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아브라함과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LNCK 2023. 9. 12. 10:23

 

◈아브라함과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창12:1‐3, 대상4:9‐10

 

*김성수 목사 창세기 41강 전반부 ☞▣ 김성수 목사님 설교 모음

성경의 전반적 해석 및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나라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들과

아브라함의 결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하게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당신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12:1

 

어딘지는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땅과 민족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국가의 3요소: 국민, 주권, 영토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

즉 하나님이 통치하시는(주권) 어떠한 나라를 이루실 것임을 암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다음 장인 창세기 13장으로 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창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여기 보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셔서 이끌고 계신 당신의 백성의 대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역시 그를 통해 이루실 어떤 나라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토에 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국민에 관한 약속이지요?

 

그리고 창17:4~6절까지의 말씀과 22:16~18절까지도

역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게 되는 민족과 나라에 대한 약속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25:7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말년에 아브라함이 소유한 가나안 땅은

자신과 가족의 무덤인 막벨라 굴 하나였고, 자손도 이삭 하나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물론 첩들의 자식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들이 아니었으니까요.

땅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듯 보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지키지도 못할 거짓 약속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나라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창26:2~4)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주권은 하나님이 다스리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똑같이 땅과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창28:14~15)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역시 똑같은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도 자식이 둘 밖에 없었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묻힌 헤브론의 몇 평 넓이의 작은 땅에 묻혔으며

 

야곱은 그나마 기근 때문에 가나안 땅을 떠나 정처 없는 나그네가 되어

아들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피신을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역시 그들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은 어떤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기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지요?

 

(창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직접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출6:7~8)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의 원래 뜻, 신약적인 뜻은 하나님의 나라

 

▲그런데 그들이 약속된 가나안 땅을 정말 영원한 기업으로 받았습니까?

(표면적으론 못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때 가나안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BC 586년에 남 유대가 바벨론에게 망한 후에 *약1천 년 간만 차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그들은 가나안 땅을 블레셋의 후예인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 사람들에게 내어주어야 했습니다. *2천5백년간 뺏김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 어떤 땅과 백성을 약속하시는 것입니까?

 

보시다시피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그 가나안 땅도 그들에게 영원히 주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자체를 전 세계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가나안 땅은

이 세상 땅이 아니라, 어떤 다른 땅을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잠깐 (1천 년 간)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심으로 그 가나안 땅이 상징하고 있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임을 설명하시고

 

그들을 다시 그 땅에서 쫓아내시든지 그 땅을 빼앗든지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진짜 주시고자 하는 땅이 그 가나안 땅이 아니라

다른 땅임을 주지(周知)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으로 가시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그 기업으로서의 땅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약속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37:9‐11)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잘 보시면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들과 온유한 자들, 그리고 의인들,

그리고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자들에게 땅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악인이 없는 땅이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영원한 기업의 땅이 어디라는 말입니까?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의 대표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기업의 땅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천국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설명하시는 산상수훈에서

시편 37편 말씀을 인용하여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이 된 기업, 땅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이루는 백성들은 바로 성도이며, 그들이 구약에 약속된 큰 민족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기꺼이 바라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 나라를 공간적이며 장소적인 (부동산)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꺼이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주어지는 하늘의 풍성함이,

다른 말로 성도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비롯한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구약에서 그림자요 예표로 나타나고 있는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신명기 28장의 몇 구절을 함께 보시지요.

 

(신28:8~11) ‘주께서 명하셔서, 너희의 창고와 너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이 넘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9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만 걸으면,

주께서는 너희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10 이 땅의 모든 백성이, 주께서 너희를 택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보고,

너희를 두려워할 것이다.

 

11 주께서는,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너희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이 땅에서,

너희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땅의 소출이 풍성하도록 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들이 총 망라되어 있는 장이 바로 신28장입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까지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그 복은 하나님께서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만 유효합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복이나, 자식을 많이 낳는 복이나, 땅을 많이 갖게 되는 복이나,

장수(長壽)의 복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게 될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상징하는 예표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뼘의 무덤밖에 안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수신자인 우리 교회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성도들아,

내가 아브라함 안에 있던 너희들에게 약속한 것은

이 세상의 땅이나 이 세상의 복들이 아니라

하늘의 땅이며 하늘의 복이란다.’하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베스가 받은 복은?

