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예수 vs 친밀한 예수 막6:3~13 2023.08.06.설교녹취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과거를 들먹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목수 아니었느냐?'
'이 사람의 가족들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느냐?'
그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어요.
제게 잊혀지지 않는 강의 중에 하나가 <한국학> 강의를 하셨던
한 목사님의 이야기인데,
미국이나 서구권에서는, 누가 총리나 장관이 되면,
그의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에게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면
좀 구석에서 늘 혼자 약간 외톨이처럼 어수룩하게 있었어도,
'그 사람 뭔가 비범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뭐 당연히 남달랐던 거죠.
이렇게 긍정적으로 인정을 해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 그 사람 어땠냐?'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 친구 학교다닐 때, 내 가방 들고다니던 애라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독재자 스탈린은, 나중에 자기 어릴 적 친구들을 다 죽여버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에서 제가 오십 년 살다 보니까
한국인 만큼 민도가 높은 나라가, 세계에서 드뭅니다.
'문해율'은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인데,
문해율도 한국이 전 세계에서 탑 랭킹이에요.
전반적으로 국민의 능력이 출중한 나라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스토리를 보면 안타까운 것은,
외세의 침략과 위기가 올 때마다
왕은 도망가고 민초들이 지켜온 나라예요.
그러다 보니까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각자도생, 즉 각자가 살길을 찾는.. 그런 역사의 트랙을 지금까지 걸어온 거죠.
자 그런데 그렇게 각자가 출중한 한국에서
서로 경쟁해서 비교우위를 점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인간 안에 이건 굉장히 안 좋은 형태의 심리인데,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 곧 자기를 긍정하는 것인 줄" 아는 이상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래서 탈권위주의시대가 되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부정하고 상대를 비판함으로써
내가 굉장히 의로운 것 같고, 내가 굉장히 고상해지는 것 같은..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잖아요.
그 심리가..
요즘도 가끔 보면, 유명인들의 평범했던 과거 사진을 들춰내는 사람들이 있죠.
그 사람이 훌륭함과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 함으로써
자신의 뭔가 승기를 잡은 것 같은, 그런 심리적인 이상한 컴플렉스에 빠져있지는 거예요.
결코 선하지 않죠.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 축복의 어느 언어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막6:4~6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훌륭한 랍비가 되었다고 인정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만약에 그랬다면, 예수님의 고향방문이 얼마나 금의환향이 되었겠는가요.
그러나 저들이 예수님을 부정하자,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친척과 가족 외에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다'
이게 예수님시대의 격언을, 조금 풀어서 표현한 거예요.
이런 격언이 있었더라고요. '철학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어렵게 산다'
예술가들도 그런 경우들이 역사적으로 많았는데
당대에는, 또 자기 영역에서는
제대로, 또는 마땅히 받아야 될 인정을.. 못 받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심리를 안 갖고 있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간관계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존중과 친밀감'의 상반된 관계!
인간관계가 좀 거리가 있으면,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친밀해지면 친밀해질수록, 그를 무시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룬 학자들이나 기업인들이나 예술인들이
가장 무시를 당하는 데가 어디인 줄 아세요? 자기 가정입니다.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많은 아빠와 엄마들과 자녀들이
가장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공간이 가정이에요.
'우리가 너를 아는데, 네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이런 거죠.
그러니까 밖에서는 뭐 세상에서 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해도
집에서는 이제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거잖아요.
남편을 무시하고, 아내를 무시하고,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또 형제간에 서로 무시하는 것이
친밀함의 공간인 가정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들이에요.
△여러분의 가정에서 그렇다면, 영적인 영역인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수님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교회 아니겠어요?
근데 이 교회라는 영역 안에서, 예수님을 가장 우리가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요?
세상 사람들보다 교회를 다니는 우리가, 예수님을 더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아니 하나님, 내가 그렇게 날마다 기도를 하고 있는데
왜 응답을 안 하시느냐?'
'내가 이거 해결해 달라고 오래 전부터 기도했는데
아직도 이걸 안 했느냐, 도대체 내가 몇번 얘기해야 알아 들으시겠느냐?'
우리가 기도하는게, 이렇게 예수님을 늘 혼내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면
우리만큼 예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인정이 없어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고향에서 능력을 행하시지 못한 게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능력을 행하지 못하셨다.. 고 말씀합니다. 막6:5
이 포인트를 잘 보셔야 돼요.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잘 모르고, 예수님을 가장 무시하고,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가장 떨어진다면,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기계적인 만능인이 아니라,
인격적인 전능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에 협업을 하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은사 배치 테스트>를 해보면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있고, 또 한 가지가 '믿음의 은사'에요.
성경을 읽어보면, 저는 성경이 너무 너무 잘 믿어져요.
