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음성이 들리는가 막7:31~37 2023.10.01.스크랩, 녹취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귀 먹고 입이 막혀 있는 한 사람을 치유해 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막혀 있는 부분들을 치유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막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지도상으로 보면, 예수님이 지중해변 두로 지방에 가셨어요.
이스라엘에서 바라볼 때 북서쪽이 페니키아, 성경에서는 '베니게' 라고 써있는데
핵심 도시가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 두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셨잖아요.
두로에서 시돈으로, 시돈에서 다시 데가볼리로 가실 때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지나서 데가볼리, 그리고 다시 갈릴리까지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반대파를 피하시기 위해서, 갈릴리 주변을 이렇게 한 바퀴 도신 거예요.
이렇게 인생길을 우회하셔야 됐는가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냥 직진을 하시는 것이, 시간 낭비가 없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 하죠. 특히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성격이 급해요?
관공서에 가서 문서 하나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발급을 받아야 되잖아요.
'인생의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한다?' 이거 용납하기 어려운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보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는 거예요.
인생이 빠른 것과 조급한 것은, 전혀 다른 뉘앙스라는 것을 아셔야 돼요.
저와 여러분이, 조급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가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른 숏컷,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32절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데리고 나왔어요.
이 사람은, 귀도 막혀 있고, 말도 막혀 있는 사람이었어요.
청력이 좋지 않으면, 입력되는 단어나 문장이 제대로 없기 때문에
언어 구사력이 떨어지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청력이 회복되면, 반드시 언어 구사력도 회복이 되게 돼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원리입니다. *주제
이 간단한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막혀있는 영성과 관계와 인생을 열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33절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그 사람을 따로 데려가셨어요.
사람들 앞에서 쇼를 하듯이 치료하신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를 대우해 주셨다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또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어요.
이것은 당시에 병자들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에 해당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손을 대지 않고 치료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방식을 사용하셨을까요?
1) 예수님이 온전하지 못한 자에게, 손을 대서 터치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사랑으로 그를 터치하신 거였어요.
2) 두 번째는 지금 예수님은 이 사람을 치유하고 싶으신데
이 사람은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치유의 행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한
몸의 언어(보디 랭귀지)이기도 했습니다.
▲34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왜 하늘을 우러러 탄식까지 하셨을까요?
귀가 막혀있고 입이 어눌하게 막혀있는 이 사람의 인생이
예수님은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셨을 거예요.
마치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갇혀있을 때, 이제 곧 그를 살려내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잖아요. 안타까우셔서...
△모세가 패배감에 사로잡혀서 '너를 애굽으로 보낸다. 내 백성을 이끌어내라'
'저는 애굽에 못 갑니다. 저는 바로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그 모세의 내면에 갇혀있음으로 인하여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요?
그래서 출4:10~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40년 미디안 광야에 있으면서 귀로 들은 소리라고는, 사람 소리가 아니었잖아요.
휭~휘잉 하는 지나가는 바람 소리, 메에 메 하는 양떼나 염소 떼들 울음소리,
그 소리만 듣고 40년을 살았잖아요.
귀로 듣는 소리가 그런 소리뿐이다 보니,
애굽에서 배운 학문과 언변의 능력이 다 사라져서
'저는 도저히 바로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게 틀린 얘기가 아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누가 너의 입을 지어주었느냐? 너를 바로에게로 보낼 테니까 애굽으로 가라!
내가 너의 입에 할 말을 담아 주리라!'
여러분 우리 인생이, 모세처럼, 자기 인생의 그 상황에 갇혀 있고,
내면적으로 갇혀 있고, 입이 막혀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는가요?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4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본문에 예수님께서 한마디를 외치셨는데, 아람어로 '에바다' 였어요.
Be opened up! 완전히 활짝 열리라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에바다'를 외치실 때
그의 귀가 뚫리고 그의 말문이 열리게 된 거예요. 할렐루야!
이건 분명한 기적이죠. 그러나 순서상으로 놓고 보면 너무나 과학적인 거예요.
혀부터 풀리고 귀가 열린 게 아니라, 귀가 열리고 나서 혀가 풀리게 됐어요.
사람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남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말이 어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갓난아기가 '아빠, 엄마' 이 한마디를 하려면
부모에게서 1천 번을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언어는, 일단 들리는 것이 있어야만, 그 다음에 비로소 말을 하게 돼 있어요.
(*영어 등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죠. 귀로 들어야, 비로소 입으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로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면
내 마음 가운데 '내가 지금 뭘 들었지? 무슨 단어? 무슨 개념? 무슨 의미?'
