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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5장, 팥죽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사라

LNCK 2023. 10. 5. 21:23

https://blog.naver.com/karamos/80123752942

◈팥죽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사라   창25:27~34, 골3:1      2000.12.03.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 전에 만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최근에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만나면 계속해서 또 만나는 사람이 있고 
그저 한번 만나고 마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길가에서 만난 사람이든지, 전철에서 만난 사람이든지.. 한번 만나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저 한번 만나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우리가 만나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평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잘 나가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다...’

비록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나는 그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하고 
여러분들 마음속에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대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주 쉽게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 
이렇게 물질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지위를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학력,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냐 하는 것을 가지고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박사다’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을 하는 
그런 경험을 우리가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외적 조건이나 외모에 큰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경우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러나 저러나 외모가 번듯해야 사람들에게 점수를 받게 됩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서의 미모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16:19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 하셨고, 
삼상16:7절에도 보니까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22:16절에도 보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눅20장에도, 요7장에도, 행10장에도, 롬2장에도, 고전5장에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외모가 아니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을 평가하시는가요? 
성경에 나오는 여러 말씀들을 종합해서 우리가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이 재물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재물의 유무로 평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어디 출신이냐, 얼마만큼 공부를 했느냐? 하는 그런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문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우리 인간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기준 같은 것들은 
무시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 찾아보게 됩니다. 

다만 한가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다시 말하면 그가 가진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그가 가진 가치관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가진 가치관,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통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가치관, 그 사람의 믿음,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평가하는 평가의 기준이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만하면 됐다' 그런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한 그런 사람을 
찾기가 참으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 도달해보려고 
애를 쓰고, 결단을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여러 경우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사람, 
그리고 마4장에 나오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을 했던,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먼저 여러분, 본문 창25장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야곱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이 야곱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여러분, 야곱이 좋은 사람이었습니까, 나쁜 사람이었습니까? 
야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곱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대로 아주 교활한 사람입니다. 
에서는 어떤 면으로 보면 우직한 사람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은, 형을 속였고, 그의 삶을 가만히 우리가 살펴보면 
외삼촌 집에 가서도 아주 얄팍한 그런 속임수,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기의 실속을 다 챙긴 사람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넷이나 얻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한 일을 보면 
야곱이 얼마나 교활하고 얼마나 얌체 같은가, 얼마나 약삭빠른가?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형 에서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야곱은 가축 떼를 맨 먼저 보냈습니다. 종들을 그 다음에 세웠습니다. 
야곱이 아내가 네 사람이었는데 별로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내들을 앞장세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라헬을 맨 나중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얼마나 얌체 같은가요! 자기는 라헬 뒤에, 
그러니까 대열의 맨 뒤에 섰습니다. 얼마나 얌체같은 사람입니까! 
남자답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진실 되지 못하고,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하나님이 야곱을 좋게 생각하시니까 
야곱을 축복해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에 대한 야곱의 평가는 교활한 사람이다. 얌체다. 약삭빠른 사람이다.. 
뭐 별로 그렇게 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인데,

그런데 이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창28장에 보면, 벧엘에서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분명 여기에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괜히 야곱을 축복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괜히 야곱을 높이 평가하셨겠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창25:27~34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산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판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에서와 야곱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이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은 야곱이 가졌고, 장자의 명분은 에서가 가졌습니다. 

팥죽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무엇입니까? 언제 자기에게 돌아올 줄 모르는 먼 훗날의 막연한 것입니다. 
팥죽, 그것은 배고픈 사람에게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분은 지금 당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입니다. 표가 안 나는 것입니다. 

팥죽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손으로 지금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손으로 쥘 수 없는 추상적인 것입니다. 

팥죽은 무엇입니까? 먹으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그것을 가졌다고 해서 무슨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정말 효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 같았으면 이 팥죽과 장자의 명분 중에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에서처럼 여러분들이 아주 배가 고픈 상황에 있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팥죽과 장자에 명분 중에....

이렇게 생각해보면, 팥죽을 선택한 에서의 결정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추상적인 것, 
그거 가져봐야 무슨 유익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 
그것보다는 지금 당장 배고픈 나에게 필요한 이 팥죽 한 그릇,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인 것입니까? 

보통 우리가 에서를 가리켜서 팥죽 한 그릇에 
그 중요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바보다. 그렇게 말합니다만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에서야 말로 현실적인 판단을 한 사람이고, 
실용주의적인 이익을 챙긴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러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바로 에서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지요

'이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돌아오는 구체적인 이익이 무엇일까?' 
이것이 우리의 결정의, 판단의 기준입니다. 