 

그렇다면 성경에서 자신의 땅을 넓혀 달라는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은 역대상에 나오는 <야베스>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대상4:9‐10)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나의 영토를 넓혀 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어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셨다.’

 

여기 보시면 야베스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고

자신의 지경(地境)을 넓혀달라는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말 이 세상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으로, 기업으로 땅을 주시는가요?

 

역대기서는 열왕기서와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서로 불리 우는 책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서가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사를 공히 기록한 것에 반해서

역대기서는 남유다의 역사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는 짓을 보면 북 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남유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속에 들어있는 다윗 왕국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지키심 아래 존속되고 있는 언약의 나라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책이

바로 역대기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대기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언약 속에 들어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입니다.

 

그래서 역대기 서두에 유다의 후손들의 족보가 죽 나열되는 것입니다.

그 후손들의 명단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으로 하여금 유다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의 언약이

유다의 왕들과 유다 백성들의 행위를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불가능하고 패역하지만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역대기서입니다.

 

▲바로 그 유다의 족보 중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야베스는 세간에 알려지기를 ‘복에 복을 더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실제로 그 기도응답을 받은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경험상 성경이 갑자기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그런 내용을 삽입해서

‘열심히 간구 하면 복 준다, 존귀한 자가 되면 복 준다.’ 이런 이야기하는 책이 맞습니까?

*부루스 윌킨슨이 쓴 <야베스의 기도> 책은,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한 책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예수로 말미암게 될 구원의 완성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전개하는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뜬금없는 야베스의 이야기는 역시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요?

 

9절을 보시면 성경이 ‘야베스는 존귀한 자라’고 칭한 후에

그가 존귀한 자로 칭해지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수고로이 낳았다‘는 이유 한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고 그는 그러한 존귀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지경의 풍성함이라는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절대 야베스가 다른 사람보다 열심을 더 부려서, 더 부르짖어서 존귀한 자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의 기도의 내용을 한번 볼까요?

 

10절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가 좋아하는 내용은 다 들어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야베스의 기도를 그렇게 좋아하나 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복에 복을’ ‘바라크, 바라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필연적 강조 용법입니다. 이 필연적 강조 용법이 처음 나온 곳이

창2:17절입니다.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무트 타무트’

이게 바로 ‘죽음 그리고 죽음‘이라는 필연적 강조용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고 죽어야만 했던 자들 중 어떤 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다시 필연적 강조 용법을 써서 ’복에 복을 주리라‘라고 은혜의 언약을 하신 부분이

같은 창세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창2:17절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버리는 구절입니다.

 

그게 오늘 본문 3절을 비롯한 아브라함의 언약에 정확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위 구절 서두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겠다’가 ‘바라크, 바라크’가

바로 역대상 4장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 ‘복에 복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필연적 강조용법

 

그러니까 지금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과 복은 어떤 복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라 했지요?

야베스는 바로 그 땅과 그 복을 구한 사람인 것입니다.

 

지경이라고 번역이 된 ‘게불’이라는 단어는 ‘영토’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넓히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 ‘라바’는 ‘풍성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경을 넓혀 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풍성한 땅,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고대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의 땅이며 지경인 내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것들로 풍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야베스의 기도는 복에 복이 넘치는 그 풍성한 하나님 나라가 내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고대하는 기도인 것이지, 이 땅에서의 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 내용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복의 내용들이

구약에서 완전하게 주어지지 않는 듯 보이는 것입니다.

그 모든 복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24: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보세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다시 말해 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님에 관해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요5:39

 

그러니까 구약은 여러 가지 그림들과 사건들과 인물들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으로 말미암게 될 하늘의 풍요인 영생,

즉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가 참 형상이 아니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히10: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가 참 형상이 아니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하지요?

(골2:16~17)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이런 것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부정한 음식과 정한 음식에 관한 규례나 절기, 월삭, 안식일 등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수렴이 되는 그림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히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성전 또한 참 것이 아니라 참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 것들은 참 것인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이 나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아니 성경은 오히려 신약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구약 자체만을 가리켜 ‘죽음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고후3: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사 제도와 성전과 할례 등을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잘 보세요. 구약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구약 자체만으로는 미완성품이라는 말이지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