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 창조, 그 위대한 축복 - - YouTube
◈창조, 그 위대한 축복 창1:1~5 2019.03.19.
*처음에는 다소 지식적이지만, 중반(◑2)과 후반(◑3)부터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책이고
또 동시에 모든 것의 해답이 되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원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인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또 그 이전에 우주는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이런 모든 것의 '시작'에 대한 책이면서,
('시작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지음받았는지를 알 때
어떻게 사는 것이 복된 길인지를 알게 되고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알 때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알게 되는...
시작과 함께,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강해하는 동안 우리 삶 가운데
인생의 해답들을 찾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에 혹시라도 길을 잃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어디로 가야 될지를 잘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이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길을 내시는
그 길을 찾으시고, 정답을 찾으시고, 또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올 한 해 2019 동안 주시는 말씀이 '복과 저주에 이르는 길'이었잖아요.
그리심 산과 에발 산 기억하시죠?
어떤 길이 복에 이르는 길인지는, 창세기 말씀을 잘 묵상하면
인생의 길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길이 복에 이르는 길이고,
어떤 길이 저주에 이르는 길인지,
이 질서들을, 길을 발견하시는 그런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창조론도.. 진화론도.. 자기 믿음의 선택이다.
창세기, 또 성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굉장히 믿음들이 좋으시네요.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래요. 이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믿음의 도전을 줍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게 증명하거나 따져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말씀도 아니고, 따져봐서 알 수 있는 말씀도 아니고
그때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믿음의 도전 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건지/ 말 건지..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어떤 것이 확실히 증명되는 거거나, 확실히 어떤 사람이 확증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냥 팩트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사실 fact을 전달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믿음 앞에 우리를 서게 한다는 거예요.
특별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를 믿음 앞에 서게 합니다.
'이 말씀을 과연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이런 기로에 서게 한다는 거죠.
정말 이 말씀을 가지고 심각하게 여러분 고민해 보시고,
심각하게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해 보셨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피할 수 없이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믿음의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냐면
믿음의 도전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도전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 이후로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
어떤 길로 가게 될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니, 어쩌면 그것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이 믿음의 선택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믿음의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복된 길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저주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물론 '믿음의 도전'이, 맹신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도전'이란,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는 거예요.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증명할 수 없어요.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고 증명(반박)할 수 있느냐? 그것도 못한단 말이죠.
천지와 만물에 하나님의 창조가 분명히 드러나.. 우리는 핑계치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맹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 있다는 거예요.
믿음의 영역이란, 증명할 수 없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 증명할 수 없죠. 믿음으로만 알 수 있죠.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수학을 전공했잖아요. 명제라고 하는 것은
참과 거짓을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데,
아예 명제가 아닌 것이 있단 말이에요. 기독교 신앙이 그런 거죠.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를 '믿음의 도전' 앞에 서게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말씀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만약 이 말씀을 못 믿겠다면,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어? 그건 그냥 신앙에서 하는 얘기지..'
이렇게 못 믿겠다면,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계세요?
빅뱅과 진화론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빅뱅과 진화론은 또 어떻게 믿으세요?
많은 분들이 '학교에서 배웠어요.' 또는 '과학이 증거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시면, 과거에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중에
지금 태반은 거짓말이에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의 내용이
지금 많이 바뀐 것을 아실 거예요.
특별히 과학교과서는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분명히 진리라고 배웠던 과학교과서의 내용이
지난 한 20, 30년 사이에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갈아치워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과거에 '진리'라고 믿고 있던 많은 사실들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에요.
특별히 생물교과서 같은 경우에는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고요.
또 제가 중고등학교 때는 '힉스 입자'니 이런 거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빛보다 빠른 게 있대잖아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땐, 그런 건 절대 없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있다 그러거든요.
또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사회 악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둘만 낳아서 잘 키우자' 맨날 이딴 소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얘기 아무도 안 하잖아요.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해서, 다 진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안에 오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틀린 것도 얼마든지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빅뱅과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보면, 빅뱅과 진화론, 역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도 증명할 수 없는 거라는 거죠. '빅뱅'하고 폭발하는 거 보셨어요?
