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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1장, 시대를 앞서 준비하시는 하나님

LNCK 2023. 10. 30. 21:16

◈에1장, 시대를 앞서 준비하시는 하나님      에스더1장      여러설교정리

 

◑본문의 배경

 

에스라, 느헤미아가 본국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을 다루고 있다면,

에스더는 귀환하지 않기로 선택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BC 537년의 1차 스룹바벨 귀환과

BC 458년의 2차 에스라 귀환 사이에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성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을 유혹해서 유대인 말살정책을 수립합니다.

그래서 유대민족 전체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위협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를 통해 왕비가 된 에스더의 활약을 통하여

유대민족이 위기로부터 벗어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기적적 섭리가 움직이는 시발점을 오늘 본문 에1장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가 왕이 된지 3년이 되었습니다.  1:3

이제 왕 노릇하는 맛을 깨달은 차에 제국은 팽창을 거듭해서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강에 이르고(강을 넘지는 않음), 서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흑해,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이 누릴 수 있는 권력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가 잔치를 베풀었는데 무려 180 일 동안 계속됩니다.  1:4    주1)

잔치에 들어가는 모든 시설과 재료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막대했습니다.

나라의 위용과 왕의 위엄과 수산성의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180일 동안 전국의 모든 관리를 모아서 잔치를 벌인 후에

일주일 동안은 수산성에 사는 모든 일반 백성들까지도 잔치를 했습니다. 1:5

 

1:1절은 아하수에로가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도를 다스리는 왕이라 말합니다.

 

구스는 이집트의 남쪽, 수단의 북쪽 지역을 말하는데,

「페르시아 전쟁사」를 보게 되면,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였던 다리우스 1세는

바사 왕국을 20개 총독부로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20개 총독부 안에 127도의 구획 단위로 나뉘어 다스렸다는 의미인데,

 

에스더의 저자는 둘 중에 더 큰 숫자를 사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왕국이 더 커보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왕국의 왕 아하수에로는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을 모아 잔치를 베풉니다. 그 잔치는 180일, 무려 6개월동안 계속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이 잔치를 열었던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절입니다.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4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는 국력과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복 안 받아도,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삽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180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잔치가 마무리 되고, 왕은 7일간의 추가적인 잔치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 잔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나라의 부함과 위엄이 드러납니다. 6-7절을 보겠습니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6~7

 

고대 페르시아 왕국은 수산, 바빌론, 악메다, 페르세폴리스라는 4개의 수도가 있었습니다.

그 중, 수산은 봄에 왕이 머무는 궁전이었습니다.

봄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이 잔치의 장면을 생각해봅니다.

후원에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 아래,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잔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큰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렇게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꼭 잔치만 아니라, 전체 회의를 겸하는 자리였죠)

호화로운 장식과 화려한 주안상, 이러한 대단한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10절에서는 왕마저도 “주흥이 일어나서” 즉, 술에 취해 흥이 나서

7명의 내시들에게 왕후 와스디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왕후 한 명을 데리고 오는데 동원되는 사람이 7명입니다.

이렇게 7명이나 동원해서 왕후를 데리고 오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이 설명하는데,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1

 

왕이 술에 취해 왕후를 부른 이유는

왕후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왕후마저도 왕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의도를 알았는지, 와스디는 이러한 왕의 명령이 싫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왕의 명령을 거절한 이유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왕의 명령을 절대 복종해야 했음에도, 그녀가 나가지 않은 것은

어쩌면 참으로 희한하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주2)

 

이 일로 결국 와스디는 왕의 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왕후의 자리를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게 됩니다. 즉, 폐위됩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때때로 <환난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BC 537년의 1차 스룹바벨 귀환과

BC 458년의 2차 에스라 귀환 사이에  (간극은 64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성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림절 사건이 BC 473년이면, 2차 귀환 16년 전입니다.

☞에스라 연대표 https://rfcdrfcd.tistory.com/15488048 (여러분도 각자 만들어 보세요)

 

특별히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성격이 난폭하고 아주 포악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주1)

<영화 300>에서도 그렇게 포악하게 묘사되어 있죠.

 

본문 에스더서에도 그 결정적 증거가 나오는데,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들을 모두 멸절해 죽이는데, 그가 별 검토 없이 그냥 허락합니다.

