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합리주의가 발전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1~11장까지를 신화 혹은 우화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11장은 역사적인 사실(facts)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결혼해서 자식도 낳고 그로부터 인류가 퍼져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창세기 1~11장은 역사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토대(foundation)입니다.
만약 이것이 신화거나 우화라면 성경에서 믿을 내용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죄가 어떻게 해서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국가와 문화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구원은 어떻게 하나님이 계획하셨는지 모든 신앙의 토대가 되는 진리들이 창세기 1~1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1장은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본문 말씀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이 누구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는 2가지 이론이 있는데 이 두 이론은 서로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이론은 진화론자들의 사상인데 어떤 작은 물질이 오랜 기간 변화를 겪어, 동물이 되고 동물이 또 오랜 기간 변화를 겪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동물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가정을 이루어 살게 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을 동물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보느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보느냐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면에서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독일인 즉 옛날에는 야만족 취급을 받던 게르만족이 이제 좀 잘 산다고 가장 진화가 잘된 우수한 인종이라며 인종설(racial theory)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가장 진화가 덜 됐다며 600만 명이나 죽인 것 아닙니까? 인간이 동물의 형상을 가졌다고 보니까 인간 죽이는 것을 동물 죽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정치적 사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인간을 죽여 놓고 짐승 하나 죽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동물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1.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시면 빛이 있고, 물이 한군데 모이라고 하시면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만물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 서로 의논을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의논하신 것입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와 의논하는 분이 아닙니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사40:13~14).
하나님은 천사와 의논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 44:24). 하나님께서는 단독으로 만물을 만드셨고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1:26절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이시고, 세 위격이시며 한 분이십니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며 세 분이고, 세 분이며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고집하면 ‘군주신론’(Monarchianism)이라는 이단이 되고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것을 고집하면 ‘삼신론’(Tritheism)이라는 이단이 됩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존재 양식은 하나님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차원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믿으십시오.
▲창세기 1장 26절에서는 ‘우리’라는 복수로 나오는데 27절에 보면 ‘자기 형상’이라는 단수로 나옵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은 단수이며 복수이시고, 복수이며 단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구약성경 많은 곳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암시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께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줄로 믿습니다.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4).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이름을 구약시대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분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시 2:11~12).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야 망하지 않는다고 시편 2편에서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오게 되면 구약의 희미했던 것이 분명해집니다. 계시가 점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위격 모두 창조에 관여했음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창조자시라는 것은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자 예수님이 창조에 관여하셨는가? 신약성경은 성자 예수님도 창조자시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3).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2).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도 창조자이시고 성자 예수님도 창조자시며 성령님도 수면에 운행하시며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신 대화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간의 대화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대화도 가능하고 의논도 가능하며 각각 사명도 다르고 그러면서 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지으셨을 때는 그냥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의 최정상인 인간을 지으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이 혼자 계시기 심심하셔서 인간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혼자 계셔도 심심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으셨느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목적을 부인해버린다면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겠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존재합니까? 돈 벌고 출세하려고 존재합니까? 이런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첫 번째 질문이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복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현대 심리학은 다 인간 중심적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높이는 것이 현대 심리학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창조기사는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중심적인 존재가 되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은 자기 중심적인 인생관을 하나님 중심적인 인생관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모형(pattern)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모형은 하나님의 형상(image)과 하나님의 모양(likeness)입니다.
2천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는 아주 중요한 논쟁주제였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 5:3). 자기 모양과 형상은 상호 교환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다고 한 것은 동일한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의미를 강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잘못된 이론 세 가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인간이 도를 닦으면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창3:5절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가르침은 사단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육신의 모양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