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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역사의 분기점

LNCK 2023. 8. 21. 10:04

 

십자가, 역사의 분기점 [마가복음46] - - YouTube

◈십자가, 역사의 분기점    막15:33~47      마가1~10, 마가11~16

 

◑도입

 

인류 역사의 가장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심 되는 사건이 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중심으로 역사를 BC 와 AD로 나눕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인류 역사의 가장 중심에 예수가 계시다... 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고백하고 인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확대기로 확대해서 본다면

그 중에서도 어느 순간이 가장 중심일까요?

 

전체 인류 역사에 보면, 예수님의 오심(초림)의 포인트가 가장 중심인데,

그 포인트를 다시 쫙 늘려서 확대해서 보면, 그 예수님의 일생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중심된 사건은 뭘까요? 그것은 당연히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가 전과 후로 갈라지는 거죠.

 

자 그럼 이제 '십자가 사건'을 다시 한번 확대해 봅시다.

십자가 사건을 쫙 늘려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달리 셔서 돌아가시기까지의 모든 사건을

쭉 이제 늘여놓고 본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되는 포인트는 언젠가요?

그게 15:27절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자체가,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포인트를 딱 찍으라고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바로 이 순간 아니겠습니까!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인류의 모든 죄와, 인류의 모든 저주가 다 해결되는 순간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순간은, 인류역사 뿐만 아니라

창조역사까지 통털어서 그 전과 후를 가르는 분기점이고,

인류 역사, 창조 역사의 정점 입니다.

 

죄로 인해서 사망과 어둠가운데, 지옥을 향해 가고 있던 인류에

반전이 일어난 거에요. 생명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오고, 살아나게 되고,

복을 누리게 되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한 포인트가 딱 있는데

그 포인트가 뭐냐면 바로 37절의 포인트 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딱 예수께서 숨지시는 순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영계에서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난 거에요.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어둠이 빛에게 삼킨바 되는.. 놀라운 역전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인류역사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순간,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바로 그 순간에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도, 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반전이 일어난거에요.

 

자 그래서 이 반전의 이야기들을 저희가 살펴보면서

그러면 과연 '예수께서 죽으시는 바로 그 순간에는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들을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그동안에 6번에 걸쳐서 '십자가가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해서

십자가가 점점 다가오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살펴봤습니다. (막40~45강)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모습들이 이렇게 드러나는 거였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정확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딱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것들을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이 변화들을 우리가 알고, 함께 누리고,

그 축복가운데로 들어가는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예수의 죽으심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 본문을 보면

시간 순서에 따라서 크게 셋으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까지의 시간,

-두 번째는 숨을 거두신 직후에 일어나는 변화들,

-세 번째는 무덤 속에 삼 일 동안 들어가시면서 일어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분기점을 살펴보면서

이 세 가지 시간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십자가에 죽으심 직전 시간,

십자가에 달리져서 죽으시기까지 그 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먼저 살펴봅시다.

 

십자가가 다가오면서,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게 됩니다.

 

자 그런데 이제 시간이 점점점 흘러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시간이 초 단위로 가까워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긴장이 점점점 커지지요.

점점점 커지면서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면서

초 단위로 계속 죽으시는 순간을 향해서 다가가는데

 

그렇게 그 십자가의 정점을 향해서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십자가가 드러내는 그 능력이 점점 극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로 직전에 가면, 이제 각 개인들의 어떤 죄와 민낯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 타락한 인간들의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그 본질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각 개인차원이 아니라, 세상 전체적인 차원으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묘사합니다.

 

15:33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의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에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여기 보면, 십자가 바로 직전에 드러나는 세 가지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 세 가지는 뭐냐면, 어둠 - 단절 - 죽음이에요.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모습들이 수십 가지가 있었습니다.

시기도 있고, 말로 짓는 죄도 있었고, 미움, 폭력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 전체를 아우르는 모든 인간 세상에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세 단어으로 본문은 딱 묘사했습니다.

 

십자가 직전의 세상을 묘사하는 세 단어는 어둠 - 단절 - 죽음이라는 거에요.