 

보통 정신을 가진 왕이라면, 그렇게 제국 내 한 민족을 몽땅 말살시키지는 못할 겁니다.

적어도 인구가 수 백 만 이상은 되었을 것 아닙니까?

그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는 일에 자기 인장 반지를 빼주고 재가해 버리는 일은, 3:10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대단한 폭군입니다.

 

마치 20세기에 히틀러가 유대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것처럼,

BC 473년 경에는, 하만과 아하수에로가 당시 유대민족을 말살을 허락했다는 거죠. 3:6~15

*아하수에로는 이름이 아니라 왕의 호칭

 

그렇게 한 민족을 멸절시키라는 명을 내리고도,

그는 태연하게 하만과 함께 주연을 즐기며 술을 마실 정도로,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3:15

 

지금 아하수에로가 그렇게 포악한 왕이라는 설명을 하는 중인데,

심각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그런 폭군 손에 붙이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늘 그렇지는 않아도, 살다보면 가끔 그런 때가 있을 수 있죠.

 

앞서 약 50년 전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니엘 한 개인이었지만,

이제는 유대 민족 전체가 사자굴에 던져질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명하신 적이 있죠.

 

마10:16~18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속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연히 하만의 궤계에 빠져서 큰 위기를 겪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결말은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작정되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로!

 

그럼 차라리 아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한 이러한 위기와 환난이

왜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허락하셨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강한 용사’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금식도 하고, 기도도 뜨겁게 부르짖어 하고,

심지어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강한 용사, 십자가의 군병..

 

그것은 설교를 많이 듣거나, 성경을 많이 읽거나.. 그래서 만들어지지 않고

실제로 환난의 현장을, 발바닥으로 한 발 한 발 밟아 나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부 다 ‘강한 용사’는 아니지만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강한 용사들이 언제나 자기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1백년 전 이 땅에는 안이숙 여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박관준 장로님 등이

그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십자가의 군병으로 자기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죠.

 

이분들은 살아서 승리하기도 하셨고, 죽어서 순교로 승리하기도 하셨습니다.

모양은 어쨌든지..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그 승리는, 마귀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승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이런 ‘십자가의 군병’들을 키우고 계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저 무사안일하고 태평한 군사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아하수에로, 하만, 히틀러 같은 무시무시한 마귀의 현현들과 싸우는

피튀기는 영적 전쟁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부림절의 큰 위기를 통과해낸 당시 이스라엘은 BC 473

민족적으로 크나큰 영적 각성과, 신앙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약 16년 후에 에스라의 2차 귀환이 있었고,      BC 457

2차귀환 후 약 12년 후에 느헤미야의 3차 귀환이 있었던 거죠. BC445

 

1차 스룹바벨 귀환이 BC 537인데,

그때로부터 부림절 사건까지 약 64년 동안 

이렇다 할 일 없이, 어쩌면 영적으로 느슨하게 지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의 부림절 사건으로, 이스라엘에게 한 번 영적각성이 일어난 겁니다.

그 증거가, 64년 동안이나 중단되어 왔던 <이스라엘로의 귀환>이 재개된 것입니다.

최초의 부림절 이후 16년 만에 2차귀환,

또 2차귀환 후 12년 만에 3차귀환이 있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를 읽어보십시오.

그 메시지가 서슬이 시퍼렇습니다. 회개와 각성과 눈물과 부르짖음이 거기에 연속해서 나옵니다.

이런 신앙 부흥, 영적 대각성의 계기가 된 사건이,

16년 전에 있었던 '부림절 사건'이라는 거죠. 이스라엘 전체, 민족적 대각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증거 witness>를 위해서입니다.

 

마16: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승리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증거하는 기회가 되었음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얼마나 그 증거의 효과가 컸느냐 하면, 부림절 사건 이후에

‘유대인이 되는 자가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8: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17

유다인을 조폭처럼 두려워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유다인과 함께 하심을 보고.. 그 백성의 권위를 두려워하며, 존중했다는 뜻이죠.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는 것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가능하였습니다. 스6:21

그들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은

절대 권력자 하만(3:1)의 돌연한 몰락과 유대인들의 승귀(昇貴)를 목도한 결과,

여호와가 유일한 참신임을 깨달음으로써 유대 종교를 신봉하기로 결단한 자들이 있었겠죠.

