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호송되는 사도바울 행23:31~24:9 23.08.19.녹취
*원제목 : 거짓 고발에 맞서는 힘, 진리에 기초한 믿음
유대인들이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질(조카)을 통해서 그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그 암살계획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23:16
그리고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동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행23: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을 동원해서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하라고, 백부장 둘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23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 600명인데
그 중에 470명을 동원해서 바울을 호송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보통 '죄수' 신분으로 로마까지 갔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정확하게는 '피의자' 신분이죠.
그런 바울을 얼마나 안전하게, 하나님은 이렇게 보호를 해주셨는지요..
여러분 같으면 이 상황에서
'군대가 이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 어디 도망도 못 가고 너무 부자유하다'
이렇게 생각하시겠어요? 아니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시겠어요?
근데 지금 '유대인 40명이 동맹해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한' 상황입니다. :14
그러니 이제 유대인들이, 바울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갑갑함을 느낄 것 같아요?
-아니면 보호를 느낄 것 같나요?
뭐 두 가지를 다 느낄 수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 하실 때,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때로는 내 인생을 상당히 억압하고, 부자유하게 만드는 장벽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도 그 한 예죠.
또는 목회지에, 선교지에 딱 갇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울타리일 때가 있거든요. ☞가시와 담으로 막으시는 하나님
학생들이 제일 원하는 게.. 학교에 안 가고 쉬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는 게, 그들 인생의 장벽일까요, 울타리일까요?
회사를 계속 다니시는 분은, 20년, 30년 회사 생활 계속하는 중에
'이제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쉬는 순간.. 노화가 급격하게 찾아오죠.
그 직장생활이,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굉장히 얽어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때로는 '이게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장치이구나'
그런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로,
안디바드리에서 다시 가이사랴로 가는 길이 정해졌습니다. :31
지도를 보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남부 중심부에 있고
가이사랴는 중북부의 해변가에 있습니다. (*통영에서 군산처럼)
그래서 사선으로 비스듬히 올라갈 때, 중간 지점에 안디바드리가 있어요.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까지 64KM,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 40KM, 도합 100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안디바드리 성은 헤롯대왕이 건설하고, 그 부친 Antipater 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성 이름을 삼은 것인데, 지금은 성터만 남은 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바울을 호송해서 안디바드리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행군을 전문적으로 하는 보병일지라도 하루에 한 40~50KM 갑니다.
그런데 31절에 보병인데 64KM를 갔어요.
그러니까 그 밤에 출발해서, 그 다음날에 안디바드리에 도착했던 거예요.
평탈한 지역도 아니고 중부 산악지대, 셰펠라 라고 부르는 얕은 구릉 지대죠.
그래서 높은 산악지대에서 중부 구릉지대까지 가게 됐는데 64KM를 갔어요.
그러니까 백부장 둘이, 얼마나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하려고 애를 썼는지요.
그리고 보병은 안디바드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기병만 거기서 가이사랴로 바울을 이송했습니다. :32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바울 한 사람을 지키시게 위해서
로마 군대 수백명을 동원하시고, 필요하면 더 넓은 세상도 움직이실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 어디 계셔서 나를 위해서 뭘 하시느냐?'
이렇게 얘기하지만, 여러분, 나 하나를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지구를 움직이고 계시는 거예요.
주위 사람들을 움직이시고, 온 세상을 움직이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 다시 이동을 하는데
이 가이사랴 도시는,
가이사 아구스도를 기리기 위해서, 해롯대왕이 세운 인공 항구입니다.
욥바가 천연 항구였고, 욥바 바로 위쪽에 있는 게 가이사랴 인공 항구입니다.
바울이 여기로 호송된 이유는, 여기에 팔레스타인 주둔 로마군 본부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거기서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을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가이사랴는, 해상운송 시대에 거기가 교통의 중심지라서
당연히 발전하게 되었죠.
우리는 바울의 이동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친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나를 친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어디로 이동을 하게 되든
'나는 여기는 안 가봤는데, 여기는 낯선데..' 이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중에 유라굴로 광풍 한 가운데도 들어가는데
광풍 가운데 들어가든, 아니면 군대에게 호송이 되든
어떤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인줄 믿습니다.
세상적인 감각으로 살지 마시고요.
그래서 세상에 가장 큰 대도시, 메트로폴리탄 LA, 뉴욕이나 동경이나 서울이나
'이런 데 있으면 내가 가장 안전하다?' 아니죠.
그런데 살면서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여러분, 세상의 땅끝에 가 있어도
그곳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자리이면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제가 이걸 언제 느꼈냐면
여러분, 큰 회사나 큰 조직에서 지내면
그 대표가 가서 있는 곳이, 곧 거기가 헤드쿼터, 본부가 되는 거예요.
