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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

LNCK 2023. 8. 25. 14:24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 - YouTube

*아래 벧전4:6절 해석을 참조하세요. 13분30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       벧전4:1~11        ▣ 고난/영광의 신학

 

※'신앙생활이 성숙해지면 인생에 고난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반쪽 진리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죄를 덜 짓게 되므로.. 예전의 고난이 없어지는 것은.. 일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해질수록.. 사명 감당에서 오는 고난, 성화를 위한 고난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고난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과 사이 좋게 지내고, 고난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해 나가야 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거죠. 평생 하소연, 불평, 넋두리하며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입 주  1)

 

◑크리스천이 고난을 받는 이유

 

1.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1절 첫머리는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헬, '운', 개역에는 안 나옴

 

1절 앞에는 (3장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은 것을 언급하고 있어요.

 

정리하면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 마음을 그렇게 무장하라' 아멘입니까?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먼저 고난에 동참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가 구주와 주인으로 믿고, 우리 앞서 가 계시는 예수님이

이미 앞서 고난을 받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라는 말 뜻은,

Christ-like,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좇아감으로 점점 그리스도와 같이 된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단순합니다. 간단해요.

그리스도를 좇아가는(닮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좇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과하신 분이세요.

그러므로 그 그리스도를,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을 좇아간다면

애당초 우리가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라고 그냥 생각하시라는 거예요.

베드로사도가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애당초 마음을 (고난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무장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마음 먹으면, 고난이 와도 놀라지 않아요.

왜? 어차피 내 마음을 그렇게 먹었으니까요. 아멘입니까?

 

2. 두 번째, 성도가 고난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b절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되는 이유는 딱 하나

또 두 번째 이유는 고난 받는 사람들은 육체의 죄를 짓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건 고난을 쎄게 받아본 사람은 뭔 말인지, 자기 온몸으로 알아요.

여러분 고난을 받게 되면, 죄를 지을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신경을 돌릴 틈이 없다고요.

 

2절의 '정욕'을 성경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물론 이런 정욕이, 고난이 온다고 해서 금방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이 정욕, 욕심, 죄성이라고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요.

나이 드신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더 잘 실감하고 계실 거예요.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난도 웬만큼 고만고만 하게 오면, 이게 (정욕이) 해결이 안 돼요.

정말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당한 만큼, 확실하게 고난을 주시지 않으면

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얘기합니다.

'왜 내 삶엔 고난이 많지?'

대충 고난이 와서는, 육체의 정욕,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예요.

 

특별히 여러분 가운데 고난과 어려움이 많으신 분들은.. 죄송합니다.

고난을 대충 받아서는 해결이 안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별히 배려해서, 센 고난을 주시는 거예요.

아주 세게, 정신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조금도 할 수 없도록.. 할렐루야!

 

여러분,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막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나님하고 사투벌이는 사람이, 죄 짓는 거 봤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고난 가운데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얘기는

거의 없어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1차 포로로 귀환하고 난 다음에

성전을 재건하고 나서,

1차 포로 귀환 후 ~ 2차 포로 귀환까지 80년의 시간이 지납니다.

 

그래서 2차 포로 귀환 때 지도자였던 에스라가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딱 와보니까, 이거는 가관도 아니에요.

8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완전히 거의 개판이 돼버린 거예요.

 

제사장도 이방 여자하고 결혼해버리고, 막 말이 안 되는 꼴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도 그 8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예요.

 

아무 어려움도, 위기도, 문제도, 고난도 없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뭘 하는 거예요? 죄를 짓는 거예요.

육신의 연약함과 죄성에 의해서!

 

△여러분 사사기에, 인생 말년에 완전히 망가지는 사사 삼손이 나옵니다.

삼손이 사사 생활할 때는 위기가 별로 없었어요. (고난이 없으니까) 제 마음대로 다 하고 다녔죠.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다윗이,

그 어마어마한 죄를, 광야에서, 아둘람 동굴에서 짓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죄를 지을 여유가 없다니까요.

 

죄를 짓고 싶어도,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근데 다윗이 언제 죄를 짓습니까? 대낮에 주무시고 나서

옥상에서 한가하게 할 일 없이 돌아다닐 때, 이때 죄 짓는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죄 짓는 사람들은

거의 다 잘 먹고, 편하게 잘 살다가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사랑하는 것을 느껴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편안하고 한가하고 이만하면 내가 살겠거니..'