 

모르드개도 출세해서, 아하수에로의 측근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증거했습니다.

 

9: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2. 하나님은 미리, 앞서 행하십니다. 시대를 앞서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림절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에스더를 왕궁에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여호와이레 죠!

 

마치 창세기에, 고대 근동에 7년 흉년이 일어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요셉을 앞서 보내신 것에 비견됩니다.

 

본문 에1장은, 와스디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는 배경을 보여줍니다.

역사가들은 와스디의 폐위를 테르모필레 전쟁 전으로 보고,

에스더의 간택은 테르모필레 전쟁 후로 봅니다.

그러니 와스더 폐위와 에스더 간택은.. 그 중간에 전쟁 치르는 몇 년이 있었던 거죠.

하나님은 미리, 앞서 와스디가 폐위되도록.. 다 이끌어가신 것입니다.

 

1장에 나오는 성대한 잔치는,

페르시아 왕이 원정 전쟁에 나서기 전에,

전국의 관리들을 모아서 거대한 잔치를 벌이는 (참석자 약1만 명 추산)

페르시아 나라의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사기도 북돋우고, 또한 전쟁을 대비한 실제적 회의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이 시대의 에스더로 심어주셨습니다.

4:14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화려한 잔치가 계속되었던 바사 왕국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에게 몰살당할 위기가 찾아올 것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힘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미리 바사 왕국의 중심에 에스더를 심으시며 준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과장됨과 화려함으로 자기를 자랑하는 세상에 빠져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를 이 시대의 에스더로 심어주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속, 그리고 이 시대 속,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귀한 사역에, 당신의 대책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한 40년 전에, 이런 말이 회자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 상대를 나온 사람이, 남대문에서 장사만 하면 망하고,

이대 가정과를 나온 새댁이, 김치를 못 담궈서 시어머니께 구박 받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대학의 가정과/식품영양학과에서

‘김치의 손맛, 배추절임법’ 이런 실전적인 방법론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겠습니다만,

 

어쨌든 김치를 잘 담그는 것이

무슨 대학을 나오고, 그것을 전공했다고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똑똑한 며느리가

김치에 무슨 비타민이 많고, 김치가 무슨 영양소가 있는지는 잘 알겠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김치를 절대 못 담그지요.

그 당시에 시어머니께 구박 받기 딱 알맞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명문대를 나오고, 명문 신학교를 졸업한 인재가

‘김치’(복음 의미)를 담글 줄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부터, 이런 현실을 똑똑히 깨닫고

자기 나름대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대안은... ‘깊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김치 맛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34:8

 

에스더서를 마지막까지 보게 될 때,

성경은 와스디와 에스더를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와스디는 왕의 명령에도 왕 앞에 나아오지 않으므로 폐위를 당했습니다.

반대로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아감으로 왕의 호감을 얻게 됩니다.

 

와스디와 에스더, 모두 왕의 명령을 거절했지만,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에스더가 특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닥칠 위기 속에 언약의 백성들에 대한 대책으로

에스더를 바사 왕국의 중심에 심으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로렌 커닝햄은 그의 책,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에서 스위스 이야기를 한다. (펀 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1530년대의 스위스의 제네바는 유럽의 여러 나라,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악취가 심한 곳 중의 하나였다.

 

무너져 내린 성벽, 쌓여져 가는 쓰레기, 처리되지 않은 길거리의 인분과 토사물과

포도주 찌꺼기 등의 냄새가 뒤 엉키고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곁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손길로부터 내 소지품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당시의 제네바는 그 후에도 꽤나 오래도록 범죄자, 정치 난민, 용병, 간첩, 창녀, 빈민들로 넘쳐 났다.

당시 대개의 유럽 도시들이 그러하였지만 스위스의 제네바는 그 중에 으뜸이었다.

 

그렇던 그 곳이 오늘 날은 세계 최고의 도시로 변모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국제, 외교, 금융, 인도주의 단체, 국제기구의 본부들이 줄줄이 밀집해 있고

전 세계 최고 상류층의 자녀들이 가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국제적인 교육 도시로 변모해 있다.

