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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축복 2

LNCK 2023. 8. 25. 20:56

[창세기20] 요셉의 축복2 - - YouTube

◈요셉의 축복 2               창49:22~26      ▣ 삶의 통찰력    ▣ 성경적인 성공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믿음의 특징은 '성숙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을 처음으로 시작하고

그것을 계승해서 발전해 가는.. 그런 이제 역할들을 감당했다면

4대째 되는 요셉 대에 이르면, 그 믿음이 성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모습은

'성숙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 믿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사실은 가장 성숙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거에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성공도, 실패도

-고난도, 축복도

전부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하는 것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없고,

또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이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내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는 성숙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는, 반드시 따라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요셉의 축복'이라고 하죠.

요셉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요셉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라는 믿음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은, 요셉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축복이

우리 삶가운데 부어질 줄 믿습니다.

그 요셉이 받은 축복의 내용을 우리가 지난 주부터 살펴보고 있는데요.

축복의 내용을 대충 4가지로 정리를 했습니다.

1) 첫번째는 우리 지난 주에 살펴봤던 '열매 맺는 축복'입니다.

많은 열매가 있게 되는 축복이고,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축복은 오늘 살펴볼 것인데

2) 두 번째는 '고난을 이겨내는 축복'이고 창49:23~24

3) 세번째는 '유업을 물려받는 축복' :25

4) 네 번째는 '탁월함의 축복'입니다. :26

◑1. 요셉의 첫번째 축복 (창19강 복습)

요셉이 받은 첫번째 축복은, 열매를 많이 맺는데,

'열매가 특별히 담장을 넘어가게 되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라는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집니다.

특별히 열매는, 한번 맺어지고 끝나는 열매가 아니라,

시절을 좇아 매 해마다 지속적으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주셨던 축복은,

과일 바구니가 아니라, 가지라 그랬죠.

계속 열매 맺게되는 가지였습니다. *일례로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같은 복..

그리고 이 가지가 하나님께 뿌리 박은 가지이기 때문에

계속 생명력을 가지고, 많은 열매를 맺게하는 그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이 '열매 맺는 축복'은, 담장을 넘어가는 축복이라고 했어요.

무슨 뜻이냐면, 우리의 한계를 넘어가는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또 세상은, 죄는.. 우리를 자꾸 한계 지으려고 해요.

그래서 어떤 담장 안에다 가두려고 하죠.

'너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거 이상 넘어가면 안 돼'

'너는 뭐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 이 안에 갇혀 있어야 돼'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를 담장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초기 인생이었잖아요.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을 때

원수들이, 형들을 통해서,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죠.

그래서 노예라는 신분으로 딱 제한 시켜 버립니다.

'너는 노예이기 때문에, 이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되고,

이 일을 넘어서는 일을 하면 안 되고..' 그러다가 어떻게 됩니까?

감옥으로 들어가죠. 더 작은 곳에 요셉을 가둬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감옥 밖으로 나오면 안되고,

네 인생은 이 감옥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되고,

하여간 많은 한계들을 가지고, 요셉의 인생을 담 안에 가두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어떻게 하십니까?

요셉으로 하여금 담을 넘어가게 하세요. 창49:22

요셉의 가지가 담을 넘어가서 열매 맺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담도, 요셉을 가둬둘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이와 동일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어떠한 담도 여러분을 가두지 못할 것이고

담을 뛰어 넘어서 열매 맺게되는..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열매 맺게되는..

그런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자 여기까지 지난 시간 복습이고,

오늘은 이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축복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2. 두번째 축복 : 고난을 이겨내는 축복

49:23~24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인생에 보면, 많은 원수들의 화살이 있었습니다. 그렇죠.

형들로부터 쏟아지는 질투의 화살도 있었고

보디발의 아내가 쏘았던 유혹의 화살, 또 누명을 씌웠죠. 누명의 화살.

보디발은 또 이것을 믿고 요셉을 억울하게 합니다.

그래서 정죄의 화살, 억울함의 화살.