이 세 가지 영향권 아래, 타락한 세상과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에요.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첫번째 <어둠>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시는 순간이 가까이 임하자,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죄의 결과는 여러분, 어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처한 인간은

죄를 해결 하기전까지,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둠이 여러분 뭡니까? 어둠이 본질은, 어둠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에요.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어둠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어둠은, '어둠' 이라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그 어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될 것(빛)이 결핍된 것을, 어둠이라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될 무언가가 결핍돼 있는 상태'라고도 부를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죄는 어떤 어둠을 가져오는가요?

죄는 여러가지 어둠을 가져오는데,

 

1) 죄는, 진리를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마땅히 있어야 될 진리가 결핍되는 거예요. 그게 어둠이에요.

 

죄는 우리의 눈을 가려서 마땅히 보아야 될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마땅히 보아야 될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 아닙니까?

욕심이라든지, 미움이라든지.. 이런 죄가 가득 있으면

우리의 눈이 가리워집니다.

 

내 속에 욕심이 많으면, 꽉 자리 잡고 있으면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봐요. '아유, 그거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속지마!'

그래도 욕심이 가득 차 있으면, 그냥 속아요. 진실을 못 봐요.

 

또 미움이라고 하는게 가득 차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당신 큰일 나!'

그래도 미움이 가득 차 있으면.. 자기만 못 봐요.

 

이렇게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눈을 가려서

마땅히 봐야 될 진리, 진실 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 있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죄는.. 영의 눈을 가려서 첫째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또 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다 가리는 거죠.

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타락한 인류는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진리가 없어요. 진리가 결핍된 상태에 있어요.

 

2) 또한 죄는 양심을 어둡게 합니다.

마땅히 부끄러워야 될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할지 모르고요,

마땅히 죄책감을 느껴야 할 죄에 대해서 아무 가책도 느끼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 1970 년대인가 80 년대에, 뉴욕에 큰 정전이 있었던 사건이 있어요.

불이 전체적으로 나갔던 사건이 있었는데, 한 시간인가 정전이 되었어요.

그 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뉴욕에 있는 모든 상가의 유리창이

다 깨지고요. 많은 물건들이 다 도난을 당했어요. 딱 한시간 정전됐는데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양심에 어둠이 있어요. 그래서 마땅히 느껴야 될 죄책감,

마땅히 느껴야 될 양심의 아픔이 결핍돼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둠입니다.

 

3) 또한 셋째 죄는 방향성의 결핍입니다.

인생의 길을 잃었어요. 어디로 가야 될지 모릅니다.

죄는 인생의 방향을 잃게 하고, 그래서 마땅히 가야 될 곳을 가지 못하게 하고,

그냥 이곳저곳을 목표 없이 방황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인생이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뺑뺑돌면서 아무 데나 방황하다가, 그냥 자기 인생을 낭비하게 돼요.

빛을 잃어버린 어둠 가운데 있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도대체 죄는, 마땅히 인간에게 있어야 될 품성, 따뜻함 들이 결핍된 상태입니다.

사랑, 친절,관심, 긍휼, 자비, 은혜.. 이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 삶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 될 따스함 들이거든요.

그런데 죄는, 이런 품성, 따스함들이 결핍되게 합니다. 다 앗아갑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뭐가 있었냐면

<어둠>이 세상에 가득했어요.

그 결과, 마땅히 있어야 될 진리도, 마땅히 있어야 될 따뜻함도,

마땅히 있어야 될 방향성, 또한 양심은 다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는 거에요.

이것이 죄의 모습입니다.

 

▲2. 예수께서 십자가에 숨지기 직전까지 존재했던 두 번째 것은 <단절>입니다.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뭐죠? 단절이 일어난 거에요.

 

예수님과 하나님은 분리할래야 불리할 수 없는 삼위일체 시잖아요.

삼위일체란,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런데 분리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죄의 영향력입니다.

 

죄가 인류를 어디로 몰아 넣었냐면, 단절속으로 몰아넣은 거에요.

심지어 하나님과 예수님이 단절되는...

 

2) 그래서 죄의 결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단절이 당연히 일어났죠.

죄는 예수님과 하나님도 분리시키는데,

당연히 죄를 지은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습니다.