헤드가 있는 곳이 헤드쿼터 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계신 곳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
내가 변두리에 있어도, 그곳이 HQ(본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화려한 곳에 있다고
중심지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세상의 중심지이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복된 곳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개척하는 저희 교회가 분당 정자동에 터를 정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저희가 전도도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교회가 이미 많은 곳에, 왜 교회를 시작하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러나 지역 주민 절반 이상이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이잖아요.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전도 열심히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축복하고, 이 땅이 거룩한 땅이 될 수 있도록
특히 대한민국의 바이블 벨트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즘 계속 이 지역에서 안 좋은 사건들이 일어나서 *서현역 칼난동 사건 등
여러분 마음 가운데 초점을 가지고
영적인 분명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모든 사건, 사고들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이 지역 일선 학교들,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이 땅에 있는 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폭력과 갈등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공공기관들과 기업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질서와 평화 가운데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 가운데 하나님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두 교회가 아니라 지역 전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들 가운데
하나님, 영적인 부응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캐나다 벤쿠버에 4년 가 있는 동안
(저만의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도시의 영적인 연합과 부흥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사역했는데
그 기간에 벤쿠버가, 마약 총기 사건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었거든요.
저는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 원수의 훼방도 많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우리 가정이 악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23:33~35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천부장 루시아의 편지를 총독 벨릭스에게 전달합니다.
바울이 로마사람이라니까, 총독이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묻고는
그리고 헤롯 궁에 바울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헤롯대왕이 가이사랴를 인공 항구를 만들면서, 거기에 왕궁을 세웠는데
이후로는 로마 총독이 거쳐하는 관저로 사용됩니다.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로마시민 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 보초병만 세워서 왕궁에 거할 수 있도록 한 거죠.
바울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 사람이잖아요.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역하는 사람이고,
또 그렇게 사역하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것도 아니고
텐트메이킹 하면서, 자기가 손수 장막 만들면서
주야로 열심히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왕궁에서 오랜만에 쉬는 시간이 되었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강제로 쉼표를 찍어주실 때가 있죠?
근데 강제로 쉼표를 찍어주실 때도, '나는 느낌표를 찍어야겠다!'
이러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왕궁에 들여보내실 때는 그냥 쉬셔야죠.
나는 사역지가 좋다 그래도, 하나님이 왕궁으로 들여보내실 때가 있는 거예요.
오늘 본문의 장면들을 보면서
로마 군대가 바울을 옭아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보호막이잖아요.
나는 지금 길거리 뛰어다니면서,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역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발을 묶어주시는 이 시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쉼의 시간이기도 하고요.
때로는 다쳐서 나를 쉬게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쉬게 하시기도 하고
내가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쉬게 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시간계획표가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선하고, 온전하다는 것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도치 않은 보호막을 우리에게 두르실 때가 있고
예상치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의외의 장소에서 우리에게 쉼과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4: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고발하는 입장에 섰어요.
저는 이 구도 자체가 이상하게 보입니다.
며칠 전까지 유대인의 최고 자치기구인 산헤드린 에서
바울의 범죄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 심리를 해보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종 판단자 역할을 해야 될 사람이 대제사장이잖아요.
그러면 대제사장은, 아직 바울이이 옳다, 그르다를 속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대 자치 법정의 재판장(대제사장)은 어느 편에도 서면 안 되는
공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미 이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이미 편향성을 갖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 총독 관저까지 찾아와서
이 멀리 100KM를 찾아와서.. 연세도 많으셨을 텐데..
자신들의 언변의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당대 유명했던 변호사, 잘나가는 변호사 더둘러까지 세워서 바울을 고발하는
고소인 측에 서게 됐다는 거예요. 상당히 편향적이죠.
△여러분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편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나님 편에만 서고, 사람들에게는 편향성이 안 생겨야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해도
주관적인 게 있을 수밖에 없죠.
여러분이 선호하는 계절, 선호하는 음식, 선호하는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저는 여러분이 늘 하나님 편에 서는 감각이 살아있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에서도, 목회자들도 그렇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안 좋은 사람이고..
이런 자기 중심적인 구도로 목회를 하면, 굉장히 문제가 심각해지죠.
그러면 이제 교회는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목사님을 지지하는 사람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
여러분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장소
인 줄로 믿습니다. 이게 명확해야 되요.
그런데 또 보면, 교회에서 크고 작은 양육이나, 사역이나,
여러 공동체에서 리더 역할을 하시는 분들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옳은 사람이고
나를 반대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안 좋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틀린 사람이다..
이런 구도로 사람들을 나눠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천부장 루시아가 로마인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바울을 보호하고 있는지...
또 로마 군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바울을 안전하게 지키시는지요...