아무도 본 사람 없어요.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도 아니고, 증명할 수도 없어요.
그냥 가설이에요. 그러니 빅뱅을 믿는 사람들도 '믿음'이에요.
잘 생각해 보면, 빅뱅 이론에는 여러분 생각보다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그 오류 중에 하나가 뭐냐면,
'빅뱅'이란, 태초에 우주가 한 점에 모여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왠지 모르겠는데 뱅 하고 터졌어요.
그러면서 우주가 거기서부터 확 팽창돼서 나왔다는 그런 이론이죠.
어쨌든 간에 여기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빅뱅과 진화론을 믿을 것이냐 하는 것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선택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어요.
과학과 종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믿음과 믿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거예요. 둘 다 믿음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 (창조론) 믿음과 (진화론) 믿음 사이의 선택 중에
어떤 믿음을 선택할 건가 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것을 꾸짖으셨고
반대로 믿음이 있는 것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막4:4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눅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그 예수님 당대에도 믿음이 기적을 경험하게 했고
믿음이 병으로부터 그 여인을 구원하였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가 결정된다는 거예요.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우리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게 될지가 결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선택은, 늘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왜냐면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을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여러분들이 그거에 대한 대안으로, 빅뱅과 진화론을 받아들이느냐?
이 믿음의 선택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여러분의 인생에 저주를 주기도 합니다.
'저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너 내 말 안 들으니까 벌 받아'
이러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복을 하나도 못 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주는, 아무것도 열매가 없는 것을 저주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다 정해놓으셨는데
이 정해놓으신 것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면 열매가 없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복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저주로 인도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반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존재의 창조 와 형태의 창조
Creation of Existence 와 Creation of Formation
1장 2절로 넘어갈 텐데요. 1:2절부터 이어지는 창조의 이야기는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는
조금 다른 창조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르다'고 하는 것이, 모순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얘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창세기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창조를 두 단계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Creation of Existence
그러니까 존재를 창조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던 절대 무의 상태가 있었는데
거기서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을 창조하시는 거예요.
그것이 첫 번째 단계고, 그것이 창세기 1:1절이죠.
창1:2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는 절대 무에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신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물질(1:1에서 창조됨)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드신 거예요. 계속 만드신 거에요.
-그래서 두번째 단계는 Creation of Formation
우리가 진흙을 재료로 해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가죽을 재료로 해서 뭘 만들기도 하죠.
만든다고 하는 것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형태가 없던 것에 형태를 주는 것이고
그래서 가치가 없던 것들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고
의미가 없던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고... 이것이 1:2절의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두 단계 창조로 구분을 합니다.
Creation of Existence, Creation of Formation
존재의 창조 와 (형태를) 만드시는 창조!
이것이 유대인들의 믿음이에요.
▲1. Creation of Existence
창1:1절의 내용은 뭐냐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절대 무에서 아무것도 없던 nothing, nothingness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하나님이 뭔가를 창조해 내셨다는 거죠.
물질을 만들어내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1:1절에서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절대 무의 상태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을 때
무언가가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쿼크, 중성미자, 전자, 양성자, 중성자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이
짠하고 존재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창조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주의 전 역사를 통해서
딱 한 번 일어났던 창조 사건이고,
그 이후로는 이런 창조가 기록되어 있는 적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폼을 주시는, 만들어내시는 창조였지..
없던 것에서 만들어냈었다는 기록은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여러분, 과학이 이것을 증언하고 있잖아요.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태초부터 지금까지 질량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는 거죠.
그 이야기는 새로 만들어진 물건, 입자는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태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은 계속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태초부터 지금까지 없던 것이 무에서 생긴데는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 한 번 짠 생긴 거 (1:1) 말고는
그다음에 중간에 없던 것이 막 생성되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이런 일은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이것이 과학이 증언하고 있는 질량 보존의 법칙 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죠.
△오늘 설교하다 보니까 문과생들이 좀 못 알아들는 개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거 아니에요.
