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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장, 야곱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LNCK 2023. 10. 6. 20:15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7022713

 

◈야곱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창31:1~16      2014.01.12.  창세기 설교모음

 

서론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외삼촌 라반의 집이 있던 밧단아람에서 20년이나 머물고 있는 야곱에게,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31: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을 살면서 여러 가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구원의 확신기도응답의 확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롬8: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1.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이유

 

그러면 왜 하나님은 20년 동안 밧단아람에서 자리를 잡고 부자가 된 야곱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까?

고향도 떠난 지가 오래되면 타향이 되고,

타향살이도 오래 살면 고향이 되는 법인데,

왜 하나님은 20년이나 머문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까?

 

더군다나 당시 야곱의 나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밧단아람에 올 때 나이가 77세였고, 20년이 흘렀으니, 그의 나이는 97세가 됩니다. 주1)

 

하나님이 97세의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밧단아람이라고 하는 곳이 일시적인 처소이지,

영구적인 처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오게된 것은 형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까, 그를 피해 잠깐 왔던 것입니다.

 

원래는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결혼만 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그것이 늘어나서 20년이 된 것입니다. 밧단아람은 비록 20년을 살았어도 고향이 아니고,

자기가 죽을 때까지 거할 처소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 이 밧단아람은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지는 무대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창28:13절에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곧 가나안 땅이야말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중심 무대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가족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사는 곳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나안 땅은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서 탄생하실 것이고, 메시아의 육신적 조상이 될 사람들이 사는 땅인 것입니다.

 

메시아의 육신적 조상들이 될 사람들은 밧단아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발은 밧단아람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 삶의 중심을 어디다 둘 것인가?”라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중심을 직장에다 둡니다.

먹어도 직장, 놀아도 직장, 휴가 받아도 직장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직장에서 은퇴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몸에 병이 날뿐만 아니라 중심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라는 찬송만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삶의 중심을 정치 단체나, 휘트니스 클럽, 또는 선교 단체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며,

교회를 통해서 선교를 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또 다른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와 기도와 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야곱에게 “삶의 중심을 바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가나안’을 신약의 ‘교회’라고 적용

교회라고 하는 삶의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성도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이 되면 가서 예배를 드리며, 앉아 기도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또 내가 교제할 성도들이 있어야 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영적인 동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중심이 교회여야만 합니다. 교회가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그것은 밧단아람에 머물고 있는 야곱처럼 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밧단아람은 일시적인 처소일 뿐이고, 가나안 땅이 교회였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20년을 살았어도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야곱엑 아내가 4명이나 있어도 모두 자기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자식이 12명이나 있어도, 모두 자기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31:43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라반이 야곱에게 ‘야곱아, 나가려면 너 혼자 나가라’는 말인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 장면을 보면서

‘아니, 왜 라반은 저런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 왜 야곱은 자기 처자식들을 데리고 나오는데 이렇게 도망치듯 나왔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라반의 말은, 생떼, 억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처자식에 대한 모든 소유권이 외삼촌 라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법으로 주인이 사위에게 아내를 얻어 주면,

후에 주인을 떠날 때, 혼자만 떠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아내도 주인의 것이고, 자식들도 주인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의 관행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 모계사회에서는 당연한 관행이었습니다. 

 

모계사회는, 가부장적 사회와 달리, 남편은 ‘데릴사위’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냥 직원(종)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권한은 누구에게 있느냐? 엄마에게 있기 보다는 ‘외삼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이, 지금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는 것입니다. 모계사회에서 실질적 가장입니다.

지금 라반이 ‘네 아내도 내 것, 네 자녀도 내 것’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라

그게 모계사회의 법이었죠. 당시는 모계사회였고, 거기서 야곱은 ‘데릴사위’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내들도 자기 소유가 아니고, 자기 자식이라도 자기 소유가 아니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오고가는 것을 결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야곱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형 에서를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제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꿈속에 나타나 그의 갈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 10:23).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인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가는 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그저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피영민 목사)는 28살에 예수님을 믿고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면서 32살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신학교를 다니고, 만 34살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고대법대 졸업

졸업을 하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당시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의 월급이 20만원이었는데

이 20만원으로 우리 아이 유치원 학비를 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사로 사역을 하자니 먹고 살기가 어렵고,

 

또 저는 그 당시 신학교를 다니면서 어학원 강사를 했었는데,

원장이 독일어 단과반 강사를 하고 있던 제게 영어로 과목을 바꾸라고 하지 않습니까?

영어 과목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바꾸면 당시 한 달에 천만 원은 벌 수 있었습니다.

 

1985년도에 학원 강사는 한 달에 천만 원. 교회 전도사는 20만원.

여러분 같으면 전도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학원 강사로 가시겠습니까?

그러니 고민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를 하자니 먹고 살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신학교를 졸업했는데 학원 강사까지 하면서 먹고 살아야 되나?

하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학원 강사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원 강사 그만두고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유학을 가서 목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야할 길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오게 되어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도 야곱처럼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야곱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 역시 그때마다 고민을 했습니다마는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다 인도하시고,

오늘날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이 야곱을 인도하실 때 어떤 방편들을 사용하셨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어떤 수단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는 크게 세 가지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1.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수단 첫 번째는

야곱이 처한 처지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상황의 인도’입니다.

상황이 야곱으로 하여금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1~2).

