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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자랑스러워하셨던 사람들 눅10:30~37, 살후1:3~4 2000.02.20
혹시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칭찬하는 얘기를
전해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무개 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훌륭한 것 같아요’
‘아무개 그 사람이 언젠가 이런 저런 일을 했다고 하는데, 꼭 필요한 일을 했어요!’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에서, 여러분들의 삶이 화제가 되는, 칭송이 되는
그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러면 그 말을 전해 듣는 당사자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삶에 보람을 느끼게 되고,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몇 년 전입니다만, CBS 기독교방송에서
낮에 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간증프로 그램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모임에가다가, 마침 자동차 속에서 우연히 그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그 방송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귀에 익은 목소리예요.
가만히 들어보니 저 지방에서 가난한 분들을 모아서 소위 빈민목회를 하는 후배 목사님이
CBS 방송에 출연을 해서, 자기 신앙간증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후배 목사님이 라디오에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그렇게 훌륭한 목사인지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자가 그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지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온 인생을 바쳐서 이렇게 희생을 하면서 일하시는데,
어떤 계기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러니까 그 후배 목사님의 대답이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인명진 목사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영등포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을 섬기며 사는 모습을 보고 제가 큰 감동을 받아서
나도 저런 목사가 되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인명진 목사님이 제 신앙의 스승입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제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제 가슴이 막 뛰었습니다.
‘누가 이말을 같이 들었줬으면 좋을 뻔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만큼요.
유감스럽게도 그 승용차 속에는,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아쉬웠든지...
물론 그 다음에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그 얘기를 하면서,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누구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 자신이 칭찬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주 나의 공적으로 치켜세워 준다는 것, 존경해 준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우리 각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칭찬 듣기를 사모하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칭찬, 인정, 치켜세워 주셨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요..)
사실 그 후에, 제가 그 후배 목사님을 만날 기회가 온다면,
좋은 음식, 비싼 음식도 사주고, 가능하면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를 자랑해주고, 치켜세워주는 것이 너무도 고마워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누구를 자랑하고 내세우는 일을 잘 하지 못 합니다.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스스로를 칭송하는 일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을 자랑해 주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주는 것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누가 그런 일을 해 주면,
우리는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즐겁고 흐뭇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자랑거리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끔 아내가 학교 동창들 만나서, 남편을 자랑해줄 수도 있고,
남편도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아내를 자랑할 수도 있지요.
그것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또 ‘팔불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시중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목사님의 자랑거리가되었다.,,
그 분의 설교 예화, 일화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수천 명이 모인 예배당에서, 교인들에게
나를 예로 들어서 자랑을 한다면,
‘내가 아는 OOO 목사님이 있는데, 그 분이 얼마나 희생적으로 섬기시는지...’
그러면 그 주인공은 얼마나 스스로 자부심이 대단하곘습니까.
아마 가슴이 마구 울렁거리겠지요.
자랑스러운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겠지요.
누구에게 자랑거리가 되느냐 하는 것도 이렇게 중요합니다.
(결국, 내가 예수님께 자랑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높은 차원의 자랑거리죠)
◑성경에 보면 그런 예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3~4절에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너희를 자랑하노라'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너희를 자랑하노라’
사도바울이 가는 곳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여러 교회에서’ 자랑을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지...’
바울은 편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직접 이렇게 칭찬한 적도 있었죠.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1:3
그리고 살후1:3~4절에서는
사도바울 자신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여러 교회에서 설교할 때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했다고...
이 사실을 편지로 써서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 편지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기쁨이 어떠했을까요?
사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위대한 초대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도중에 사도였습니다.
이런 분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교회에서 공적으로 친히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이름을 들어서 자랑을 했다...
이 사실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알았을 때, 얼마나 그 마음이 감격했을까요!
우리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것,
어떤 사람이 자신을 자랑거리로 여겨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매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사도바울 같은 대단한 분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그것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만약 예수님에게 칭찬 받는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떠할까? ..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는다... 나는 예수님께서 칭찬하실까?’
하나님은, 욥을, 마귀들 앞에서 칭찬하신 적이 있으셨죠.
욥1:8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누구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이 사람의 믿음을 봐라. 이사람의 삶을 봐라.