나라가 어쩌고, 민족이 어쩌고, 이웃이 어떻고, 인류의 미래가 어떻고, 사회정의가 어떻고...
그런 나와 지금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추상적인 것 말고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먹고 사는 것, 내가 살아가야 될 집, 내 직장, 
내 일, 내 건강... 지금 나에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 그것이 우리들의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누가 에서입니까? 우리들이 에서입니다. 
만약 우리가 에서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은 적어도 이 눈앞에 있는 먹을 것, 
당장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 
그런 시시한 것들에 연연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멀리 내다봤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배고프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추구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 팥죽 한 그릇을 놓아두고, 그리고 장자의 명분을 선택했습니다. 
팥죽을 팔아서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인들 왜 당장 필요한 이 팥죽을 마다했겠습니까? 
왜 이 팥죽을 먹고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현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자신의 삶을 투자했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야곱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큰 인물이 될 자질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리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이 이것입니다. 
좀더 높은 차원의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 
좀더 멋진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것 아니냐?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되는 것 아니냐?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거듭 거듭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가셔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셨습니다.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밤낮 눈만 뜨면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으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침 일찍 차 타고 회사에 가서,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너희들이 평생동안 고기만 잡다 말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게 인생을 평생동안 살면 나중에 남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한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말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고기잡이,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해도 해도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고기잡이...이제는 그만!
'물고기 대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사람을 잡아라.'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삶의 가치관을 높여라. 삶의 목표를 바꿔라. 
삶의 내용을 업그레이드 해라.' 
물고기 잡는 어부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부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잘아는 대로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바꿨습니다. 
물고기 대신 사람을, 물고기 잡는 어부대신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들의 삶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삶의 내용을 바꿨습니다.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자신의 관심을 옮겼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교회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차원을 높여서 살았더니 나타난 결과입니다.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삶의 내용을 바꿨더니 일어난 일입니다. 
가치관의 변화로 인하여 생겨진 엄청난 결과입니다.

▲마6: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런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라. 그것은 다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현실적 차원의 삶, 현세적 차원의 가치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평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밤낮 70년, 80년 동안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내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평생 동안 그것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느냐? 
어떻게 그렇게 유치한 삶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느냐? 

'더 높은 차원의 가치관을 가져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고 인생을 사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세상을 생각하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사도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골3:1절 말씀에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밤낮 땅만을 보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눈을 하늘로 향하여 '위에 것을 찾아라'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사셨습니까? 
여러분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무엇을 얻으려고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습니까? 

여러분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시간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그리고 여러분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 잃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습니까?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실까?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그 사람의 관심 그런 것을 보면 사실은 
그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돈 얘기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어떤 사람은 자식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얘기, 일 얘기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그의 가치관입니다. 

땅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나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지금'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야 말로 에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에서가 누구입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다 판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60년, 70년, 길면 80년 삽니다만
우리가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무언가 좀 그럴 듯한 일을 한번 해보고 
이 세상을 떠나야 될 것이 아닙니까? 

내가 이 땅에, 이 역사에 다녀갔다는 무슨 흔적을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큰 흔적이 아니라 뭔가 작은, 반짝거리는, 그런 아름다운 그런 흔적이라도 남겨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저 밤낮 없이 일하고 처자식하고 밥이나 먹다가 죽을 것입니까? 
이제 그만 우리도 야곱처럼 팥죽을 팔아서 장자의 명분을 사야하지 않겠습니까? *제목
땅의 것을 팔아서 하늘의 것을 사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과 시간과 지식과 건강이라는 팥죽을 팔아서 
이웃 사랑, 인류구원, 봉사와 헌신, 화평과 평화...
하늘의 것, 장자의 명분을 사야 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더 이상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서 사나? 
그런 유치한 차원의 삶을 살지 맙시다. 다 이방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여러분들의 가치관을 업그레이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내용을 바꿔야 되겠습니다. 

팥죽에서 장자의 명분으로,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나에게서 이웃들로, 
땅에서 하늘로, 지금에서 영원한 미래로, 우리의 삶을 바꿔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가치관의 업그레이드, 우리 삶의 변화, 이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있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그 신앙과 삶이 아직도 주일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전도하고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언제까지나 밤낮 성경공부만 하고 앉아 있을 것입니까? 
이제 그만 우리가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살아봐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언제까지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고 밤낮 모여서 
주여, 주여 소리를 지를 것입니까? 
이제 우리 안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힘차게 이루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성경 공부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배운 대로 행해야 됩니다. 
언제까지나 설교를 듣기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언제까지나 성령을 받겠다고 주여, 주여 할 것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힘있게 일해야 됩니다. 

언제까지나 내가 복 받겠다고 하나님을 조를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흔히 보면 50, 60세 되서 공부를 또 시작해서 
평생 공부만 하다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력가지고, 그 힘 가지고 아는 것만큼 더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배우다 말 겁니까?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배웁니까? 
배울 때가 있고 행할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만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배운 만큼 쓸 수 있어야 됩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합니다. 
'교회가 이 새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것을 기점으로 해서 
우리의 신앙이 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 우리의 삶, 이것이 업그레이드 되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우리에게 팥죽이 있다고 하면, 이제 그만 그 팥죽을 팔아야 되겠습니다. 
팥죽을 팔아서, 땅에 있는 팥죽을 팔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사야 되겠습니다. 
땅의 것을 팔아서 하늘의 것을 사야 되겠습니다. 
땅의 것을 팔아서 하늘의 별을 사야 되겠습니다. 
땅의 팥죽을 팔아서 하늘의 달을 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손에 있는 팥죽을 팔아서 말입니다. 그 옛날 야곱처럼. 팥죽을 팔아서 
장자의 명분을 사라. 오늘 이 아침 우리들을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