단절이 일어납니다.

 

3) 하나님과 단절이 일어난 인간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단절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것은 인간 소외 현상이라 그러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소통이 되지 않고,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서 별로 아파하지 않고,

상대가 기뻐하면 화가 나고.. 단절이 일어난 거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단절이 일어납니다.

 

4) 뿐만 아니라 '나와 나 사이에도 단절'이 일어납니다. 그렇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행동하는 나가 다르잖아요.

내가 기대하는 나와, 내가 행동하는 나가 전혀 달라요. 이게 뭐에요?

나와 나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 거에요.

 

근데 우리는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서 '그게 나 인가 보다..' 하고 사는데

사실은 잘 곰곰히 반추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거에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행동하는 내가 왜 달라야 되지요?

원래 일치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한번도 일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그런 게 당연한 줄 알아요.

아니요 여러분, 원래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지음 받은 불량품이 아니에요.

그건 불량품으로 지음 받은 거죠.

 

원래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대하는 나와,

내가 행동하는 나가.. 잘 일치하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만드셨어요.

 

그게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인데, 죄 때문에 더 망가진 거예요.

나와 나 사이에도 단절이 일어났어요.

 

5) 또 사람과 자연사이에도 단절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자연을 훼손하고, 자연을 함부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자연과 자연 사이에도 단절이 일어나죠.

자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원래 사랑의 속성은 뭐냐면, 나뉘어져 있던 것도 하나되게 하는 게 사랑이에요.

그런데 죄는 정반대에요. 하나되어 있던 것도 갈라놔요...

 

십자가가 점점점 초 단위로 가까워지면서

인류가 처해 있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상황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단절>이라고 하는 상황을 드러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드러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직전까지, 세상은 죽음이 지배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죄의 속성이에요. 죄의 삯은, 어찌됐든지 간에 죽음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십자가 이전까지 세상은, 사망이 왕노릇하는...

사망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하심이니'

 

죄는.. 사망이 왕노릇하게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치 않지만 그냥 그렇게 살게 됐다는 거에요.

 

죽음이 무서워서.. 원래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거기에 매여서 종노릇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사망이 지배하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거에요.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인생의 종착력이 어디에요? 죽음이라는 거에요.

인생의 목적지가 어디에요? 죽음이라는 거에요.

 

아무리 아등바등하며 살고,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면서 다르게 살려고 해도

결국 최종 목표는.. 죽음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렇게 허무하고, 이렇게 부조리한 얘기가 어딨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이, 인간의 삶이

이렇게 부조리하고 허무하다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냥 죽음으로 끝나서, 아무것도 없게 만드시려면

뭐하러 우리를 만드신 것일까요?

 

세상에서 아등바등 아무리 열심히 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살아도

결국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에요. 그럼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를 왜 만드셨는가요? 어차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거면!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 원래 창조목적이 아니라는 거에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만드셨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만드셨지,

죽음으로 허무하게 끝나도록 만드시지 않으셨다는 거에요.

 

그런데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에 들어가면서

인생은 죽음의 그늘아래 다 놓여있는 거에요.

 

아등바등 살아도 죽고..

그냥 빈둥빈둥 살아도 죽고.. 대충 살아도 죽고..

 

그게 솔로몬의 불만이었잖아요.

즉 '우매자도 죽고.. 지혜자도 죽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했습니다.

 

◑2. 십자가에 죽으심 직후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

 

자 그런데 드디어 37절의 순간이 옵니다.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어둠과 단절과 죽음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드디어 정점의 시간이 이릅니다.

드디어 클라이맥스의 시간이 이르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에요.

 

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작마자 그 직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이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시자마자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소 휘장이 갈라지고요.

 

-백부장이 정신을 차린 거고요.

로마군병과 백부장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놀리고 막 그러다가

예수님이 딱 돌아가시고나자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거지요. '저 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리마대 요셉같은 사람이죠.

예수가 죽으시기 전까지는 '저 사람이 맞나?' 이랬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가 죽으시고 나서는 커밍아웃을 합니다.