이 사람의 생활을 봐라. 이 사람의 하는 일을 봐라!’ 하셨듯이
이렇게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를 들어서 칭찬을 해주시고,
나를 예화로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해주신다면,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영광일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일일 것임에 틀림이없습니다.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는 것,
예수님이 자랑스러워하는사람,
이건보통 일이 아닐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칭찬을 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씀하셨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 곳곳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어떻게 칭찬을 하셨습니까?
‘여인이 낳은 사람중에 이 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없다!
지난 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칭찬입니까?
여러분, 세례요한이 나중에 예수님을 위해서
목을 베이는 그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만...
이런 칭찬 하나만으로도.. 어쩌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도 칭찬을 많이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칭찬을 많이하셨는가 하면,
그에게 천국 열쇠도 주셨지 않습니까!
또한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한 일은
이 복음이 전해지는그날까지 영원히 기억이 되리라. 기념이 되리라!’
자기 딸의 병을 고쳐주기를 청했던 수로보니게 여인,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또한 자기 종을 고쳐주시기를 청했던 백부장의 믿음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꼐서 저희 집에 까지 오실 까닭이 없으십니다. 그저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고침을 받겠습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도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12해 혈루병을 알았던 여인의 믿음도 예수님께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칭찬을받은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시종일관 몇 번 이나 말끝마다 칭찬하시고 자랑거리로 내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눅17장에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고쳐주셨는데
그 중에 한 명만 찾아와서 감사를 했습니다. 그게 누구인가요?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죠.
요4장에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긴 대화의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 들에 대해서, 얼마나 애정을 가지시고
좋게 생각하셨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눅10장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눅17장에 나오는 '고침을 받은 나병환자',
요4장에 나오는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
이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만,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작하신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실 이 비유를 들어서 얘기를 할 때
등장인물을 예수님이 마음대로 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이를 두고서,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제사장이 도와줬다’ 그렇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실 수도 있었고,
‘레위인이 그런 좋은 일을 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마음대로 좋은 역할을 한 사람을 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
좋은 일을 한 사람, 구원에 이를만한 그런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으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에게 그 배역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천대받는 사마리아 인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여러분,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을 나쁘게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예를들면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만은,
때로는 꾸짖기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은 늘 좋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왜 사마리아 사람을 그렇게 늘 앞에 내세우고
사마리아 사람을 자랑거리로 말씀하시고 그러셨을까요?
사마리아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압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무슨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출신 배경이 좋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무슨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의 사마리아 사람은 가장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을, 당시 사람들이 ‘개’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 때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먼 길을 삥 둘러 갔던 사람들,
그렇게 ‘개’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고, 경멸하고, 사람취급도 안 하는 이 사마리아 사람을
시종일관 자랑거리로 예수님이 말씀할 때마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을 칭찬하고 좋은 예를 들 때, 다른 사람들을 다 제쳐놓고,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내세우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과 사마리아사람들이 무슨 친척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특별하게 그들을 두둔해야만 될.. 그런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본문을 자 세히 살펴봅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쓰러져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거반 죽게 되었어요. 급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를 봐야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특별히 시간도 내야합니다.
아까운 돈도 써야할지 모릅니다.
이거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일이요, 꼭 자기가 안 해도 되는 일이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오히려 신경을 써야될 일이 많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 보복을 당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은 일입니다.
깨끗하게 차려 입고 나온 옷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왜냐면 그 사람을 해친 강도가, 언제 또 나타나서,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일이기 때문입니다.그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합니까?
이런 경우에 계산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런 경우를 당하셨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저는 요즈음 제 머리 속에 아주 계산이 분주합니다.
‘새성전에 들어 가는 것을 앞에두고 어떻게 해야될까?’
‘조선족 예배는 어떻게해야 될까?’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조선족 교회를 시작한 것을, 저는 여러 차례 후회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2시, 3시쯤에 한번 우리 교회 2층에 올라와 보세요.
월요일날 아침에 한번좀 교회에 좀 와보세요.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메뚜기떼가 지나 간 것 같습니다. 교회가 엉망진창입니다.
잔뜩 어질러 놓고.. 치우지도 않고.. 책상에 걸터 앉아 있어요.
우리가 10년 쓴 교회 건물인데, 건물이 얼마나 새 건물입니까!
이 조선족교회가 생기면서부터 교회가 너무 더러워졌어요.
또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할 것인가?
