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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4장, 또 다시 위기의 파도를 타고 넘는 야곱

LNCK 2023. 10. 12. 16:43

 

◈창34장, 또 다시 위기의 파도를 타고 넘는 야곱        인터넷설교정리

 

*본문 창34장은, 야곱의 딸 디나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사람들을 모두 학살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험악한 세월'입니다. 47:9

우리 식 표현으로 '팔자가 센 사람'입니다. 야곱은 일생 죽음과 위기의 파도를 넘어야 했습니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듯이요. 그의 일생이 그랬습니다.. 우리 인생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왜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위기의 파도를 다시 한 번 또 타고 넘게 되었는지.. 본문은 설명해 줍니다.

 

창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1. 인생 싸움은 눈 싸움

 

야곱은 세겜에 머무르면서 벧엘로 올라가기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서원 이행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죄가 되는 일입니다.

 

신23:21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이처럼 하나님의 일에 늑장을 부릴 때 사단이 틈을 타는 법입니다.

본문 1-2절대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땅 여자를 보러 나갔고,

이때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로서 그 땅 추장인 세겜에 의해 강간 당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당시 디나는 호기심이 왕성하고 충동적 욕구에 이끌리기 쉬운 10대였기에

세겜 땅 여자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인데,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디나처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을 보고 유혹을 받아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에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창6:2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는데’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나버리셨습니다,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매우 싫어하시고 홍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지금 본문의 디나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세겜 성으로 갔다가..

불행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 처음엔 말도 서로 섞고 그랬겠지요.

 

‘보는 것 정도가 무슨 죄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영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유도

위 창6:2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자녀들이.. 너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결국 세상의 악한 영에 짓밟히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는, 맛을 잃은 소금같이 되어서, 세상의 발에 밟히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 편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습관을 좇아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다 합니다.

목회자는 설교도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뜨겁거나, 열정적인’ 사람은 찾아보려면..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에 취해 있었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나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창6:2~3

    ☞인생 싸움은 눈 싸움http://blog.daum.net/rfcdrfcd/15978144

 

◑2. 생명의 냄새, 사망의 냄새

 

디나를 강간한 세겜만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일에 잘못이 없는 그 성읍 다른 백성들을

무참히 다 살해하고 노략까지 한 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너희가 악취를 풍기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창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야곱은 오랜 시간 후에 이 시므온과 레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창49장에서 12아들을 축복할 때에, 이 두 아들에게 많은 축복을 내리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화내는 방법도 다르다고 합니다.

화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화가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건강하게 화를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냄새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타내는 향기’라고 했습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있을까요?

 

▲신자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찾아온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주겠노라고 거짓말합니다(13-17).

 

디나가 강간당한 것을 듣고 화가 났지만, 그 화를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수동공격적인 분노로,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간교한 술책에 능했던 야곱의 소행이 아들들에게까지 그대로 답습되고 있습니다.

 

할례받고 누워있는 세겜과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을

잔인하게 죽인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24-29).

 

신자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펄펄 나고 있습니다.

디나를 구한다고 너무나 의로운 것 같았던 그들의 잘못된 공동체 의식은

후에 형제인 요셉을 죽이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유혹해 염병에 걸리게 했을 때

비느하스가 범죄한 남녀를 칼로 죽인 것은 자기 분노대로 죽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민 25).

나의 동기가 분노일 때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불신자에게는 생명의 냄새 같지만 사망의 냄새가 있습니다.

속임에 능한 야곱의 아들들에 비해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그 말을 좋게 여기면서 할례를 받겠다고 하며 백성들을 설득합니다(18-22).

 

여전히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세겜은

‘그 일 행하기를 지체치 아니하였’을 정도로 정욕에 눈이 멀어있었고,

육체의 고통이 따르는 할례를 너무나 우습게 여기고,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23).

 

세겜이 한량없이 착해 보이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 부족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야곱 부족도, 자기들이 흡수 통합해 버리려는 야심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34:21~23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성문을 출입하는 남자들도 존귀한 지도자의 말을 듣고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24).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성읍 이름도 세겜입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족장 가문이었죠)

야곱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

세겜 성에게도 여러 모로 유익하다는 식으로, 자기 성읍 사람들을 설득했던 것이고,

그래서 세겜 성 남자들도, 다 설득되어 할례를 받는 일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의 냄새같은 사람들에게서 사망의 냄새를 분별해 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 같은데, 사실은 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디 가도 말씀 보는 훈련이 필요하며,

늘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라서만 움직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방인들에게 신앙의 좋은 영향력을 끼쳐

신앙적으로 감화, 설득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정욕을 부추겨 (할례를 받으면 너희도 잘 될거야)

그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표면적으로만 굴복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며, 도리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다니면 다 잘 된다.’며 기복적인 내용으로 전도하는 것은

아주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편애

 

야곱 집안이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정말 야곱 집안이 몰살당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죠.

그러나 하나님의 편애로, 야곱의 집안은 이 위기를 용케 넘어가게 되는데요...

 

▲그래서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차고 나가서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 때 이들은 두 사람만 간 것이 아니라 자기 휘하의 종들을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 두 사람만으로, 세겜 성 남자들을 다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거에요.

 

그래서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를 구출해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야곱의 아들들이 다 나가서 시체가 늘려 있는 세겜 성읍에 가서

노략질을 했습니다. 양과 소와 나귀들, 집 안에 있는 재물들을 다 빼앗아 왔습니다.

남아 있는 어린아이들과 아내들은 사로잡아 왔습니다. 종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27~29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야곱의 아들들은 이렇게 노략질을 하고서 의기양양해서 돌아왔습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여동생 디나를 구출해서 돌아왔습니다.

