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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그의 후예

LNCK 2023. 8. 28. 19:23

 

◈가인과 그의 후예       창4:1~26         2020.01.06.녹취   창세기

 

※창4장을 간력하게 "전부" 다 커버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서너 구절만 보니까 숲을 못 보는데,

창4장의 전체 숲을 보게 하는 설교입니다.

 

◑도입

 

우리는 지난 시간 창3장 본문을 통하여, 죄가 어떻게 이 세상에,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고,

그 죄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높은 위치에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누리고, 하나님을 드러내던

그 높은 위치에 있었던 자(아담)를

 

완전히 땅에 떨어뜨리고, 저 아래로 떨어뜨려버린..

그 죄에 대하여서,

그렇게 타락한 인간에 대하여 살펴보았고요.

 

그런 사람에게, 희미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복음을 허락하셨다.. 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죽옷

 

▲오늘 본문 창4장은,

이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히매, 하나님의 영광을 이르지 못하게 되었어요. 롬3:23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 가운데 하나님께서 비춰주신 그 복음의 빛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두 부류의 사람으로 갈라진다.. 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매 하나님의 영광을 이르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가 외부로부터 들어와 모든 사람을 떨어뜨렸는데(타락시켰는데),

 

그 떨어진 모든 사람들 가운데, 외부로부터 들어온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부류의 사람으로 갈라지는데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 (창4장)

-셋과 그의 후손들 (창5장)

 

그러면 이제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두 부류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창4장, <가인과 그 후예들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인과 그 후예들에게 없는 것

 

▲1. 첫 번째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 없는 예배자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가인이 그 대표적인 예였죠.

 

창4: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3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 말로 '세월이 지났다' 하니까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이 단어는, 많은 시간들이 쌓인 그 '끝'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생들이 자기의 삶을 하나님 앞에 계수하게 되는 '심판의 때'를 말하죠.

 

가인도 하나님 앞에서 한평생 살고 있고,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가운데 있고,

아벨도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았던 삶에 대한 계수, 심판을 하실 때가 있는데

 

지금 '세월이 지난 후'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살았던 삶에 대한 심판을 하실 때에..' 이런 뜻입니다.

 

그때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으나' :4

 

모든 인생은 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와서 이런 공예배를 드리고,

-또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롬12:1

 

모든 인류는 사실 하나님 앞에 예배자예요.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계수 count 할 때가 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벨과 그의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셨는데

5절을 보니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많은 경우에 '제물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더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은

그 제물 앞에 있는 사람, 그 존재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신' 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가인도..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5

 

왜 하나님은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피 있는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율법에 보면, 소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곡물로 드리는 제사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물의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존재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돼요.

 

△그래서 후대에 히브리서 기자는

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지'를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이유를.. 위 본문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가인을 받지 않으셨던 이유는

'가인의 제물'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가인의 존재 안에 뭐가 없는 거예요? 믿음이 없었다 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이 구절의 뜻은 '하나님이 아벨의 예물을 받으심으로써, 그의 믿음과 제사의 진정성을

증명하셨다' 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가인은 받지 않으심으로써, 증명하신 거죠.

(그 예물이 양이냐, 곡식이냐? .. 그걸 따지신 것은 아닙니다)

 

자, 그러면 '믿음'이란 또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간절히, 신실하게 의지하고 붙잡는 것인데요.

이 시간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

내가 자체 생산하는 믿음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이 주셔야 ..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자, 구원받는 사람, 복음으로 은혜를 누리는 사람,

죄 가운데 있다가 복음으로 복음 안에 들어오게 되는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것을 선물로 받는데,

그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 하나님께서 주신 이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이 믿음이 우리 삶속에서 어떻게 됩니까?