파키스탄 사람들이 저녁 먹고 가면, 부엌이 엉망이 돼서
그 다음 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새 예배당에 들어가면서.. 제 머리 속에 아주 계산이 복잡합니다.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
‘소망부’도 뭐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이게 일이 보통 많아지는게 아닙니다.
'지금 이 사람들 다 데리고 가면, 앞으로 전도에 지장이 있을 텐데..’
‘동네 사람들 전도에 지장이 있을 텐데..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릴 텐데...’
‘이 사람들 데리고 가면 돈도 많이 들텐데.. 모처럼 좋은 예배당 지어 놓고 곧 더러워 질텐데...’
사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계산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에 파키스탄 노동자 죽은 얘기를 했습니다만..
담당목사가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파키스탄 노동자가 죽었습니다.우리에게 장례를지내달라고합니 다."
그 순간 제 머리 속에 아주 복잡한 계산이 떠올랐습니다.
‘돈이 얼마 나 들까? 못 들어도 600만원 쯤 든다는데...’
복잡한 계산이 떠올랐습니다.
그순간 제 머릿속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계산은 무슨 계산이냐?’
저는 그럴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냐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뻔했는데, 괜히 알아가지고서 양심의 가책이되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에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
왜 계산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계산 끝에 두 사람은 그냥 못본 척 지나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물론 그만한 이유를 스스로 생각했겠지요?
'물론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중 요한 일을 해야 될사람이다. 지금 교회(성전)에 가서...'
뭐 제사장이 그런 생각을 했을는지 모릅니다.
‘나처럼 거룩한 사람이 내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거야 뭐 경찰이 하던지, 사회복지사가 하던지,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할 일이지...’
자기 나름대로의 못할 이유를 찾아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 그가 무슨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인지 본문에 나와있지 않지만,
우리가 한 가지 이 사람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도 우리가 모르지만
그 사람은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계산할 줄 알았으면 절대로 그렇게 못했습니다.
계산할 줄 모르니까.. 강도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예수님꼐 칭찬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철저히 계산적인 세상입니다.
계산이 분명하고, 그리고 계산을 잘 할줄 아는 사람이.. 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모두가 다 계산에 밝은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계산이 밝은가 하면, 요즘은 부부간에도 계산을 합니다.
형제간에도 계산을 분명하게 합니다.
심지어는 부모자식 간에도 얼마나 계산이 밝은지요...
두말할것도 없이 친구간에, 직장에서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회사와 나 사이에, 친구와 친구 사이에, 동료와 동료사이에,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계산이 밝습니다.
요즈음 교인들은 2층에 전세 낸 교회.. 이런 교회는 안 온다는 거 아닙니까?
부담가지지 않을 교회...
여러분, 강도를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아주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딴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계산에 밝은 사람들입니까?
옳은 일이라고, 꼭 해야될 일이 기 때문에 하는 일이 있습니까?
다 따져보고.. 계산하고.. 자신에게 맞아야.. 무슨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저는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지금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군가요?
공부 많이한 석박사가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높은 성직에 있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예수님 그런거 자랑하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그것도 예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목사들끼리 만나보면 자기 교회 자랑을하는데
"우리교회는 박사가 몇이요, S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몇이요, 장관이 있어요,
별 몇자리가 있어요, 우리 교회에 돈 몇 십억, 몇 백억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자랑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목사의 자랑거리가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 있어서의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자랑거리가 된 사람은사 마리아과 같은 사람입니다.
계산할줄 모르고... 예수님의머리에 300데나리온 1년 치 품값이나 되는 향유를
깨어서 부은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자랑했습니다.
그 여인이 계산을 했으면 그렇게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겠습니까?
베드로도 계산할 줄 모 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계산없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뭐 장차 어떻게 될건가?
내가 따라가면 내 식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배는 어떻게 할것인가?.. 이런 계산이 없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에게 칭찬받은 사람은 누군가요?
계산할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는데, 그들이 누군가요?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또 자랑하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 내 삶이, 내가 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어서 다른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그런 사람이라면..
사마리아 사람처럼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예수님은 그만 두고,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라도
내가 자랑거리가 되고, 화제의 대상이 되어줄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여러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누가 나를 들어서 예화로 삼지 않았다면,
나를 자랑거리, 화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면,
여러분, 그런 인생을 우리가 살았다면
어떻게 된 인생이 그런 인생이겠습니까?
내가 누구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깊이 내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