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1- 황당한 Destiny - - YouTube
*위 설교 31분까지 녹취, 정리
◈아브라함의 황당한 데스티니 창12:10~20, 17:16 ☞ 창세기
*아들 하나 없는 노인에게 별들, 모래들같이 자손이 많아지겠다니.. 황당한 약속이었다는 뜻
◑도입 / 모든 사람에게는 데스티니가 있습니다.
영어 단어 destiny 라는 뜻은 '운명' 또는 '부르심' 이란 뜻인데
우리말에는 정확한 번역이 없습니다.
영어 단어 destiny 의 뜻은 '계획' 이라는 뜻이 들어있어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지,
그냥 대충 연습 삼아 만들어 보신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지으실 때,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계획 destiny 하시면서
어느 시대에,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태어나게 할 것을 다 계획을 destiny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때, 그 계획 가운데 우리를 태어나게 하셔서
또 이 땅에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집어넣으신 그 영적인 DNA가 있는데
그건 뭐냐하면, 내가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때, 막 기쁘게 되는 거에요. 살 맛이 나게 되죠.
또 그 하나님의 계획들을 내가 차츰 이루어갈 때, 굉장히 내 속에 충만함이 생기고
기쁨이 있게 되는 DNA를 하나님께서 집어넣으셨어요.
그래서 우리 인생의 그 행복은 어디서부터 주어지냐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내가 이루어가는 데서부터 주어집니다.
▲반대로 우리 인생에 불행은 어디서부터 오는거냐 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그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계획에서 멀어져있을 때.. 내가 불행한 겁니다.
이것은 여러분 다른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꾸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요.
'내가 이걸 못 해서 불행하고, 돈을 못 벌어서 불행하고, 사람 때문에 불행하고...
아니에요. 그것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그 데스티니 에서 멀어져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그 데스티니를 이루어가는 사람은
환경과 상관없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어도..
그 안에 기쁨이 있고, 충만함이 있어요.
그것 중에 하나, 뭐 아주 단편적인 예인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재능들을 주신 게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고, 어떤 사람 음악을 잘하고.. 뭐 하여간 재능들이 있어요.
사람이, 그 재능을 발견하고 발휘하게 되면, 못 먹어도 행복해 해요. 그렇죠.
예술가들이 그림 그리면서.. 굶고 가난하게 사는데도, 너무너무 행복해 하잖아요.
왜 그러냐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코드가 우리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해야 될 일을 발견했을 때 기쁘게 되는.. 그 코드가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것은 '반쪽짜리 데스티니'의 발견이고, *재능의 발견은 반쪽
그 그림을 나로 하여금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란 목적과 함께 합쳐질 때,
그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있어요. 비로소 자기 데스티니를 찾은 거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코딩해 넣으신 게 있다는거에요. 이해가 되세요.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있고 우리를 만드신 방법이 있다.는 거에요.
이것을 발견하고 이루어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기 데스티니를 찾는데 실패한 데라
데라가 누구냐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지요.
데라의 데스티니는 믿음의 아버지가 되는 거였어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을 부르신 게 아니고, 먼저 데라를 부르신 거였어요.
창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위 구절의 주어가 '데라'입니다. '아브람'이 아니라.
그래서 일부 성경학자들은 데라가 갈데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아브람은 아들이니까 그냥 묻어서 갔고,
데라가 죽고나서 11:32
창12:1~3절에,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두번째) 명령을 받았다고 봅니다.
'너는 너의 본토친척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는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데라는 하란에 멈춰 버리죠.
하란에 멈춰버리는 순간, 데라의 데스티니는 거기서 멈춰 버렸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이죠.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나님께서는 데라에게 역사하지 않으신 거예요.
'그냥 하란에 머물렀더라.. 죽었더라' 그것으로 끝났어요.
그 사람의 시계가 계속 돌아가야 되는데, 거기서 딱 멈춰버리고 말았던거에요.
◑아브라함을 부르심, 그의 데스티니의 출발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시는게 창12:1절이죠.
그래서 이게 두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거예요.
그 전에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 데라 밑에서 살고 있을 때
처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그곳을 떠나 가나안까지 왔는데,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 머물러 주저앉아 버린 거죠.
그러다가 데라가 거기서 죽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원래 지시했던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곳에 가야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꼭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행해야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에 들어서야, 하나님이 계획하신 장소에 가야
거기서부터 역사가 이루어지고,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지...
