예배) 에 모이는, 그 IT 직장인들에게도

제가 여러번 이야기 하는 거에요.

이 젊은이들이 여러가지 업무 스트레스, 압박, 뭐 갑질,

그럼 괴로움들을 겪으면서

'내가 좀 더 좋은 직장을 가면, 내 인생의 행복해지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지금 여기,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충만하게 살 때,

그때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세요.

반드시 그의 인생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가 열심히 충성을 다 하고

또한 긍정적인 태도를 일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그냥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를 높이게 돼 있어요.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 만족의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20년 30년만 살아도 다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물질, 쾌락, 성공에 대한 목마름은 끝이 없구나..'

목이 말라서 물 한 모금 마시고나서, 좀 다니다 보면.. 곧 다시 또 목 마르잖아요.

이게 인생입니다. 이게 인생의 모순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궁극적인 해답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돌아와야만

내 영혼의 목마름이 끝나는 것이에요.

▲자 그런데 그런 영적인 원리를 알지 못하는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는

어떻게 했는가요?

막6:19~20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로디아는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세례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죽이지 못 했던 것은, 헤롯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사실 그가 하는 말이, 자기 양심에 듣기 힘들기도 했지만

그의 책망의 말을 오히려 달게 들었다... 라고 본문에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헤롯 안디바의 마음에는 양가 (두 개의) 감정이 있었던 거에요.

권력자로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거예요.

권력자들이 심각하게 오해하는 것이 있죠.

자신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인줄 아는 거예요.

물론 권력을 휘두를 때는 그렇죠.

그러나 권력의 기반인 민심이 이반하면

한 순간에 주저앉는 것이 권력자 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헤롯)가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이 반응을 하고 싶어도

반응을 못 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보다 권력을 더 갈망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도 갈망하지만, 근데 권력을 더 갈망해요.

자 그러면 권력자들만 그럴까요?

재력가들은 자신의 물질을 갈망하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물질을 잃을까봐 두려워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잃게 되죠.

그런데 이 사람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인생에서, 내려 놓지 못하는 갈망이 있는 거예요.

명예를 잃게 될까봐.. 인기를 잃게 될까봐..

나를 그래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잃게 될까봐

갈망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거에요.

제가 <두려움 너머의 삶>책에서 자주 이야기 한 것이

'갈망과 두려움은 정비례한다.'

갈망하는 대상을 잃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 인생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갈망하면, 세상 것은 완벽하게 내게 채워 주는 게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두려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어요.

갈망하는 갈망할수록, 그 갈망하는 세상의 것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이유가

내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전부라고 의지하고 생각하는 그것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순간,

사람은 그 상실감과 두려움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헤롯이 하나님이 두려웠다면, 회개하고 돌이켰겠죠.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 했기 때문에

돌이키지 못 했고, 세례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헤롯 안디바를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헤롯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두려워만 하는 인생이었어요.

여러분,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또 리더로서의 헤롯의 인생을 보면,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두려워 했어요.

여러분 진짜 좋은 리더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이용하는 리더가 아니라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리더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는 거에요.

참 사랑을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려움은, 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지만

참된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이 시간과, 인생이란 소중한 기회를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헤롯의 인생을 살펴보고 있는데

헤롯안에서 나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으면.. 잘 하시는 겁니다.

20절에 말씀에 보면, 헤롯이 요한의 말을 들으면서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러나 달게 들었다...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도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 영혼이 깨어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비록 힘들지만 그러나 내 영혼이 달게 듣습니다.

다만 그 말씀을 달갑게 듣기만 하고, 거기서 멈추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게 회개가 아니잖아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달갑게 듣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이죠.

결국 돌이키지 않는 인생은,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운전을 하고 가는데, 애매하게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넘어갈 때

애매하게 교차로를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발간불이 딘 후, 몇 초 후에 찍힌다고 합니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한 두 번은 그렇게 건너는 건 모르겠지만

그러나 빨간불에 여러분이 계속해서 신호를 어긴다면

결국 사고가 나지 않겠어요?

진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헤롯과 헤로디아의 인생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 결단 있기를 바랍니다.

21~23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헤롯이 자신의 생일잔치에 지지자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들어와서 춤을 춰서

헤롯 왕과 배석자 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그 소녀에게

'네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구해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저는 이 장면에서 딸 살로메가 춤을 춘 것이

'헤롯과 이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라고 되어 있는데

헤롯이 왜 기뻐했을까요?

헤롯이 그냥 순전한 기쁨이었을까요?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인 사람들(지지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이것이 헤롯의 인생의 기쁨이었어요.

헤롯의 인생은, 현재를 살지도 못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순전한 기쁨도 누릴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이 내 인생에.. 어떻게 보면 그들이 자기 권력의 밑받침을 해주는 사람들인 거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내 인생을 끌고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기뻐해야 비로소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었던 것이죠.