 

살아 역사하는 믿음으로 활동합니다.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붙들게 되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가 붙드는 믿음보다, 먼저 선행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구원 받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구원 받는 믿음' 입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믿음

 

지금 아벨의 계열에는 있는데, 가인의 계열에는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 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살아있는) 믿음'이

가인에게는 없다.. 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가 갈라지는데, 이 인류 안에는

-아벨과 같은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가 있는가 하면,

-가인과 같이 믿음 없는 삶으로 하나님 앞에 사는..

 

그러니까 여기서도 가인과 아벨을, 다 '예배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가인도 결국 예배자였고, (예배를 안 드린 게 아니죠)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수(심판)를 할 때

-가인은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 이고

-아벨도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 입니다.

 

우리 각자도, '하나님 앞에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 심판할 날이 올 것이고

(예배는 꼭 공예배만 뜻하지 않고, 우리 삶도 산 예배라고 했습니다. 롬12:1)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어떤 삶으로 예배를 드렸는가?'

그게 심판받는 날에 드러나게 될 텐데,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가인과 그 후손의 첫 번째 특징은, '믿음 없는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2. 가인 계열의 두 번째 특징은 <사랑 없는 살인자가 되었다> 입니다.

 

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은 죄 가운데 빠진 아담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죠.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주 심오하고 뼈아픈 질문이죠.

 

죄 가운데 빠져버린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하나가 되었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나를 누리기 위해 창조된 나의 사랑, 나를 사랑하는 피조물인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더 뼈아픈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네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은 넓게는 율법이고, 좁게는 십계명이고,

그것을 다시 더 좁히면 뭐가 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존재로 아담을 지으셨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인의 계열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사랑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웃(형제) 사랑을 버려버리고,

미움으로 말미암아 아우를 죽이는 첫 번째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그 아래 라멕도 보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됩니다.

 

창3장에서 죄가 들어오고 난 이후에 *타락 이후에

바로 4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미움이 실제가 되어서, 이제 드디어 누군가를 죽여버린 것이죠.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자기 삶의 목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창4장에서, 가인과 가인의 계열은

하나님께 믿음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크고 첫째 되는 계명

그들에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거예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 없는 것을 지금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그것도 자기 친형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죽여버린..

그런 '사랑을 버린' 바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 없는 살인자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사람을 꼭 처죽여야지만 살인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랑을 버린 살인자가 되어진다'는 것이죠.

 

꼭 간음을 실행해야지만 간음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것이요.' 처럼,

형제를 칼로 찌르지 아니하여도, 미워하고 있으면 그게 살인이라고 말했죠.

 

그러니까 가인 계열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런 살인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3. 또 가인계열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는데

세 번째는 바로 <회개 없는 유랑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4:10~12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죄에 대해서 보응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러나 한번 살펴보십시오. 가인이 행한 행동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죄의 벌이 상응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보면 그렇겠죠.

가인은 이제부터, 하나님 없이 유리하면서 계속 삶을 살아야 되니까요.

 

그러나 사실 '피에는 피'입니다.

사실 가인이 받아야 될 심판은,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그의 피도 흘려야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마땅히 하셔야 될 보응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받은 벌은, 그것보다 훨씬 가벼운 벌을 받은 것입니다.

'밭을 갈아도 땅이 그 효력을 내지 아니하고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마땅히 주셔야 될 그 벌을

어느 정도 감해 주셨다는 뜻이요.

그리고 벌을 완전히 주시지 않았다.. 라는 뜻입니다. 일단 살려주셨으니까요.

 

가인은 그 순간 즉결처분 받아야 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네가 네 동생을 죽였지?' '예!' 하는 순간

'너도 죽어야 돼!' 라며, 거기서 바로 하나님께 사형을 받아야 될 존재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어요.

바로 죽이지 않으시고, 유리하면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13절 읽어볼까요?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지금 가인이 뭐가 무겁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죄가 무겁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 무겁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후자죠. 벌이 무겁대요. 여러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자기는 지금 인류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받은 아벨,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린 자를,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는 이유 때문에

사실 하나님을 향한 진노와 분노 때문에, 그가 사람(아벨)을 죽여놓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셨다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뭐라고 말합니까? '내 죄의 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무게를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하여서 회개할 줄도 모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의 후예들의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지금 가인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유리하는 자가 돼요.