창1:1절을 '창조'라고 부르는데
이 사건을 어떤 분들은 '그게 결국 빅뱅 아니냐?'
'뱅 하고 폭발할 때, 처음에 입자들이 생긴 거 아니냐?'
뭐 이렇게 우기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창조주가 계시느냐/ 안계시느냐 .. 라는 뚜렷한 차이가 있죠.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광자를 비롯해서 프로텐, 프로톤 이런 수많은 입자들이 짠 생겼다는 거예요.
빅뱅 이론과 비슷한 점은 있죠.
그런데 빅뱅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한 점으로 고농축되어 있었던 것이
여러분 상상이 잘 안 되지요.
우주라고 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사이즈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딱 한 점으로, 요만한 점으로 고농축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이건 말이 안 되죠. 불가능한 농축입니다. 창조가 맞습니다.
△빅뱅이론은 아주 심각한 문제들,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그러면 그 고농축되어 있는 한 점은 어디서 왔냐는 거에요.
빅뱅 이론은, 이것에 대해서 대답할 수가 없죠.
또 고농축되어 있던 것이 왜 갑자기 터졌어요?
이게 터진다는 게 굉장히 이상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블랙홀이라고 아시죠?
블랙홀은, 밀도가 아주 무거우면 생기는 현상인데
태양 정도 되는 것을, 아주 작은 쇠구슬 정도로 압축시켜 놓으면
그게 블랙홀이 됩니다.
(압축되어졌기에) 중력(당기는 힘)이 너무 커져서,
모든 물질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는 어떤 입자도 빠져나올 수 없어요. (그런데 폭발이라니요)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영화 <인터스텔라> 보셨죠.? 그 영화 꼭 보세요. 좋은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 나오잖아요.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강해지면 시간은 느리게 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다가 블랙홀 정도의 중력이 생기면, 시간이 그냥 멈춰버립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딱 멈춰버리는 선이 있어요.
그걸 이벤트 호라이즌 이라고 부르는데,
거기를 넘어서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안 가는 거예요. 멈춰버리는 거예요.
자 그럼 여러분, 온 우주가 한 점으로 농축되어 있다 그러면
이건 슈퍼 울트라 블랙홀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이만한 밀도가 어디 있겠어요? (불가능한 얘기죠)
그러면 그 안에서 시간도 정지되어 있고,
어떤 입자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얘기예요.
그런 거는 관측된 적도 없고,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해요.
그런데 왜 그게 갑자기 폭발을 해요?
왜 그게 폭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수많은 입자들이 쏟아져 나오냐고요?
하여간 이 빅뱅 이론에도 보면,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빅뱅 이론은, 사실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도 그냥 믿음이에요. '그럴 것이다' 라고 하는 믿음이고,
사실은 그것보다는 저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즉 인격을 갖추신 절대자께서
빅뱅과 비슷한 면은 있지만, 차이가 있어요.
'한순간에 모든 입자들을 쫙 존재하게 하셨다' 하는 창조가 있었다고 믿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세요?
'그게 도대체 왜 터졌는지' 설명도 안 되고
'그 고농축된 것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지'도 설명할 수 없고
이렇게 수많은 의문점들을 갖고 있는 가설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폭발적으로 그곳에 수많은 물질들이 창조되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입자들이 존재하게 되는..
그것이(창조론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거죠.
어찌 됐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무엇을 믿고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 각자의 몫이지만,
그 믿음이 여러분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은 꼭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그냥 단순히 어떤 '하나의 정보를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정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올바른 믿음의 선택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Creation of Formation
성경이 이야기하는 창조의 두 번째 단계가 있다고 했죠.
두 번째 단계는 포메이션(형성)의 단계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드시는 창조에요.
그래서 창1:2절부터 이어지는 창조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물질들(1:1에서 창조됨)을 사용하셔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가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물과 바다를 나누시고, 각종 식물을 만드시고, 동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이것은 절대 무에서부터 사람을 갑자기 짠하고 만드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모든 입자들과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1:1
그래서 창2: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자 보면, 절대 무에서 사람을 짠 하고 만드신 게 아니고
땅의 흙으로 만드셨다는 거예요.
