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새로운 시작 [마가복음47] - - YouTube
◈부활, 새로운 시작 막16:1~20
올해 2020년, 지난 1년 동안 마가복음 강해를 했는데요.
오늘은 47번째 시간이고, 마지막 시간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올해 안에 끝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진짜 복음입니까?
진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어떤 종교에 대상이나,
단순히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에 대한 주제를 함께 나누면서
저와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한 은혜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는 진짜 복음의 역사가 더 충만해지기 바랍니다.
◑본문에 의거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십자가는 역사의 분기점 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 핵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창조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전후로 해서, 그 십자가를 기점으로 해서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이전까지는 인간의 죄악이 역사하는..
그래서 소망도 없고, 어둠가운데 있고, 절망만이 역사하는...
인간의 모든 죄의 민낯들이 다 드러나게 되는 이런 역사들이 있었다면,
십자가를 기점으로 해서,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죽으시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인류역사에 분기점 turning point 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그 그 이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휘장이 둘로 갈라졌죠. 그래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던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리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죄사함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변화되는 것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죄의 광기로부터 해방되게 되는, '죄로부터 해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교회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분기점(터닝포인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여러분의 개인 역사도, 놀라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BC, AD가 뚜렷이 갈라지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3가지 사건이 있었죠.
-휘장이 갈라지고
-사람들이 광기에서 돌이키고 (대표적으로 백부장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
-예수를 따르겠다고 커밍아웃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46강 내용)
그런데 조금 시차를 두고,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건이 더 일어나는데,
바로 부활입니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거기서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까
사람들이 죄로부터 해방되고, 죄사함을 받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한 가지 사건이 더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부활'이라는 사건이 있지 않으면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사건은 사실 완성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결국 죽잖아요.
죄에서 해방됐습니다. 좋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죽잖아요.
예수를 따르는 삶.. 예, 가치있는 삶이고,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원형으로의 회복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죽잖아요.
그래서 이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뛰어넘거나 극복하지 않으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뭐 좋은 일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완전하지 않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사역을 완성하는, 완전하게 하는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모든 일들이 완전해지고
완성되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돼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가두지 않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돼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일에 더하여 부활 사건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완성하는..
그래서 방점을 찍는 그런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막16장을 통해서
부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활 전에 사흘을 무덤에서 지내야 됩니다!
마가가 전하는 복음은,
사실 마가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전하는 메시지 인데,
그건 뭐냐면, 부활이 있으려면, 무덤속에서 사흘을 지내야 된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전15: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부활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 받지 않은 자들도, 부활해서.. 지옥에 갑니다. ☞rfcdrfcd.tistory.com/15975878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즉각적으로 동시에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각각 순서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나중에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활을 가장 먼저 경험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요.
그래서 부활은, 모든 사람이 다같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차가 있다는 거에요.
무덤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고,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그 (사흘의) 시간을 지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부활에 대한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때까지는, 사망과 어둠의 세상에
일정 시간을 머물러 있어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즉각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뭐 기다려야 되고, 또 면접을 봐야 되고... 그런 거는 아니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즉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사건, 부활체를 입게되는 사건은
즉각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거죠. 그것은 시차를 두고 일어납니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우리가 이 땅에 머물러 있어야 됩니다.
얼마나 먹으러 있어야 되냐면, 3일 동안 머물러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3'이라는 숫자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무슨 의미냐면,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만큼 머물러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즉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그렇게 해서 부활체를 보게 되고, 부활을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그 사건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만큼, 이 땅에 머물러야 된다는 거예요.
무덤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3일 동안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왜 무덤에 3일 동안 머무르게 하셨을까요?
왜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즉시
모든 것이 완전해지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참 좋은데,
왜 그렇지 않고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을, 여전히 사망과 어둠이 역사는 이 땅 가운데 머물러야 할까?
그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근데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덤에 머무는 3일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 얻게 됩니다.
