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6장, 화려했으나 단절되어져 버린 에서의 스토리 여러설교정리
◑서론
창세기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데요.
-창조의 이야기 1~2장
-창조한 피조물들과 또 창조된 인간 세상이 타락한 이야기 3~11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창세기 전체가 다루고 있는 것은 <구속의 이야기>죠. 12~50장
다시 말하면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의 이야기인데
타락한 인류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의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창세기를 또한 '족장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은 타락했는데
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 중에 얼마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이야기, 구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아브라함을 구원 하시죠.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구속의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구원=구속
그리고 그의 아들 이삭을, 이스마엘과 구별 하십니다.
그 이삭을 통해서 구속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죠.
그리고 이제 그 이삭 안에 쌍둥이 형제 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아브라함과 이삭을 구별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삭 안에서 약속의 아들 야곱과, 육의 아들 에서를 구별하십니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은 야곱을 또 따로 구별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노아 때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따로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구로 해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화려했으나, 단절되어져 버린 에서의 스토리
이런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를 쭈욱 이어오는 중에
본문 창36장은, 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에서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이삭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요. 딤전2:4
그래서 창세기 에서의 스토리의 결론이 무엇인가 하면,
36: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러니까 '에서의 이야기는 이러하니라' 라고 펼쳐지면서
이 에서의 족보 이야기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6~8절은 이렇습니다.
36:6~8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성경에 더 이상 안 나오는 에서 이야기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떠나버렸습니다.' :6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는데' :6
야곱은 '약속의 사람'이었죠. 마치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8절에, '세일 산에 거주하였다'
시온산에 거주하게 된 야곱과,
세일산에 거주하게 되는 애서가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36장 전체는 <에서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주 화려하게 끝이 납니다.
에서에 의해서 족장들이 나오고, 36:15~30
에서에 의해서 먼저 왕들이 일어나는 등 그의 이야기는 아주 화려하죠. :31~39
그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습니다. 36:15~43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제 36장 이후에, 에서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의 성공이)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책에는, 그리고 하나님께 있어서는, 에서의 이야기는 끝나버렸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함께 나오고 있던 이 이야기에서
에서의 이야기가 36장 에서 끝이 났지만,
37장에 넘어가면,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37:2
창25장부터 야곱의 이야기를 이어오다가
에서의 족보와 이야기는 36장에서 마무리짓고
야곱의 이야기가 37장부터 다시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에서는, 세상에서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구속사에서는 단절되어 버렸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가나안)에서도 떠나버렸고,
하나님의 약속의 사람(야곱)에게서도 떠나버렸고,
택한 자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는, 배제되어졌던 것입니다.
이후로 영영히!
그렇지만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고,
벧엘과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축복을 받은 야곱은,
이 세상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성경의 초점이 그의 현세적 성공, 실패가 아니라)
그는 세상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역사 경영의 주인공으로
계속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37장 이후에도요.
그래서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하면서, 37:2
그의 이야기가 계속, 사실은 창세기 끝까지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은,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가
야곱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현세적 성공"에 관심이 많습니다.
에서를 그 관점에서 바라보면, 세상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본문 36:15절부터 끝절 43절까지 보면,
에서 밑에서 나온 족장들과 왕들의 족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에돔 족속, 에돔 나라를 이룬 것입니다.
에돔 나라의 단군 시조가 된 것이죠. 그만하면 대단한 성공입니다. 혁혁한 업적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성공은 너무나 찰나적이고, 보잘것 없습니다.
왜냐면 현세에서 끝나버리는 성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전체를 살펴보면, 그렇게 현세에서는 성공을 얻었지만,
'영생'을 얻지못한 '위인'들이 계속 연이어, 연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그랬고,
함의 후예들이 그랬고,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그랬고,
본문에는 에서의 후손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배제된 그들이
'모두 비실비실하고, 찌질이와 루저로, 별 볼 일 없이 살았다'가 아닙니다.
다들 현세에서는 화려하고, 멋있게 살았습니다. (물론 실패자, 루저들도 섞여 있었겠죠)
그래서 존 칼빈은, 에서의 영광을 "멋진 무덤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단순비교가 어렵겠지만, 성경을 보면
'약속의 자녀'보다, '약속 바깥의 자녀'들이, 현세적 관점에선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더 큰 나라들을 이루었고, 더 많은 자손들을 낳았고, 더 힘이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두고서 '참 복'이라 말하지 않죠.
왜냐면 찰나적이고, 현세적이고, 이 세상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복이기 때문입니다.