하는 때가 별로 없었어요. 주님 만나고 나서부터요.

 

주님의 놀라운 배려하심과, 간섭하심에 의해서

항상 깨어있도록 제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이런 연약함과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그 고난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줄로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이 고난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만큼 우리의 죄성,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는 이해 못 해요.

 

근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 이 죄의 문제와

우리 육신의 정욕에 대한 이 연약함의 문제를 모른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100 % 거의 맞아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부족한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연약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완전하신 방법, 하나님의 완전하신 때에

이 고난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받는 고난이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요?'

그런 얘기하는 사람은 아직 멀었어요.

 

정말 고난을 통해서 준비된 사람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하나님 뜻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다 좋고 유익하니까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 놀라운 경지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가 일부러 고난을 초청하거나

고난 받는 상황 가운데, 자진해서 들어갈 필요는 당연히 없어요.

잠언은 그를 '미련한 자'라고 얘기합니다.

 

없는 고난을 일부러 찾아서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정말 주님의 부르심, 이 산 소망을 좇아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흘러가기 때문에

성도의 고난은 필경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예요. 동의하시면 아멘!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방인'의 정의가 뭐냐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에요.

우리도 그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을 때는

그냥 육신이 마음이, 감정이, 생각이 내키는 대로 하고 살다가

이제 주님 만나고 난 다음에는,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4절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평소 알고 지내던

또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고,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모두가 자기 성공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때에

구제, 나누는 것들을 얘기하는 자들은.. 비방 받습니다.

 

여러분 처음엔 칭찬해 주죠. 구제와 나눔이 아름답다고...

그러나 그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서

자기 것도 나눠야 되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너만 할 때는 내가 냅둘 수 있어, 그러나 네가 하는 일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면..'

그때부터는 발끈하는 거예요.

모두가 더 많은 것, 더 풍성한 것,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그때,

이것들을 더 내려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핍박 받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 기준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규격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때

'왜 그렇게 살아야 되고, 왜 그 가치를 좇아야 됩니까?' 라고 얘기할 때

핍박 받는다는 거예요.

 

경쟁하고 시기하고 다툼으로 내 것 확보하고 챙기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고,

지혜롭고, 민첩하고, 삶을 규모 있게 알고 사람이 *일례로 주식, 코인 잘 하는 자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그런 시대 가운데서

 

여러분, 성경대로 미련하고 단순하고 어리석게 자기 것들을 나누고

희생하고 사는 사람들은.. 핍박 받는 거예요.

자녀들을 교육하는 부분에서도 그렇고요...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에 따라 산다면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핍박이 반드시 옵니다.

안 오면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제대로 안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성경이 하는 얘기예요.

성경의 진리를 거슬러 흘러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자기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핍박이 없을 수 있냐는 얘기예요.

당연히 핍박과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게 없는 게 문제지요.

 

저는 우리 자녀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일부러 함께 걸어와요.

걸어가는 시간만이라도 좀 얘기하려고 걸어가는데...

 

어제 아파트 앞에서 학원 승합차가 서 있더라고요.

우리 애가 그날은 어떻게 학교에서 컨디션이 좋았는지

막 웃으면서 재밌게 대화하면서 걷는데

 

거기 학원 승합차 안에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봤어요.

우리 자녀 나이와 비슷한 아이들이에요.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얼굴이 전부 다 찌들려 가지고...

 

그래서 내가 우리 자녀에게 그랬어요.

'너는 감사한 줄 알아! 너는 부모 잘 만나 가지고... 너 쟤들 얼굴 봐라!'

웃고 있는 애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다들 지쳐가지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놓아 자유케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애도 학원 보내는데, 수영 시킵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그런 비방과 놀램.. 이 가운데서 살더라도 기억해라.. (5절)

 

▲5절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사실 대로 고하리라' 라고 할 때

여기서 '고하다'는, '진술하다' 그 뜻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즉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결국은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을,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자세히) 진술해야 되는 때가 올 거라는 거예요.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 땅 가운데 오셔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우리 가운데

다른 새로운 삶, 산 소망이 있는 삶,

하나님의 창조지의 목적과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그 기회를 줬는데

 

그 복음의 소식을 듣고 난 다음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주님 앞에 와서 다 나와서, 진술, 고백해야 할 때가 올 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6절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난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성경구절이 헷갈리고 혼동될 때는 두 가지 해석 원칙이 있어요.