'아 이런 일을 행하라고 하나님께서 3일 동안 무덤에 머물게 하셨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무덤에 머물러 있는 3일 동안
제자들이 했던 일들이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사실은 남자 제자들이 아니고, 본문에 여자 제자들만 등장하는데,
예수를 따르는 여자 제자들이 했던 일들이 쭉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면
그 일을 행했던 목적들, 그 마음들을 우리가 살펴보면
'아 그러면 무덤에 머무는 3일 동안 이런 일을 행하라고 하시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세 가지 일에 대해서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 세가지는 뭐냐면
-첫째는 이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천사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거예요.
우리를 무덤 속 3일 동안, 이 사망과 어둠이 다스리는 세상에
일정기간동안 머물게 하시는 이유는
이 세 가지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 첫 번째는 무덤을 찾아가는 거였어요.
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예수께서 무덤에 계시는 동안,
남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여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서. 그 무덤을 찾아 갔어요.
왜 찾아 갔을까요?
그 안에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과, 사랑... 그 동기 때문에 찾아 간 거죠.
사실은 이들이 예수님 무덤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돌아가셨어요.
이미 다 끝난 얘기고,
예수께서 살아계셨을 때처럼
무슨 능력을 행하신다거나
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으신다거나
아니면 주님이 나중에 왕위에 오르셔서, 좌우편에 우리를 앉혀주신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제로입니다. 전혀 없어요. 모든 게 다 정리되고 끝났어요.
그러니까 예수를 찾아간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떡고물은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사실은 아무도 그 무덤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떡고물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예수가 비난받고 죄수로 죽었기 때문에
그곳에 찾아간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 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거기 갔다가 동조자로 잡힐 수도 있었죠.
그럼 자기도 잘못하면 십자가에서 죽을 수더 있고... 다른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굉장히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되는 거지요.
자 이 포인트가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 받는 순간 바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셔서
완전한 삶을 누리게 하지 않으시고,
이 무덤속에서 3일 동안 지내게 하시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것은 왜 예수를 따르는지, 우리 마음의 동기를 정결케 하시는' 거예요.
왜 예수를 따르는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지... 동기를 정결케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주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를 왜 따랐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섞여있는 동기들이 있었던 거죠.
제자들 가운데도, '나중에 좌우편에 앉혀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오병이어 기적 이후에도, '저분을 따라가면 적어도 먹고사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그래서 따르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걸 원치 않으시죠.
'너희가 예수를 왜 따르느냐?' 그 동기를 물어 보시는 거예요.
무덤속 3일동안에, 저희에게 물어보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질문은 이거예요.
'너는 왜 예수를 따르는 자냐?'
'너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는 거냐?'
아니면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예수를 따르는 거냐?'
이거를 계속 물어보십니다.
그것이 3일 동안 우리를 무덤 속에 두시는 이유라고 저는 믿습니다.
'3일 동안 무덤'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힘든 일들, 또 핍박들, 절망스러운 상황들..
하여간 많은 것들이에요.
그것은 뭐냐면, 우리에게 어떤 다른 떡고물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어려움과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예수를 따르는가?'
'내가 왜 예수를 믿는가?'에 대한, 마음의 깊은 동기들을
계속 하나님이 끄집어내시는 거예요.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았을 때, 그들에게는 다른 동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능력을 행하실 것도 아니고,
밥을 주실 것도 아니고, 권력을 나눠 줄 것도 아니고...
사실 주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찾아오는 자는 누군가요?
이게 우리를 무덤 속에 3일 동안 두시는 진짜 이유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 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에 대한 사랑! 그거 하나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반복재생 할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외에, 다른 동기가 그 사이에 끼게 되잖아요.
그럼 천국도 부패할 거예요.
우리의 모든 관계들,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결국 관계를 망가뜨리고, 관계를 부패하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사랑 이외에 다른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 사람에 대한 기대,
-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내가 갖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들이 있을 때, 그 관계는 결국 망가지고 붕괴 돼요.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관계에 끼어들어서는 안 돼요.
그래야만 순전하고 영원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랑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이 반영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불행하게도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은 타락하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다시 완성하시고 이루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이런 모든 부폐물들이 다 빠진 나라인 거예요.
그래서 오직 사랑으로 영원한 관계를 누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래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게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따르는 거에요.