(한 마디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인생이었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24~26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소녀 살로메는, 어머니의 사주를 받아서,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했어요.

어떻게 소녀가 요구하는 선물이, 사람의 머리라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입니다.

헨젤과 그레텔, 콩지팥지.. 사실 이런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잔혹한 이야기잖아요.

그런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인 거죠.

그런 저 헤롯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잔혹동화가 될 때가 참 많잖아요.

가장 비참한 일들이, 가장 일어나지 않아야 될 일들이,

가정에서 수 없이 일어나게 돼 있거든요.

피 흘리는 일들이.. 가정에서 수 없이 일어나거든요.

사람들이 말을 못 하고, 덮어두고 살아서 그렇지..

사실은 가정안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 세례요한을 죽인 사람인가요?

살로메인가요, 헤롯인가요?

아니죠. 이들을 배후에서 조종했던 헤로디아 입니다.

헤롯이 요한의 입을 막기 위해서 감옥에 넣게 한 것도

헤로디아 때문이에요. :19

결국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을 죽이는 배후세력이 됩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보면,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결혼이 불행하다고 느껴서

제수씨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했어요.

근데 헤로디아는 더 충격적입니다.

헤로디아 자신의 남편 헤롯 빌립은 재력은 있는데

권력 서열에서 형 헤롯 안디바에게 밀렸어요.

그래서 자신의 남편보다 더 강력한 권력이 있었던, 안디바를 선택한 겁니다.

자신이 권력 일인자의 아내가 되고싶어 했던 거죠.

그러나 결국에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로 인해서 망하게 되고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로 인해서 망하게 됩니다.

역기능적인 인생에 빠졌던 헤롯과 헤로디아의 인생의 결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요?

헤롯은 본처를 쫓아냈잖아요. 그러니까 본처는 마음이 없는데

그 아내를 버려버린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친정아버지 나바테아 왕이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그래서 큰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전면전을 했는데

헤롯의 군대가 대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이 '도저히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면 안 되는 죄를 짓더니.. 요한까지 죽이고.. 이건 하나님의 징계다' *전쟁패배

하고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 황제로 등극한 칼리굴라가

(칼리굴라도 아주 대표적인 사악한 인물인데)

헤롯 아그립바를, 유대의 정식 왕으로 임명시키자

역사적인 기록에 보면, 헤로디아는 참을 수 없어 합니다.

'내 남편이 1인자가 돼야 되는데... 밀려나 버린 것이죠'

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아그립바)이 1인자가 됐잖아요. *아그립바는 헤롯대왕의 배다른 손자

그러자 헤로디아는 남편(안디바)을 닦달해서

'당신이 로마 황제에게 가서, 뇌물을 바쳐서라도, 당신이 왕에 다시 등극 해라!

이 상황을 바꿔 놔라!'하고 남편을 계속 닦달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안디바가 뇌물을 준비하는 가운데

헤롯 아그립바 왕이 황제에게 안디바를 고발합니다.

'그가 반역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황제가 세운 새로운 질서(아그립바)를 따라가지 않는 거니까

반역은.. 일부분 맞는 얘기였어요.

결국 이 두 사람은 반란죄 혐의를 뒤집어쓰고

모든 영토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배지에 끌려가서 비참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헤롯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 했고,

헤로디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 했어요.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결핍과 역기능 인생의 조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최악의 왕과 왕비가 아합과 이세벨 이잖아요.

헤롯과 헤로디아는 그들과 너무 유사한 커플이었어요.

제가 헤롯의 이야기를 왜 오늘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 했는가요?

여러분,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응 하지 않고

세상 것을 갈망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생의 결말이에요.

그 결말을 헤롯과 헤로디아가 극명하게 보여 주는 거에요.

▲적용/ 이번 여름에 방학을 하고, 오랜만에 온 가족들이 함께 모였는데

이때 가정의 상처가 드러나고, 가정이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거를 덮어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우리 부모가, 우리 가족이, 너에게 얼마나 많이 투자를 했는데..

너는 적어도 이런 목표를 가지고, 높은 세상적 목표를 가지고 달려 가야 되지 않느냐?'

오늘 날 크리스천 가정들도 끊임없이 해롯과 헤로디아의 모습을 보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 있는 이런 역기능적인 부분들이 드러날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돼요.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을 치료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정말 하나님 한 분을 갈망하고, 하나님 한 분을 사모할 때

인생의 궁극적인 만족 뿐만 아니라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으로 새롭게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에요.

오늘 날 현대 가족이, 부부가 서로 투자하고, 뭔가를 이루어내길 기대하고..

이런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전락해 가고 있어요. 헤롯과 헤로디아처럼!

여러분, 가족은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이용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다고... 원망하는 관계도 아닙니다.