'흙'은 이미 존재하는 근본이 되는 재료.. 이런 의미죠.
그래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탄소도 있고, 질소도 있고, 나트륨도 있고
하여간 이미 존재하고 있던 그런 물질로부터 사람을 만드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Creation of Formation입니다. 무언가를 형성해가는 창조입니다.
이 하나님의 창조를 따라서 온 우주가 만들어졌고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고, 지구와 태양이 만들어졌고
온갖 동물과 식물들이 만들어졌고, 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창조에 대해서
1:2절은, 하나님이 이 두 번째 창조를 행해가시는
중요한 하나님의 원칙, 방향, 또는 창조의 근본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세 가지 중요한 단어를 얘기하는데요.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자 여기 보면, 하나님의 이 두 번째 창조,
첫 번째 '창조'는 이미 하셨어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이것은 Creation of Existence 이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만드시는 일 Creation of Formation' 들을 하시는데
이 만드시는 일에 중요한 원칙과 방향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 중요한 원칙과 방향을 알려주는 세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혼돈, 공허, 흑암이에요.
창1:2절에 이 단어가 나오지만, 이어지는 성경 전체 이야기를 보면
이 단어들이 굉장히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다른 형태로 포메이션 해가는가 하는 것이
결국 성경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보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 가운데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이 세상 가운데, 어떤 창조를 행하시냐면
혼돈 가운데 질서를 주는 창조를 행하시고
공허 가운데 의미를 주는 창조를 행하시고
흑암 가운데 빛을 주는 창조를 행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야기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쭉 이어져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우주와 지구를 만드시는 일은, 7일째 끝내셨지만
우리 인간 안에서, 우리의 인생 속에서 더 깊고 더 정교하게
지금도 계속 창조의 일들을 행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어디 나오냐면 이사야48장, 또 시 51편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48: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주를 창조하시는 일, 지구를 만드시고 생물을 만드시고 동물을 만드시고..
이런 일들은 7일 만에 다 끝내셨지만, 그것으로 창조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거예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 안에, 우리 안에
계속 하나님이 창조의 일들을 행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옛 것이 아니라, 지금 창조하시는 것이에요.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계속 하나님이 우리 안에 창조의 역사들을 행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창조의 역사가, 어떤 창조의 역사라는 거예요?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의미로,
흑암을 빛으로 바꾸는 이 창조의 역사를
지금도 계속 우리 안에 행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얘기했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왜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복인가 하면
이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 안에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고,
공허를 의미로 바꾸시고,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데
반대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태초에 하나님이 천재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거부해 버리는 사람은
더 이상 우리 안에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결과, 그 인생이 계속 혼돈 가운데 있게 되고,
그 인생이 계속 공허 가운데 있게 되고,
그 인생이 계속 흑암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 몸은 이 땅에 존재할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창조하셨으니까요.
그런데 그 첫 번째 단계의 창조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두 번째 단계, creation of formation 이 있다는 거죠.
만들어 가시는 단계죠.
그냥 첫 번째 단계의 창조는, 그 상태가
혼돈하고, 질서도 없고, 어둡고, 공허하고, 의미도 없고, 텅 비었고..
이런 상태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사람을 딱 창조하셨을 때, 뱃속에서 태아가 생기게 하셨을 때
그것은 creation of existence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임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존재하게 됐고 창조됐어요.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속 형태를 부여해 가시는..
creation of formation 단계를 경험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야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어디 머물러 있다고요?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중간 정리하면,
이것이 여러분, 창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이게 결국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하는 거예요. 아멘!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65: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그렇게 디자인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 우리 인생이 딱 존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게 복이죠.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 복을 누리게 된다는 거예요.
그 창조는 방향이 어떤 거라고요?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의미로,
흑암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창조라는 거예요.
이 (두번째) 창조의 역사가 *creation of formation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계속 내 안에서 일어날 때
다윗이 고백했듯이 '내 안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십시오' 시51:10
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계속 우리 안에 일어날 때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복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할 건가에 달려 있어요.