또 술 맡은 관원은 그를 무시하죠. 그래서 '무시의 화살'

또 감옥에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껴지게 하는 '절망의 화살'까지

요셉의 인생을 보면, 요셉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원수들의 불화살이

계속 쏟아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원수의 화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삶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이런 원수의 화살, 활 쏘는 자들의 화살이 있습니다.

조금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것같은 사람들은, 질투의 화살을 맞습니다.

조금 말 좀 바르게 하고, 또릿또릿하고 이러면, 어렸을 때부터 질투의 화살이 날아옵니다.

친구들이 질투하고, 또 나중에 커서도 주변 사람들이 질투하고..

이런 질투의 화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으면 그런 화살을 안 맞느냐? 그렇지 않아요.

능력이 없으면 '무시의 화살'이 날아옵니다. 이것도 견디기 힘듭니다.

때로는 활쏘는 자가, 자기의 야망을 위해서 우리를 억울하게 희생시키려는..

우리를 이용해 먹는, 뒷통수치는.. 그런 억울함의 화살을 맞기도 하고

또 건강에 위기나, 사업 실패등으로 인해서, 절망의 화살을 맞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화살들을 맞게 됩니다. 그렇죠.

여러분의 등도 이렇게 영적으로 까보면, 수많은 화살이 박혀 있을 거에요.

원수가 쏘왔던 화살입니다. 우리 인생을 쓰러뜨리려고요.

▲자 그런데 요셉에게 주어졌던 두번째 축복의 내용은 뭐냐하면

이런 화살을 요셉도 참 많이 맞았어요.

화살을 안 맞는 것이 요셉의 축복은 아니었어요.

요셉은 우리만큼이나, 또는 우리 중에 어떤 사람보다도

더 기구한 인생을 살았죠. 수많은 원수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질투의 화살, 원망의 화살, 절망의 화살... 하여간 수많은 화살들을 맞았어요.

그런데 요셉에게 주셨던 두 번째 축복의 내용은 뭐냐면

이 화살가운데 요셉을 쓰러지지 않도록 하셨다는 거에요.

어떤 화살가운데도 요셉의 인생을 쓰러지지 않게 하셨다는 거에요.

그리고 단순히 쓰러지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서

24절에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단순히 쓰러지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 화살 속에서, 오히려 요셉의 활이 더욱 굳세워지고

그의 팔이 더욱 힘을 얻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원수가 수많은 화살을 요셉에게 쏘아댔는데,

요셉의 믿음은 어떤 축복을 가져왔냐면

단순히 요셉이 그 화살로부터 보호되는 축복일 뿐만이 아니라

이 화살을 통해서, 도리어 요셉의 활이 굳세어지고 강건해지는..

도리어 그의 팔이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축복을 얻었다는 거에요.

원수는, 요셉의 인생을 쓰러뜨리려고, 형들을 격동해서 질투화살을 쏘았고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서 유혹과 누명의 화살을 쏘았고

또 보디발을 통해서 절망의 화살을 쏘았고.. 이렇게 수많은 화살을 쏘왔지만

결국 요셉은 어떻게 됐습니까? 요셉의 인생이 원수의 화살에 무너졌습니까?

아니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무너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원수의 화살들로 인하여, 애굽의 총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습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24

이것이 요셉에게 주었던 두번째 축복의 내용인 줄 믿습니다.

▲요셉이 원수의 화살을 맞았는데

이 화살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도리어 굳세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24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이(힘이)

그를 도왔다는 거에요. 목자의 손이 함께 했다는 거에요.

요셉에게는 성숙한 믿음이 있었지요.

그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이 믿음이었는데.. 이 믿음에게는 주어지는 보상이 있습니다.

요셉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께 의탁되어 있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

여러분께도 주어지는 보상이 있는데, 그건 뭐냐하면

'그 하나님의 손이 실제로 여러분의 인생과 함께한다'는 거에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목자, 반석되신 그분의 손이

실제로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거에요.

그 손이 우리를 도우시는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요셉을 쓰러뜨리려고 비오듯이 쏟아지는 원수의 화살들 앞에서

하나님이 친히 요셉의 도움이 되셨습니다.