 

이게 사실 여러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영광스럽게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지금 죄수로 죽으셨는데,

'나는 저 사람 편이야' 하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자기도 죄수편 가담자로 몰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인데

그가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는 등,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거죠.

 

이 세 가지가 십자가 직후에 일어났던 변화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예수를 만나면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이기도 해요.

 

▲1. 첫번째 일어난 사건은 성소 휘장이 갈라진 겁니다. :38

 

성소 휘장이 상징하고 있는 건 뭐냐 하면, 죄로 말미암은 단절이에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상황을, 성소 휘장으로 가로막아

나타내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지성소 안에 하나님이 계신데, 임재가 있는데,

인간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들어가면 죽는 거에요.

 

휘장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첫번째로 일어난 사건이 뭐냐면

휘장을 찢어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길을 여신거에요.

여러분 이게 십자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자마자,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던 모든 단절들이

부서진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어요.

 

이것은 죄 사함과 용서입니다. 그래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가서

주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주님 앞에 담대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길이 열렸습니다.

 

자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어둠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 결과, 진리를 알게 됩니다. 삶의 방향을 올바로 찾게 됩니다.

거룩한 과 따뜻함 들이 우리 삶 속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가 구체적으로 주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2. 죄인들이 돌아오고, 죄에서부터 해방이 일어나는 거에요. :39

백부장은 로마 군인이죠.

그 로마군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밑에서 놀리고 희롱하고, 창으로로 옆구리를 찌르고

낄낄거리고,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사실 사람을 죽이려고 매달아 놓고, 그 앞에서 낄낄대는 것은 사실 미친 거죠.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옆에서 강아지가 한 마리 죽어 간다 해도

우리가 낄낄대며 농담할 수 없습니다... 이건 뭐냐하면 죄와 광기에 사로잡힌 거죠.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마자

백부장이 제 정신이 돌아와요. 그래서 뭐라 그러냐면

'이는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바로 전까지는 죄와 광기에 막 사로잡혀서

무엇이 진리인지도 모르고, 또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광기 속에서 죽이고, 희롱하고, 모욕하고, 죄 패달고.. 막 그러면서 살아가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 거기서 광기에서부터 해방돼서

제 정신이 돌아온 거에요.

 

여러분 십자가가 주는 두 번째는, 단순한 죄 사함이 아니라,

죄의 권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거예요.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롭게 봐 주신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우리가 이 땅에서는 비록 죄를 계속 지으면서 삶지 모르겠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에요.

우리의 신분이 저주받은 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었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많이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으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거에요.

 

그러나 그 이야기가 곧 이 땅에서 죄의 권능으로부터 해방돼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직접 의미하지는 않아요.

 

근데 '죄로부터 해방됐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죄의 권능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거에요.

 

이것은 이 땅에서의 얘기에요. 후에 천국에 가면 당연히 권능으로 해방되겠지요.

그런데 이 땅에 살 동안에도, 죄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주어졌다는 거에요. 그게 죄로부터 해방된 거에요.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위 구절은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정죄함이 없고

-죄에서 해방했다는 거에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거에요.

우리가 비록 죄를 짓더라도, 그것을 그냥 의롭게 용서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에요.

왜? 예수께서 죄값을 다 치르셨으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는, 단순히 죄값을 치르고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뭐가 일어납니까? 성령께서 오신다는 거에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거에요.

 

십자가를 통과하고 나서 비로소 우리에게 인류에게

최초로 주어진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가 뭐냐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거에요.

 

그 전까지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없었어요.

우리는 그냥 죄의 노예였기 때문에, 그냥 죄에 묶여있는 거라서

아무리 죄를 짓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죄에 그냥 끌려갔어요.

 

그런데 성령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뭐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거에요. 롬8:1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생긴거에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할렐루야

 

중독으로부터 자유케 될 수 있고요.

우리가 정말 싫어하지만 그동안 끌려다녔던 죄로부터 자유케 될 수 있어요.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십자가를 의지하시고, 성령의 법을 의지하실 때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러다가 또 쓰러져서 실수하거나 죄를 짓는다... 그래도 좌절하지 마세요.

거긴 또 용서함이 있어요.