명확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내 안에 자신감이 없어서, 내 말이 어눌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주변에 보면 타고나기를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말이 트이는 애들이 있어요.
선천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근데 이런 사람들은, 사실은 공통점이 '귀에 음악이 잘 들리는' 사람들이에요.
음정이 잘 들리고, 곡조가 잘 들리는 사람들...
워낙에 잘 들리기 때문에, 자신의 입으로 잘 표현할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파푸아뉴기니에 비전트립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 나라가 얼마나 저개발국가인지, 자국에서 생산하는 상품이 단 두 가지밖에 없대요.
전부 다 수입품이에요. 굉장히 발전되지 않은 그런 모습의 나라였어요.
1960년대까지 식인종들이 살고 있었어요.
제가 오지마을에 가서 주일 예배를 참석했는데, 별 기대를 안 하고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음악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기타를 얼마나 훌륭하게 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환상적인 화음을 내면서 찬양을 합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화음을 낼까요?
그것은... 도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온갖 잡음이 들리잖아요.
도시에 엄청나게 많은 소리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너무나 고요한 자연 가운데 살아가니까, 풀벌레 소리도 다 들리죠.
노래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소리와 맞춰서, 자기가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가끔 우리가 이제 성경을 함께 봉독합니다.
근데 혼자만 빠르게 달려가면서 읽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말씀에 대한 열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리지 않는 거예요.
영성은 말하기 이전에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에 내 말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내 말소리만 크게 내고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과 속도가 다르고 엇박자가 나는데도
'그게 안 들린다?' 그러면 영적인 민감함이 떨어지게 돼 있고,
영성이 성장하기가 어렵게 돼 있어요.
'영성'이라는 것은 수직적인 것만 있지 않고, 수평적인 것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교회에 예배실에 가서 혼자 어두운 데서 기도하면
곳곳에서 몇몇 분이 개인기도를 하시거든요.
근데 혼자 기도하다가 제 마음에 감동이 생겨서 찬양을 부를 때가 있다고요.
근데 하루는 뒤에 앉아계신 어떤 분이 제가 찬양을 시작하니까
그분도 찬양을 시작하는 거예요. 근데 저와는 다른 찬양을 불러요.
제가 찬양을 멈출 수밖에 없잖아요. 이게 불협화음이 생기니까요.
제가 당연히 멈췄죠. 그분이 계속 찬양하시라고요.
또 제가 한참 기도하다가, 또 감동이 생겨서 제가 찬양을 시작하니까
그분도 또 찬양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찬양을 부르시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그분의 영적인 감동을 촉발시켜드리긴 했겠지만
그러나 그분은 감동을 받아서 찬양할지 모르지만, 그 분 귀에는 제 찬양소리가 안 들리는 거잖아요.
영성은.. 말하는 것 이전에 '듣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듣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몇 년 전에 제가 한 성도님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 첫째 딸은, 태어나자마자 말문이 트였어요.
정말 말을 어떻게 그렇게 조리 있게 잘 하는지요.
둘째가 몇 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얘는 전혀 말을 못하는 거예요.
1년이 지나고 1년 반이 지나도, '엄마 아빠'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다 웅얼거리는 거예요.
부모가 너무 많이 걱정을 했죠.
근데 제가 심방을 갔을 때 이 아이가 18개월 될 때였는데
'우리 아들이 말문이 트인 정도가 아니라,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18개월짜리 아들이!
그러면서 아이에게 직접 시연을 시켜서 제게 보여주더라고요.
거길 테이블 위에 물병이 놓여 있었는데, 그 상표를 한글로 또박또박 읽는 거예요.
제가 너무너무 놀랐어요. 그렇게 말이 늦게 트이던 애가,
갑자기 말이 트이고, 거기에다 글자를 읽는 능력까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아기를 봐주시는 이모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분이 매일같이 성경을 몇 시간씩 읽으면서
아이를 자기 옆에 앉혀놓고 한자씩, 한자씩, 또박또박 자기 손가락으로
그 글자 모양을 짚어가면서 읽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어린아이가 그 수많은 자음과 모음의 결합을 다 암기해버린 거예요.
그 아기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다 하나님이 천재적으로 창조하신 거예요.
'우리 귀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중입니다. *주제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언어,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서 듣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들은 대로 내 영혼에 새겨지게 되어 있고
그게 결국 내 입을 통해 언어로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청년부 사역할 때 농어촌 아웃리치를 정말 많이 다녔거든요.
