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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맺은 언약

LNCK 2023. 8. 30. 08:25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1883299

◈노아와 맺은 언약     창9:8~17   2013.03.03.              ☞창세기 설교모음

※언약은 '은혜언약'이며, 그 5가지 점진적 내용을 간략하게 잘 설명합니다.

 

서론

성경을 이해하려면 나무도 알아야 되고 숲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책별로 자세한 내용도 알아야 되지만 
성경을 관통하는 대원리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성경의 자세한 내용만 알고 
성경의 일관된 대원리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66권을 관통하고 있는 대원리로서의 ‘숲’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1. 성경의 대원리는 ‘은혜 언약’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근거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겠다는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의 창시자(Initiator)는 성부 하나님이시고 
은혜 언약의 중보자(Mediator)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은혜 언약의 집행자(Executor)는 성령님이십니다. 

은혜 언약의 목적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다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면 하나님은 실패자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인류를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건져 영생을 주시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유일한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역사하셔서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 언약을 받게 된 사람은 중생의 경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복을 가리켜 바로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은 은혜 언약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내에 은혜 언약의 사상을 반대하는 두부류의 집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주의이고,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입니다.     주1)

▲구약은 영어로 ‘Old Testament’이고 신약은 ‘New Testament’입니다. 
‘Testament’는 언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언약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 두 종류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를 증거하는 책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구약은 은혜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와 예표로 증거하는 책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서 증거하는 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과 신약 이렇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까? 
구약과 신약은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은혜 언약을 다른 집행방법(Administration)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구약은 은혜 언약을 그림자로 집행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자신도 죄가 있기 때문에 속죄일에 제사를 드릴 때는 
자기의 죄를 먼저 속죄하고 다른 백성들의 죄를 속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려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효과가 1년이었기 때문에 매년 제사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 대상은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본인이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올리셨기 때문에 
매년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죄사함의 효과도 1년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고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할 것 없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 모두에게 효과가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은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에 신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은혜 언약의 집행방법에 있어서 그림자이고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에 
실체이고 더 완전한 신약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소설을 줘봐야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봅니다. 

완전한 계시를 주신 신약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데 
구약시대에 완전한 계시를 주셨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 구약시대 ‘은혜 언약’의 점진적 계시

구약시대에는 중요한 언약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 언약은 각각 다른 언약이 아니고 
한 가지 은혜 언약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 언약입니다. 
창3:15절에 보면 앞으로 오실 은혜 언약의 중보자를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인류를 죄악에 빠뜨려 장악하고 있는 사단 
즉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노아 언약입니다. 
창9:16절이 노아 언약의 핵심인데, 창6:18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창 6:18).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 9:16). 

이것이 하나님이 맺으신 영원한 은혜 언약인 것입니다. 
노아 언약이 은혜 언약의 어떤 측면을 계시해주고 있는지는 
뒷부분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셋째,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창세기 12장, 15장, 17장에 그 내용이 계시되어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창세기 12장 2~3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은혜 언약의 중보자가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땅에 모든 족속 즉, 이방인들도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넷째, 모세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모세 언약의 핵심입니다. 십계명은 율법 가운데서 도덕법이라고 하는데 
도덕법은 은혜 언약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 세 가지를 합니다. 

1) 인간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죄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계명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2) 자신이 죄인이라고 깨달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으므로 
구원자 즉,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몽학선생’의 기능이라고 하는데 
몽학선생은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을 때려서라도 선생님 앞에 갖다 놓는 사람을 말합니다. 

3) 셋째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기본 윤리로서 역할을 합니다.

모세 언약은 은혜 언약을 폐지하는 것도 아니고 은혜 언약과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도덕법은 우리에게 은혜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17).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430년 후의 모세언약이 없앨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세대주의자들은 율법과 하나님의 은혜를 대립되는 개념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것입니다.

다섯째, 다윗 언약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하나님이 다윗에게 다윗의 후손 가운데 은혜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나오실 것이고 
예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영원한 왕이 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다섯 가지 언약이 있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언약이 아닙니다. 
한 은혜 언약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계시해주는 것입니다. 