창39장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39:23 '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 복은 여러분, 요셉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의 내용이 뭐라고요?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는 거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사에 여러분을 형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요셉이 누렸던 축복이고

요셉뿐만 아니라, 요셉과 동일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되어 있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요셉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모든 사람이 다 원수의 화살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무수한 화살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에는 모함이 있고, 또 사람들의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또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있고, 어떨 때는 쓰러질 것 같은 때가 있고

고난이 있고, 절망이 있고, 슬픔도 있고, 낙심도 있고, 배신도 있고...

이런 것이 인생 아닙니까.

인생을 조금만 살아보면, 인생은 이런 고통과 아픔과 절망과 배신으로

그냥 가득 차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수가 계속 화살을 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 원수의 화살앞에서 사람들은 딱 두 종류로 갈라지게 되는데

첫번째 부류의 사람은,

그 원수의 화살때문에 완전히 쓰러지는 사람이 있고

두번째 부류는,

반대로 그 원수의 공격으로 인해서 더욱 더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이십니까?

모든 인생들이 다 원수의 화살을 맞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운명이고 한계입니다.

그런데 이 원수의 화살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그 화살을 맞을 때마다, 낙심하고 완전히 쓰러져버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화살로 인해,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사람입니까?

요셉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 요셉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원수의 화살로부터 요셉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그 화살을 통해서 요셉을 더욱더 강하고 성숙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어요.

이것은 요셉뿐만 아니라, 요셉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믿음이 있으십니까?

승리하는 열쇠는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에 있다는 거에요.

어떤 믿음?

'내 인생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원수의 화살은 여러분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을 더 강하게 하고, 여러분의 팔을 더 힘있게 하고

여러분의 활을 더 강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을 보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쓰러질 때 보면, 항상 마음이 먼저 쓰러져요.

마음이 먼저 절망한다거나, 쉽게 포기 한다거나, 약간의 고난에 그만둔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먼저 쓰러져요.

마음이 계속 굳게 버티고 서 있으면, 그 인생이 완전히 쓰러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드시 그 뒤에 기회가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힘이 주어져요.

그런데 사람이 쓰러질 때 보면, 항상 마음이 먼저 쓰러져요.

마음이 먼저 약해지고, 마음이 먼저 포기하고, 마음이 먼저 절망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쓰러져요.

그런데 요셉의 믿음은 어땠습니까? 그 요셉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요셉의 마음은, 한번도 쓰러져 본 적이 없어요.

요셉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자기 인생이 바닥을 치는 것 같아도

요셉이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뭐 넋을 놨다거나.. 뭐 이런 게 없어요.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서 완전히 소망이 없어진 것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그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간수장이 그를 좋게 봤던 거잖아요.

만약 요셉이 거기서 자기 마음이 완전히 쓰러져서 넋줄을 놨다면,

아마 간수장이 그를 눈여겨볼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돼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굉장히 해피보이 였던 것 같아요...

여러분, 왜 요셉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물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건데..

요셉 편에서 보면, 그의 믿음이에요. 믿음!

'아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고 계셔!

내 인생이 지금 눈에 보기에는 완전히 밑바닥까지 간 것 같고,

내 인생이 지금 눈에 보기에는 전혀 소망이 없는 것 같고,

내 인생이 지금 눈에 보기에는 죄수로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고 계셔!'

이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마음이 쓰러지지 않는다는 거에요.

사람의 마음이 왜 쓰러지겠어요?

'이제 다 끝났어!'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쓰러지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 열쇠 라는 거에요.

이것이 여러분, 하나님이 그 믿음의 사람을 보호하시는 메카니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보호하실 수가 없어요.

아무리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싶어도

'믿음'은 자기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까지 막 개입하시지 않으시죠.

선악과를 두신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실 때

반드시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우리의 믿음이에요.

▲자 그런데 여러분, 이 원수의 불화살에 쓰러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오히려 더 강해지는 거에요!

전장에서 싸우는 여러분 배테랑 군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군인이 여러 번의 격전지에서도 살아남았어요.