어떻게 지난 300년이 넘도록 전쟁이 없는 나라의 그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로렌 커닝햄은 그 대답을 잔 칼뱅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찾고 있다.

그렇다. 제네바의 변화는 잔 칼뱅(John Calvin)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잔 칼뱅은 다른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강조를 하면서 살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회개와 회심을 강조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교하고는

하였다. 그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쳤고

설교를 통해서 개혁과 변화를 촉구하였다.

 

잔 칼뱅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저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힘썼고 주변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그런 도시, 그런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였다.

잔 칼뱅은 개인의 책임과 직업이 곧 예배의 연장이라고 가르쳤다.

 

그 이전에는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세상은 세속적이라고 구분하였었다.

그래서 주일이면 교회의 예배에 와서 영적인 목욕을 하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잔 칼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깨끗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일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모든 직업은 거룩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배는 주일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중의 날마다의 생활 중에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아가면

그것 또한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연장이라고 강조하였다.

 

골3:23절의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교훈을 생활 속에 따르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의 주권 아래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저들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소중히 여길 것도 강조하였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면 잔 칼뱅의 설교가, 인쇄물로 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보급되었다.

(앞서 루터도 그렇게 했음. 그 전에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발명이 있었음)

그의 설교는 듣는 이들과 읽히는 이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제네바의 남자들은 가장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직하지 않았고 무책임하고 술과 놀음을 즐겼다. 가정은 무질서하고 가난하고 부도덕했다.

 

그러하던 때에 잔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가정을 소중히 돌보세요, 술 취하지 마세요,

열심히 일하세요,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책임을 지세요,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세요,

장래를 위해 저축을 하며 사세요”하고 가르쳤다.

 

나중에 시의회는 잔 칼뱅과 종교 개혁가들의 이 같은 가르침을 시의 정책으로 받아 들였다.

독일의 경제학자 막스 베버는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그의 책에서

"유럽 여려 나라의 번영은 제네바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결정적인 원인은 잔 칼뱅이 전한 성경 말씀의 가르침 때문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

 

주1)

다리오1세는 그리스 와의 전투에서 마라톤에서 패배 합니다.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의 아버지, 메대사람 다리오와 구분 요)

 

그의 아들이었던 크세르크세스 왕(아하수에로, 에스더 남편)은 복수를 결심하고

그리스에 침략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스파르타의 3백 명의 군사들을 전멸시킵니다. *영화 300

 

본문 에스더 1장의 성대한 잔치는,

그 테르모필레 Thermopylae 전투가 발생하기 전에 (BC 480년) 벌어졌고,

당시에 전쟁을 나가기 전에는,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아하수에로가 그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돌아온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왕이 히브리 말로 아하수에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레스크세스는 그리스 말이죠.

 

아하수에로 왕이 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6개월 동안의 긴 잔치를 벌리는데요.

이 기간 동안 와스디 왕비를 폐위 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비를 뽑는 절차를 시작하고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새롭게 뽑은 왕비가 바로 에스더 입니다.

이 당시의 역사가 였던 헤로도투스 라는 역사가도 기록할 정도로

이 왕은 아주 잔인하고 포악한 왕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한 시기와

에스라가 귀환한 시기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2)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를 추측하자면,

 

'와스디'의 이 같은 반응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의 하나에 따라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1) '와스디'가 낯선 사람에게는 아내의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는 페르시아 관습을 염두에 둔 때문에

 

2) 와스디가 술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때문에

 

3) '와스디'가 당시 외모에 어떤 흠결이 있었기 때문에(유대 랍비들).

 

4) '와스디'가 왕으로부터 벌거벗고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Midrash,Targum)등이다.

 

그러나 첫째, 페르시아의 관습이 여자가 남자들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반드시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5:1-8, 7:1-4)

둘째, 만일 '와스디'에게 외모상의 어떤 흠결이 있었다면 왕이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셋째, 왕비의 나체를 신하들에게 보이려는 시도는 역사상의 그 어떤 군왕(君王)에게서도 없었다는 사실

 

넷째,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보통 술주정이 심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위의 네 가지 이유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