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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6장, 성경에 이삭 스토리를 기록한 목적

LNCK 2023. 9. 29. 22:46

◈창26장, 성경에 이삭 스토리를 기록한 목적

 

노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온통 세상이 노랗게 보이듯이...

우리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본문의 이삭 이야기를 읽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앞서 아브라함은 ‘세상 속에서 성도와 제자로 부름받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신앙성숙/영적성장/온전함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관점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이것이 가장 첫째 목적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본문의 이삭 스토리를 성경에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삭이 농사지어 백배의 결실을 얻었다.. 는 관점으로도 본문을 읽을 수 있고,

-이삭이 아버지처럼, 자기 아내를 누이로 속였다는.. 인간의 연약성을 강조할 수도 있고,

-이삭이 우물 분쟁에서 세 번 양보한 후에.. 결국 선으로 악을 이겼다..는데

  방점을 둘 수도 있겠죠.

 

볼링을 칠 때, ‘킹핀을 맞춰서 쓰러뜨리면, 10개의 모든 핀이 쓰러진다’는 말이 있죠.

이삭 스토리의 ‘킹핀’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삭 스토리의 ‘킹핀’ (해석의 열쇠)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요즘 말로 ‘치트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부분을 잘 살펴봐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달리, 하나님이 이삭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는

여러번 나오지 않고, 아래 구절에 한 번만 나옵니다.

 

창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크게 3가지 인데,

-후손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였죠. 창12:1~3절 등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약속하신 것도       *소위 ’이삭 언약‘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브라함 언약‘과 거의 비슷합니다. 똑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어귀가 추가되었는데,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입니다. 26: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삭 스토리 해석의 핵심, 킹핀은

다시 말해서, 성경에 왜 이삭 스토리를 기록했는가? 하는 것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을 그대로 이루었다’ 라는데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이삭에게 약속하신 것은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주겠다 입니다. 26:3

여기에 이삭의 일평생 삶의 목적과 주제와 사명이 들어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아브라함과 – 아들 이삭은

리더십 승계를 아주 성공적으로 이룬 예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이고, 첫 번째 독자는 출애굽한 광야 백성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출애굽 백성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그 민족의 뿌리를 설명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했고, 노아와 셈의 후손이었는데,

바벨탑 당시에 사람들이 뿔뿔이 온 세상으로 흩어졌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특별히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셔서, 히브리인의 조상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고 약속하셨다.

 

너희 출애굽 백성들은 그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곧 언약의 자손들이다.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언약을, 지금 너희 세대에도 계속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러면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던 히브리인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모세 선지자님, 그러면 아브라함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서, 성공적으로 언약을 이루었다면,

그 아들 이삭은 어떻게 되었나요?

혹시나 하나님의 그 언약(약속)이, 아브라함 한 분의 시대로 끝나지는 않았나요?

 

진짜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언약들이

그 아들 세대에도 계속 유효하게 이어져 내려갔나요?’

 

그 백성들의 질문과 호기심에 대해,

아브라함은 창26:2~4절의 오늘 본문을 통해, 대답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주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소! 26:3

 

▲정리하면, 이삭의 일생의 사명, 자기 삶의 목적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자기 삶에 그대로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면 3가지죠.

후손과, 땅과, 모든 민족이 그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는 것!

 

우리가 성경에서 이삭 스토리를 읽을 때,

그 외 다른 주제, 다른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킹핀(또는 치트키)는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모든 언약을, 자기 세대에 잘 계승하고 이루었다’

라는 관점이 되겠습니다.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언약의 후손을 독자 이삭 하나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리더십 승계’에 성공한.. 그야말로 성공한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가 은퇴한 이후에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의 리더십이 후대에 잘 승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나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내게도 미치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내게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후손을 낳으며 (제자양육하며)

하나님 나라의 땅을 차지해서 확장시키며 (부동산 개념보다는 영향력의 범위)

우리를 통해서 열방이 복을 얻게 되는 .. 그런 꿈을 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삭 믿음의 또 다른 특징은 <주도적>이지 않고, <수동태>적으로 끌려간데 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쳐질 때부터 그랬죠.

 

흥미롭게도 아브라함과 이삭은,

똑같은 믿음으로 살았던 어떤 믿음의 프로토타입(원형) 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다른 종류의 믿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형이 비슷하지만, 특징이 제각기 다르죠)

아브라함이 1세대, 첫 번째로 믿음을 시작했던 개척자로서

조금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어떤 믿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삭은 그 믿음을 물려받는 2세대가 되지요.

2세대로 믿음의 유업을 물려받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조금 더 소극적이고, 어떻게 보면은 조금 더 끌려가는 듯한

그런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각 사람의 합작품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혼자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의 반응이 같이 있어야 되고,

 

또 반대로 사람이 열심히 노력 한다고 해서,

하나님 없이, 사람이 혼자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반드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과, 사람이 반응하는 것이 같이 합쳐져서 구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두 가지 측면 중에,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이

조금 더 '사람이 반응하는 것'에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면, *믿음의 반응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조금 더 포인트가 있습니다. *주권

그래서 이삭의 믿음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기다리는 믿음'이라 할 수 있죠.

 

이삭의 일생을 보면, 무언가를 주도에서 해서 먼저 시작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의 믿음을 보면, 아주 수동적으로 보이고, 또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 순해서

자기주장은 일도(조금도) 못 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그냥 끌려다니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아브라함과는 또 다른, 이삭의 특징적인 믿음의 모습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삭의 믿음의 특징은 뭐냐면,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고, 나는 그 안에서 안식하는 거죠.

 

이삭에게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도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걸 신뢰함으로 기다리고 안식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이것이 이삭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입니다.

 

이삭은 그의 탄생에서부터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으로 태어나게 하시지요.