사선을 여러 번 뚫고 살아난 사람은, 눈빛이 다르고요, 굉장히 담대해집니다.

엄청나게 강해지는 거죠.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강하고 노련한 역전의 용사가 되는 거죠.

요셉이 수많은 화살을 맞으면서도, 살아남은 결과,

그는 역전의 배테랑 용사가 되었다는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주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수많은 원수의 화살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엄청나게 많은 원수의 화살을 맞았는데도.. 죽지 않은 거에요.

그랬는데도 계속 살아남고, 또 살아남고, 또 살아남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결국엔 요셉이 어떻게 되는거에요?

요셉의 활이 강하고, 그의 팔이 힘이 있어지는거죠.

전쟁에서 항상 이기는.. 그런 아주 큰 용사가 된 거죠.

이것이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언제 우리가 더 성숙하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더 큰 복을 누리게 되겠습니까?

원수의 화살을 계속 뚫고 가고, 뚫고 가고, 또 뚫고 돌파했을 때

결국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요셉과 똑같은 축복을 여러분들에게 주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난이 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나,

절망적인 일이 생겼을 때..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그것 가지고 그냥 일희일비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을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게 할 거에요.

그것이 여러분을 더 큰 축복의 자리로 가게 할 거에요.

그것이 요셉에게 주시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 요셉의 세번째 축복 : 유업을 이어가는 축복

49: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요셉은 그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즉 야곱 또는 그 위의 이삭, 아브라함.. 이들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다는 거에요. :25

요셉의 가지가 왜 담을 넘는.. 그의 한계를 넘어가는 복을 누렸는지 아십니까?

아비의 유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결국 아비의 유업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와 조상의 신앙 유업을 물려받으면 좋은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어떻게 이런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렇게 네 명의 이야기를 깊게 읽어보면,

요셉의 이야기는 좀 특별한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이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는지

과정이 쭉 기록돼 있어요. 신앙성숙의 여정이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장 그래프가 나와요.

그래서 그 여정 중간에 실수한 이야기, 거짓말, 속이고.. 이런 과정들이 나오죠.

야곱은 아주 그 대표적이죠. 믿음이 낮은 데서 높은 데까지 계속 올라갑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전혀 달라요.

등장할 때부터 완성형이에요.

그의 십대 때 짠 하고 등장하는데, 등장할 때부터 완성품이었어요.

거의 예수님의 형상이에요.

조상들처럼 미숙함에서 성숙함으로 변해가는 그런 과정이나 스토리가 전혀 없어요.

이 사람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됐는지..

어떻게 이런 믿음을 발휘하게 됐는지 과정이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아요.

즉 그 비결은, 조상들의 신앙유업을 이어받아서.. 그렇게 됐다는 겁니다.

요셉이 그냥 노예로 팔려가죠.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 가는데

노예로 팔려가서 어떻게 그런 믿음을 지키고,

어떻게 거기서 유혹을 이기는 그런 삶을 사는지.. 뭐 방황했다는 과정이 없어요.

그곳에서 이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원망하지 않아요. 절망하지도 않고, 아주 탁월한 믿음의 삶을 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셉에게 믿음의 비밀이 있었는데,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나니' :25

즉 가정에 내려오는 믿음의 유산, 신앙 유산을 받아서.. 요셉이 그렇게 되었다는 거죠.

요셉이 믿음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축복(신앙 유산을 상속받음)이었다는 거에요.

▲이 원리가 굉장히 분명합니다. 아비로부터 물려받는 유업이 있어요.

영적인 유업들이 있어요. 그 사람은 출발점이 달라요.

아브라함과 요셉을 비교해 보십시오.

또는 야곱하고 요셉을 비교해 보십시오. 분명히 출발점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자기 믿음 수준에서부터 출발했다면,

요셉은, 처음부터 굉장히 높은 곳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 야곱을 통해서 모태신앙의 문제점과 약점들에 대해 살펴보긴 했지만

모태신앙이 약점과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안에는 위대한 유업이 함께 있어서,

그 유업을 잘 상속하면, 엄청난 어드밴티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 예죠.