그때 가인이 두려워하잖아요.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좀 혼동을 해요.

'어? 아담과 하와가 결혼해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도대체 여기 누가 있었기에, 가인을 죽인다는 거지?'

 

여러분, 성경의 역사,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든 인류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다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관련된 것을 우리에게 압축하여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만 낳았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그 자녀의 자손들이 결혼하고 하면서, 인류들이 번성하고 있었겠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4~5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두 부류를 설명하시기 위해

그 중에 가인과 아벨을 대표로 선택하셔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제 그가 Cain 유리하고 방황하는데

내가 하나님께 쫓겨서 나가니까, '누가 나를 죽이면 어떡합니까?'

지금 그거 겁내고 있는 거예요. 자기는 죽여놓고...

내 죄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모습이, 자기 대를 넘어서 자기 후손에게서

어떤 뻔뻔함으로 나타나는지 한번 읽어볼까요?

 

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가인의 5대 후손입니다.

가인-에녹-이랏-므후야엘-므드사엘-라멕 :17~18

 

무슨 말입니까? 가인이 회개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

'하나님, 죄벌이 너무 높습니다. 제가 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표를 줘서, 너를 죽지 않도록 내가 보호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을 하시면서

 

'만약에 가인을 죽이면 벌을 7배나 받을 거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장하셨단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큰 자비를 베풀어 주셨어요.

살인자였던 가인에게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의 후예들, 5대 후손인 라멕은

가인과 똑같이 자기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기가 분해서 누군가를 죽였어요.

그것도 소년을 죽였대요.

창창한 나이에 있는 사람을 죽였단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벌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해야 되고,

자기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생각해야 되는데,

 

'내가 죽이긴 했지만, 나는 가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가인이 살인자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죽이면 7배로 벌을 주겠다고 하셨으니,

 

만약에 나를 죽이면, 만약에 누가 나를 건드렸다 하면

벌이 77배가 될 거야' 하며 뻔뻔해져 있는,

정말로 회개할 줄 모르는, 완전히 마음이 무뎌져 버리고,

완전히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버린 라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23~24

 

여러분,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셔야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에, 우리는 사실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 오늘도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정말로 성숙하고, 성장하고, 정말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자란다,

바르게 가고 있다.. 라는 것의 증거는

 

'내가 하나님 앞에 뭔가 내세울 게 있다'라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가면 갈수록, 내 인생을 살면 살수록

나는 정말 죄인 중에 괴수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오늘도 십자가 보혈이 아니면 나는 설 수 없습니다.. 라는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눈물어린 마음이 되는 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가인과 이 가인의 계열인 후손들은

회개를 허락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개가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하고,

그 죄로 말미암아서 주어진 벌도 겁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수를 해서 우리 인생이 벌을 받든지

아니면 정말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든지 간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응하세요.

 

그런데 그 '보응'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면 다시는 그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어떤 섭리적인 조치이고요.

그리고 우리 자신이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에요.

 

그런데 '회개가 없다?' 그 인생은 정말로 소망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언제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합니다.

고의로 잘못했든, 실수로 잘못했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보응이 오게 됩니다.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요.

누군가의 보복과, 혹은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때 그걸 달게 받아야 됩니다.

실수로 잘못했던, 아니면 정말로 잘못했던지 간에,

죄의 벌이 내게 오면

그 죄의 벌을 달게 받아야 돼요.

 

그런데 그걸 받지 않고 '그 죄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내가 지은 죄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은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이건 '회개 없는 인생'의 정말 소망 없는 그 끝장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라멕은 어떻습니까?

'내 건드려봐라 벌이 77배다!' 오히려 떵떵거립니다.