다른 어떤 동기도 끼어있으면 안 돼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게 참 쉽지 않지요.
오직 사람으로 관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예수님과의 관계에선 이게 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가 하면,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시잖아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는 오히려 순전하게 사랑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엄마가 아기를 사랑할 때, 아기에게 기대 하는 거 없잖아요.
아기가 엄마에게 줄게 없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아기를 사랑할 때는, 그 동기가 굉장히 순수해 질 수 있어요.
정말 순전한 사랑이에요,
그런데 가진 게 많습니다. 그러면 순전한 사랑이 어렵습니다.
내 아빠가 뭐 엄청나게 돈이 많은 갑부입니다.
그러면 '아버지 라서 사랑하는 건지, 돈이 많아서 사랑하는 건지..' 참 어려워요.
뭔가를 기대하서 사랑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세요.
질병을 치유하시고, 기적을 일으키고,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던 분이세요.
그분을 순전한 마음으로 따른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도 점검하기가 참 어렵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뭘 주셨냐면, 무덤속 3일의 기간 허락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눈에 보이질 않아요. 음성이 들리지도 않아요.
더 이상 소망도 없어 보여요. 이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완전히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너희가 예수를 찾을 거냐?'
'그래도 너희가 그 무덤까지 찾아올 거냐?'
이거를 보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무덤속 3일'을 주십니다.
길게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기간 전체가 '무덤속 3일'이고요.
또 어떤 때는, 아주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뭔가 소망하는 일이 안되고, 일이 꼬이고, 힘들고...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거야?'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음성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 기간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뭐냐 하면
'네가 왜 예수를 따르는 지를' 물어보십니다.
섞이지 않은 순전한 동기, 사랑함으로 예수를 따르느냐는 거죠.
이걸 하나님께서는 보기원하시는 거예요.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 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 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딤후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고
아무 떡고물도 없는데... 예수를 사랑하는도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
그것이 무덤속 3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예술님을 사랑하는 동기 외에, 다른 어떤 동기도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따라감이 증명되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께서 무덤에 계신 3일 동안, 여인들이 했던 두 번 째일,
즉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믿는> 거였어요.
막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
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더니, 큰 돌이 굴려 옮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안에 예수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흰옷을 입은 청년이 앉아서
이렇게 얘기 합니다.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참 믿기 어려운 얘기죠.
아니 사흘 전에 내가 분명히 돌아가신 거 봤는데,
그래서 이 무덤에 장사지내는 걸 분명히 봤는데.. 살아나셨다는 거에요.
이제 이 여인들에게 선택이 주어지는데,
뭐냐면 '이 말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이에요.
'정말 예수가 살아나셨다' 하는 말을, 내가 믿어야 되는가?
아니면 못 믿겠는가? ... 이 선택이 던져집니다.
무덤속 3일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는 거예요.
왜냐면 무덤속 3일 동안은.. 안 보이거든요. 안 들리거든요. 느껴지지도 않거든 요.
도대체 하나님이 계신 건지, 안 계시는 건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데
이때 우리에게 던져지는 말씀이 뭐냐면
'예수께서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이 던져지는 거예요.
'이거 믿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 무덤 속 3일 동안 우리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첫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가는 일이었다면 ('사랑'이라고 해도 돼죠)
-두 번째는 믿는 일을 해야 되는 거에요.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되고
또 내가 무덤속 3일을 지나가는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도
믿어야 돼요. 그럼 내가 지금은 어둠가운데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덤 속을 걸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우리가 '무덤속 3일 동안' 지낼 때 해야 되는 일입니다.
△나의 '무덤속 3일'은.. 길게 보면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전체 기간을 가리키고,
짧게 보면 내가 보이지 않고 틀리지 않고 어두운 가운데 있는 기간입니다.
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기간입니다.
절망스럽고 어둡고 하는 이 '무덤속 3일' 동안에,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건가?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건가?
하는 믿음이 던져지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부활의 실체를 목격하지 못합니다.
그렇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재림 하실 때까지 보지 못하죠.