이중방어장치가 있는 거예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요.

-설령 실수해서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정죄함이 없게 되는 거에요.

 

완전한 자유함, 죄로부터 자유케 되는 용서와 또 해방을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이게 여러분, 십자가 사건입니다.

 

▲3.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43

 

십자가를 앞두고 모든 사람이 예수를 떠나서 도망쳤습니다.

아무도 예수 곁에 없었어요. 잘못하면 같이 체포될 수 있어서 다 도망쳤어요.

 

그러나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고 나자

광기에서 해방된 사람들 중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인생을 바꾸는 사람들, 진리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죄의 사슬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예수를, 진리를 따르기 시작한 거예요.

 

자 이게 여러분, 오늘날 모든 구원받은 자,

십자가를 통과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우리 각 개인도, 십자가를 통과할 때 무엇이 이루어지냐면

첫째 죄 사함이 일어나요.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돼요.

둘째 죄의 권능으로부터 해방되어서, 광기에서부터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돼요.

셋째 예수를 따르기 시작하는 거에요.

이 변화가 십자가를 통과하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3. '무덤 속 삼일' 가운데 일어났던 일들

 

지금 이 마가복음 강해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면,

 

십자가에서 숨지기 전까지의 시간이었고 (40~45강)

숨지신 직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고 (본46강)

무덤 속 삼일이에요. (본46강 + 47강)

 

▲자 이제 '무덤 속 삼일'이라는 중요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통과하고 나서,

일어난 중요한 세 번째 사건은 뭐냐면 '부활'이에요.

 

고후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활이 일어나요.

그래서 앞서 얘기했던 세 가지 사건이 다 반전이 일어나죠.

 

어둠과, 단절과, 죽음.. 이 세가지가 반전이 일어납니다.

단절을 다시 회복하시고

빛이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사망을 삼키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가 이루어 놓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은 뭐냐 하면

부활의 사건이에요.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었습니다.

어둠이 빛에게 삼킨바 되었습니다.

드디어 오랜 원수였던, 왕노릇하던 사망이 생명에게 정복당하는거에요.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은 영원히 살거에요. 우리는 최종 종착력이 죽음이 아니에요.

인생의 끝은 죽음이 아니에요.

죽음을 통과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에요.

 

부활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 부활에 대한 얘기는

다음 시간(47강)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볼 텐데

오늘은 간단히 중요한 것만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부활'의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그러니까 다른 사건들은 예수님의 죽으심 직후에 일어났는데

부활은 '무덤 속 삼일'이라고 하는 시간차가 있다는 거에요.

 

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삼 일의 시간을 기다려야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것도 여러분, 각 사람에게 적용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나머지 사건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게 되고

또 주 앞에 나가게 되고,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고, 단절이 회복되게 되고,

또 우리가 예수를 따르게 되고... 이건 다 예수 믿자마자 일어난 사건이에요.

 

그런데 마지막 '죽음을 극복하는 부활' 사건은 아직 기다려야 되는 사건이에요.

'삼일간의 무덤 속 시간'이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삼일간의 무덤 속 시간'은

-이 땅을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전체)을 얘기하기도 해요.

-또한 특정 고난의 사건을 뜻하기도 하고요. 둘 다 의미합니다.

 

생명과 부활이라는 것은, 대칭되는 메타포(은유, 비유)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락해서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결국 죽은 거예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생명이 없이 죽은 건데

그런데 잠깐동안은 생명을 누리잖아요. 잠깐동안은 살아있잖아요.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그때 이제 죽음이라고 하는 현실을 대면하게 되죠.

 

부활도 똑같아요. 분명히 우리가 부활을 했는데, 잠깐동안은 무덤 속에 있어요.

분명히 우리가 구원 받고, 죄도 다 없어지고 했는데

잠깐동안은 죄된 세상 속에 그냥 살아요.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영원한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거룩함을 얻게 됩니다.

정확히 대칭되는 구조를 갖고 있죠.

 

여기에 영적인 원리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여간 우리에게,

비록 죄 때문에 죽었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어떤 생명의 시간을 잠깐 두셨듯이,

 

우리가 다시 부활할 것이지만, 그 부활할 때를 준비하기 위한..