 

야곱의 상황이 변했습니다. 야곱이 거부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니 외삼촌과 그의 아들들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자기를 대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거부가 된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2014년도에는 모두 거부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거부는 노력한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단 6년 만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밧단아람에 온지 14~20년 사이의 6년

그러니까 외삼촌 라반의 안색이 변하고 외삼촌의 아들들도

“저 놈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아서 우리는 가난하게 되었다”며 욕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유산이 줄어들까봐 야곱을 욕하는 것이니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이 처한 상황은 더 이상 외삼촌 집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상황이 야곱을 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만 있으면 떠나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인인 외삼촌, 처남인 그들과 싸울 수 있습니까?

그들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이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정말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야곱이 받은 임금은 가축들 중에서도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그리고 검은 것들이었습니다.

아롱지지 않고, 흰 것은 모두 도둑질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축 중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부 다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입니다.

 

창31:11~12절에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외삼촌은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감추었지만,   *교미 못하게 하려고 야곱에게 흰양만 맡김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야곱이 돌보는 양들 중에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알록달록한 것들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물론 야곱이 무슨 나무껍질을 벗겨서, 양들이 물을 마실 때, 그것을 쳐다보게 하는 방법을 썼지만요.

 

그래서 그 얼룩진 것들이 모두 야곱의 소유가 되게 하셨습니다.

라반이 계약을 바꾸면, 바꾸는 대로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도둑질 한 것이 없이 늘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에 있어서

정직한 마음과 태도를 갖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욥16:19절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

자신의 정직함에 대한 증인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변호해 주고 보증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죄로 인해 자기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은 자기가 감내해야 할 벌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행했음에도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창31:1절에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라는 기록 중에

‘거부’라는 단어가 ‘카보드’라는 히브리 단어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영광을 갖게 되었다 하는지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그렇게 문자적으로 번역했죠.

 

히브리어 ‘카보드’는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라반의 아들들은 세상의 재물을 ‘영광’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재물은 그 나름의 영광이 있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 재물을 빼앗아 영광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카보드’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가봇’하면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지금 세상 재물을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세상의 영광은 재물과 권세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 재물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는 사닥다리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세상 재물이란 그저 살아가는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결코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성도들은 하늘에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돈, 권력, 명예, 그리고 자기가 가진 훈장이나 표창장 같은 것들이

영광일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하늘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땅의 영광도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7~18).

 

보이는 것은 영광이 있어도 잠깐이고, 약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약할 뿐만 아니라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은 중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은 자기의 상황이 어려워도 강직했고,

자기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라도, 영광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상황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수단의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1:3절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13절에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야곱의 꿈속에 나타나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야곱의 꿈속에 나타나 당신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이 꿈과 환상으로도 말씀하실 수 있지만,

대부분은 기록된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 66권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꿈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인도하심의 요소와, 특히 말씀과 일치하는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왜냐면 사탄이 꿈을 통해서도 역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은 자신의 생각이 투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꿈은 전부 믿을 수 없습니다.

꿈이나 환상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구약시대, 계시가 불완전한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더욱 확실한 예언으로 성경을 사용하십니다.

성경 말씀이 확실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모이면 성경을 공부하고, 더 모이면 성경 강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암송하고, 성경을 쓰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 8~10).

 

지금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에게도 글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1학년생들도 다 알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는 분이 계십니까?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되신다.’

또 약한 분이 계십니까?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십니까?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예언을 두고, 어디 가서 예언을 받습니까?

그러니까 주변의 상황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은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내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하니까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레아와 라헬도

이구동성으로 남편을 지지하였습니다. 만장일치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준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힘을 잃을 때, 아내의 격려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내들이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준행하라고 하니

야곱이 용기를 얻어서 20년 만에 처자식들을 다 데리고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이미 소천하신 아버지께 늘 감사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복무 4년을 마친 후

아버지께 가서 신학교를 들어가야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왜 가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다’고 대답했고,

아버지는 단 한 마디의 반대 없이 바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1회 졸업생인데

동창생 모임에서 동기들 앞에 얼마나 기가 죽었겠습니까?

 

친구 아들들은 고시 합격해서 판사를 한다는데,

우리 아버지 아들은 (고대 법대) 대학원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 제대하고

신학교 다니며 쩔쩔매고 있으니, 얼마나 아버지가 기가 죽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버지는 하나님의 뜻이면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태껏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자식이 이랬다면

목사인 나도 그것을 허락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학교를 가고 이렇게 목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목사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데

성도들이 아무도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목사의 길을 가면 안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도가 아무도 인정을 안 해 주는데, 어디 가서 목회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의 인정, 가족들의 인정, 성도들의 인정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요소들 입니다.

 

결론

 

야곱의 전환점에 보니까

상황의 요구,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가까운 가족이나 성도의 인정이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는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안전한 길입니다.

 

누가 무슨 환상을 보고 꿈을 꾸었던지 간에 이 세 가지가 일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만 따라가다 보면 큰 실패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리건대 삶의 중심을 교회에다 놓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살게 되실 것입니다.

 

먼 훗날 나의 삶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복된 삶이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야곱이 바로 왕을 만났을 때가 130세였지요?

그 때 요셉의 나이는 39세입니다.

왜냐면 그가 30살에 총리가 되어서 7년 풍년을 지냈고

2년의 흉년을 지났을 때, 야곱이 애굽으로 와서 바로를 알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요셉의 나이 차를 계산해 보면, *130-39=91

야곱이 요셉을 91세에 낳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야곱이 요셉을 낳은 것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지낸 후이므로

91에서 14를 빼면 77 가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4년 후에, 흉년으로,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