가족은 서로가 하나님 앞에 반응하도록,

신앙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 헤롯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28~29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눅1장을 보면, 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늦둥이 아들이었죠.

고령에 낳은 어린 자녀였죠.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요한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아들이었겠어요?

그런데 장성한 요한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보면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있는' 요한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제사장 가문이면, 집안도 상당히 좋은 집안이었는데,

왜 요한은 광야의 방랑자처럼, 그런 (고생스런) 인생을 살게 됐는가요?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은

진 에드워드가 쓴 책 <3호실의 죄수>입니다.

저는 진 에드워드의 책들이 너무 좋아서,

그분이 쓴 책들은 다 찾아서 본 거 같아요.

진 에드워드는 성경이야기를 탁월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가 쓴 <세 왕 이야기>는 내적치유에 관련된 책인데

그의 책들이 상당히 내면적이고, 영적인 책들이에요.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세례요한의 인생을 재구성하면서

<3호실의 죄수>에서 이렇게 상상합니다.

「고령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을 것이고

어린 요한이 홀로 되자,

주변에 친척들도 있었고, 친척들이 보호해 주겠다고 권면을 하지만

그가 거절하고, 광야로 들어갔다.」

왜 그가 광야로 들어갔을까요?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겠죠.

근데 그가 그 광야에서,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거에요. 할렐루야!

그리고는 시대를 향해 외칩니다.

마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이때 수많은 백성들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세례요한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세례를 받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 사명을 감당했던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체포되어, 사해 동편에 마케루스 라는 엄청난 요새가 있었는데,

그 요새에 감금됩니다.

그리고 나서, 세례요한은 신구약중간기 400년의 암흑기를 뚫고 나온

혜성과 선지자 였거든요. 그런 요한이 영적인 어둠의 시간을 지나가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의 전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어떻게 내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 하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11장에 보면, 오늘 본문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에요.

세례요한이 의심에 빠져서, 예수님께 자기 제자들 보내서 질문합니다.

'당신이 약속된 메시아, 정말 그분이 맞습니까?'

요한이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나요?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 분이 바로 그 메시아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증거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요한이 의심에 빠지게 돼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암울하고 비참했기 때문이에요.

감옥에 갇혀서, 저 악인 헤롯에게

도대체 하나님은 아무 것도 그를 말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게 만드시려는 거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지나 가게 되면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지는 거에요.

내가 기대했던 주님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내 인생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하시는 것을,

그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가 없는 거에요.

△이번 주에도 소중한 한 사람을 떠나 보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암투병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살려 주시죠.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투병을 하다가 그대로 우리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 있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의심하는 요한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마11장에 보면, 굉장히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3호실의 죄수>라는 책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메시지입니다.

마11:6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헤롯의 인생과, 세례요한의 인생.. 두사람의 인생을 생각해 봤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제멋대로인 거 같잖아요.

'도대체 하나님, 왜 저런 악인은, 하나님께서 제어하지 않으십니까?'

인생의 짧은 기간을 살면서, 우리는 그런 악인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 있는가?'

또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전 인생을 헌신하며 살았는데

자기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허무한 거에요.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11:6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반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우리의 영혼을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시는 분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어서 믿지는 않죠.

어떻게 보면 정 반대로, 내 인생의 수많은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 많은 상황들, 이 시대의 정황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 힘들어하고 원망한다 할지라도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

이해할 수 없는 이 역사에 대해서

이것이 우연히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

하나님이 결국에는,

하나님이 역사를 경영하시고, 인생을 경영하시는 섭리가 있다는 것..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가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결국에 헤롯을 가만히 두셨나요?

하나님이 요한을 그냥 허망한 인생으로 끝나셨나요?

아닙니다. 마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요한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는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가장 큰 자다' 그의 인생을 칭찬, 인정하십니다.

왜냐면 세례요한만큼 그렇게 목숨 걸고 헌신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죠.

여러분,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 공동체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고 칭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3호실의 죄수, 요한'

여러분 요한이 '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갇혀서 사는가?'

여러분, 요한이 갇혀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음껏 달리고 헌신한 사람이었어요.

실제로 자기 인생에 갇혀서 살았던 사람은 헤롯 입니다.

자신의 탐욕에 갇혀서.. 그 불행에 갇혀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헤롯의 인생길을 선택하지 않고,

세례요한의 인생 길을 선택하시는 저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질과 부와 명예와 지위도 있고,

하나님도 잘 믿고..

이렇게 둘 다 가지면 안 되나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정하세요.

내가 하나님도 갈망하고, 권력도 갈망하고..

하나님도 갈망하고 세상도 갈망하고..

그 애매한 중간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헤롯이잖아요.

그 두 가지를 다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가 무너졌잖아요.

세례요한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는

'그는 힘겨운 인생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치있는 인생을 산 거예요.

여러분, 가치있는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