 

1) 성경 전체에서 얘기하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그 구절을 해결해야 돼요.

 

그 난해 구절 하나만 갖고 씨름하지 마시고

창세기~계시록까지 보편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그 전체적인 이해의 테두리 안에서, 그 난해 구절을 해석하셔야 돼요.

 

2) 전후 문맥, 흐름을 보셔야 돼요.

6절만 보면, 해석이 헷갈리지만

바로 앞에 있는 5절 말씀을 연결해서 보시면 너무 쉽습니다.

 

5절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셨다'고 했죠.

 

'산 자'는 .. 당시에 살아있는 사람,

'죽은 자'는 .. 이미 죽은 사람인데, 복음을 듣고 죽었던 사람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를 통해서, 예수를 믿고 죽었던 사람들이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즉 육신은 죽게 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주님을 믿고 산 소망을 가진 자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주님 앞에서

이제 살아나서, 자기가 과거 세상에 살 때

어떻게 살았는지를 진술하게 된다는 거예요. :5~6

 

그런 의미에서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여기서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성경에서 보통 얘기하는 '구원의 복음'이 아니라,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이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복된 소식의 내용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는 것이죠. :6

 

여러분,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지만

죽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라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물어보실 거라는 거예요.

'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왔냐?'

 

그때는 내가 할 말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너는 그때 어떻게 살다 왔니?' 라고 묻는 주님 앞에서

사실대로 고할 말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제가 고난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굉장히 지혜롭게 굉장히 민첩하게 살다 왔습니다'

라고 고백하시겠어요?

 

아니면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 고난에 아주 짓눌려서

'결국은 그럭저럭 언젠간 천국 가겠지..' 하고 넋 놓고 있다가

주님 앞에 가서 그렇게 자포자기 하며 살았다고 고백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저는 지금도 주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두 가지가 있어요.

1) 첫 번째는 '만약에 하나님, 제가 하나님과 사람들이 볼 때

고범죄를 짓고, 큰 죄를 짓고, 주님 앞에 설 때

정말 부끄러워서 설 수 없는 그런 죄를

혹시 제가 지을 듯 싶으면.. 그 죄를 지으러 가는 그 길에

제게 번개를 떨어뜨려 죽여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거 심각하게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나는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피 흘려서

네가 하나님이 너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정말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도록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의 모든 것들을 주어서

너의 삶을 내 피값으로 사서 회복시켜 놨는데,

너는 이 복음 듣고 구원받아서..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

 

근데 '그냥 죄 짓다 왔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제가 죄와 피 흘리며 싸우다가.. 죄를 이기려고 몸부림치다가..

주님 뜻대로 살려고 열심히 달음질하다가 천국에 왔습니다..' 라고 고백해야 될 거 아니에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피크닉 하는 거 아니에요. 여가생활 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탄은 24시간 대기 중입니다.

베드로가 말했듯이, 우는 사자와 같이 기회만 오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여러분 이런 살벌한 광경에서 어떻게 우리가 편하게 있을 수 있어요?

 

물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조이, 샬롬, 자유함

이걸 놓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나 깨어있어야 한다는 거죠.

 

깨어서 살다가, 주님 앞에 설 때는

그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2) 두 번째는, 저는 고난이 있는 삶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에요.

고난, 문제, 어려움, 역경 이거는

제가 예수 믿은 후 25년 동안 늘 신실하게 저를 따라온 거예요.

 

고난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정말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아무 소망이 없는 인생,

아무것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인생,

주님 앞에 가서 아무 고백도 할 수 없는 인생으로

그렇게 내 인생 끝나버릴까봐 그게 두려워요.

 

고난도 좋고, 어려움도 좋고, 뼈가 빠지게 고생하는 것도 저는 괜찮아요.

그러나 다만 '주님 내가 주님 앞에 서서

뭔가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을 살다가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제게 고난이 뭔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고난이 좀 약간 종류가 달라요.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게 고난이에요. '너는 가만히 있어라!'

 

지금 여러분 제가 뭐 굉장히 겁나게 일 많이 하는 것 같죠?