그렇지만 그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이 이 '무덤 속 3일' 동안 우리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사실 '믿음'은,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빛 가운데 있고,
모든 것이 이해 될 때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어두운 가운데 있을 때' 필요한 거예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모든 것이 축복 가운데 있을 때는
'믿음'이 별로 필요가 없어요. 내 믿음이 자라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 요구되느냐 하면, 보이지 않을 때, 어둠 가운데 있을 때,
내가 무덤속 3일을 지나갈 때.. 그때 요구되고, 그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믿고 살다 보면, 우리가 이런 시간을 통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어두워 보여요. '정말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르겠어!'
이때 믿음이 시험을 받습니다. 무덤속 3일입니다.
이 때는 예수께서도 무덤 속에 계신 거 같고,
나도 무덤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든지
아니면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을 받는다든지...
오랫동안 소망하고 준비해왔던 꿈이 산산조각 난다든지
정말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한다든지
억울한 모함을 받는다든지... 살다보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죠.
무덤속 3일입니다. 그 시간에 들어가면
하나님도 무덤 속에 계신 거 같고, 나도 무덤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빛이 하나도 안 보여요. 정말 어둠만 역사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그때 사탄이 속삭입니다.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리 귀에다 대고 속삭입니다.
'너는 다 끝났어! 너는 완전히 끝났어'
'더 이상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어, 너는 끝난 거야!'
그런데 여인들이 예수를 찾아 무덤에 이르렀을 때,
이 무덤 속에서 다른 음성, 천사의 음성이 들립니다.
16:6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흰 옷을 입은 청년(천사)이 얘기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청년이 천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놀라지 말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기서 '놀라다' 단어를 보면, 원어로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대조 본문인 마28:5절에 보면 '무서워 하지 말라'라고 번역합니다.
마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가 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고 해도 됩니다.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전혀 다른 음성이 들립니다.
원수 마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너는 끝났어, 너는 더 이상 아무 소망도 없어'
그렇게 속삭이는데
그러나 예수 앞에 나갔을 때 전혀 다른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이 음성은 어디서 들리는 음성이냐면, 하늘로부터, 천사가 전해주는,
다시 얘기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 음성으로 뭐냐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놀라지 말라'는 거예요.
왜요? '예수께서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어떤 어둠가운데 있고, 어떤 절망 가운데 있고, 어떤 무덤 속에 있을지라도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 무서워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단순히 부활하셔서 '그가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넘어서
'그가 지금 너와 함께 계시고, 살아계신 그 분이 너를 지키시고 계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음성을 우리가 들어야 되는 거예요.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나는 거예요.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뭐라 그러냐면
'예수께서 살아나셨느니라' 하는 음성을 들려줍니다.
이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음성을 들은 마리아와 여인들 가운데
믿음이 올라 오는 거예요. 들었을 때!
사람의 음성을 계속 듣고 있으면, 아무 소망도, 아무 믿음도 올라오잖아요.
저주와 정죄의 메시지만,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계속 듣게 돼요.
그런데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부터 오는 음성,
천사가 뭐라고 했냐면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준 거에요.
천사가 아무 뜬금없이 아무 얘기나 한 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빌려 준 거예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리마인더 해 주실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올라오는 거예요.
믿음은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부터 와요.
'무엇을 들을 것인가?' 그것이 여러분들의 믿음을 결정하는 겁니다.
원수의 음성을 계속 듣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천사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거기에 의해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무덤 속 3일'을 지날 때
<믿음>이 생기게 해 주는 3가지 통로, 또는 단계가 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시면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죠.
-그 사흘 동안 첫째는 예수를 찾아야 되는 거예요. 예수께 나아가야 되는 거고,
-그 사흘 동안, 둘째는 음성을 들어야 되는 것이고 롬10:17
음성,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내 믿음을 일어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믿음이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절망의 시간을 가집니다.
똑같이 두려움에 떱니다.
똑같이 무덤속 3일 시간을 지냅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예수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나머지 제자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 나머지 제자들은 여전히 절망 속에 주저 앉아 있습니다.
누가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예수를 찾아온 여자들입니다.
예수를 찾아 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했어요.
