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대하16:9 2006.06.14.스크랩
그냥 자기 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관련글 모음
▲신앙이 깊을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독립심을 키워줘야 되지만,
신앙은 성장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계속 길러야 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16:9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절대 독립심을 갖지 마세요.
이 세상의 부모는, 내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으니까
자녀가 때가 되면 독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심을 길러줘야 되고, 마마보이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다릅니다. 영적으로 독립심은 반역입니다.
그건 하나님 앞에 무서운 교만이고 죄악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성장 할수록,
주의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주님께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주님께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사역이 가능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사역이 됩니다.
▲은사는 있는데, 은혜가 없으면...
가짜 사역이 뭔지 아세요?
예언은 있는데.. 하나님이 영혼을 만지는 게 없는 것입니다.
기적은 있는데.. 하나님이 영혼을 만지는 게(은혜가) 없습니다.
능력이 있고 기름부음이 있는데.. 하나님이 영혼을 만지는 게 없습니다.
그 결과,
회개가 없고, 변화가 없고, 성장이 없고,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와 욕심,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계시를 받고, 계속해서 은사나 기름부음을 받고,
기도해서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능력이 그런 거 하라고 주어지는 것입니까?
한 번은, 제가 외국 은사사역자 초청집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연 듣던 소문대로,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여러 능력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놀란 것은, 한국의 주최측 강사님들이 뭘 분별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형상들을 보고.. 진짜 강력한 기름부음이 임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임하면 마음이 변해야지,
마음은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현상만 엄청나게 나타나는 것이
무슨 기름부음입니까? 그것은 혼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중심을 바로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현상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오히려 현상이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항상 극적인 현상으로 만지는 줄 아세요?
물론 진짜 기름부음이 더 강해져서 현상들도 더욱 늘어나는 일이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진짜를 원합니다. 쇼를 원하지 않고, 진짜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도.. 항상 표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표적은 그냥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주의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께 의존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간증하면서
“봐라. 내가 기도했더니 병자가 일어났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고... ”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온 마음으로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구나. 하나님이 하신 거구나.’
하는 것을 속마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 영광은 자기가 다 받는,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고
내 영으로, 내 중심에서, 온 마음으로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나 같은 것을 써 주신 게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실제로 의지한 결과, 주님이 실제로 역사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그걸 자신의 영이 알고, 양심이 알기 때문에
말장난이 아니고 중심으로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립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이 칭찬하면 그게 듣기가 싫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높이고 칭찬하면.. 오히려 속으로 회개가 나와야 합니다.
속으로 ‘주님, 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나 같은 것을 통해서도 주님이 이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이렇게 써주셨는데 나는 이거밖에 안되고
나는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요?
저 사람들은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주님 앞에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닙니까?’
이렇게 사람의 칭찬 속에서 교만해지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고 더 낮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경험이고 간증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기 이전에, 자기 원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까요?
주님이 하신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주님이 했다고 하면서도
‘내가 한 거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해보세요.
그러면 주님이 했다는 것이 불을 보듯이 명백해집니다.
내가 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게 됩니다.
진짜로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해야 됩니다.
그리고 진짜로 영광을 모두 주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님이 역사하는 것을 자기 삶에서 봐야 됩니다.
그럴 때 내 양심이 알고, 내 영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낮춘다.’ 그러면
그것은 외식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닙니다. 아예 자기를 낮출 것이 없습니다.
겸손은 자기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낮추면 언제는 높았습니까? 낮추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언제 뭐가 됐었나요? 언제 뭐였나요? 낮추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자기 자신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만약 겸손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입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삐뚤어진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그런데 말씀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거잖아요.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영으로 실제를 알고, 그것이 실제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대로 의지하고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과장된 게 아닙니다.
그냥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알고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겸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면 그게 믿음이고요,
나를 알면 그게 겸손입니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면 그게 믿음이고,
나를 정확하게 알면 그게 겸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위조된 겸손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겸손을 원합니다.
인간은 자기를 낮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면, 그게 겸손입니다.
그런 겸손이 여러분 속에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를 낮추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기 전의 나, 그건 죄인일 뿐인데 그건 무익한 종일뿐인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닌데, 거기서 뭘 낮추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니고 자기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기 자신을 섞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때 ‘주여,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소이다.’
라는 고백이 우리 영혼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고,
‘주여,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는 고백이 내 심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내 영 가장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 것도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색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드러날 것도 없습니다.
나는 주의 일에 방해가 되었을 뿐입니다.
주님, 나 같은 것을 사용하시려고, 나 같은 것을 통해서 일하시려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런 고백이 우리 영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겸손입니다.
‘아버지, 우리가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알고 겸손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모두 겸손으로 옷 입혀주옵소서.’
◑권위를 행사하되 맛들이지 말아야
▲권위 중독을 조심해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지 권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간사회는 불가피하게 권위의 행사를 필요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인간 세상에서 권위는 때로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꽤 괜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주의할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권위를 행사하되 권위에 맛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위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나’뿐입니다.
세상 역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왜곡된 권위는 자신도 망가트릴 뿐만 아니라 이웃도 괴롭히고,
공동체 전체를 힘들게 만듭니다.
교회 봉사자(성직자)로서 목숨 걸고 끝까지 배척해야할 것이, 쓸데없는 권위주의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권위를 행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권한 문제를 가족구성원들 간이나 교우관계 안에서,
또는 신앙생활이나 교회 안에서까지 똑같이 적용하려한다면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모든 권한이나 권위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존경하는 영적 지도자들은
스스로 권위를 지니게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들을 주님나라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으로 선택하셨고,
그들에게 당신의 권위를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권위나 권한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뛰어나서 지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위나 권한을 베푸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배하고 군림하라고, 휘젓고 다니라고, 큰소리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도 그 반대입니다. 봉사하라고, 희생하라고, 죽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섬김의 권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권위를 부여받은 예수님은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는 철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보여주신 권위행사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한 권위행사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아름 은총의 선물을 나눠주기 위한 권위의 행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도 당신의 권위를 나눠주십니다.
그 권위는 다름 아닌 사랑의 권위입니다. 봉사의 권위입니다.
겸손과 온유를 바탕으로 한 권위야말로 진정한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수난, 십자가의 영성을 바탕으로 한 권위야말로 참된 권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