나에게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그들이
오히려 나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워주는 하나님의 손길일 때가 있어요. 할렐루야!
그걸 긍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이 나이가 들수록
여러분이 조직에서 포지션이 올라갈수록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항상 옆에 있어야 돼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나이가 들고, 또 조직에서 포지션이 올라갈수록
옆에서 (측근들이) 좋은 얘기만 해주거든요.
아니요. 그러면 정말 내가 뭘 잘못하는지 모르게 돼요.
그래서 옆에서 정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을,
달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여러분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가끔가다 보면 그런 게 있어요.
자녀가 부모에게 바른 얘기를 할 때가 있거든요.
부모가 뭔가 치우쳤을 때, 자녀가 하나님 편에서 바른 얘기를 하면
'너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니?'
'너가 어떻게 아빠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아니요, 우리가 같은 편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인 게 중요한 거예요.
교회 안에서도 그래서 당을 짓지 말아야 되고,
여러분 가정이 가족의 숫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편에 설 거냐, 엄마 편에 설 거냐.. 뭐 이런 거 따지잖아요.
그런 거 하지 마셔야 됩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4:2~3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더둘로, 터틀로스 라는 이름을 놓고 볼 때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것 같아요.
헬라식 이름인데, 당대 최고의 변호사 중에 한 사람이었어요.
자, 그 더둘로가 대제사장 아나니아 측, 고소인 측에 서서 고소합니다.
그러면서 총독 벨리스, 그의 귀에 듣기 좋은 얘기를 하잖아요.
'당신을 힘입어 우리가 태평을 누리고, 당신의 선견으로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여러 가지로 개선이 됐다...'
명확하게 얘기한 건 없어요. 그래도 일단 장황한 칭송을 늘어놓죠.
총독 벨리스는, 역사 기록에 의하면, 뇌물과 여색을 탐했던 사람이고
반대파를 본인이 배후 조종해서 암살했던 사람이에요.
지금 바울은, 40인의 결사대에 의해, 암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가 23:21
겨우 건져내져서 보호를 받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기를 총독관저에서 보호해주고 있는 총독이라는 사람이
그 사람됨이, 자기 정치적인 반대파들을 암살한 사람이고
이스라엘 전역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사람들이 가난하고 그러니까
지형도 굉장히 험난한 지형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까 강도 떼가 출몰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벨릭스 총독이 그 강도 떼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강도질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들과 거래를 하고,
블랙 커넥션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런 온갖 비위 행위를 하다가, 결국 유대인들의 고소고발로 인해서
나중에 로마로 소환된 인물이 벨리스 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드리는 이유는,
지금 바울의 입지가, 세상적으로는 매우 불안하다는 겁니다.
법으로 자기를 보호해주는 벨릭스 총독이..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변호사 더둘로는, 그런 벨리스에게
'당신으로 인해서 우리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아부를 했어요.
그러니 이 사람도.. 뭐 악한 사람이죠. 공의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도, 대제사장의 권한으로 얻는 재물로,
하나님과 성전을 위해서 다 쓰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로마에 상납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탐욕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총독 벨릭스와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서로가 상당히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재판관으로 있는 벨리스도 악인이고,
고소인 측 대제사장도 악인이고
그리고 더돌로는 그 악인을 대변하기 위해서 고용된 변호사일 뿐이고
피의자인 바울 입장에서는, 얼마나 그 구도가 답답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꿋꿋이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갑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법정에 서게 될 때, 기도 요청을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일반 법정에서 악한 일을 치밀하게 도모하는 사람들을
이기기가 어렵다 라고 말들을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정의가 실종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이런 위기 가운데 처했다는 거죠.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경에서 건져 주셔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법정에서 변호사를 통해서 법리로 다투는 일이 발생할 때,
법리 공방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지키시고 보호하셔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바울이 지금 그 보호를 경험하고 있는 거잖아요!
▲24:5~6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자, 바울에 대해서 고발한 내용이 위에 나옵니다.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다' 라는 표현을 썼는데,
원어상으로는 그냥 '나사렛 당' 입니다. sect of the Nazarenes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한다'
이건 명백히 오해죠.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 가까이는 갔는데,
이방인의 뜰을 넘어간 것은 아니었죠.
루머에 의거해서, 없는 사실을 꼬투리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회 질서를 흔들고, 사람들을 소란케 하고, 소요를 일으킨다는 건데,
이것은 총독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서, 급소를 찌른 겁니다.
물론 다 위증이지만요.
과거에 우리나라 군사정권으로 치면 '간첩죄, 국보법위반 죄' 쯤 되는 건데요.
왜냐면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 가장 걱정하고, 중점적으로 살피는 게
'민중 소요'거든요. 소요를 막는 게 총독의 임무인데, 바울을 그걸로 고소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 바울을 종교적인 케이스로만 보면 안 된다.