아무리 환경이 좋은 것 같고, 아무리 우리 인생이 잘 풀리는 것 같아도
하란에 머물러 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의 데스티니가 중간에 실패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믿음의 여행을 떠나요.
처음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와 정말 신앙생활이 재밌구나
정말 하나님 믿고 살아가는 것이 참 인생을 살아가는 거구나'
이걸 깨닫고 정말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데,
한 일년 지나고 이 년이 지나다 보면
중간에 '아이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머물러 버리고 싶은 곳이 생기는 거에요.
살만 하고, 예전에는 진짜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 없으면 죽습니다' 하고 출발했는데
조금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살만해져서, 먹을 것도 생기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는 순간
거기서 그의 데스티니도 멈춰 버리더라는 거에요.
아니요. 우리의 데스티니는 거기서 끝날 사람들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한 민족의 조상이 되고, 믿음이 아버지가 되는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 라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이 계획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는 거에요.
자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야기들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 자기 데스티니에서 탈락할 뻔 하다
자 이제 오늘 이어지는 12:10절부터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그래서 드디어 하란을 떠나서, 그 멀고 힘든 여정을 겪으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12:10절부터 입니다.
자 그런데 가난에 정착하고 났는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기근이 들었어요. 흉년이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먹을 게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OK, 너는 나를 믿어라'
그래서 처음에 '와, 나를 만드는 창조주가 있으시구나, 예수 그리스도나의 구원자시구나'
믿고 거듭나고 나면 너무 기뻐너무 기쁘고, 정말 이렇게 살아가면 다 될 것 같아요.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죠. 그런 경험 여러분 있으세요?
초신자 때는 우리 기도를, 주님이 참 잘 들어주세요.
제가 예수님을 딱 믿었을 때가 대학교 일학년 때였는데
근데 제가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했어요.
이게 이렇게 쉬운 제목이 아니었어요.
근데 일주일 사이에, 세 가지 기도제목이 다 응답을 받았어요.
제가 정말 너무 놀랐어요. 와 그러면서 깨달은 게 뭐냐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어떻게 세 가지가 쉬운 제목들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제목들이었는데, 세 가지 기도를 했는데
일주일 안에 세 개가 다 이루어졌단 말이에요.
이거는 우연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고..' 이거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믿음으로 이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격려해 주신 거에요.
'내가 정말 살아 있고, 네가 기도하면 내가 너의 기도를 들어주는 분이고,
내가 네 인생을 붙잡고 있고...' 이거를 가르쳐 주신 거죠.
그래서 제가 믿음으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여정을 시작했는데.. 웬걸? 가다 보니까 계속 장미빛이 아니에요.
어떤 건 아무리 기도해도 안 이루어지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정말 기도 했는데 일이 더 꼬이기도 하고.. 막 그러는 거에요.
근데 여러분도 아마 그 경험을 하실 거예요.
처음에 하나님 믿고 출발할 때는 진짜 믿음의 여정으로 막 흥분해서 기쁨가운데 출발을 하는데
▲살아가다 보면, 이 데스티니 여정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에요.
가다 보면 항상 장미빛의 아니라, 기근이 들 때가 있다는 거에요.
아브라함처럼 기근이 들고 나면 이제 의문이 생기시작합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하나님이 여기로 가라고 했는데
분명히 하나님이 나는 이곳으로 인도하셨는데
여기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는데
여기 와보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게 아니고, 왜 먹을 게 하나도 없느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시려고 하는 데스티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거에요.
우리를 통해서 뭐 대단한 일을 만들고, 대단한 열매를 성취하고..
아니 그런건 다 결과이고
하나님의 진짜 관심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거에요.
'내가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느냐'
'내가 정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걸맞는 사람이 되느냐'
그게 되면요. 그 열매는 그냥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 만들어 가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근데 여러분, 사람 만든다고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도요, 사람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는 매를 때리고 그렇죠.
그게 미움이 아니라 '이 아이가 진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부모의 사랑의 매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여러가지 역경들을 두세요. 역경들을 허락을 하세요.
근데 이 역경들을 통해서 뭐를 만들어 가시냐 하면, 우리 믿음을 키우시는 거에요.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믿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형상을 만드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여정은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구원은 쉬워요. 구원은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요. 그렇지만 여러분 이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구원을 완성해 가는 건 쉽지 않아요.