 

아마 그때 당시에 ‘복수의 법’ 같은 게 통용되고 있었나 봅니다.

자기 형제가, 여기서는 디나가, 강도 짓을 당했을 때,

다른 형제들이 나가서 보복하는 것은.. 고대사회에 널리 통용되던 묵계로,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범죄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배경으로, 이들이 나가서 서슴지 않고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아모리 족속의 보복까지 계산하지 못한 근시안들은 아니었겠죠.

 

7절에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그러니 야곱의 아들들은 ‘일종의 정의감’으로 그런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자기들은 비겁한 형제들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그런 정의감 아래에는, 그들의 탐욕과 욕심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나친 복수와 살육이며,

‘정의의 복수’를 가장한, 사실은 자기 욕심 채움이었죠.

 

디나가 당한 치욕 때문에 한 성읍 전체를 멸망시킨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처사입니다.

이것은 내가 당한 1의 손해 때문에 100으로 갚는.. 너무나도 지나치고 과도한 보복입니다.

 

구약 성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말합니다(출21:24, 레24:20, 신19:21).

아직 율법을 받기 전이지만, 이런 법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을 찬성하지 않고 도리어 책망하였습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쳤다.”고 합니다.

 

“너희는 지금 세겜 남자들을 다 죽이고, 그래서 원수를 갚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좋아하지만,

도리어 나를 괴롭게 하고 있다. 이제 세겜 성 주위에 있는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사람들을 모아서 쳐들어올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수가 적으니 게임이 안 된다. 우리 가문은 이제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이것은 백 살이 넘은 노인 야곱의 혜안입니다. 야곱은 눈앞의 승리나 재물이 아니라,

자기 집안 전체가 멸망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염려합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도 자기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시므온과 레위의 나이는 아마 스무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한창 피가 끓어오를 때이고 혈기 왕성할 때입니다. 또 다 컸다고 부모 말을 안 듣습니다.

 

세겜 성을 공격할 때에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계획을 짜고 행동에 옮겼을 것입니다.

야곱이 미리 알았더라면 말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것이

문제이고 불효입니다. 자식이 많으면 문제가 많고, 또 조금 크면 말을 안 듣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이 악행을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애굽에서 죽을 때에 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야곱이 죽을 때에 시므온과 레위의 잔혹한 행동을 기억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을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참 무섭지요?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혔으면 죽을 때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그러면 시므온과 레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중에 그 자손들이 애굽을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받을 때, 다른 지파들은 다 기업을 분배받았는데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기업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시므온은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기업 안에서 주변 성읍들을 분배받았습니다(수 19:1).

유다 지파에 붙어서 더부살이 하는 (얹혀 사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으로 나뉘어졌을 때에도,

남쪽 왕국을 말할 때에는 유다와 시므온 왕국이라 말해야 할 텐데,

시므온 지파는 아예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유다 지파만 말합니다.

시므온 지파는 존재 자체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그 성격상 일정한 기업이 없고 각 지파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야곱의 유언대로 되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는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레위지파는 48개 성읍으로 12지파 가운데 흩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막아주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편애’라고 부릅니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추장 세겜과 그 아버지 하몰은 죽었습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 소식을 들은 주변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칼을 들고 몰려 올 터인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도 죽고 그 아들들도 다 죽을 것입니다.

레아도 죽고 라헬도 죽고, 딸들도 죽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들들, 특히 요셉이 죽을 걸 생각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야곱에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 35:1)

이곳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전에 야곱이 도망갈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벧엘에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죽음밖에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캄캄할 때 한 줄기 빛이 비취었는데, 곧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답은 “여기를 떠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사면의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세겜 성의 소식을 들은 주위 족속들,

세겜 성과 동맹을 맺은 주위 성들이 다 조용하였습니다.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벧엘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해서 큰 죄를 저지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끝났다, 앞이 캄캄하다, 길이 안 보인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도와주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때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그리고 은혜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을 보면, 주위의 가나안 족들이 힘을 모아 쳐들어와서

야곱 가문의 사람들을 다 죽여야 공평합니다.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을 다 죽여도 성이 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 편을 드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불공평하지요?

 

세겜 성 사람들은 억울하게 다 죽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추장 세겜이 잘못하긴 했지만, 그가 잘못한 것의 천 배 만 배의 벌을 받았습니다.

너무나도 지나친 복수를 한 야곱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야곱과 그의 자식들에게는 은혜이지만, 세겜 성 사람들에게는 억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푸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지키시고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벧엘에서, 하란에서, 그리고 얍복강 나루터 브니엘에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도 여러 차례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그 자손에게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실 수 없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비록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잘못과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가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그의 자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이 많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가운데서도 한 줄기 희망을 봅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중에서도 한 줄기 빛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편이시고 내 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문제가 많고 죄와 허물이 많지만, 시므온과 레위처럼 잘못이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에,

야곱과 그 자식들을 지켜 주시고 복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2013년 설교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될지, 한반도에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만약에 -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에 한반도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그래서 중국군이 북한에 들어오고,

그래서 한반도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다 죽고 우리나라는 멸망할까요? 다시 나라를 빼앗기게 될까요?

 

그래도 저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고요? 그런 급박한 사태가 일어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다함께 합심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외국 군대가 물러가게 해 주옵소서.”라고 전국 방방

곳곳에서 새벽마다 저녁마다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나라 편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간절한 희망이고 바람입니다...

     *이 단락 출처 https://blog.naver.com/karamos/220615534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