그런데도 제가 제일 안 믿어지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라는 말씀이었어요. 막11:23
제가 정말 믿음으로 산 앞에 서서 여러 번 테스트를 해 봤지만, 안 되더라고요.
'내 믿음이 없는건가? 아니면..'
그런데 온누리교회에서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믿음을 갖게 됐어요.
'이게 되는구나.. 이 말씀이 맞구나!' 그걸 믿게 됐어요.
'만약에 산을 옮기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루어지게 돼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고 싶으시면, 하나님이 하세요' 이렇게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신다면,
나는 그냥 삽을 들고 가서, 그 산을 옮기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럼 사람들이 질문 하죠. '당신 지금 뭐하고 있냐?'
'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비전에 동참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아져서, 함께 삽과 곡갱이질을 하고,
덤프트럭을 끌고 오고, 포크레인을 끌고 와서
결국 산을 옮기는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믿음의 역사인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빨리 하셔야 되는데
왜 하나님이 응답 안 하시지?' 그게 아니라
믿음이 있다면, 내가 액션을 취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내가 순종해서 액션을 취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근데 수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골방에 앉아서
'내가 도대체 언제부터 얘기했는데, 하나님은 안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 기대 이하이고,
'그런 하나님은 나는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그런 예수님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요. 진짜 당신이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체험하지 못하는 거예요.
진짜 당신이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상황은 변화 되게 되어 있어요.
누가? 내가 먼저 변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내 아이가, 내 배우자가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 믿는다면, 누가 변해야 될까요? 내가 먼저 변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그 배우자에게 늘 막 예민해가지고, 화를 내고, 공격하고.. 그게 아니라
내가 변하는 순간, 그 사람이 변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안 변하기 때문에,
'축복의 통로'라고 늘 찬양하는 내가 통로 역할을 안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이 못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언제부터 기도를 했는데, 아직도 안 하시냐고?'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하나님 탓을 돌립니다.
내가 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반응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따지고만 있는 거예요.
네, 제가 '믿음으로 산 옮기는'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가족을 변화시킨다는 것도, 산을 옮기는 듯한 믿음이 요구되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상하다가,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믿음으로, 바다 한가운데 인공섬을 세운다고요.
근데 도대체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우리가,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정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진다'
는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이 정말 믿음의 기도를 드린다면
여러분의 삶이 정말 놀랍도록 바뀌게 돼 있어요. 할렐루야!
공부하는 학생이 '하나님이 나의 성적을 올리시고,
내 인생 길을 열어주셔서, 날 쓰실 것이다. 믿습니다!'
정말 그 믿음이 있으면,
그 시험보기 전 날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는 게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어 있다고요. 내가 변하는 거예요.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이 제자들 두 명씩 짝지워 선교여행을 보내셨어요.
바로 앞부분과 정반대되는 내용이죠.
고향에서 예수님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던 그 사람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실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는,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이 행했던 똑같은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여기서 '권능'은 엑소시아 인데,
성경에서 주로 '권세'라는 단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28:18~19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엑소시아)를 갖고 계신 그분이
그분의 권세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시면서
사람들을 살려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영역으로,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일을 행할 때,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씩 가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지만
또한 동역자들과 함께 감당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그런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6:8~10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을 보내실 때
'양식도 배낭도 돈도 가지지 말고, 여분의 돈도 가지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거는 무전여행 수준이잖아요.
제가 어릴 적에는 '무전여행'이 무전기를 갖고 가는 여행인 줄 알았어요.
무전여행은 無錢여행입니다. 돈 없이 떠나는 여행이죠.
그런데 놀기 위해서 가는 여행이 아니라
전도하고,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제가 2009년 9월에, 밴쿠버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양재 여호수와 청년부 담당하면서
온누리교회 대학 청년부를 맡게 됐어요.
한 9천 명의 청년들이 10개 예배공동체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제가 9월에 도착했으니까, 7~8월에 한 4천명 정도의 청년들이
여름에 아웃리치를 국내로 다녀온 뒤였어요.
목회자들이 모여서 아웃리치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보고를 듣는데
그다지 감동과 감격이 없는 거예요.
왜냐면 온누리교회는 매년 정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웃리치를 나가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이게 너무나 익숙한 프로그램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어떤 '구령의 열정,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거지 전도>였습니다. 복음을 위한 무전여행이죠.
10개 청년부 공동체의 1백명 되는 리더십들만 먼저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비를 뽑아서, 충청도, 강원도 등 한 2~3시간 되는 거리에
사람들을 보냈어요.
갈 때, 가는 차비만 주고
식비 라든지, 숙소비용이라든지, 돌아오는 차비.. 아무것도 안 주고
그냥 4~5 명씩 묶어서 보냈어요.