사회정치적인 이슈로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가만두면 안 된다' 이렇게 고소를 했던 거죠.
더둘로는 나쁜 쪽으로 유능한 인물인 것 같아요. 유죄 판결을 받을만한 고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억울할 수 있죠.
바울 입장에서는, 자기가 사회정치적으로 세상에 소요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된 세상의 질서를 바르게 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빛으로 인도하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세상에서 이런 억울한 모함과 공격을 받는다면
만약 여러분이 바울 입장이라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깃발을 들잖아요?
그러면 원수가 반드시 여러분을 타겟팅해서 공격합니다.
저희가 이 교회를 개척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진짜 굉장히 영적인 공격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내가 평생에 살면서 이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다'는 분도 계세요.
제가 벤쿠버에 가서 처음에 그런 걸 굉장히 강하게 느꼈거든요.
워낙 영적으로 힘든 동네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땅의 부흥을 위해서 목숨을 거니까
정말 하나서부터 열까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괴롭히는지 모르겠어요.
영적인 공격이 얼마나 심하게 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이제 선교지를 가보면,
영적인 대치 상황을 굉장히 많이 경험해요.
선교사님들도 영적인 대치 상황을 굉장히 많이 경험합니다.
한국보다는 몇 배로 훨씬 더 심하죠. 영적인 기류가 한국과 완전히 다르거든요.
<밀림 속의 십자가>라는 책이 있는데
외지인들이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남미의 부족마을에 들어가서
선교사님이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근데 그곳에서는 원주민 인디오들이 숲에 들어갔다가 '호랑이 눈을 봤다' 그러면
그날 밤에 누군가가 마을에서 죽어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악령의 역사죠.
귀신들이 그 마을 가운데 오래도록 영적으로 그들을 장악하고
두려움 가운데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거죠.
그런 악신의 역사가 있는데,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데도,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누군가가 '숲에서 호랑이 눈을 봤다'
그러니까 모든 부족 사람들이 다 두려워 벌벌 떠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으니까
밤을 새면서 함께 모여서
자기 해먹에 각자가 앉거나 눕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밤새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아무도 죽지 않게 되었대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했다는 얘기가 그 책에 나옵니다.
제가 오래 전에 파푸아뉴기니의 성경번역 하시는 선교사님 댁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는데, '악령이 분명히 있고 하나님 분명히 계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주중 예배가 있는데, 그날 꼭 사건, 사고가 일어난대요.
그날 꼭 누군가가 다쳐서, 선교사님이 차에 태워서, 저 멀리 도시에 나가야 했대요.
차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선교사님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꼭 그 모임을 결국 못하게 만든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선교사님 아들은, 마을의 원주민 아이들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냥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면서 산 거예요. 원주민 아이들처럼.
그런데 아이들하고 사냥을 하러 숲으로 들어가면
악령들이 그렇게 숲에서 지나다닌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악한 영들은 반드시 있고,
그리고 그 악한 영들을 이기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라는 사실을,
그 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분명한 체험을 갖고 있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두려워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두려워하고, 또한 공격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대치 상황과 영적 전쟁이 불가피하지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도바올이 이런 억울한 오해와 공격을 당한다고 해서
마음가운데 힘들어 한 것이 아니라
'아,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가 있겠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바울과 같은 상황에 내가 처하게 되면, 여러분 중에 혹시
'왜 나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괴롭히는가?' 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때 '제발 날 그만 괴롭혀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저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이렇게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만큼 강력한 복음의 영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 반대와 훼방이 많으면 많을수록,
바울은 자기가 선한 일, 의로운 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죠.
'그래서 마귀와 악한 영의 대적이 그만큼 많은 것은
내가 성령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구나..' 주1)
여러분, 이 땅 가운데 수많은 반대의 역사, 훼방의 역사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로 승리케 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일시적으로는, 악이 더 강해 보입니다.
악인들이 훨씬 더 강해 보여요.
그러나 결국에는 선이 이기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세대도, 우리 자녀 세대도
결국에는 선이 이긴다는 것을 확신하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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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군사정권이 한참 득세하던 시절
어느 진보진영 목사님이 데모하다가 붙잡혔는데,
1심재판에서 5년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슨 5년이나 때리나?' 이렇게 억울하게 생각했는데,
차츰 가만히 생각해보니, 5년을 받은 게 일종의 명예요, 훈장처럼 되는 겁니다.
'저들이 나를 얼마나 두려워했으면, 5년이나 잡아두려고 그러나?'
그리고 진보진영 지지자들도 다 그 분을 존경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이니까, 형을 많이 받으셨구나'
나중에 최종 선고는 작게 받으셨고, 또 감형도 받고 해서
오래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