그 여인들이 무슨 소망이 있어서 나왔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 앞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비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고, 정말 절망스러운 상황가운데 들어가면
그 안에 그냥 주저앉아 버려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 절망에 그냥 짓눌리는 거예요. 절망의 무게에 그냥 짓눌려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 자리에 계속 주저앉아 있으면
어떤 음성이 들리는 줄 아십니까? 원수의 음성만 들리는 거예요...
그러나 여인들이 예수를 찾았을 때, 예수 앞으로 나왔을 때
위로부터 들리는 전혀 다른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상황과는 안 맞아요. 분명히 주님은 돌아가셨는데
그 상황을 초월하는 음성이 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도 다시 부활하게 될 거라는 거예요.
이 어둠이 끝날 거라는 거예요.
이 음성을 들을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 되기를 바랍니다.
▲3. 무덤 속 3일동안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여인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받자마자, 바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덤속 3일 동안' 이 땅을 살게 하시는 거예요.
바로 '증인이 되라' 하심 때문에,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16:10~11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를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들이 경험했던 것, 보고 들었던 소망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고, 우리 소망도 곧 살아날 거라는 거예요.
문제는 뭐냐면, 이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 소식을 들어야 되는데 듣지 못한 사람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증언(전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에게 들은 그 소리를. 너희가 가서 보고 경험한 빈무덤을
그들에게 증언하라' 그것이 세 번째로 하나님이 내게 '무덤 속 사흘'을 살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증인이 되라'는 것에 대해서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하시더라'
이 명령은, 종교를 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포교하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단순한 전도 명령이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려도 해도 받지 않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자에게 얹은즉 나으니라'
이거를 전파하라는 거예요.
'단순한 이론과 종교의 포교활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을 전하라!' 왜냐면 예수가 살아계시니까요.
귀신에게 속박된 자를 자유케 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고
고통과 질병의 억압 아래 잇는 자들을 치유하고 해방하는..
왜요? 예수께서 살아나셨고, 살아계시니까요.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하셨던 일들을, 너희가 계속 그대로 연속해서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증인 된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차원에서 시작하겠지만,
사망과 절망의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절망이 끝이 아니고, 이 사망이 끝이 아니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 계시고,
이 사망에서 건져 내시는 분이 계시고,
이 억압에서 해방하시는 분이 계시고,
너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다시 살리는 분이 계시고
너의 망가졌던 소망을 다시 일으키는 분이 계시고...
'너는 저주 받은 자가 아니야, 너는 절망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야!
소망의 하나님, 부활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
△많은 경우 여러분, 왜 우리가 전도하는데 실패하는지 아십니까?
-첫 번째는, 자꾸 우리가 종교를 전하러 하니까 실패하는 거예요.
종교가 아니라, '너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는 어둠과 절망과 고통과 갈급함, 좌절을
건지시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느니라!'
이렇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야 돼요.
인생이 시달리고 있는 사망과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그걸 전하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뭐냐면, 내가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증인이 못 되는 거에요.
증인이란,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그냥 담백하게 증언하는 거예요.
없는 얘기 지어내는 게 아니에요.
내가 경험한 복음이, 그냥 이론적인 종교행위였으면.. 전도 못 하죠.
그러나 내가 경험한 복음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 때,
내가 무덤 속을 통과할 때,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키셨고
여전히 하나님이 나의 빛이 되시고,
나를 해방하시고, 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시고, 나의 화관이 되시고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영광이 되시고...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그냥 그대로 진솔하게 증언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과거에 그 어둠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건지셨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증언하는 증인 되라고, 우리를 당장 천국에 데려가지 않으시고,
'무덤 속에 3일'을 지나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마가복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첫번째 던졌던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믿는 복음은 진짜입니까, 리얼 가스펠입니까?
-오늘 당신이 믿고 있는 예수는 진짜 예수입니까?
-오늘 당신이 붙잡고있는 복음은 진짜입니까?
이제 그 첫 시간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면서
이 마가복음 공부를 마무리합니다. 그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봅시다...
이 복음을 내가 먼저 경험하고, 주위에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진짜 복음을 경험하고, 남은 평생 이 복음의 증인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