그런데 늘 프로그램을 잘 짜서,
하루 종일 큐시트까지 짜서 사역을 하던 친구들이니까,
'아니 뭐 아무 계획도 없이.. 돈도 안주고.. 핸드폰도 없이'
처음엔 황당해했지만, 취지를 설명해주고, 이제 그분들은 순종해서 떠난 거죠.
그런데 어떤 팀은,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 전에
한 자매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하고 인사를 하게 됐어요.
근데 그 아주머니가 본인들이 가는 그 지역에 사는 분이었어요.
권사님이고, 가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람을 예비해주신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가서 마음 편하게 전도하고, 저녁에 권사님이 밥도 해주시고,
그 집에서 전도하고, 대접받고 온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냥 내 계획을 실천을 했던 거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몰랐던 거잖아요.
'본부에서 모든 팀에게 핸드폰을 팀별로 한 대씩만 가져가게 하고
밤 아홉시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서 숙소를 제공받게 되면
본부에 보고를 하십시오.' 그래서 본부에 보고할 때만 전화기를 쓰게 했어요.
그런데 파송한 20 여개 팀이 다 보고가 들어왔는데
한 팀만 밤9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숙소를 못 정한 거예요.
근데 그 팀이 이제 밤 9시가 넘었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노숙을 해야 되겠구나'
지방에 내려와서 시골 길에 들어섰는데, 뭐 아무도 없잖아요.
캄캄하고 가로등 불빛만 보이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제 밤9시가 넘어서 시골길을 가다가
저 멀리서 교회 십자가 불빛이 보이니까
'저기에 교회가 있나 본데, 가서 교회문이 열려있으면 거기 들어가서 자자'
감사하게도 교회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서 한 사람씩 장의자를 잡고, 거기서 쉬려고 했던 거에요.
근데 9시 반경에, 그 캄캄한 시골에 있는 예배당 문이 삐걱 열리더니
한 여집사님 들어오신 거예요. 서로가 깜짝 놀란 거죠.
그 시간에 사람이 나타났으니까요.
그런데 이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더 놀라운 거예요.
그 분은 토요일 저녁마다 최애 드라마가 있어서, 늘 그 드라마를 보는 시간인데,
그 날은 성령님이 계속해서 '예배당으로 가라' 강권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드라마를 봐야 됩니다'
'아니다, 예배당으로 가라, 예배당으로 가라!'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가,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집을 나와서 예배당에 온 거예요.
'기도를 시키시려나?' 그런 마음으로 예배당에 와서 보니
전도팀 청년들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늦은 시간에 밥을 차려서 먹이고
밤새 서로 간증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이 가득했던 청년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고백을 하면서 오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를 공급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공급자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3끼의 음식, 결국 누가 주시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필요한 모든 물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도 시간과 공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고 있는 이 산소도, 하나님이 공급하신 거예요.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더라'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걱정하지 마라.
그것은 이방인들,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을 믿음으로 나아가라!'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돼 있어요.
그냥 단순히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공급하심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필요를 알고 계셨구나, 보고 계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놓으신 게 아니라, 내 인생에 계획이 있으시고, 뜻이 있으시구나'
그게 '섭리 providence' 라는 단어에요.
'섭리'는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고, 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의 인생을 성장시켜 가시고자 하는 그분의 섭리가 있다는 것!
이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날마다 걱정하는 게 무엇인가요?
'먹을 것을 장만해야 되는데, 거처할 곳을 마련해야 되는데'
'자녀들이 있는데, 학교만 보내는 게 아니라 결혼도 시켜야 되는데'
'결혼자금도 준비해야죠. 노후도 준비를 해야 되죠...'
그러니까 스스로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적금도 들고, 보험도 들고, 있는 대로 투자도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죠.
그러나 이 땅에서의 인생의 미래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길이도, 그 여정도, 주권자 하나님께서 결정해주시는 것이라고요.
저와 여러분이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살고, 가끔 하나님 만나서 친한 척 을 하고..
낯섦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 그런 거 말고요.
여러분,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예수님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정말 가슴 벅찬 인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인생을 살아가면
내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세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해서 분명한 섭리가 있으시고 계획이 있으시구나'
그것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이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가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그대로 선포했고, 예수님이 치유하신 그대로 치유했어요.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적인 어둠에서 자유해지고,
육신의 어려움가운데서 치유를 받게 되는 역사!
여러분 낯선 도시로 이 제자들이 파송을 받았는데
제자들이 너무나도 친밀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곳 사람들에게 보이는 거예요.
왜요? 그들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요!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꿈꾸는 것을 내가 꿈꾸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것을 내가 선포하고,
나의 손길이 예수님의 손길이 되고,
나의 걸음이 예수님의 걸음이 되는.. 그런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8월 달에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영적으로 정탐을 하고, 또 기도 하면서, 땅 밟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밟는 모든 땅 그 도시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 두 손을 주님께 올려 드리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