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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5장,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다

LNCK 2023. 9. 28. 14:34

◈창25장,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다      창25:1~10      여러설교참고

 

본문 창25장은, 12~25장에 걸쳐 길게 이어지는 아브라함 스토리의 마지막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가 하나님께 예언받은 대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다’라고 증거하면서,

그의 스토리를 종결짓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아브라함을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후,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가는 제자 아브라함,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브라함... 그 완성은 22장에 이삭을 번제로 드림으로써,

그리고 23장에, 사라의 장례로 ‘땅을 얻음으로써’ 언약의 성취와, 그의 믿음의 피크를 찍었죠.

 

24장에서, 그는 언약을 이어갈 후손인 아들 이삭과 리브가를 결혼시키는 사명도 감당하고,

본문 25장에서는, 그가 ‘열국의 아버지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가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자손을 낳았다는 데서

오늘날 현대인들, 독자들을 많이 당혹케 하는데요.

여기엔 약간의 신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편성’이란 개념을 이해해야 본문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

 

▲창25장,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해서, 6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은.. 좀 당혹스럽습니다. :2~3

‘이게 사실인가?, 성경에 왜 이런 기사가 들어가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이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또 다시 그두라는 후처로 취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창세기 저자는 모세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모세가 본문 25장을 기록할 적에

-아브라함을 창피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기록한 것인가?

-‘아브라함도 절대 완전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 은혜 아니면 구원 안 된다’

그런 점을 독자들에게 교훈을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창세기의 저자 모세가 그두라를 취한 사건을 기록한 목적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후손을 낳아서,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는 사실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죠. (그 후로도 영원히 성취됩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가치관과

당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은,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당시엔 자녀를 많이 낳고, 후손을 많이 갖는 것이 최대 자랑이요, 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저자는, 아브라함을 자랑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약속을 여러 차례 받았죠.

그 하나님의 약속이, 그두라 사이에 낳은 자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3절의 ‘앗수르’는 북부 아라비아 사람들로 팔레스틴 남쪽에 거주한 사람들로

히브리 발음으로 아슈림인데, 수리아의 앗수르와는 다른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를 취한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내 사라가 죽은 이후에 그두라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창세기 25장을 꼭 연대기 순으로 기록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인지는 모르나 그두라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1) 아브라함이 백세가 가까웠을 때, ‘나는 늙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고 했는데, 17:17

그두라를 통해 6명이나 낳은 것은, 그 이전이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만약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은 후에 그두라를 후처로 취해서 6자녀를 낳았다면,

25:6절에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38년을 더 살았는데, (137~175세)

그 38년 사이에 후처를 취하고, 6아들을 낳고, 그들을 다 독립시켜 내보냈다고 보기엔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첫째나 둘째는 독립시킬 수 있을 만큼 장성했다 해도,

5째나 6째는 아마 십대였을 것인데, 그들을 재산 줘서 독립시켜 내보낼 수는.. 무리라는 거죠.

(*대상1:32에는 그두라를 후처 wife가 아니라, 첩 concubine 으로 밝히고 있음)

 

그런데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를 ‘언제 취했는지’는 논의할 초점이 못 됩니다.

그게 언제라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본문의 초점 중 하나는 5~6절입니다.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본문의 초점은, 이삭을 나머지 서자들과 엄격히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는.. 모든 소유, 즉 유산과 상속권을 주었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다는데, ‘재산’이란 말은, 일시적 선물을 주었다는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만 자기 후손, 상속자로 인정했고,

나머지는 자기 자손이기는 하나, 후손 혹은 상속자는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성 universality 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제

 

(※보편주의 universalism 는 비성경적이고 자유주의 신학이지만

보편성 universality 이란 말은 성경적입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요.)

 

‘하나님의 보편성’이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사랑하신다.. 는 개념입니다.

 

위 도표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 계열은 소수였고,

그 외에도 이스마엘의 자손들도 있고,  :12~18

그두라에게서 난 자손들도 나옵니다.   :1~5

 

이삭을 택하셨다고, 나머지 그들을 하나님이 버리셨느냐?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택하신 것은 진리이지만, 나머지 자손들은 ‘유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하나님이 창세 전에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죠.

그럼 그 외 나머지는 버리셨느냐? 유기하셨느냐?

거기서 ‘유기’란,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뜻이지, 꼭 ‘지옥갈 자들’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롬1장에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셨다’고 세 번 나오는데,

그들이 지옥가도록 내버려두셨다는 말은 아니고,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뜻이죠.

그들도 다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우리는 중동 아랍권에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을 전도합니다.

그들이 하갈과 그두라의 자손이라서, 선택된 자들이 아니고, 유기된 자들이라면

우리는 선교사를 파송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파송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보편성 unversality of God 때문이죠.