그래서 이삭은 출생부터가 약간 특별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야곱도 그렇고 '약속을 받아서 태어났다'는 표현들은 없어요.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이 있었겠지만, 성경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이삭은 묘사되기를, 표현된 것 자체가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 가운데 태어나는 걸로' 묘사되고 표현됩니다.

 

왜냐면 이삭의 탄생 자체에,

이미 이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이삭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믿음의 DNA가 녹아 있기 때문에 그래요.

 

무슨 뜻이냐면 이렇습니다.

갈4:38절에 보면 이삭대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무슨 말이에요?

 

이삭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 같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속의 자녀'라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향한 약속을 가지고 계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에 그냥 우연히 태어난 존재 아니에요.

우리는 이 땅에 재수없어서 태어난 존재는 더더군다나 아니에요.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태어났어요.

약속 가운데 태어났다 하는 것은, 계획이 있으시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그 약속과 계획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이삭의 믿음은 여기서부터 시작 되는 거예요.

이 사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가지고 계신 약속이 있으셔!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이 있으셔!

크고 놀라운 약속이고, 복되고 소망 된 약속이야!'

 

이 약속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지를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각자는, 자기 삶을 향한 열정이 있고, 소원과 비전이 있습니다.

내 삶에 뭔가를 이루고 싶어 하고, 내 삶 가운데 뭔가 열매를 보고 싶어 하고,

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어떤 열정이 있어요.

 

그 열정 때문에, 열심히 성실히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나를 향한 약속을 가지고 계신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내 인생을 향해서, 소원과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도 열정을 가지고 힘을 다해서

우리 인생을 향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힘쓰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이삭의 믿음의 기초입니다.

여러분에겐 이 믿음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메세지가 그거예요.

'나는 너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나 God 는 너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나는 너를 향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나의 의지를 다하고, 나의 힘을 다해서, 그것을 이루어 갈 것인데

못 믿겠다면 이삭의 삶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삭의 삶 가운데 안 이루어진 약속이 있느냐?'

'이삭의 삶 가운데 실패한 계획이 있느냐?'

 

'이삭이 비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굉장히 소극적으로 인생을 산 거 같아 보이지만

그 이삭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그것이 나 God 의 약속이고, 그것이 나의 열정이라는 거예요.

이거를 보라는 거예요.

그것이 이삭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메시지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약속이 있으세요.

그리고 그 약속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던지시고 손을 떼신 약속이 아니라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시고, 열정을 가지시고

힘을 다해서 우리 각자의 삶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것이 이삭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믿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일하신다는 거에요.

 

이 믿음이 여러분께 있으십니까?

내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가지고 계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여러분, 이삭의 믿음의 시작점입니다. 할렐루야!

 

◑이삭이 받은 진정한 복은?         김성수 목사 창69강 중에서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삭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절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그가 하나님의 만류로 그랄에서 머물지요?

그랄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제일 끝 지점입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넘어갈 뻔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애굽의 초입에서 하나님의 만류로 그랄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을 듣고 그랄에 머문 이삭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네가 이 땅에서 머물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언약을 상속받은 언약의 장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도 그 가나안 땅을 지키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막으신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랄에 머물러 거부가 되는 모습이

성경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면

이 땅에서 이 세상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차적 기록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삶이라는 모형을 통해

하늘의 진정한 풍요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인간들의 의식 속에서

풍요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물질적 부()’를 들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약속의 자손들에게 부어지는 하늘의 풍요를 힌트 하신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랄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이 백배였다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백배’란 어떤 것과 비교하여 상상할 수도 없이

풍성한 것을 표현할 때, 백배라는 단어를 쓴다 했지요? *10이 滿數인데, 10x10

 

그 백배라는 단어는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해서

이 땅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하늘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인 것입니다.

 

혹자들은 이 구절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을 잘 들으면

이 땅에서 복을 받아 큰 부자가 되고 만사형통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객관적 공식을

도출해 내어 사람들을 미혹하곤 합니다.

 

그러나 잘 보시면, 이삭이 큰 부자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그랄 왕과 그랄 목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아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물도 빼앗깁니다.

그게 과연 복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일부러 이삭이 거부가 된 후에도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쫓겨 다니는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림으로 해서 이 세상의 힘을 얻은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창세기 29절에서 이삭이 진짜 복 받은 사람이 되는 장면을 그려 넣습니다.

 

(창26:23~25, 29)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 지라

 

25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 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부자가 되긴 했는데 계속해서

그랄 왕과 그랄 목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단순히 소 떼와 양 떼가 많아지는 것이 궁극적인 복이 아님을

고지하는 것이라 했지요?

 

그런데 29절에 와서 이삭이 진짜 복 받은 사람으로 인정이 되는데

그가 브엘세바로 쫓겨 가서 거기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때 그랄 사람들이 더 이상 이삭을 괴롭히지 않고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인정을 해 줍니다.

 

그런데 이삭이 어떻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시다가

그의 아비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제사를 지냈던 브엘세바로 몰아넣으시고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예배를 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은 이삭이 거부가 된 것이 진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삭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그 일이 진짜 복임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은 그 말씀을 듣고 제사를 지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 분께 제사를 지내는 이삭의 모습을 보고

그랄 사람들이 ‘당신은 진정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본문에서 성경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양떼와 소떼가 많아지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그 분께 순종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참 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수1:5-6)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땅을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에서의 강세는 땅을 주리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의 강세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인 것입니다.

땅을 얻는 것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죠.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왜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인지가 자명해 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삭이 그랄에 머물며 거부가 된 사건은

하늘의 풍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 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준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심 없이

그저 땅만 차지하고, 백배의 소출만 얻으면.. 그게 과연 진정한 복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