그래서 모태신앙들을 보면, 대부분 나타나는 성향 중에 하나가 뭐냐면

중간에 예수 믿고 돌아온 그런 성도들에게 있는, 드라마틱한 간증은 없어요.

그렇지만 신앙의 뚝심이 있어요.

즉 웬만큼 어려운 일이 생겨도, 거기에 막 흔들리거나, 하나님을 떠나거나,

부인하거나 이러지 않아요.

그런데 중간에 드라마틱하게 예수 믿고 돌아왔던 사람은요,

드라마틱하게 예수를 떠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많이 봤어요.

드라마틱하게 예수 믿었다고 막 간증했는데,

나중에 좀 어려운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드라마틱하게 예수를 부인하고 떠나더라구요. 쉽게 떠나요.

왜 그러냐면, 뿌리가 굉장히 얕은 거에요.

또는 큰 경험을 통해서 감동이 있었고

'와 하나님이 살아계시거나' 하는 경험을 했지만

뿌리가 깊게 내려간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드라마틱하게 부인하고 떠난다 말이에요.

그런데 모태신앙들은 좀 달라요. 이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거는 없어요.

근데 굉장히 끈끈해요.

웬만해서는 예수를 안 떠나요. 술 마시고 뭐 난장판치고 그러다가도

주일만 되면 교회에 나타나요. 술이 안 깼는데도.. 교회는 가요.

그 안에 보면 하여간 무슨 믿음이 있냐면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 계셔', '그래도 하나님은 내 인생을 붙잡고 계셔' 하는

믿음의 끈끈함 들이 있어요.

이게 여러분, 뭔지 아십니까? 믿음의 유업이에요.

이게 그냥 쉽게 생기는 게 아니에요. 부모의 끈끈한 신앙을 무려받은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성숙하고, 정말로 큰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신앙의 3대, 4대, 5대.. 이렇게 신실한 가문에서 자라났던 사람들이 많아요.

한국은 그렇게 긴긴 믿음의 가문들이 상대적으로 없지만,

미국이나 유럽이나 역사가 있는 나라에 가보면

7대, 10대 째 신실하게 자라온 사람 가운데.. 진짜 믿음의 거장들이 나옵니다.

그런 점들을 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모태 신앙으로 자라신 분들이

믿음의 거장들로 자라셨으면 좋겠어요. 요셉처럼요!

그런데 이것은 꼭 '육적인 아버지, 육적인 부모'가 아니고,

'영적인 아버지, 영적인 부모'로부터 유업을 물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목사님이나 영적 스승을 잘 만나면.. 큰 믿음의 유업을 받는다는 거죠.

그래서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자수성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밑에서, 또 위대한 종이 나오는 겁니다.

엘리야 아래서 엘리사가 나왔고,

예수님 아래서 12사도들이 나온 것이죠.

큰 교회 목회자 밑에서 자란 분들 가운데,

또 큰 교회를 이루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모양, 저모양을 듣고 배운 거죠.

그래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또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별로 믿음의 유업을 물려주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가, 영적인 부모, 즉 영적인 스승을 잘 만나면

정말 큰 믿음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안 믿는 가정에 태어났다고.. 자학,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믿음으로 살면서,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아버지 이새의 믿음도 조금 물려받았겠지만,

사무엘이라는 영적 거장 아래서.. 그가 많은 영적 지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기름부음 한 번 달랑 받고, 끝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게 (영적 부모, 영적 지도자가 육신의 부모보다)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사실 영적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육적인 부모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영적인 부모는 자신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잖아요.

영적인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믿음의 유산에 대해서

성경에 굉장히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나오미와 룻,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디모데

다 육신의 부모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적인 아비로부터 물려받았던 유업이 있잖아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불교 가정에 태어났다 해도 문제 없어요.

요셉은 안 될지 몰라도, 여호수아가 되면 되잖아요.

이삭은 못 될지 몰라도, 엘리사가 되면 되잖아요.

▲그렇다면 믿음의 유업들을 어떻게 물려받는가요?

여러분 아주 단순합니다.

