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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장,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아브람

LNCK 2023. 9. 15. 11:54

◈창15장,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아브람

 

지금 우리는 신약적 개념으로 '제자'인 아브람이

‘어떻게 믿음의 성숙 과정을 이루어가는가?’ 하는 큰 그림 가운데

창세기의 아브람의 행적을 살피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아브람은 본토 아비 집을 “떠남”을 통해, 믿음의 여정을 출발하였고

13장에서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재산다툼을 포기함을 통해, 그의 믿음이 “성숙”되어져 갔고

 

14장에서 그돌라오멜을 상대로 전쟁을 치러서 승리했는데, “영적전쟁의 승리”였습니다.

318인 이라는 가신을 이끌고, 기드온의 3백 용사처럼,

약할 때 강한, 자기 연약함으로 세상의 강함을 이기는 ‘주님의 승리’방식을 보여주었죠.

 

본문 15장에는, 이렇게 믿음이 성숙해가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에 예레미야, 에스겔이 ‘하나님의 어전회의’라고 불리는, 하나님과 대면의 시간을 가졌는데,

지금 아브람이 그런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굉장한 특권이요, 놀라운 초대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불러서, 일대일로, 이것 저것 대화를 하십니다.

-하나는, 아브람의 후손에 관한 내용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역사경영에 관한 내용이었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성숙한 아브람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

 

그래서 창세기 15장은 크게 두 부분입니다.

15:1~11 :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과

그것을 아브람이 믿었다는 것과

 

15:12~21 : 하나님의 역사경영을 아브람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아브람의 자손들이 애굽에 내려갈 것과, 4백년 후에 다시 가나안에 돌아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13장, 14장, 15장 이렇게 계속 믿음의 승승장구 승리를 보여주던 아브람은

다음 장인 16장에서 하갈을 취함으로써, 믿음이 식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up & down 하면서 믿음은 성장해 가는 거죠)

 

 

◑1. 동역자가 된 아브람, 믿음으로 신뢰하다     15:1~11

 

▲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이 매일 같이 성도에게 찾아오시진 않지만, (내면의 음성으로는 매일 찾아오십니다)

가끔씩 강권적으로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아브람이, 또한 우리가 가지는 특권이죠.

 

이렇게 중간 중간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강권적 방문을 받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찾아와 ‘떠나라’고 하셨고.

-하란에서 지체할 때도 ‘떠나라’고 재차 명하셨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는, 강권적으로 바로의 전횡을 막아주셨고

-롯을 떠나보낸 후에도, 나타나 말씀해 주셨고, 13:14

-그돌라오멜과 전쟁할 때도, 강권적으로 승리케 하셨고

-본문 15:1에서 아브람은 다시 강권적인 하나님의 방문을 받습니다.

 

‘두려워 말라’

당시 아브람이 영적으로 침체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1) 14장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거나

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고 계시자 이를 두려워했습니다.

이어지는 2절을 볼 때 2)가 더 타당합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12:2, 7, 13:15-1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은 벌써 3번이나 들었으나 (12:2, 7, 13:15-17)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가 없자, 아브람이 볼 멘 소리를 합니다.

 

▲2절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1) ‘엘리에셀’

 

상속자를 따지는 이유는,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있지만

부부가 자녀가 없으면, 노년의 부양과 사후의 장례가 염려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그게 염려가 안 되지만, 나이가 들면 사실 그게 가장 큰 염려입니다.

 

요즘은 자녀를 안 갖는 사람도 많지만,

당시의 문화는, 자녀와 후손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람의 첫 마디는, 하나님께 드리는 첫 음성은

불평불만이 섞여 있습니다.

‘뭐 하나님이 제게 방패와 상급이라고요?’ :1

‘제 모습을 보십시오. 자녀 하나 없습니다!’ :2

 

젊은 애들 표현으로는 ‘뻥치지 마십시오!’ 였습니다.

아브람이 뭔저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 네 번째 (15:1) 약속입니다. (12:2, 7, 13:15-17, 15:1)

세상 사람 같았으면, 네 번이나 헛공약을 남발하면.. 등 돌렸을 것입니다.

 

이 단락의 주제는 6절입니다.

6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 일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그렇게 질질 끄셨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를 ‘의롭게 봐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의 동역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진다’입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 무슨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람이 먼저 요구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입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나는 하나님께 무슨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비전, 환상)이 있습니까?


그걸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며 믿고’ 있습니까? 롬4:18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맞습니다.

만약 그런 '바라는 믿음'이 없다면.. 나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다/안 믿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믿었다/ 안 믿었다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존재는 다 믿고 있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은 없어서 못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회심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에게 사명(믿음, 약속,비전, 환상)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믿음, 환상, 비전’을 하나님께 못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또한 30년 전에는 받았는데, 근래에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만히 있지 말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니..’

 

△아브람이 (하나님께 받아서) 가졌던 믿음의 내용은 크게 3가지입니다.

-이 땅(하나님의 나라)을 주신다

-후손(제자, 남은 자)을 주신다

-그 나라와 후손이 영원하리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다는 것은.. 먼 미래, 영생과 연결되는 복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복은, 너무 근시안적이 아닙니까?

아브람이 바라고, 믿은.. 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현실에서는 마치 ‘뻥’처럼 보였지만

영원하고도, 영구한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4천년이 지난 지금, 그 복은 다 그대로 이루어졌죠!

 

나는 아브람같은 그런 복을 믿고, 또한 바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현실적인 복만 받으려고,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복과, 내가 받기 바라는 복의 비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가질 수 있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바라는 것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 초대된 동역자 아브라함 15:12~21

☞창15:12~21 우리의 장래는 주님께 달려 있다

..............................

 

<주석 요약>

 

▲4절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네 몸에서 날 자가..되리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셋(5:3) → 노아(6:9) → 셈(9:26) → 아브람(12:1)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신앙 계보를 원하셨다.

 

일찍이 '여자의 후손'(3:15)으로 예언된 바 메시야는

아브람의 직계 혈통 중 다윗 가문을 통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

 

▲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삼 년 된’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숭 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2-17).

 

▲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 19),

 

이는 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

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때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피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 즉 비둘기(9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는

쪼갤 필요가 있을 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1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와 같은 맹금류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무튼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12절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깊이 잠든 중에’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

 

주1) ‘엘리에셀’

아브람은 사래가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자 양자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어달라며

엘리에셀이라는 종을 추천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을 상속자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이후에도 소돔으로 돌아갔습니다.

 

롯은 소돔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롯이 아닌 종 가운데

가장 신실하고 믿을만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하나님께 추천한 것입니다.

 

창24장을 보면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밧단 아람으로 심부름을 갔다 올 정도로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당시 풍습을 보면 아들이 없는 사람은 친척이나 종을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 다메섹 출신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소서.”

이렇게 제안을 하지만 하나님은 단칼에 거절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