 

'회개 없는 인생' 그것이 바로 가인과,

그의 후예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4. 마지막 네번째 특징은, <하나님 없는 나라를 만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4:16~17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덴의 동쪽으로만 갔다'... 하나님을 점점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 앞을 떠났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전부였습니다.

에덴 동산에 계셨던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였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보호가 되시고, 그분이 우리의 풍요이시요,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시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떠났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는 인생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만약에 자식이 뭘 정말 크게 잘못했어요. 매를 칩니다.

그리고 집에서 쫓아내요. '나가!'

부모가 자식을 잠깐 쫓아내고 난 이후에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신 차리라는 거예요.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말하고 돌아오라는 거예요.

이걸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17절을 보십시오. 아내와 동침했어요. 임신하여서 에녹을 낳았습니다.

*창5장에 나오는, 셋의 후손 에녹과 구분 요. 동명이인

 

가인이 성을 쌓았대요. 그러면서 그 성 이름을 '에녹'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이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요새시요'

그냥 단순한 노래가 아니고,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가 성을 쌓는 걸 사실 싫어하십니다.

내 스펙이라는 성, 나의 물질이라는 성, castle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성, 이런 성을 쌓는 것보다..

 

나를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성'을 기뻐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들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멀리 멀리 떠나보니까.. 이거 살기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뭘 짓는 거예요?

나를 보호할 성을 짓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성을 지었어요. 안전이 보장되네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20~22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성을 지어서 안전이 보장되니까, 이제 가축을 치기 시작합니다. :20

보호가 되니까, 그 보호받는 환경속에서

'좀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풍요를 위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풍요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부요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저 받아 먹는 곳이었어요.

 

사실 셋의 후손들이 가축을 치며 장막에 거주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 나그네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가축을 치면서 장막에 거주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스스로 성을 쌓고 안전을 구축하고 나니까

가인과 그 후예들은,

나그네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풍요를 위해서, 하나님 없는 풍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자 이제 풍요함이 조금 해결된 것 같네요.

그러니까 21절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수금과 퉁소.. 즉 악기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좋은 도구이지만,

하나님께 들여 마땅할 그 노래와 춤, 그 모든 악기와 음악문화를

지금 자기들의 즐길거리, 자기들의 쾌락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노래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뭐 이상한 내용이 들어가는 게 많아요.

그저 쾌락, 그냥 잠시 누릴 나의 어떤 기쁨, 이런 가사들이 들어있어요.

 

가인의 후예들은, 이제 성으로 보호가 되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서 문화를 만들고 있고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할 노래와 춤을

자기 자신들의 쾌락을 위하여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문화를 만들고 나니 이제 무엇을 추구하게 되는가요?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특별히 여기서 '기구'는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더 많은 초점은 무엇이냐면, '무기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이제 드디어 정복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더 뺏고자하고,

내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그런 욕심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김 받은 자가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다 보니까

'이제 그들은 하나님 없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라는 것을 보게 되고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게 돼요.

 

하나님이 동쪽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16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보호받고 있음을 자기가 누리고 있고,

-하나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풍요하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없어도 내게 (음악적)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없어도 내가 (기계로) 넓어질 수 있고 커질 수 있다는...

세속주의적 나라가 그들에게 만들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정리하면, 이 세상에는 딱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지만

복음때문에, 복음안에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누어지는데,

 

복음 안에 있지 않은 자의 대명사가 가인이며 또한 그의 후예들인데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믿음 없는 예배자'가 되고

 

-사랑이 없어서 '사랑 없는 살인자'가 되고

 

-회개가 없어서 '회개 없는 유랑자'가 되며

 

-'하나님이 없어도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의 원인이 뭐라고요? 이렇게 인생이 무너진 이유가 뭐라고요?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어요.

-죄 때문이기도 하고

-복음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거죠.

우리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사는가

-복음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본문에 나오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이 죄악 세상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며,

또한 셋의 후손으로서의 사명을 계속 이어내려 가야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