육신의 부모가 믿음의 사람일 때, 어떻게 믿음을 물려받는 줄 아세요?

계속 함께 살아서 물려받는 거에요. 계속 함께 살면서 보고 배웁니다.

'그때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데, 부모님이 기도하면서 이렇게 대처하셨구나'

이것을 경험하면서, 집에서 자녀가 부모의 믿음을 물려받는 거거든요.

영적인 부모도 여러분 똑같습니다.

엘리사나 여호수아 얘기를 읽어보면, 한결같이 나오는 얘기가

'붙좇았더라' '언제나 함께 끝까지 따라다녔더라'

'룻은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강권해도, 끝까지 어머니를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붙좇은 것' 때문에, 믿음의 유업을 물려받는 거예요.

왜냐면 거기서 보고 들으면서, 배우는 거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스승을 계속 뒤쫓아가서, 그와 동행하면서, 그를 수종들면서

그의 신앙과 믿음의 유산을 목격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거예요.

여호수아도, 모세를 끝까지 따라다녔더니

모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대한 것들을

그가 다 보고 듣고 경험한 거 아니에요.

이것이 여러분, 믿음의 유업을 물려받는 방법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유업을 물려받기를 원한다면, 이들로부터 배우십시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도 있고

영적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원리는 똑같습니다.

계속 보고, 듣고, 함께 경험하는 거에요.

내 앞서 갔던 믿음의 선배들, 내 앞서 갔던 믿음의 아버지들,

그 분들의 삶을 붙좇으면서 보는 거예요.

'아~ 저 때는 저렇게 믿음을 발휘하는 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저렇게 역사하시는구나!'

계속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우리의 믿음이 되고,

내 믿음의 DNA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 육신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물려받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야곱의 아들이 몇 명이었어요? 12 명이었잖아요.

그런데 창49장에 보면, 야곱이 12아들을 하나씩 축복하는데,

'네 아비의 하나님으로 말미암느니라' 이 얘기는 요셉에게 딱 한 번 나옵니다.

다른 11명의 아들들은 '네 아비의 하나님' 이란 표현이 없어요.

그리고 유다를 제외하면, 좋은 말도 별로 없어요.

뭐에요? 비록 12 명의 육신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믿음의 유업으로 물려받은 사람은 한 두 명이었다는 거에요.

똑같은 자리에 여러 명이 같이 있어도,

똑같은 자리에 수백 명이 함께 있어도,

그 유업을 자동적으로 다 물려받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12 명의 아들이 있지만, 한 명 요셉만 물려받았잖아요. 왜 그랬을 것 같아요?

나머지 10명의 아들들은 아버지 속 썩였잖아요...

이삭도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영적인 유업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죠.

여러분,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분으로부터 영적인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겠어요?

부모님하고도 마찬가지에요.

부모님 생각하면 막 이가 갈리는데, 그 부모님의 영적 유산이 상속되겠나요?

그러면 오히려 죄업이 상속될 거예요.

육신의 부모든지, 영적인 부모든지

어쨌거나 여러분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고, 따라가고 싶고..

그래야 믿음의 유업이 흘러가지요...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 교회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뭐냐면

담임목사님하고의 관계에요.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잘잘못을 떠나서, 교회에서 목사님하고 원수지면..

믿음의 유업이 하나도 안 흘러간다는 거죠.

그래서 영적 지도자를 향해서 항상 사랑과 존경이 있어야 돼요.

사랑과 존경이 없으면, 절대로 영적인 유업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나는 저분으로부터 그걸 물려받고 싶어' 하는

그런 영적 아버지가 꼭 한 명일 필요는 없습니다.

두 명 세 명이라도 괜찮아요.

하여간 중요한 것은 뭐냐면, 사랑하고 존경하고 붙좇는 거에요.

그 사람이 완전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사람이 어떻게 완전 하겠어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에요. 어차피 다 부족한 거고, 어차피 실수도 많은 거고,

연약한 점도 있는 거고...

연약한 게 있으면, 반대로 잘하는 것도 있는 거고... 이런 게 사람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분의 연약한 점을 계속 보기 시작하잖아요?