그런데 다니다 보면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시골에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하고, 논 일, 밭 일 하면서 그렇게 평생을 지내다가
늦게 신앙생활 하신 할머님들이 계시거든요.
이런 분들이 교회에 와서 책을 펼쳐도 이게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글자를 못 읽는 거에요.
근데 찬송가를 많이 부르니까, 그 어르신들이 보는 옛날 찬송가는,
악보 없이 가사만 그냥 세로로, 글자만 써있는 게 있었어요.
무학이신지라, 글을 못 읽었는데
교회와서 찬양 소리를 들으면서, 찬송가 가사를 계속 눈으로 보다가
한글을 터득해서 읽게 된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교회 와서 찬양하다가, 성경 읽다가 한글을 깨치신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놀라운 "듣는 능력"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이해력도 떨어지고, 글자도 제대로 따라 읽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책 읽으라고 제게 용돈 주시면, 용돈만 까먹고 책을 못 읽었어요.
안 읽은 게 아니라 못 읽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상상력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검은 것은 활자, 흰 것은 여백,
상상력이 있어야 페이지를 넘기면서 재밌게 보잖아요.
당시 저는 아무것도 연상이 안 되고, 상상이 안 되고...
제가 지금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보면
너무 멍한 상태로 태어나서,
어릴 적에는 늘 멍때리면서 살았어요.
그러니까 저는 아침 먹고 나서, 어릴 적에.. 지금도 생각납니다.
잠실 주공아파트 계단에 딱 앉아서 하루 종일 멍때리고 있는 거예요.
'아, 바람이 부는구나.. 잠자리가 날아가는구나.. 세탁소 아저씨가 지나가는구나..'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다가, 또 점심 먹고 나와서 또 하루 종일 앉아있고...
초등학생이 그렇게 온종일 멍때리고 앉아있었어요.
제가 나중에 '인생의 어린 시절을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영문학과를 나왔는데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낭만파의 대가입니다.
이 사람이 The Tables Turned 라는 시를 썼는데,
두 사람이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자리를 서로 바꿔 앉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입장이 바뀐다는 얘기죠.
그 시의 일부를 소개하면,
Up! up! my Friend, 일어나라 일어나라 내 친구여
and quit your books 책들은 덮고
Come forth into the light of things 사물의 빛 가운데로 나아와
Let Nature be your Teacher 자연이 네 스승이 되도록 하라
제가 어렸을 때, 책 안 읽고, 아니 책 못 읽고
맨날 밖에 계단에 앉아 가만히 있었는데
'야 이게 광합성만 했던 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스펀지처럼, 제가 흡수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 속에 계속 쌓아두는 거죠.
그리고 어느 날 그게 오픈이 되는 거예요.
말이 안 들리고 글이 안 보이던 제게,
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첫 번째 책이 성경책,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다른 책보다 성경책이, 제 인생에 가장 먼저 열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여러분, 성경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서 보여주셔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린이 도서관 오픈을 할 텐데
보내주신 책들을, 기독교적인 내용이 있는 책들로 잘 정리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들 오셔서 아이에게 좋은 책도 읽어주시고
또 다른 아이들에게도 책 읽어주는 봉사도 하시면 좋겠습니다.
<신의 언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요. 말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성경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 가장 바른 길이 있어요.
"성경의 독자가 되는 동시에, 성경의 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게 읽어주시는 성경 체험,
성경이 내 영혼 안에 제대로 입력되기 시작하면 거룩한 혁명이
여러분의 내면 가운데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나는 기적을 원하신다면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그 말씀의 세계가 들려지는 역사가 먼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10월 중순부터 수요일 저녁에 성경통독 시작합니다. 다 오시면 좋겠어요.
저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눈이 열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이 여러분 우리가 보면, 결코 쉬운 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이 열리고, 하나님이 그 세계를 열어주시면서
'음성 지원'이 되고 '영상 지원'이 되니까
입체적으로 총천연 칼라로 파노라믹 뷰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말씀의 세계가 열리고,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은 '이르지 (소문내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계속 전파합니다.
이유는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 좋은 소식을!
왜냐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형상 그대로 우리를 회복하시는 일이니까요.
창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로 창조하신 줄로 믿습니다.
근데 죄로 인해서, 관리 소홀로 인해서, 너무 많이 망가져 있는 거죠.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셔서
'에바다' 선포하실 때
우리 인생에, 우리 영혼에 막혀있는 것들이 열려지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눈이 열리고, 여러분의 귀가 열리고
여러분의 막혀있는 언어의 세계가 열리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단어나 문장을 읽을 때, 발음이 자주 틀리는 분들 계시잖아요.