 

▲하나님의 보편성 unversality of God 은 성경 66권에 두루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이죠.

 

먼저 하나님은 가인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창4:15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5장에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계보가 나옵니다.

또한 창10장에도, 노아의 자손들의 계보가 나옵니다.

 

‘선택과 유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족보가 다 그렇지만,

족보에는 선택된 자는 사실 얼마 안 됩니다(소수). 나머지 대다수는 유기된 자들입니다.

 

유기된 자의 족보를 뭐하러 길고 자세하게 기록했겠습니까?

지옥에 갈 사람들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입니까? No

 

족보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 선택하신 사람들도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새사람되어, 구원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부 특별한 (선택된)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택하신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라인도 사랑하시지만,

이스마엘의 자손, 그두라의 후손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마엘의 자손, 그두라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은 그들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들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버린 자식, 유기된 자식들, 하나님 나라에 대적들’ 이렇게

라벨 label 붙여져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아브라함 중심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스마엘의 후손, 그두라의 후손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본문 창25장 등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축복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창16:10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21:13 ‘그러나 여종(하갈)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7~18 ‘하갈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정리하면, 본문 창25장에 그두라의 후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온 세상 열방을 모두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보편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약속대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모두는 하나님의 원수, 이스라엘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보편성’을 특히 선교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선교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있고, 나머지는 그 원수’ .. 이런 개념을 가지면, 선교가 안 되겠죠.

 

일례로, 출애굽 때 바로와 그의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그럼 우리는 쉽게 ‘바로와 애굽은 이스라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출애굽 때 ‘여러 민족’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출12:38

이스라엘만 출애굽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출애굽 때도, 아말렉, 헤스본, 아모리, 모압 등 여러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길을 방해하고 훼방했다고, 그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는데,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우상을 숭배하는 아모리 족속이며,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명하신 자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라합은(히11:31) 구원받았으며, 심지어 예수님의 족보에 등재되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신 가나안 7족속 가운데 구원받은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은 후로 이스라엘에

종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성전 봉사자들이 됩니다.

 

에스라7:43절 이하에, 귀환자들 명단에 ‘느디님 사람들’이 나옵니다.

‘느디님’이라는 말은 ‘성전 봉사자’라는 말인데,

레위인을 돕는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이 기브온 성읍 출신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돌아온 성전 봉사자 느디님 자손들 명단을 보면 족보가 뚜렷합니다.

 

나중에 그들은 예루살렘 동쪽 지역 요새화된 오벨 성채에서 기거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지성으로 감당했습니다. 성전 문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편성’을 잘 보여주죠. 다 진멸되어야 마땅한 백성인데.. 그들은 구원받았습니다.

 

다윗 왕의 신복 중에 ‘헷 사람 우리아’도 대표적인 이방인이죠. 헷족속.

또한 잇대도 블레셋의 가드 출신입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삼하15:19)라고 하는데,

즉 자기 고향 가드로부터 쫓겨나 망명한 사람이지만,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피신할 때, 결정적으로 다윗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 성 사람들을 아끼시는 심정은 또 어떻습니까?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1

 

다윗은 ‘하나님의 보편성’을 잘 이해한 사람입니다.

삼하22: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그리고 시편에, 모든 민족, 열방, 이방.. 이런 단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열방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유대인만의 하나님, 택한 백성들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요.

 

그래서 창5장, 9장, 10장의 족보에 이어,

본문 창25:12~18에는 ‘이스마엘 후손’들의 족보가 등장하고

본문 창25:1~5에는,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의 족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유기’된 자식, 버린 자식들이라면.. 일일이 족보를 기록할 이유가 없죠.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선택, 예정 교리가 틀리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바깥에 있는 자들은 (일부 신학자들은 ‘유기된 자’라고 부르죠)

그들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들도 하나님은 사랑해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옥 가기로 유기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모두에게 다 열려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참고로, 그럼 아브라함의 후손은 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럼 에서는요?

다윗의 후손이라고 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럼 압살롬은요?

그 안에서 또 선택과 유기가 나눠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flexible 하게 이해해야지,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한 것이죠.

 

하나님이 창12장부터 '아브라함 가문'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 구원키로 작정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 가문을 도구로, 지렛대로,

특별히 들어 쓰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방 민족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서, 거부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열방의 하나님, 모든 민족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민족은, 자기들이 선택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만 했지,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 도구'라는 책임감은..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죄인, 개, 저주 받은 자 취급을 하고... 자신들만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선민의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거나 '선민의식'이 되면 곤란합니다.

마음을 넓히고, 시야를 넓혀서.. 모든 세상 사람들,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