그러니까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어떤 기간을 두셨듯이,

부활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어떤 기간을 두신 거에요.

그것이 '무덤 속 삼일'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삶으로 얘기하자면

이 땅을 살아가는 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기 전까지의 그 시간,

부활한 몸을 입기 전까지의 그 시간,

그 삼일 동안에 시간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무덤 속 삼일'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진리를 얘기하는데

 

1) 첫번째, 비록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기 위해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아직은 우리가 이 땅에 몸을 입고 삽니다.

아직은 영광의 몸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 두번째, 그러나 언젠가 '무덤 속 삼일'이 끝나면 반드시 부활하게 됩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됨이 완성되는 거예요.

 

아직 땅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사망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요. 언젠가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요.

 

그러나 기억해야 될 것은, 무덤이 열리는 날이 있다는 거에요.

무덤이 열리고 부활하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거에요.

 

삼 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와 여러분은 부활한 몸을 있고

무덤에서 다시 나오게 될 거에요.

 

고전15:52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할렐루라!

 

나팔소리가 날 때, 우리가 홀연히 다시 부활할 거라는 거에요.

사망이 깨어졌습니다.

 

자 그런데 왜 꼭 이렇게 삼일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번(47강)에 좀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이 삼일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거에요.

신부가 결혼식 날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듯이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그래서 계시록은 뭐라 그러냐?

 

우리가 부활하는날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결혼식이라고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한 운명으로 살아가게 될

그 놀라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결혼을 위해서 준비하는 거예요.

 

신부가 단장을 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가기 위한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거에요.

무엇을?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거에요.

 

▲예수께서 무덤에 계신 삼일 동안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나 살펴보면

 

먼저는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 주님을 향한 갈망과 사랑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됐습니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덤에 찾아가서 무슨 소망이 있겠어요?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처럼, 능력을 행하시는 것도 아니고,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처럼, 사람들이 막 영광가운데 이렇게 환호하고 박수치는

것도 아니고... 거기 가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소망도 없고, 이미 다 끝난 얘기에요.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 계시고, 더군다나 죄인의 무덤이거든요.

사람들이 거기 와서 '아이고 우리 훌륭했던 예수님..' 이러는 것도 아니고,

거기 가봐야 아무도 환대해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떡고물도 없고,

가봐야 아무 것도 없어요.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어요.

 

그런데 그 무덤을 찾아갑니다. (안식일에는 못 찾아가고)

그 다음날 새벽에 부리나케 찾아간 거죠. 그러면 왜 찾아갔을까요?

사랑하니까! 그냥 예수님을 향한 그 갈망 때문에

가봐야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지만, 찾아간 거예요.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갈망과 사랑때문이죠.

 

맞아요. 여러분, 당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마음의 준비가 바로 이거에요.

 

천국에서 준비돼야 될 유일한 마음의 준비는 뭐냐 하면, 이거에요.

예수님을 향한 군더더기 없는...

다른 조건이 없는...

 

그냥 '예수'라는 한 인격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갈망!

사실 이게 여러분 '무덤 속 삼일'을 우리에게 두시는 이유에요.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죄와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을 당합니다.

 

그렇죠. 이해할 수 없는 죄의 피해들, 억울한 일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카이로스> 책에도 이 얘기를 썼는데

죄와 타락한 세상의 본질은 뭐냐 하면 '이해할 수 없는' 거에요.

모순되고, 억울하고, 부조리하고...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요.

'무덤 속 삼일'이에요.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분명히 예수님은 부활하신다고 했는데

무덤 속에 삼일을 계십니다.

 

우리도 그 무덤 속 삼일을 지나가는 거예요.

'도대체 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분명히 내가 기도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 시간을 통해서 무엇을 우리가 갖게 되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게 가장 잘 묘사되어 있는 데가 다니엘서 잖아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

이거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지금 몰딩(형성)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고자 할 때는, 뭐 수많은 기대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기도 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병든 자도 고쳐주시고, 또 내가 구하는 것도 이루어 주시고...

