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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장 족보에 나타난 동행의 삶

LNCK 2023. 8. 28. 05:48

https://matsy.tistory.com/7172875

◈창5장 족보에 나타난 동행의 삶                          창5:1‐32                     ☞ 창세기

 

창세기 5장은 보시다시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라인, 셋의 족보입니다.

이 족보의 정점에 있는 에녹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동행의 삶에 대해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이 족보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메시지를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죽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후예들이 멋있는 모습으로 성을 쌓고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가며

자기에게 해를 입히는 자들을 살해하며

‘난 절대 죽을 수 없어’라고 외치며 사는 동안

그들(셋의 후손)은 모두 ‘죽었더라‘로 자신들의 삶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도의 죽음의 삶, 비움의 삶은

생명을 낳게 되고,

그렇게 해산을 하는 여자들, 즉 교회들만이 구원을 얻은 참 성도라는 것을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통해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한 성도의 죽음의 삶은 사실 죄로 인해 들어온 사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죽음의 삶, 비움의 삶,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이 저주의 땅에 존재하는 모든 육신은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안 죽으려고 악을 쓰다가 죽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옛사람을 죽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며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간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지금 이 땅에서 옛 사람을 죽여 가는 삶을, 열심히 추구하다가 가는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지난주에 공부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라는 구절이 지닌

무서운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온통 영원한 사망을 향한 죽음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옛 사람의 죽음’을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야말로

영원한 죽음을 이기고 (에녹처럼) 승천을 하는 삶이라는 것이

오늘 본문인 창세기 5장의 족보 속에

에녹의 이야기로 설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들어 있는 에녹의 승천은

단순히 ‘믿음이 좋은 사람은 육신의 죽음도 통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독려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에녹의 승천사건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의 사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건짐을 받게 될 영생의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 것임을 교회에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 주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5장의 족보가 담고 있는 또 다른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선물 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하나님의 일에 관해

한 마디로 답을 해 주셨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죠. :22)

 

(요6:28‐29)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인 예수를 믿는 일이

오늘 족보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공부하시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가

더욱 선명해 지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세요.

 

 

(창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아담)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의 라인, ’여자의 후손‘의 라인을 시작하는 족보에

또 다시 창세기 1장의 언어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살펴 볼 중요한 어구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어구입니다. 창1:28

 

하나님은 창1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생명력=바라크’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다 죽음으로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복은 인간들에게 철회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이 철회되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계획하신 것을 외부의 방해로 말미암아 철회를 하셔야 한다는 것은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당신께서 하신 창세기 1장의 그 축복의 약속을

택한 무리 속에서 지켜 가시고,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게 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반드시 이루어 내십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창세기 1장의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과 아벨과 셋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버린 저주받을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에 의해 택해지는 셋의 후손들의 족보(본문 창5:)를 시작하면서

창세기 1장의 그 축복의 이야기를 반복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대로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흘러가고야 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유혹이나, 하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오롯이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 그러한 복의 선언이 창세기 9장에도 나옵니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악들을 홍수로 쓸어버리시고

그 세상에서 선택을 받아 건져진 노아와 노아의 아들들에게

또 다시 창1장의 그 복을 다시 약속하십니다. 1:28

 

뿐만 아닙니다. 그 복은 아브라함에게도 주어집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노아의 때나 아브라함의 때나, 공히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부른 아브라함조차도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았을 정도이니까 그 세상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악한 세상은 하나님의 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마다 당신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당신이 선택하신 어떠한 사람들에게 ‘복’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성경은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5:2절의 ‘복’ 이야기는

모두 다 죽어야 할 죄악 된 세상 속에서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것처럼

선택받은 어떤 무리를 향한 ‘복의 회복‘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의 출발은 항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을 잘 읽어보시면

그 ‘복’은 항상 아버지로부터 장자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구약의 여러 곳에 아버지들이 죽기 전에 장자인 아들에게

축복을 해 주는 장면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 그 장자의 축복을 훔친 것입니다.

그것은 장자들의 총회, 즉 교회를 상징하는 장자들에게

아버지로부터 복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은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게 되고,

그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그 ‘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담은

영적인 의미의 ‘장자’들에게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어진 그 하나님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지요.

그게 누가복음 3장의 족보입니다.

 

▲본문의 창5장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를 잘 연결시켜 보세요.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예수께로 이어진 그 복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최초로 아담에게 부어주셨던 그 복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진 그 복은

이 땅의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죄 속에 있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역사적 객관적 동의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해 주신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해 주셨던 복의 언약처럼‐

바로 그 ‘복‘인 것입니다.

 

바로 그 것을 설명하기 위해 본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5:2

라는 구절이, 성경에 반복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예수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누가복음 3장의 족보가 창세기 5장의 족보를 모두 포함하고

’하나님‘으로 끝이 나는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은, 아버지로부터

장자들, 교회들에게 전해진 그 복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 바라크‘가 뭐라고 했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하나님의 생명력이라 했습니다.

 

(요6: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여기서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말은

아들에게 생명이 없었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그 하나님의 생명인 ‘복, 영원한 생명’의 전달자로서의

권한을 주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 안에 ‘생명=바라크=복’이 있다고 성경이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렇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은

하나님의 생명, 즉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복, 영생의 전달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영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로부터 장자들에게 복이 전해지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통해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족보에서도 보았듯이

그 ‘복’을 대대로 전해준 아버지들을 계속 따라 올라가 보면

그 맨 위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의 진짜 아버지, 오리지널 아버지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택한 자들, 즉 영적 장자들인 너희들에게 축복을 해준 너희들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성도들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구약에서 아버지들이 장자에게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가?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그냥 관념적으로 던지시지 않고

성경을 통해 이렇게 선명하게 족보로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의 ‘구속사를 담은 족보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장자인 우리를 축복하신 진짜 아버지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족보들을 통해 우리 성도들과 당신이 어떠한 관계인지

정확한 관계규명을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이 단지 관념적이 아닌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임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봐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가 진짜로 역사 속에서

인간의 족보 속에서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니?’

하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궁극적인 하나님의 언약이 뭡니까?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 뭡니까?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다른 말로

아버지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식들을 창조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부자지간으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담고 있는 궁극적인 내용입니다.

 

(고후6:16)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계21:3참조

 

18 ‘그래서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부터 흐르는 하나님의 언약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이 창세기 5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서 실체로,

역사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이 우주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버지 자리를 회복하시기 위해

만들어 가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 우주의 역사의 목적까지도 알아버린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안 우리 자녀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식은 반드시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우리 세 아들들을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쳐 주지 않은 저만의 비밀들이 때로 우리 아이들에게서 문득 문득 나올 때

참 신기합니다. 기침 소리, 걸음걸이, 어렸을 때의 습관, 버릇 이런 것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서 보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아버지를 닮는 삶을 (성령의 인도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이 굳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이렇게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밝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아버지의 성품과 아버지의 공유적 속성들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들이 피조물들에게 보여지고 나타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한다고 했지요?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들을 닮아가며 살아내는 삶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 지를 알아야 그 분을 닮지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이, 이 땅에서 성도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라면

우리는 열심히 그 분을 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범죄를 지적하거나, 그들에게 경고를 하거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서 ‘우리 똑바로 살자, 범죄 하지 말자’라는 말과 함께

늘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호6:3)

 

왜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까? 그 분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녀인 우리가 그 분을 잘 배우고 알아 그 분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닮음의 삶이 우리에게서 죄를 몰아내고 거룩한 자로 지어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 구절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