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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4장, 평범한 사람들이 믿음의 영웅이 되다

LNCK 2023. 11. 3. 23:04

◈에4장, 평범한 사람(에스더, 모르드개)들이 믿음의 영웅이 되다      여러설교정리    ☞ 에스더

 

◑도입 / 에스더서는 반전과 역전의 스토리

 

최근에 제(어느 말씀 사역자)가 책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예전에 살아온 이야기들을 기억해내서 글로 써보니까

온통 실패밖에 없더라고요.

 

중학교 때 실패한 기억,

대학에서 실패했던 일,

직장에서 실패했던 일..

그래서 뭐 제 인생을 '실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래서 책을 쓰다가, 맨 나중에 이런 내용을 썼습니다.

"내 인생이 1승 9패라면, 마지막 최후에 1승을 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이 지금까지 실패의 연속이라도,

그래서 마지막에 1승을 한다면.. 그게 인생 전체가 승리가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야구에서 9회 말 역전승을 하든지,

축구에서 후반 인저리 타임에서 결정적으로 역전골을 넣든지 해서

마지막에 승리를 거둔다면.. 결국 이기는 것 아닙니까.

내 인생도, 그렇게 마지막 1승을 해서, 전체를 승리로 결론짓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에스더서가 이렇게 반전, 역전, 뒤집기의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죠.

 

주인공 에스더 본인도 그렇죠. 고아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왕후가 되고요.

모르드개도 그렇죠. 자기를 잡아죽일 장대가 다 준비되었는데,

결국 그 장대 위에 자기를 매달아 죽이려 했던 하만이, 결국은 달려 죽는 것으로 결판납니다.

 

유대민족 전체도, 12월 13일 한 날에 모두 죽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그 날이 잔칫날로 바뀐다는 이야기로.. 에스더서가 끝납니다.

 

그래서 에9:22절을 보시면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렇게 반전과 역전의 기쁨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에스더서를 공부해 나가는 동안,

이렇게 과거에는 슬픔과 애통의 날이 연속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쁨과 길한 날의 연속이 되어지고,

 

지금까지 9패의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최후의 1승으로, 과거의 모든 실패와 패배를 뒤집어 엎는

그런 놀라운 반전과 역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에스더서를 읽음으로써,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전과 역전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반전과 역전을 이루신 그 예수님 안에서, 그 예수님께 접붙임바 되어서,

내 인생도 주님과 함께 반드시 반전과 역전을 이루게 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의 이야기, 모르드개의 이야기, 유대민족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 우리 가족의 간증, 우리 공동체의 역사가 될 줄 믿습니다.

 

 

◑본론1. 결국은 <돈 문제>였다!

 

이번에 에스더서를 집중해서 연구한 결과, 예전에 미처 몰랐던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하만은, 유다인들을 (성경 에스더서에 ‘유다인’이라고 나옴) 어떤 개인적, 민족적 감정으로

몰살시키려고 궤계를 꾸몄지만,

 

그 하만의 계획이 집행되도록 허락(윤허)하고, 자기 인장반지까지 빼어준 이는 아하수에로죠.

그럼 아하수에로는 왜 그런 수백만(추산)을 학살하는 엄청난 일을,

그냥 너무 손쉽게,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개념 없이 윤허해 주었던 것일까요?

   *윤허 : 임금이 허락함

 

당시 역사적 정황은,

에1장은, 그리스와의 전쟁 전이었고, 전쟁 전에 127도의 관리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하고, 병력을 모으고, 전쟁 계획도 세우고, 각 부대장이 충성을 맹세하고,

사기도 진작시키고 했던 거죠.

 

2: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그 후에’

이때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아하수에로가 그리스와 전쟁에서 대패한 ‘그 후에’입니다.

그러니 1장과 2:1절 사이에 약 4년의 세월이 경과했습니다. 전쟁 전과, 전쟁 후 입니다.

 

그동안 아하수에로는 그리스와 전쟁을 벌였는데,

특히 살라미스 전쟁에서 대패해서, 병력의 2/3를 잃었다고 합니다.   BC480

그래서 초라하게 본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전쟁하느라 돈도 많이 썼겠죠. 소문은 백만 대군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역사학자들은 30만이라고 봅니다. 30만도 어마어마한 숫자죠.

 

어쨌든 아하수에로는 돈이 궁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이를 눈치 채고, ‘왕의 내탕고에 은 1만 달란트를 넣겠다’고 약속해줍니다.

은 1만 달란트는, 당시 페르시아의 1년 국가 예산 정도의 돈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은의 시세는, 상당히 높았죠. 지금과 다릅니다.)