◑3. 혼돈, 공허, 흑암 세 가지 단어에 대해서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1:2
▲1.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에 질서를 주는 창조였습니다.
'혼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후'인데
영어로 formless, 형태가 없다, 정리되어 있지 않다, 황량하다,
그저 널부러져 있다... 이런 뜻이예요.
태초의 지구에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없었대요.
창1:9~10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태초의 그 지구를 보면, 바다와 육지는 고사하고
하늘과 땅의 구분도 없이 그냥 뒤섞여 있었대요.
낮과 밤의 구분도 없었고 하여간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혼돈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선포되어 '빛이 있으라' 그랬더니
그곳에 질서가 생기게 돼요.
'궁창이 있어 하늘과 땅이 나누어져라.
물은 무질서하게 아무 곳에나 퍼져 있지 말고 한 곳으로 모이라.'
더 나아가 혼돈 가운데 있는 입자들을 향해서 명하십니다.
'양자 여섯 개하고, 전자 여섯 개가 모여라' 그러니까 탄소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을 때
거기에 있는 수많은 물질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 물질들, 입자들이 그 말씀 앞에 반응하게 되는 거예요.
반응하면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혼돈 가운데 있던 땅에 질서가 임합니다.
이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에 질서를 줍니다.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는 창조냐..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셨냐.. 도 중요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곳에 질서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세요? 삶에 여러분 질서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삶이 혼돈 가운데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면서 간다고 하면, 혼돈이잖아요. 알지도 못하고 가는 거잖아요.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를 알고 계십니까? 모르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가세요?
혼돈이잖아요.
질서 가운데 있으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인생은 여전히 혼돈 가운데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혼돈 가운데 있다면, 진짜 필요한 것이 있는데
요즘 보니까 그런 것도 유튜브에서 유행하더라고요. '정리의 달인'
이래서 정리하는 거 도와주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하여간 여러분의 인생이 혼돈 가운데 있다면,
이런 정리의 달인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창조의 하나님이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혼돈 가운데 있는 진짜 이유는
창조의 말씀이, 여러분 인생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러분이 혼돈 가운데 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있는데
여러분 스스로가 진단해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혼돈 가운데 있는지 아니면 질서 가운데 있는지를' 진단해 보실 수 있는데
혼돈 가운데 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불안이에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가는데, 불안하지 않겠어요?
이 길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막 열심히 가고 있어요.
그러면 불안하지 않겠어요? 당연히 불안하지요.
그래서 여러분, 질서가 없으면, 혼돈 가운데 있으면.. 불안합니다.
예를 들어서 '혼돈'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 만들어 보죠.
서울 시내 도심 한복판에 수많은 차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교통법규가 없고, 신호등도 없고, 교통순경도 없다고 할 때.. 그게 혼돈이죠.
그러면 운전자들이 얼마나 불안할까요. 아수라장이 돼죠.
혼돈이 있으면, 여러분 절대로 평안이 있을 수가 없어요.
혼돈이 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뭐냐면.. 불안이에요.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십니까? 평안이 있으십니까?
평안은 질서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때,
평안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게 될 줄 믿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혼돈 가운데 있을 때 주어지는 현상이에요.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공허의 의미를 주는 창조
'공허'에 해당하는 히브리언은 '보후'인데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걸 얘기해요.
'텅 빈'이 바로 '공허'입니다.
하나님이 없을 때,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공허'입니다.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뭔가 열심히 하긴 하고, 돈도 열심히 벌고, 뭔가 열심히 인생을 사는데
의미와 가치를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 경험, 여러분 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을 모를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에요.
왜냐면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것이 왜 의미가 있는가요? 하나님이 의미 있다고 말씀하신 거에요.
어떤 것이 왜 가치가 있는가요? 하나님이 가치 있다고 말씀하신 거에요.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이 정하신 거에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은
열심히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도
그것의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려고 해도.. 결코 이룰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가면, 남는 게 뭐냐면.. 허무만 남아요.