이거는 가만히 있는 수준이에요.

 

오늘도 말씀 준비하면서, 벽 보면서 기도했어요.

벽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계속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 애 손잡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손잡고 같이 집에 데려다 주고...

가끔가다 간식 챙겨주고... 여러분 이게 나한테는 고난이에요.

 

지금 중국을 깨워야 되고, 일본도 깨워야 되고,

중동에 난민들 먹여야 되고, 한국의 청년들을 막 뒤집으려고 (미국에서) 왔는데

뒤집기는커녕 내가 뒤집어지게 생겼으니.. 이게 막 고난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요.청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대로 끝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대로 끝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인생이 그럭저럭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끝나는 거,

그냥 세상의 것 추구하면서 살다가

남들하고 똑같이 살다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거 두렵지 않냐고요? 안타깝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살까 봐 두려워요.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이 끝날까봐 힘들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신 차리세요. 정말 천국에 소망이 있다면 정신 차리세요.

정말 거듭난 게 맞다면 정신 차리세요.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하고 많이 벌고 많이 이루었다고 해도

주님 앞에 그거 갖고 우리가 고백할 수 없어요.

 

△특별히 어려운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저한테는 마음이 힘들어요. 여러분의 어려움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그 고난과 어려움이

여러분을 짓누르도록 허락하지 마세요. 믿음으로 끊임없이 돌파하세요.

 

이렇게 선포하세요.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나를 드립니다. 내 영혼아 깨어날지어다!'

 

△6절에서 베드로는 복음이 전파되는 이유를 간단 명료하게 언급합니다.

6절 하반부에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복음이 왜 전파됐어요? 우리가 영으로 깨어서

하나님을 따라 살 수 있도록! :6

 

영으로 죽어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이 살아나서

내 영이, 이제는 영이신 하나님께 반응하며

그 영이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도록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됐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결론은 간단합니다.

고난이든, 어려움이든, 문제든, 사고든, 어찌 됐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늘의 산 소망을 갖고

우리가 하나님을 좇아(닮아, 그 뜻대로) 살 수 있도록만 된다면..

뭐든지 감사하다는 거예요.

 

어찌됐든 하나님의 산 소망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만 있다면

고난이 와도 감사합니다. 역경이 와도 감사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와도 감사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내 영이 깨어나고,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만 있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여러분, 편안하고 복받고 많은 것 누리면서 살고..

이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유라면, 여러분은 종교를 잘못 선택했어요.

 

기독교의 복음은, 한 번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편안하고 잘 살던 사람들이

주님 따라다니다가 고난받고, 핍박받는 거예요. (성화되어 천국 백성 되라고)

 

그러나 여러분, 그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성경의 복음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묶임에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다'는 거예요.

 

'모든 상황과 악조건 가운데서도, 우리로 하여금 기쁨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임재 가운데 누리는 삶을 살게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보호하신과 이끄심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승리하게 될 거라'는 거예요. 아멘!

 

더 놀라운 것은, 이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주님 앞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나중에는 고난에서부터도 자유해요.

 

옆에서 볼 때는 고난인데, 본인은 자유해요.

여러분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도전드립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나를 불쌍해하고 그러는데

본인은 할렐루야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해서

7절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2000년 전 로마의 핍박의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얘기합니다.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여러분, 2천년 전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면,

2천년이 지난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이 코 앞에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다시금 얘기합니다. 깨어 있으세요.

시대를 분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하다' 이것은 discipline,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걸 뜻해요.

절제, 훈육하는 걸 얘기합니다. 그렇게 근신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라는 거예요.

 

기도 외에는 안 되니까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여러분, 기도는 지금도 저한테도 힘들어요. 만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가 믿은 후 25년을 기도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힘들어요.

여러분 25년을 제가 기도했는데도, 지금도 저한테 기도가 안 쉬워요.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기도하는 자리를 찾아가지 않으면.. 저도 힘들어요.

계속해서 나를 쳐서, 기도하는 자리에 나를 앉혀 놓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해요.

 

25년을 했는데, 그러면 몸에 베어 있어야 될 만도 한데,

물론 어느 정도 많이 베어 있죠. 베어 있으니까 계속 그 자리에 나가겠지만,

여전히 저의 의지와 노력과 발버둥이 아니고는.. 기도에 자리로 안 나가져요.