*관련글 에서의 족보가 주는 교훈
창25장,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다 ('유기'에 관한 성경적 관점)
△그럼 하나님은 에서와 그 자손들을 '유기'하셨나요?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셨나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선택'하지 않으신 거죠.
하나님은 그들도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에서의 손자 중에는 아말렉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나스 같은 사람도 있었죠.
그나스의 아들이 바로 첫번째 사사 옷니엘 입니다. (수15:17, 삿1:13, 3:9)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지정하신 가나안을 선택자 야곱에게 상속하시기 위한 뜻에 의하여
에서는 그 땅에서 축출 되었던 것입니다.
에서는 자기 힘(칼을 의지하여)을 믿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27:40
그리하여 큰 모험심을 가지고 야곱을 떠나서 여러곳을 방황하다가
결국 세일 산 부근에서 정착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힘으로 정복하고 하나의 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후손은 자연히 다른 부족들과 섞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른 부족들도 모두 에돔 족속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에 벌써 세일 산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에서는 이삭에게서 받은 축복으로 인하여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돔 족속은 그러한 영광이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번영과 비교할 때 전혀 비교도 되지 못할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받은 축복과 에서가 받은 축복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에서의 축복은 잠시였고 야곱의 축복은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신자들의 축복은 잠시 잠간일 뿐이고 성도의 축복은 영원합니다.
△"그(세례요한)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 눅1:15
라고 말씀하신 "큰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가 큰 인물인가요?
여러분의 무남독녀가, 세례요한 같은 ‘큰 인물’이 되기 바라시겠습니까?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참수당하는 ‘큰 인물’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 인물이란
출세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버는 회장님,
국회의원, 장관, 대학총장.. 뭐 이런 분야에서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은혜 주셔서 세우시는 ‘큰 인물’은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큰 인물’입니다.
성경에서 큰 인물의 기준은 "주님 앞에서"입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눅1:15
따라서 세상 관점에서 말하는 큰 인물도,
주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인물이 될 수 있고
세상 관점에서 아주 작은 인물이..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은혜를 받으면.. ‘큰 인물’이 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됩니다.
은혜로 태어난 세례요한의 삶도..
모친 마리아의 삶처럼, 결코 녹록하지 않고, 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았기에’.. 그 은혜가 그의 삶을 이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마치게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딤후4:7
◑그렇지만 계속 이어지는 야곱의 스토리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37: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위 구절에서 주어가 '이스라엘(야곱)'입니다.
창37장부터 요셉의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37장의 주어는 여전히 주로 '이스라엘(야곱)'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로서 요셉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처음 시작은 야곱이었지만, 하나님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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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ramos/80168908486
◑에서의 족보가 주는 교훈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창36:6)”
창세기 36장에 나오는 에서의 족보를 보며 이 족보가 어떤 족보인지,
우리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야곱이 예수 믿게 하기 위해 그를 힘들게 한 에서의 족보가 먼저 나옵니다. 36:1
창세기에 등장하는 10개의 계보 중,
아브라함을 힘들게 한 아비 데라의 족보,
이삭을 힘들게 한 이스마엘의 족보가 먼저 나오듯이
여기서도 야곱(37:2)보다 에서의 족보(36:1)가 먼저 소개됩니다.
하나님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셨지만(말1:2-3)
에서는 자기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연약해도 늘 하나님을 택했는데,
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경홀히 여길 따름이었습니다.
에서의 족보는 불신결혼의 족보입니다. 36:2~3
에서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가나안 딸들을 취했습니다. :2
이것이 부모의 마음에 근심이 되자(창26:31),
이번에는 유사 그리스도인인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취하는 어긋난 순종을 합니다. :3
성경은 계속해서 불신결혼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창6:2, 신7:3-4, 수23:12-13
결혼은 육체의 결합뿐만 아니라 영적인 연합이기에
불신결혼은 영적인 퇴보와 배교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공동체에 속해 성령이 근심하지 않는 행실을 유지할 때에,
주님이 알맞은 상대를 만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에서의 족보는 자기 중심적인 족보입니다(2,4-6).
6절에는 ‘자기’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6절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부유한 환경에서 가족신화와 자기애(narcissism)에 푹 빠져 오직 자기밖에 모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이 없는 편안한 환경이기에,
자기를 사랑하며 망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딤후3:2-4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계속 손을 쓰시면서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력함을 절절이 느끼게 하시지만
에서는 정욕대로 살게 내어버려 두셨습니다. 롬1:24
에서의 족보는 영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끝난 족보입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7~8
에서는 결국 자기의 모든 식구를 데리고 가나안을 떠나 세일 산(에돔 땅)으로 갑니다.