제가 쓴 <데스티니> 책에도 말했지만,
과거에 저는 무언가 성취를 해서 행복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면.. 행복해진다고 믿고 살았어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서울대학만 가면 행복하다고 믿었고
열심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를 갔는데
딱 6개월 지나고 보니까 전혀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굉장한 위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뭔지.. 이렇게 해서 또 뭔가를 성취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행복을 줄지..'
그때 제 안에 엄습해 왔던 게 있었는데, 뭐냐면
인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인생이 텅 빈 것 같은...
빈 방에 있는 것 같은... 아무것도 없는 방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솔로몬의 고백이 정확히 저의 고백이었어요.
그때는 성경에 이런 고백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솔로몬의 고백을 읽어보니까,
'아이고, 이게 바로 나였네'
전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2: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여러분 이 고백이 정말 정확히 제 고백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압니다.
왜냐면, 땅이 공허했거든요.. 이 땅이 공허한 거에요.
하나님이 이 몸뚱아리를 만들어 놓으시긴 하셨는데,
creation of existence로 몸뚱아리를 만들어 놓으시긴 하셨는데,
그 다음에 이어져야 될 하나님의 creation of formation,
즉 우리를 계속 이끌어 가시는 창조의 역사가 내 안에 일어나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땡이었어요.
그랬을 때 내 안에 '땅'이 공허한 거예요.
아무것도 그 안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이 제 안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접하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근데 저는 아직도 기억해요. 처음으로 이것을 인정했던 때가 밤이었는데
밤에 제 방에서 혼자 인정했는데.. 눈물이 났어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했는데, 그 말씀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성경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골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러분,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1장
그런데 여러분,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더라'
이 창조의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이론이나 신학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단순히 이론이나 신학이 아니라, 그 말씀이 어떻게 돼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거예요.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영광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이, 제 인생에 임하기 시작했는데
그 임했던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은,
단순히 어떤 새로운 진리를 가르쳐주거나
알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게 해 주는...
그런 각성하고, 가르쳐주고, 알게 해 주는... 이런 게 아니었어요.
그냥 설명할 수는 없는데, 누군가 내 인생에 찾아오신 거에요.
누군가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내 마음이 그냥 텅 비어 있던 것 같은데,
이 안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뜨거운 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뭔가 알 수 없는 뜨거운 게 올라오기 시작하고,
인생을 왜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의미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마음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하여간 설명할 수 없는데, 내 안에 뭔가가 창조되었어요.
뭔가가 창조되었어요...
제가 나중에 알았어요. 그게 다윗이 얘기했던
'내 안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사..' 시51:10참조
내 안에 어떠한 마음을 창조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경험을 하셨습니까? 못 하셨다면 하셔야 됩니다.
이 경험을 하지 못하시면, 여러분의 인생은 영원히 영원히 공허한 상태로 있는 거에요.
영원히 그냥 '보후' 즉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을 만드시고 손을 떼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창조해서 넣으시려고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새롭게 창조해 넣으시려고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요.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창조돼야 돼요. 오늘도 매일 계속해서.
그 창조는 뭐냐 하면, 단순히 어떤 지식과 이론과 신학을 집어넣는
그런 깨달음이 아니라,
여러분과 제 인생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우리를 이 공허와 혼돈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 가운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사랑,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창조되어 들어오기 시작할 때
'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시구나'
'와! 나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구나'
'그분이 나를 그냥 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계시구나.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여러분, 새로운 마음이 우리 안에 창조되어지기 시작할 때
다윗의 고백처럼 '정직한 마음이 내 안에 창조되어지기 시작할 때'
내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게 훅 하고 올라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이 창조는.. 내 안에 있던 공허함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에게 이 경험이 있으세요? *보통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창조되어 채워지는 경험이 있으세요.
인생이 뭔지 모르겠고, 허무하고, 공허하고,
내가 왜 이렇게 땀 흘려 일하는지... 모르겠고,
그런 허무한 내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만들어 채우시는
이 경험을 여러분 하셨습니까?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공허를 몰아내는 그 충만함이
여러분 인생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세요?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의미와 진리가 충만하게 창조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빈집입니까?