 

네 분명히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좋으신 분이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기를 원하진

않으세요. 그건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부수적으로 주시는 것들이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가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정확히 하나님께서 가르세요. (구분하세요)

뭘 가르냐 하면, 천국에는 누가 들어오는 거냐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따랐던 자들은

마지막에 양과 염소를 가를 때, 분명히 가르세요.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아니 내가 예수 이름으로 능력도 행하고,

주님을 위해서 이것도 저것도 했는데, 왜 나는 못 들어갑니까?'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듯이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양과 염소가 갈라진다는 거에요.

 

갈라지는데 염소 쪽은, 예수님을 따르긴 따랐어요.

그런데 왜 따랐는지 이유가 좀 달라요.

예수님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어떤 것(복)이 좋아서 따른 것이지요.

 

그런데 양 편으로 분류됐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무덤 속 삼일을 통과하는 사람들이에요.

이해할 수 없고, 기도했는데 기도도 안 이루어지고, 고생하고,

뭔가 이해할 수 없어요.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 거야?'

그 가운데서도 계속 예수님을 따르는 거예요. 인격적 관계가 형성된 거죠.

 

예수님이 이미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셨는데, 여전히 무덤을 찾아가는 거에요.

가봐야 뭐가 나온다고 찾아갑니까?

 

이게 여러분, 왜 예수님을 따랐는지를, 딱 분별해주는 기준 아닙니까?

이 여인들은, 예수를 향한 군더더기 없는 사랑이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우리를 이 땅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무덤 속 삼일'을 지나가게 하시는 진짜 이유이에요.

 

다른 아무 조건이 없어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분,

그 인격을 갈망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속에 이 마음이 준비되기를 주님은 원하세요.

 

그래서 이 '무덤 속 삼일'은 우리 안에 이 마음이 정화되어지는 기간이에요.

사실 여러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을 보면, 이 마음들이 섞여 있어요.

 

한쪽만 그냥 충만한 사람은 별로 못 봤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고

떡고물에만 그냥 백 퍼센트 관심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은, 워낙 티가 나기 때문에 대충 알아요. 진짜 크리스천이 아닌 거죠.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섞여 있어요.

그러니까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떡고물도.. 뭐 상당히 관심이 있고

그래서 섞여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뭐라 그러냐면

순전한 금처럼 우리를 정화 purify 시킨다는 거죠.

 

이 땅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빼내시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서 불순물들을 하나씩 둘씩...

이 불순물들이 언제 제거되냐 하면, 무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제거돼요.

 

무덤은 뭐냐면, 내 기대가 죽는 곳이고, 내 (세상적) 소망이 꺾이는 곳이고,

내가 정말 사랑했던 것들을 잃는 곳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잖아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게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신데 왜 죽으셔요?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요.

 

'무덤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내가 정말 바라던 것들이 꺾어지는 것들을 얘기해요.

 

그런데 우리 마음이 언제 깨끗해지냐면, 불순물들이 제거 되냐면

무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올수록, 깨끗해져요.

 

좀 위험하기는 해요.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들어가서 그냥 완전히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면

그 마음에 있던 불순물들이 하나씩 둘씩 빠져요. 그래서 정금처럼 만드세요.

이것이 우리를 '무덤 속 삼일' 시간 가운데 두시는 진짜 이유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깊은 밤'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끔은 '무덤 속'에 두실 때가 있어요.

그럼 여러분 기대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천국의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시키시는 시간이고, 과정입니다.

 

우리의 지금의 Mixed 되어 있는 마음으로는, 천국에 합당하지 않아요.

우리가 무덤의 시간들을 통과하는 이 삼일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 갈 텐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향한, 아무 불순물 없는, 아무 군더더기 없는

그 사랑과 갈망을 가지게 되는 거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해방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수 있어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만나십시오. 교제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마음을 더 순전하게, 더 순결하게,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덮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죄와, 죄의 권능들은 다 파쇄됐습니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 능력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들었던 말씀들을 기억하시면서

'예 하나님, 제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었사오니

십자가의 모든 능력들을 다 누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죄의 권능으로부터 자유케 된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무덤 속 삼일 지나갈 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하여 주셔서

더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