이게 왜 그러냐면, 기도하면 깨어나기 때문에 그래요. (억지로라도 나아가요)

기도하면 돌파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기도하면 영이 살아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 여러분 사단의 입장, 마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도하는 자리로, 성도가 못 나가도록 막겠습니까?

 

모든 합당한 이유와 환경과 문제를 총 동원해서라도

'너 오늘 힘들잖아, 지쳤잖아?'

이런 모든 걸 동원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오늘 기도 안 해도 된다고 하는.. 모든 설득과 이유를 제공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 모든 것들을 돌파하시길 도전드립니다.

 

여러분 제가 개런티 할 수 있어요. 예언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기도 안 하면, 여러분 반드시 영적으로 죽습니다. (침체됩니다)

여러분 제가 다시 한번 심각하게 여러분에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 20년 30년 했고, 그동안 얼마나 기도 많이 했고,

얼마나 신앙생활 제대로 했는지 아무 상관없어요.

지금 기도 안 하면.. 지금 안 하면..

여러분의 신앙은, 과거에 했던 걸로 쌓아놓고 뭘 하는 게 아니에요.

 

왜요? 이것은 relationship이에요.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영적, 인격적 교제를 통해서

이거는 계속 관계 맺어 나가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 잘해왔는데, 지금 안 한다...

그러면 여러분 그 relationship은 깨지는 거예요. 막히는 거에요.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기도하는 자리에 나가세요. 몸을 쳐서 복종시켜서 지금 나가셔야 돼요.

정신 차리고 근신할 수 있도록, 그 기도의 자리에 나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안 그러면, 죄송해요. 영혼이 죽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라도 나가세요.

 

여러분이 살고, 여러분의 가정이 살고, 우리 공동체가 살고, 민족이 살고,

열방이 살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 가운데 나아가세요.

 

여러분,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합니다.

 

여러분, 솔직히 직시하셔야죠.

문제와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기도 잘 안 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막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풀리면, 기도의 자리로 나가겠어요?

당연히 안 나가지요.

 

그걸 아시는 주께서 늘 신실하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시의적절하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할지어다!

 

삶의 중간 중간 중간마다, 필요한 고난과 문제와 어려움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를 찬송할지어다! 아멘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그냥 넋놓고 어리버리 제발 그렇게 살지 마시고

기도를 통해서 깨어있기를 도전 드립니다.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거 푸념하다가..

그거 자체에 여러분 자신이 갇혀서 그냥 그렇게 끝나는 인생 되지 마시고

그 문제와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고

주님과 승부(쑈부)를 보세요.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산 소망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 가운데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면,

주저 없어요. 사랑입니다. 사랑하라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렇다면 사랑이 뭐예요? 결론적으로 참고 견디는 거에요.

본문 8절에는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지니'

뜨겁게, 적극적, 열정적으로,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거에요.

 

두 구절을 합치면

서로 열정적으로 오래 참아 주라는 거예요. 서로 적극 용납해 주라는 거예요.

서로 뜨겁게 인내해 주라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받아주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그 사람 변화 절대 못 시킵니다.

그저 용납해주고, 인내해주고, 받아주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 그가 점점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거예요.

 

△우리 두 자녀가 최근 미국에서 한국에 와서

많은 어려움을 통과하시면서

첫 번째는 사춘기 조짐과 낌새가 보이고

두 번째는 자유의 영향을 받았고...

 

그런데 제가 안 했던 게 있어요. '모든 것을 바라며' 고전13:7

'네, 하나님 됩니다.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 바래야 되는구나, 사랑은 (그가 온전케 되기를) 바라는 거구나'

그 변화되는 날까지 바라보며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거죠. 물론 쉽지 않지많요.

 

두 번째, 사랑하면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8

 

여기서 '죄를 덮는다'는 것은, 죄를 어물쩍 덮고 간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 표현은 구약에서부터 나온 말씀인데

시85: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여러분 이것은 죄가 없는 것처럼 대충 넘어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죄가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허다한 사랑으로 덮어버리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은 죄를 덮어버리게 만들어요.

그의 연약함을 덮어버리게 만들어요.

 

반대로 교만은.. 그의 죄를 드러냅니다.