여러분 빈집 본적 있으세요? 이사가려고 집을 싹 비우는 날,
그 집에 들어가 보면, 여러분 그냥 슬프지 않으세요?
그 집에 딱 들어서는 순간, 뭔가 싸늘하고...
'이거는 뭔가 더 있어야 되는데, 왠지 휑하고,
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어떠세요? 여러분 인생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바글바글 하는
그 생명과 활기가 있는 그런 충만한 집이세요? 아니면 빈 집이세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임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계속 빈 집이에요. 그 인생은 계속 빈 집이에요.
거기서 버티지 마세요.
그거 버텨봐야 득될 거 하나도 없어요.
그 빈집에서 열심히 빈집 지키고 있는게 뭐 그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계속 그렇게 버티고 계세요?
그 빈집은 여러분, 계속 빈집으로 있으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는 형태를 만드시고, 그 안에 채워 넣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데
이거를 거부하고 있으면 안 돼요. 그건 복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저주에 이르는 길입니다.
2019년 한 해, 여러분의 인생이 복으로 충만해지기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빈 집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과 은혜로 가득한 집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째는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는 창조입니다.
이 세 번째 내용에 대해서는 창3장 선악과를 공부할 때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옳고 그름을 정하시고,
우리 안에 소망을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낙심을 소망으로 바꿔주시고,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분 위기들을 맞게 돼요.
절망하게 될 때도 있고, 낙심하게 될 때도 있고, 슬퍼하게 될 때도 있고,
그럴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하시는 일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는 일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는 분이든, 믿지 않는 분이든 간에
신앙의 간증들을 대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간증들의 대부분 내용이 뭐예요?
흑암에서 빛으로 오게 된 간증이잖아요.
큰 인생의 위기든지, 불치병이 됐든,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됐든,
집이 쫄딱 망하는게 됐든... 하여간 큰 위기 가운데
자살을 생각하고, 생을 마감하려고 하고, 이 흑암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흑암을 어떻게 빛으로 창조하셨는가
하는 거에 대한 간증들이 있잖아요.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을 조금 살아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항상 봄날이 아니잖아요.
살다 보면 위기를 맞기도 하고,
정말 더 이상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좌절 가운데 처하기도 하고...
큰 슬픔을 맞이하기도 하고...
그 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없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계속 그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소망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창조의 세 번째 역사는 뭐냐면,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는 창조예요.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고,
낙담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예요.
그 정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창조해 넣으신다는 거예요.
그 마음을 창조해 넣으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시다.
여러분 인생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임하셨습니까?
천하우주를 존재케 하시고, 그 안에 질서와 의미와 빛을 부여하신
그 능력의 말씀이 임하셨습니까?
아마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이 내 삶 가운데 들려졌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충분히 다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설교자인 저도 다 이해 못하고, 여러분도 다 이해 못해요.
왜냐면 이 말씀이 태초에 들려졌을 때, 우주가 존재하게 됐거든요.
이 말씀이 태초에 들려졌을 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와 태양이 생겼어요.
이 말씀이 뭔지를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해요.
아마 죽을 때까지 다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근데 한 가지는 기억하십시오. 어마어마한 말씀이 들려졌다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말씀이 내 인생 가운데 부어졌다는 거예요.
온 우주를 존재하게 하신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어마어마한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부어졌습니다.
이제는 여러분, 선택이 남은 거예요.
이 말씀 위에, 내가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할 것인가?
이 반응이, 이 선택이, 저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할 겁니다.
사65:17 '보라, 내가 새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아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믿는 사람,
누구든지 그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이 창조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 창조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여러분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던, 어떤 낙심 가운데 있었던,
어떤 죄를 졌던, 어떤 어둠 가운데 있었던, 어떤 혼돈 가운데 있었던..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생각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때, 우리의 이전 것들은 지나가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몸과, 새 존재를
우리 안에 창조하여 넣으셔서
영원히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진짜 목적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축복의 말씀이 오늘 여러분에게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진짜 복으로 실체화되기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