물론 이것은 여러분의 말하는 구강구조에 따라 다를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단어에 대한 민감함이 키워지면, 전혀 다른 차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게 나에게 들리는가요?
여러분 이 훈련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찬양할 때 '내가 지금 무슨 고백을 하고 있는지'
그 찬양의 고백이 나에게 들리는가요?
우리가 가끔 찬양할 때,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두 손을 안 들어요.
말은 그것이 현실로, 현실화 Realization 가 될 때 힘을 갖는 거예요.
우리가 카페에 가서 '카페 라떼 한 잔 주세요' 그랬는데
아메리카노가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간의 언어는, 그 언어가 계획이고, 그것이 뜻이고, 의지이고, 소망이기 때문에
그 언어대로 이루어질 때, 힘을 발휘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이 찬양을 할 때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말하면서, 두 손을 들지를 않아요.
그러면 그 언어에 힘이 없어져요.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근데 그 찬양을 부르면서, 내가 하나님을 정말 온전히 왕으로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요?
그럼 저는 제 마음 가운데 너무너무 죄송해서
그 첫 소절을 고백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럼 '진심으로 하나님, 나의 왕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나의 인생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찬양을 부르게 되죠.
여러분이 찬양을 하면서, 그 언어(가사)가 여러분의 진정성 있는 고백이 되는
훈련을 하시면 좋겠어요.
△근데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서 '나는 왜 말이 어눌할까?'
여러분이 사업을 할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도,
아이와 소통을 할 때도, 부부간의 소통을 할 때도... (말이 어눌한 분이 가끔 있어요)
여러분 '언어'라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고
일상 가운데 여러분 모두에게 소중한 힘이거든요.
그런데 왜 말이 어눌해지는가요? 자신감 부족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자신감의 부족이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언어와, 그 언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에 대해
스스로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을 뭐 책망하거나 다그치려는 게 아니라
과거에 저 자신이 특별히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뭐라고? 뭐라고?' 그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왜요?
제가 하도 웅얼거리니까 그랬던 거죠.
제가 중고등학생까지 말을 계속 웅얼거렸어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요.
나라는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나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언어에 대해서 민감함이 없으니까, 글을 읽어도 글이 읽히지 않아요.
말을 들어도, 말이 들리지 않아요.
내 안에 언어가 하나도 제대로 명확하게 새겨진 게 없었어요.
그러니까 말을 계속 웅얼거리는 거에요.
말이 그냥 줄줄 새나가듯이 발음하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럼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겨야만 언어가 강력해진다?'
그러나 크리스찬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 사람들이 아니고요.
하나님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언어가 절대 진리'라는 확신을 갖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멘!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언어의 강력한 힘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사 우리를 구원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거룩의 영으로 임하사
우리의 존재의 근본인 언어를 바꿔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언어를 변화시키시는 분이세요.
△저는 '언어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성경 인물로는 베드로가 생각이 나고
그렇게 생각없이 말하던 사람이, 놀라운 <베드로전후서>를 썼어요.
<베드로전후서>를 베드로가 썼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아요.
'그렇게 일자무식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개념적인 언어를 쓰느냐?'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면 변화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 한 인물이 떠오르는데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에요.
이 사람은 대장장이 집안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그냥 떠돌이 땜장이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냥 장바닥에서 구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성경 말씀에 심취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다 새겨지기 시작한 겁니다.
세상의 언어도 민감하지 않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언어가 그 안에 새겨지기 시작하면서
말씀의 세계가 총천연색 칼러로,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는 성경적 비유와 상징성을 가진,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언어로 쓰여진 <천로역정>이라는 놀라운 책을 쓰게 됐어요.
이 책이 당대에는, 존 밀턴의 <실락원 Lost Paradise>과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루는
중요한 기독교 고전이 되었고
성경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됐어요. 그 정도로 굉장히 쉽고 명쾌해요.
그런데 그 믿음의 정수는 또한 탁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존 번연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서 언어의 세계가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진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진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한마디 한마디 진정성을 담아 써주신 그 진리의 언어,
그 언어가 내 안에 먼저 들어와야 돼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의 언어를 닮아가기 시작하면
우리의 언어도 명쾌하고 쉬우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언어로 변화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세요. 가득 채우세요. 귀로 말씀을 들으세요.
그리고 그 세계가, 그 말씀의 세계가 들리기 시작하고, 보이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가 열리고, 그 다음에 입술이 열리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을 듣는가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좌우하게 돼 있습니다. *주제
오늘의 주인공처럼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지는
놀라운 존재의 변화, 하나님의 터치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