여러분, 내가 교만한 사람인지, 사랑이 충만한 사람인지.. 분별이 아주 쉬워요.

그냥 쳐다보는 사람마다 너무 이뻐 보이고, 너무 귀해 보인다면

내가 사랑으로 가득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보는 사람마다 마음에 안 들고,

내가 듣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거슬리고,

그가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그냥 안 좋게 보이면..

내가 교만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비판하고.. 까고.. 막 그냥 해대는 거 봤습니까? 그런 일을 없어요.

 

아버지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사랑으로 오셔서 어떻게 했어요?

그 사랑으로 모든 연약한 것들을 덮어버리시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걸 넉넉히 영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어요.

그의 죄와 그 연약함과 그 부족함이, 자기에게 영적으로 소화가 되는 거예요.

감당이 되는 거예요. 그 정도로 사랑이 넘치니까요. 아멘입니까?

 

근데 이게 안 되면, 그때부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거죠.

 

동시에 여러분, 그런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연약함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이 허다한 사랑으로 덮어주심을 믿게 됩니다.

 

물론 자기 연약함과 그 죄로 인하여 아파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좀 몸부림치기는 하지만,

결국은 복음의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케되고

그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간단합니다. 대접할 때 궁시렁거리지 말라는 거예요.

누구 대접하고 섬길 때, 그냥 궁시렁,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 삶의 소신, 철학이 있어요.

'뭘 하든 즐겁게 하라'는 거예요.

'뭘 하든 적극적으로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편의점 같은데서 알바를 하더라도

뭐든지 즐겁게, 적극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아주 작은 일을 하더라도, 기쁘게, 즐겁게,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거기 점원들 일할 때 얼굴이나 말투가 약간 불평이 섞여 있어요.

작은 일도 즐겁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산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분,

이 산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산소망을 갖고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서 합당하게 사십시오.

*'산 소망'은 벧전1:3, 3:5, 3:15 등에 나옴.

 

산 소망이 있는데, 왜 절망하냐고요?

이 땅이 끝이 아니에요.

고난이 끝이 아니라, 문제가 끝이 아니고,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하나님 안에서의 살아있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어받고

그 유업을 위해서 산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삶을 상급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고난도 넉넉히, 문제와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도전 드립니다.

 

그 모든 목적은

'그런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11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여러분 베드로서의 전체 주제가 "고난과 소망"이에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사는 종안 고난이 있을 거예요.

 

근데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아버지의 은혜가 더 넘치도록 있을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따라 남은 때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 칭찬 듣는 은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다 고난 덕분이었던 것을, 그때는 알게 될 거예요.

 

......................................

 

주1) 도입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먼저 보고, 자녀교육 차원에서도 너무 중요하다 싶어서

두 아들을 데리고 함께 보면서, 설명을 해 줬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개입함으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후퇴를 해야 되는 상황 가운데서

마침 피난가지 못했던 많은 민간인들이

흥남부두로 몰려드는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때 주인공으로 나온 어린아이가, 자기 여동생을 앞에 놓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지금 우리 놀러 온 거 아니다. 지금 소풍 온 게 아니다 말이다. 알겠나?'

이렇게 사투리를 쓰면서 '오빠 꼭 붙들고 있어라'

그리고 배를 타러 올라갑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적으로 어둡다고 할 수 있는 곳,

지금 이 시대의 바벨론이라고 하면 당연코 언급될 수 있는

미국 맨하탄 한복판에, 타임스퀘어 교회를 세우신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 목사님이, 살아생전에 늘 설교 말씀 가운데

자주 성도들을 향해서 던졌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썬데이 피크닉 온 것이 아닙니다. 파티 온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되는 이유는, 지금은 생명과,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이 기로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곧잘 듣던 말이 있습니다.

'제발 정신 좀 챙겨, 정신 좀 차려!'

 

여러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을 구주와 주인으로 믿기로 결심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그 주님을 쫓아서 살겠다.. 라는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신앙 생활을 내가 해나가지' 라고 결심했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를 흔히 '마지막 때'라고 얘기합니다.

'마지막 때'라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마지막 때에 대한 어떤 얘기에 너무 묶여서, 초조해 할 필요는 물론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늘 우리에게 얘기하는 것이 '시대를 분별하라'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대상12:24~40절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전쟁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각 지파마다

계수할 때, 모든 지파들은 수천 명, 수만 명인데, 잇사갈 지파만 딱 200명입니다.