 

그러니 만약 전쟁에 승리했으면, 많은 돈을 벌어 왔을 텐데 (그 목적으로 전쟁하죠)

아무 전리품도 가져오지 못했고, 도리어 전쟁비용만 엄청나게 지불했고,

아하수에로의 내탕고는 부도 위기 상태였는데,

이때 하만이 기가 막힌 묘수를 낸 겁니다.

 

하만이 장담합니다. ‘유다인들을 한 날에 다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다 몰수하면,

1만 달란트(1년 국가 예산)는 제가 책임지고 수거해서 국고에 넣겠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가 OK!

“하만, 네게 그 일의 전권을 일임한다. 내 인장반지를 빼 줄게!” 이렇게 된 겁니다.

 

모르드개가 그 일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4: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스더 내시)에게 말하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이 돈으로 왕을 매수해서.. 조서가 발표되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위 내용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사실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문제에 발생하는 비용과,

또한 인구가 줄면, 발생할 세수(稅收) 손실까지도 계산해서

은 1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금액을 자기가 왕의 금고에 드리겠다고 말했죠.

 

여기서 '은 일만 달란트'는 하만의 개인 재산에서 바쳐지는 돈이 아니었을 것이라 보죠.

왜냐면 너무 많은 액수의 돈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만이 유대인으로부터 탈취할 재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왕의 조서에는 유대인 대학살과 더불어 그들로부터의 재산 탈취도 허용하는 내용이

명문화되어 있었죠. 3:13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3: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이는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인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하만의 손에 넘겼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의 '그 은'은 엄밀히 말하면

하만이 왕에게 기부하려고 했던 은 1만 달란트는 자기 돈이 아니고(9절).

유대인들의 재산을 탈취하려 했던 돈 임이 정확합니다.

'그 돈의 수거를 네게 맡긴다'는 뜻이죠.

 

이렇게 하만에게 매수되고, 돈에 휘둘려서 정치를 했던 아하수에로는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잃고 하렘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치다가

BC 465년 아르타바누스 등의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암살하고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1세를 옹립했죠. *에스라 당시 왕

 

그의 재위는 BC 486~464년, 22년의 제국 통치를 암살당함으로 막을 내린 것이었죠.

하만처럼, 그도 끝이 좋지 못했습니다.

 

 

◑본론2 / 에스더에겐 좋은 멘토가 있었다

 

고아소녀, 피난민의 후손, 여러 가지 흙수저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에스더는

얼마나 조건이 안 좋았으면 ‘자신의 출신(유대인)을 숨겨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결국 놀라운 민족구원의 여선지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그를 ‘여선지자’라고 기록하진 않았지만, 여선지자보다 더했으면 더했죠)

 

모르드개 라는 훌륭한 멘토를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야말로, 요즘 말로 ‘킹메이커’ 였습니다.

 

▲여러분, 에스더에 나오지 않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뭘까요?

 

1)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야웨, 여호와, 하나님’ 이란 이름이 이 책에 한 번도 안 나옵니다.

물론 행간에는, 신앙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서 정경에 포함되어 있죠.

그러나 문자적으로 ‘야웨, 여호와, 하나님’ 이런 표현은 이 책에 한 번도 안 나오죠.

 

그 이유는, 아마 페르시아 제국을 의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책이 자유롭게 성도들 사이에 돌려가면서 읽혀지려면,

그런 표현을 억제하고 감추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유리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표면적으로 교회와 목회자를 통해서 역사하실 때도 많지만,

이면적으로 ‘보이지 않듯이’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1장 처음부터 ‘우연히’ 되어지는 일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우연히’ 되어진 일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섭리, 역사였습니다.

 

2) 그리고 기적도 안 나오고

 

3) 계시도 안 나오고, 그래서 선지자도 안 나옵니다.

 

4) 그리고 또 하나, 슈퍼 히어로도 안 나옵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다니엘 같은

이런 슈퍼 히어로 급의 믿음의 인사들이 사람들이 이 책에는 안 나옵니다.

 

대신에 아주 평범한 고아 소녀와 평범한 하급 공무원 아저씨의 이야기가 나오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그 인도함과 그리고 보호, 섭리, 다스림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너무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믿음의 슈퍼 히어로들을 보면, 우리는 상당히 위축되고

‘나는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주눅이 드는데,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 에스더 책이 위로가 되는 책입니다.

 

'어? 나랑 비슷하네?'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인 거죠.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평범한 당신도.. 수퍼 히어로가 될 수 있습니다.. 멘토를 잘 만나면, 또는 멘티를 잘 만나면!