은혜 언약의 중보자가 '여자의 후손'이 될 것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이며 
'다윗의 후손'이 될 것이라고 점점 범위를 좁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노아 언약인데 
노아 언약은 은혜 언약의 어떤 측면을 말씀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3. 노아 언약의 의미

노아 언약은 다른 말로 하면 보존 언약(Covenant of Preservation) 혹은 
자연 언약(Covenant of Nature)이라고도 불립니다. 노아 언약의 내용은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약속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22).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정결한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자 그 제사를 흠향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현상이 규칙적으로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해가 뜨지 않고 계속 밤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온이 계속 떨어져 모두 얼어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반드시 아침이 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구 증가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노아에게 함과 셈과 야벳 이렇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방주에 1년 동안 있다가 몸이 약해져서 세 아들이 다 죽고 
며느리도 덩달아 병이 걸려죽고 노아와 노아의 아내도 충격을 받아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가족들에게 복을 주셔서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음식 공급에 대한 약속입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 9:3). 
인구가 증가하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채소와 고기를 먹을 것으로 주셨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고 채소만 먹어야 된다고 하는데 
창9:3절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고기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넷째, 인간 생명보호의 약속입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 9:6).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사람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길거리에 나가서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노아 덕분입니다. 
대한민국의 판사들은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려야 됩니다. 
그것을 봐줄 권한이 판사에게 있지 않습니다. 

물론 실수로 남을 죽인 사람은 살려줄 수도 있지만 고의로 죽였다면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보호의 약속입니다.

▲다섯째, 홍수 멸망 금지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 9:11). 
홍수가 나더라도 노아 때처럼 온 인류와 생물을 다 멸절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노아 언약은 단순해보여도 굉장히 중요한 언약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 언약 덕분에 번성하고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고 
사회 속에서도 안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것이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인류와 자연을 보존해주시지 않으시면 
이 세상은 망해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류와 자연이 보존되어야 택한 백성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언약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노아 언약은 단순히 자연 보존의 차원을 넘어서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구원하신다는 은혜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9~1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지 않고 용서하겠다는 것을 
노아 언약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언약의 표징은 무지개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보좌에는 봉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좌 뒤에는 무지개가 있는 것입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계 4:3). 하나님 보좌에 무지개가 있는데 녹보석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좌에 있는 무지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 9:14~15). 

하나님이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무지개가 있으니까 일어설 때도 보시고 앉을 때도 보시면서 
365일 은혜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이 은혜 언약을 실현해 가시는 과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백성을 다 구원하시면 
그때는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재림하셔서 역사시대를 종결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영원시대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내 죗값을 갚아주신 나의 구원자시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결정해주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하나님이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인류 역사의 목적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살고 생명을 유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살다가 죽으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다면 내 인생을 통해서 
다른 사람도 구원받고 영생을 얻도록 인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위대한 인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근본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돈을 벌고 건강하며 출세하려고 하는 것도 
다 그런 목적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부터 3일간 있는 부흥회에도 혼자 나와서 은혜 받지 마시고 
다른 사람과 함께 오십시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전도의 날이니 혼자 오시지 마시고 
불신자들과 함께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내에 은혜 언약의 사상을 반대하는 두부류의 집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주의이고,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가지신 구원계획을 점진적으로 계시해주신다는 사상을 부인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냐? 
인간이 나름대로 경험한 종교적인 체험을 주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무도 모르고 숲도 못 보는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주의 내부에 있는 사람들인데 ‘세대주의’라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이라고도 하는데 
대한민국 20세기 기독교는 세대주의자 즉, 근본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부흥사들이 세대주의 설교를 하고 다녔습니다. 
세대주의자들 말에 의하면 하나님이 두 가지의 구원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유대인을 구원하려는 계획이고 
또 하나는 이방인을 구원하려는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유대인을 구원하려고 하신 것인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하려고 했더니 유대인이 싫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랫동안 유대인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적 간격이 생기게 되자 심심해지신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에게 이방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아니라 
시간이 남아 심심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구원하려는 본래 계획을 
영원히 연기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게 되면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유대인을 중심으로 나라가 이뤄져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오신 예수님을 
천년동안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유대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 한번 빠진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도로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하나님이 은혜 언약으로 택한 백성을 구원한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