그러면 믿음의 유업으로 물려받을 게 하나도 없게 돼요.

근데 그 사람이 98개가 부족해도, 1~2개 잘하는 거 있거든요.

그러면 그거를 리스펙트 하고, 존경하고

'아 나도 저런 거 갖고 싶어!' 이 태도가 있을 때

그게 여러분에게 믿음의 유업으로 물려지는 거죠.

그렇지 않고, 뭐 그 분의 못하는 거만 계속 카운트하고 있으면,

미안하지만 그 분의 못하는 게 여러분한테 믿음의 유업으로 내려갈 겁니다.

예를 들면, 육신의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아버지의 단점, 약점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자기가 보고, 자라고, 묵상한 게 그거 밖에 없잖아요...

'아버지가 나한테 왜 힘들게 하지?' 맨날 그것만 묵상하다가.. 자연스레 배운거죠.

사람은 뭐를 물려받게 되냐 하면,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물려받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영적/육적 아버지들이

혹시 참 부족하더라도, 그 부족한 것은 긍휼과 용서의 마음으로 넘기고

그 가운데 좋은 것들,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들..

그런 것들을 계속 보고, 존경하고, 그러면

그거가 나한테 믿음의 유업으로 내려오는 거지요.

뭐가 믿음의 유업이 된다고요?

보고, 듣고, 경험한 게 믿음의 유업이 되는 거예요.

▲'보는 것'은, 여러분이 선택적으로 보는 거에요.

여러분의 셀리더, 사역자들, 담임목사, 그 누구라도

24시간 그의 삶을 관찰하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어떻게 제가 항상 좋은 것만 보이겠어요. 예수님도 아닌데.

어떤 거는 부족한 것도 있고, 잘못하는 것도 있고.. 그렇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택하는 거예요. 내가 목사님에게서 뭐를 볼 것인가?

'이걸 볼 건가, 저걸 본 건가?'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본 게, 결국 여러분의 유업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믿음의 유업들을 취하십시오.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그 영성을 물려받듯이,

여호수아가 모세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듯이,

믿음의 유업들을 취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요셉의 네 번째 축복은 <탁월함의 축복>이었습니다.

49: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요셉의 인생에는 탁월함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중에서도 탁월했고, 노예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도 탁월했고

감옥에 있을 때도 탁월했습니다.

그 탁월함으로 인해서, 총리 자리에까지 올라가죠.

그런데 이 탁월함이, 여러분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41:15~16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여러분 요셉의 탁월함은, 하나님이 주신 거에요.

기억하십시오. 요셉에게는 어떤 탁월함이 있었냐면

성실함의 탁월함은 분명히 있었어요.

무슨 일을 맡기든지간에,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실하게 자기 일처럼 하는 탁월함은 요셉에게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결과의 탁월함은,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과정에 탁월함은 분명히 요셉에게 있었어요.

뭐 이것까지 하나님 손에 맡길 수는 없어요.

그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요구하셨던 거예요.

작은 일을 맡기던, 큰 일을 맡기던, 정말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하고,

감옥에서 무슨 일을 맡더라도, 자기가 간수인 것처럼,

보디발의 집에서 무슨 일을 맡아도,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정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의 성실함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결과의 탁월함은, 그건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저는 동일하게 요셉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결과의 탁월함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과정에서 정말 요셉의 믿음으로 성실하게 해보세요.

'이 일을 나에게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일을 맡겨도 '에이, 내가 이런 취급 받고, 이런 거 맡으려고

대학 나온 줄 알아?' 이런 불만스런 얘기 하지 말고요.

내 인생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고요,

그럼 그 일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거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으면

그 태도를 가지고 일 하세요.

아무리 작은 일이든, 사람이 무시받는 일이든, 어떤 일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으면.. 그것으로 일하세요.

그게 요셉의 믿음의 표현이었어요.

그랬을 때 결과는 누가 책임지시나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리셨어요.

저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리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요셉의 믿음, 그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결국 하나님께서 탁월하게 하실 거예요.

여러분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뛰어나게 하실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 위에 서게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