존 웨슬리가 그랬잖아요. '누가 구원을 쉽다 그랬냐?' 그러며 한탄했잖아요.
'거짓말장이야 구원은 절대 쉽지 않다' 이게 웨슬리가 한 얘기인데
거기서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의 완성'이 어렵다는 얘기를 한 거죠.
예수 믿고 구원받는 건 쉬운지 모르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길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걸 알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셔야 됩니다.
신앙생활이 마냥 좋고, 그냥 언제나 가면 마음의 위로를 주고,
내가 주님 앞에 나가면 항상 위로해주시고, 항상 기쁨을 주시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의 진짜 핵심은 뭐냐면, 나를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딱 봤을 때 '와 저 사람을 보면, 뭔지 모르겠지만 냄새가 달라'
'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야'
'저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뭔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변화를 일으켜!'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그러잖아요.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에요.
여러분, 그걸 다듬어가는 건 쉽지 않아요.
돌멩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오려면, 돌멩이를 깎아내야 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망치질, 정을 두드려서, 여기도 떼 내고, 저기도 떼 내고
불필요한 걸 떼 내는 거지요. 그러면 아프거든요.
그렇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예수 믿으신지 몇 년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오래되신 분들은 이미 많이 경험을 하셨을거고
얼마 안 되신 분들은 각오를 하고 출발하시라는 거에요.
'아 신앙생활을 하면 좋다. 만사형통이야!' 이건 거짓말입니다.
만사형통 하지 않아요. 그 형상을 이루기까지 많은 고난, 연단, 환난을 겪게 하십니다.
영적으로는 형통해요. 그래서 진짜 좋은 걸 주시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우리한테 진짜 좋은 게 뭔지는, 우리가 잘 몰라요.
양약은 입에 쓰다고... 항상 뭐가 잘 풀리고, 좋은 일만 일어나고... 이런 게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 모든 게 다 성공한 사람은, 결국 마지막에 패가망신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진짜 좋은 걸 주시는 건 맞아요. 절대 나쁜 거는 안 주시죠.
근데 여러분이 기대하는 대로 '만사형통할 거야'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예수 믿고 만사형통한다고 하는 건, 지극히 성경적이 아니에요.
만사형통 하면, 아브라함에게 왜 기근이 찾아왔겠어요?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만사형통 안 했다고요.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게 없어서 피난다녔어요.
다윗이 만사형통 했어요? 모세가 만사형통했어요?
만사형통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만사형통하면.. 그러면 사람이 망가지거든요.
만약 제가 원하는 거 아니면 다 채워주신다 그러면,
저는 하루 종일 치즈케잌만 먹고 있을 텐데,
그러면 여러분, 제가 몇 살까지 살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못 먹게 하시고...
왜냐하면 그게 결국은 내 몸에 안 좋으니까요.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기근으로 인해,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피난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데스티니가 망가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 거 아세요?
이런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지는 않으세요.
근데 하나님이 어려움을 허락은 하세요. 이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뭐냐하면
우리를 위해서 허락하시는
보호하시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보호하는 걸 멈추시는 이유는 왜 그러냐면,
우리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 앞에 딱 부딪치게 되면, 거기서 도망가고 싶어요.
어떻게든지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해요.
여러분 이 문제 앞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봐야 할 건 뭐냐 하면
'하나님 이 문제가 왜 내 앞에 있는 겁니까,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걸 통해서 내가 어떻게 되길 원하십니까?'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순간하나님께서 어려움을 거두세요.
왜냐면 목적에 다 성취된 다음에, 괜히 우리를 괴롭힐 이유가 없어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아무 이유 없는 고난.. 이런 거 없어요.
이유 없는 고난 이란 건 없어요. 뭔가 회개할 이유가 있든지,
우리 다듬으시고, 성장시키셔야 할 이유가 있든지...
반드시 이유와 목적이 반드시 있어요.
근데 우리는, 이유를 물어보기 전에, 해결책을 먼저 찾아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할까?'
거기서 우리가 실패하는 거 아세요?
모든 어려움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여러분 기억하시고요. 먼저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이 나한테 왜 오는 겁니까? 이 고난의 이유가 뭡니까?'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누구한테 찾아가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까? 심부름 센터?'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되겠네'
'직장으로 옮기면 되겠네'
'저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겠네'
하여간 전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애굽에 가면 먹을 게 있네' 그래서 쪼르르 달려가는..