 

그런데 이 잇사갈 지파를 향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대상12:32

 

잇사갈 지파 가운데서는 시세를 알아

시대를 이해하고 있어서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알고 인솔할 자가

200명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시대를 분별하는 자들이 사람을 인도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인 이유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과 싸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가운데 실제적으로 성취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때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마지막 때를 역사적으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증거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AD 70년 로마의 디도 Titus 장군에 의해서

지금으로부터 1950년 전, 지구상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버렸어요.

 

근데 그렇게 없어진 나라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다시 회복되리라고 예언했던

그 말씀 그대로, 1900년이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사11:12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이 전 세계에 흩어지고, 없어졌던 이 나라를

전 세계에서 다 불러서 다시금 회복하셨는데

이 회복에 대한 많은 예언의 말씀의 시제가 '마지막 때'라는 거예요.

 

또한 마24장을 보면 '마지막 때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곳곳에 기금과 지진이 일어나는

자연재해에 대한 말씀...'

 

여러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 난리예요.

뭐 이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자연재해도 이제 인간의 모든 테크놀로지를 떠났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테크놀로지로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왜? 도처에서 돌발적으로 어디서나 쓰나미와 지진, 화산이 터져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예측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러한 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이제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와 민족들에 의해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는 거예요. 마24:9

 

여러분,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산발적인 핍박과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 20세기 말,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핍박을 받은 것은

초대교회, 처음으로 교회가 생성될 당시에 핍박을 받은 수준과,

마지막 시대의 핍박이.. 거의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2000년 전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흐름을 보면

기승전결으로 볼 때, 지금은 '결'의 마지막 부분에 와있다고 하는 거예요.

 

사도 베드로도 본문 7절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여러분 2000년 전에 이 말씀을 기록한 베드로의 관점에서도

당시가 '마지막 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류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고

인류의 역사가 흘러온 모든 흐름을 기, 승, 전, 결로 보면

이 '결'인 마지막이 2000년 전에 이미 시작했고,

지금은 이 결의 마지막 끝자락에 와 있다고 하는 거예요. end of end times

 

왜냐면 이 마지막에 대한 예언과 많은 말씀이

실제적으로 성취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본문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이 배경은, 사도바울이 3차 전도를 끝내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거기서 결박을 당해서 로마로 압송당합니다.

 

그러면서 2년간 로마에 있는 감옥에 연금되어 있다가

잠시 한시적으로 풀려납니다.

 

그리고 나서 네로의 핍박에 의해서

다시금 재차 감금당하고, 결국은 네로의 통치 때에 순교합니다.

 

그 배경이 이렇습니다. 역사적인 많은 고증에 의해서

네로가 로마의 어떤 큰 대화제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AD64

이 화제의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덮어씌움으로 말미암아

로마 안에서 굉장히 대대적인 핍박들이 일어납니다.

 

그 분위기와 그 여파에 의해서 풀려났던 바올도

다시 잡혀서 결국은 순교하게 되고, AD67

그 즈음에 베드로도 같이 순교를 합니다.

 

이런 핍박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분위기가 있을 때 쯤에

베드로는 당시 복음이 가장 흥황하게 일어나고 있던 터키 지역,

당시 지명으로 아시아 지역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해서 보냅니다.

 

 

첫 머리에 베드로는 교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거듭나서

구원의 산 소망을 가진 여러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이 구원의 산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산소망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핍박이, 고난이 있어도

넉넉히 이기라는 거예요.

 

여러분, 베드로전서 메시지 전체가 '고난과 소망'이에요.

근데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를, 딱 하나 얘기합니다.

'우리에겐 살아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할렐루야.

 

그냥 무조건 무턱대고 고난 뚫고 이겨내라는 얘기가 아니라

고난을 넉넉히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살아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 산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합당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종된 자로서, 아내 된 자로서, 남편으로서

어떻게 각자의 그 자리에서, 역할에서,

그리스도인의 산 소망을 가진 자답게 살 수 있는지를 쭉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서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것을 도전하고 나서

오늘 본문에 와서는 왜 우리가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가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어떻게 믿음의 삶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하는가 이것을 권고하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