야곱은 재물을 얻을 때마다 고향 갈 생각을 하다가
결국 밧단아람에서 얻은 아내와 자녀 모두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에서는 반대로 믿음의 공동체를 스스로 떠납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절로 다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갑니다.
야곱과 그 자녀들이 이루고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너무나 찌질해 보이기에
자기중심적으로 결정하고 가축을 기르기 좋고 도덕적, 성적, 영적으로 타락한
세일 산에 거합니다. :8
시작은 믿음의 아버지에게서 영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은 육체의 세일산으로 마치는 불신자의 족보를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영적 후손인 우리 성도들은
각자가 지고 가는 십자가의 고난이 축복이 되어
말씀을 깨달아 내 인생을 해석하고,
같은 영적 식구들을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교육 천국, 복지 천국이 천국이 아니라,
나의 힘든 환경을 인해, 내 자아가 죽어지고 썩어져서 믿음의 족보에 올라가는
참된 천국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한한 세상 나라
에돔 족장의 족보 36:9-19
세일 산에 거했던 호리 족속의 족보 :20-30
에돔 왕의 족보(31-43)가 나오는 에서 자손의 족보를 통해서
유한한 세상 나라의 특징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세상 나라의 특징은 악과 음란입니다(9).
세 아내, 다섯 아들, 열 한 손자, 열 네 부족국가를 이룬 에서의 족보는
창세기 36장 한 장에서만 언급됩니다.
에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대로 살고자
불신결혼을 하고, 부인의 고향인 호리 족속의 세일 산으로 떠났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가치관 때문에 불신교제와 불신결혼을 하고,
혼전임신과 낙태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세상 나라, 이 세대의 특징입니다.
대대로 원수가 있는 나라입니다(12).
특징 없이 이름만 계속 언급되던 에서의 족보에 첩 딤나가 아말렉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불구대천의 원수인데, 악하고 음란한 가치관대로 첩을 삼았더니
거기서 무서운 히틀러 같은 아들 아말렉이 나온 것입니다.
집집마다, 교회마다, 부부간에 죄의 결론인 원수 아말렉이 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워주실 하나님과 공동체가 있는 반면(출17:8-16),
에서에게는 싸워주실 하나님이 없습니다.
나의 목표가 하나님이 되어 내 실수와 찌질함을 오픈하면,
주님이 대신 싸워주시고 공동체가 함께 기도해줍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유한한 세상 나라는 대대로 원수만 있을 뿐입니다.
덧없는 것을 의지하는 나라입니다(24).
일곱 족장과 스물 한 명의 후예가 소개된 호리 족속은 에돔에게 병합이 되고,
24절에 에서 자손들이 온천을 발견한 내용이 나옵니다.
호리 족속 처갓집이 잘 사는 것 같아 세일산으로 갔는데, 고작 온천 하나를 얻었을 뿐이었습니다.
믿음이 아닌 돈으로 맺어진 결혼이었기에 호리 족속도 사위인 에서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영원한 강자,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만이 초라해 보여도 영원할 것입니다.
세상 자랑만 하는 나라입니다(31).
에돔이 이스라엘보다 850년경이나 앞서 왕정을 수립해 번성하는 것 같지만,
회개와 십자가를 모르는 세상 자랑일 뿐입니다.
직장, 자녀, 학벌과 미모 권세만 자랑하는 것이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이 왕을 세워 하는 일은 죽고 대신하여 왕이 되는 일(33-34),
지배와 피지배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번성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데 반해,
불신자의 가문은 아무리 번성해도 3-4대뿐인 성경 한 장의 번성에 불과합니다.
야곱이 찌질하고 죄 많은 인생을 구구절절 오픈하고 간 것에 비해,
오픈과 진실함을 찾아볼 수 없는 에서의 족보는
결국 3-4대에서 사라져 훗날 이스라엘에 합병되어
그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익을 이스라엘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에서 한 사람의 결정으로 수많은 후손들이 예수 없는 멸망으로 걸어갔습니다(43).
에서와 그 후손은 성령으로 시작해 육체로 마친 사람의 대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때부터 25년 후에는 기근으로 애굽에 피난가는 고난의 족보가 이어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유한한 세상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나라입니다(갈5:16).
세상 나라가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는 십자가를 길로 놓는 적용을 할 때,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반드시 창대케 하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왕으로 섬기며, 우리의 주소를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로 옮기는 저와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