이것이 여러분, 우리의 데스티니가 망가지는 진짜 이유라는 거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애굽으로 피신갔을 때,
가나안을 떠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을 떠나서,
자기 데스티니의 장소를 떠나서 애굽으로 갔을 때.. 그는 아내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 사래가 여러분 누구에요? 아브라함의 데스티니를 낳아줄 배우자에요.
아브라함의 데스티니가 뭐냐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백성이 뭇별과 같이, 모래알처럼 많아지는 것이 아브라함인데
그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누가 있어야 돼요? 사래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이 사래를 빼앗겨버렸어요. 이게 뭐냐하면 데스티니를 뺏겨 버렸다 는 거에요.
사례를 뺏기면 여러분 뭔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약속된 자녀를 못 낳아요.
우리 인생가운데 왜 영적인 열매가 없는 줄 아세요?
사래를 뺏긴 거에요.
데스티니를 뺏겨버린 거에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 믿음의 자리에 그냥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어요.
영적인 열매가 있어요.
눈에 보이는 열매든, 내적인 열매든.. 반드시 열매가 있어요.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데스티니의 장소를 떠나버린 결과
사래를 뺏겨버린 거에요. 이런 어리석은 짓을, 여러분 저지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애굽으로 피신하면, 기근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바로가 아브라함을 후대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지 몰라요.
12: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을 후대하므로
아브라함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근데 아내를 뺏겼더라)
여러분 이 아브라함이 나귀와 양과 소를 보면서 참 흐뭇했겠죠? No
먹을 게 해결되고, 재산이 늘어났다고 뿌듯했겠죠? No
잘 생각해보세요. 자기 아내와 양, 소, 나귀를 강제로 바꾼 거에요.
그거 볼 때마다 막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어요?
이거는 영적인 사람이면 다 느껴요.
문제는 해결되는데 뭔가 시원하지가 않아요.
문제는 해결되는데 뭔가 씁쓸해요.
문제는 해결되는데 뭔가 아니에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사래, 자기 데스티니를 뺏겨버린 거에요.
더 이상 약속의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거예요.
더 이상 자기 데스티니를 (사명 감당을)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아브라함의 중요 사명, 제 1번 사명이, 약속의 자녀를 낳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거 아세요?
우리의 데스티니와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꾸는 일!
우리의 데스티니와 세상이 주는 나귀 새끼하고 바꾸는 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자기 데스티니를 회복하다
자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사래가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아보게 하십니다.
은혜로 회복된 거지요.
그래서 사래를 되돌려받고는, 아브라함이 정신이 좀 들었어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래서 다시 애굽을 떠나서, 원래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신 곳,
가나안 땅 벧엘과 아이 사이, 처음 단을 쌓았던 곳으로 돌아옵니다. 13:3
그래서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섬기기 시작하고,
여기서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뭐 이런 얘기들이 쭉 나오죠.
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비로소 아브라함이 자기 데스티니를 회복한 거죠.
아브라함 자기의 데스티니는 '자손을 많게 하는 것과,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12:1~3절의 그 약속을, 13:14~16절에서 다시 repeat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 언약 성취에서 미끄러져 불합격할 뻔 했는데,
(사라를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바로를 치셨고, 아브라함은 은혜로 회복된 것입니다. 12:17~20
◑아브라함, 자기 데스티니를 잘 믿지 않다
아브라함이 가신 314명을 이끌고,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단에서 격파한 후에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즉 아브라함의 데스티니(자기 삶의 계획, 운명)를 리마인드 해 주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말씀을 끊듯이 하면서,
푸념하듯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언약을, 즉 자기 데스티니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엘리에셀이나 잘 키우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린 거죠.
아브람처럼,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데스티니의 성취가, 10년~20년~30년 길게 길어질 경우에 더욱 그렇죠.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데스티니를 재차 상기시켜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걸 잊지 말라는 교육이기도 했고,
하나님 편에서 그 언약을 굳게 지키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셨죠.
15:4~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나의 데스티니'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이미 발견했다고 가정할 때에)
-그 언약의 성취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 말고도,
-그 언약(데스티니와 일맥 상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믿지 못하는 거죠. 그게 너무 크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데
그게 동화 얘기나, 환타지 소설처럼 들리기 쉽지, 현실감있게 다가오겠습니까?
천만다행인 것은, 아브라함이 그걸 믿었다는 거죠.
믿음이 없어서 '엘리에셀이나 잘 키우게 해 주십시오' 했던 아브라함에게 15:2
믿음이 생겼습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인간이 자기 상상으로, 마음 속으로 뭘 그린 것은..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신비하게 그의 마음속에 그려 놓으신 그림은, (음성, 비전은)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도록 만듭니다. '그래,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거야!'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은 것입니다. 15:6
그런데 그런 후에도, 아브라함은 계속 '엘리에셀이나 잘 키우게 해 주십시오'라고 타령을 합니다.
이 때는 할례의 언약을 주신 후였습니다.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5:2는 엘리에셀
이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엘리에셀 타령을 하는 것은, 약속의 성취가 너무 더디기 때문이었죠.
◑하나님이 정하신 그의 데스티니는, 그의 상상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영원한 복'을 약속하시는데,
아브라함의 반응은 '이 생에서나 좀 잘살게 해 주십시오' 그거였습니다.
큰 거, 영원한 거, 놀라운 거 안 바라니
엘리에셀이나, 아니면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며 살게 해 달라는 거였죠.
이런 거 아세요?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대해서 가지고 계신 기대(데스티니)가 있는데요.
그게 사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거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이 말을, 설교시간에 자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데스티니를 깨닫게 되는 순간
첫번째보이는 반응이 '황당해하는' 거죠.
'그건 나오고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죠.
'그거는 그냥 무슨 왕이나 용사들한테 해당되는 거지
나 Abraham 는 여기서 양치는 사람인데... 내 얘기일수는 없어!'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보고도 '큰 용사여! 네가 미디안 대군을 물리치리라' 하셨고,
모세한테는, 바로를 물리치고 2백만 대군을 애굽에서 인도해 나오라고 하시지만,
이런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죄다 '나랑 사이즈랑 안 맞는다'고 반응하는 거예요.
'아 하나님, 그건 제 것이 아니고요. 저는 그냥 오늘 양을 한 마리를 잊어버렸는데
그거나 좀 찾게 해주십시오' 한다는 거죠.
성경에는 놀라운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되고...'
여기서 아무리 선포를 해도, 여러분은 딱 돌아서서 집에 가실 때 드는 생각은
'아이고 하나님, 내가 요즘 직장 문제가 꼬였는데, 이거나 좀 해결해주십시오'
아니면 '주님, 무슨 관계가 비틀어졌는데, 그거나 좀 해결해주십시오'
아니면 '우리 아들의 문제, 그거나 좀 해결해주십시오' 하는 거죠.
우리가 다 신앙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걸 기도하는 거는 괜찮습니다.
그 기도 하세요.
근데 그 (의식주 문제 해결) 기도를 5~10년 지나도 똑같이 그 기도를 계속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영적 성장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서 돌이켜야 됩니다.
엘리에셀이나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라는 거예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데스티니는 엄청나게 크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엘리에셀 또는 이스마엘이나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에요.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하시고
-우리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우리 아들이 대학 잘 가게 하시고
-우리 남편이 직장에서 잘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이삭'인데, *약속의 후손, 약속의 땅, 하나님의 나라, 제자들
우리는 '엘리에셀이나 잘 키우게 해 주십시오!' 하고 있는 거죠.
만약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면, 아브라함은 4천년 전에, 자기 목숨이 끝났을 때,
인류역사의 기억속에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까지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받고 계시는 거죠.
그리고 지난 4천년 동안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그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졌고,
그 땅은, 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온 세계로 펼쳐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싸이즈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엘리에셀로 만족하십니까,
여전히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엘리에셀은 탈락시키시고
이스마엘도 또 떠나보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20년 기도해도.. 그게 말짱 도루묵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들고 주님 앞에 나가셔야 돼요.
-하나님의 나라
-땅끝까지 복음 전파 (이상 '가나안 땅')
-영혼 구원, 제자 양육
-남은 자들 키우기 (이상 '약속의 자녀')
이런 것 좀 놓고 기도해 보세요!
아브라함처럼 '이삭' 한 명 낳고 죽을 수도 있어요.
그게 내 당대에는, 아주 미약하게 실현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늘의 별들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후손이 많아지는 그 약속'은
이삭 그 한 명을 통해서,
야곱으로..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통해 보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싸이즈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자기 싸이즈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