우리는 훌륭한 멘토와 멘티를 만나도록, 오래도록 몇 년이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서두에 ‘1승 9패 인생’이란 얘기를 했었는데,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정말 1승을 잘 해서,

성경에 믿음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멘토의 역할을 잘 감당한 것이고,

또한 멘티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이었죠. *'멘티 mentee ; 지도 또는 조언을 받는 사람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이 아직 어리지만

‘자녀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도록,

자녀가 학교에서 훌륭한 친구들을 잘 만나도록’ 일찍부터 기도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멘토는 멘티를 잘 만나도록

멘티는 멘토를 잘 만나도록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멘토한 그 한 가지 잘한 일 때문에,

그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앞서 몇 패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최후의 1승’을 한 것입니다.

 

▲절별 해석

 

4: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이 모든 일'은 유대인들이 12월 13일에 집단 학살당하게 됐다는 사실만을 의미치 않죠.

그 정도는 조서를 본 유대인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더 나아가, 그 같은 대학살이 모르드개에게 원한을 품은 하만이

왕에게 다량의 ''(3:9)을 바치기로 약속함으로써 입안(立案)되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합니다.

 

'성중에 나가서'

모르드개가 자신의 직무 장소인 대궐 문(3:2)을 떠나서

수산 시내(市內)로 들어간 것을 가리킵니다. 모르드개가 이같이 한 까닭은,

대궐 안에서는 개인적인 일로 인하여 슬피 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모르드개가 처음에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내로 나갔으나(1절).

자신의 뜻을 에스더에게 전달할 양으로, 대궐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었음을 뜻합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직접 에스더를 만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는 에스더와의 연락을 가능케 했던 어떤 인적(人的)통로를 대궐 안에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그는 에스더와의 연락을 위해서는 어쨌든 대궐 가까이 나아갈 필요가 있었던 거죠.

 

'굵은 베를 입은 자는...들어가지 못함이라'

'굵은 베'는 죽은 자를 위한 애통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입은 사람은 특히 왕궁 내에서는 부정(不淨)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만일 모르드개가 '굵은 베'를 벗어버리고 평상복을 입은 채,

대궐안으로 들어갔다면 에스더와의 연락이 보다 수월했을 것입니다(2:11).

 

그러나 모르드개에게 있어 중대한 관심사는,

단순히 에스더와 연락이 닿는 그 자체에 있지 않았죠.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굵은 베'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에스더의 귀에 들어가서,

그녀로 하여금 모르드개에게 실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케하는데 있었죠.

 

더구나 모르드개는 자신의 동족 전체가 몰살당하게 된 너무나도 슬픈 사실 그 자체 때문에,

그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하를 상징하는 '굵은 베'를

벗을 의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4:1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왕의 조서가 각 도에 이르매'

역졸들이 휴대한 '조서'는 최초로 수산에 전해졌고(3:15),

훌륭한 우편 체계에 의하여(3:13) 제국 전체에 불과 한 두 달 안에 전달될 수 있었죠.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본절과 다음절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리려는 모르드개의 의도(2절)가

일단 뜻을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시녀'들과 '내시'들은 모르드개가 어떠한 복장을 하고

또한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만(1. 2절)을 에스더에게 고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시녀'와 '내시'들은 모르드개의 내면적 고뇌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입니다(5절).

 

만일 궁중의 소식에 밝은 그들이, 에스더가 유다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하만에 의해 주도된 유대인 대학살 계획과

그와 관련한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고 있었음을 진작 에스더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의복을...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에스더의 이 같은 조처는, 모르드개가 평상복을 입고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2절)

자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취해졌습니다.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위 ◑1.에서 “유다인 학살은 결국 돈 문제였다”고 밝혔는데,

그 사실을 반증해 주는 구절입니다.

 

모르드개도 에스더에게

‘하만이 돈으로 왕을 매수해서.. 조서가 발표되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하닥은,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에 연락을 맡았던 내시입니다.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이는 유대인 대학살의 실행 날짜가 결정됐고

그것에 관한 변개될 수 없는 명령이 전국에 하달되어,

대응책을 강구치 않을 경우 유대 민족이 진멸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에스더로 하여금 확실히 깨닫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서...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모르드개가 굵은 베를 입고 벗기를 계속 거부했던 이유는,

에스더가 바로 이와 같이 행해주기를 바랬던 때문입니다.

 

사실 모르드개의 이같은 요구는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유대인들을 대학살의 위험으로부터 건져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기 (14절) 때문이었죠.

 

이렇게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려면, 자신의 유다인 임을 먼저 밝혀야 했습니다.

이제 에스더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없었죠.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멘토 모르드개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멘티 에스더에게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측해 주었습니다.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구원을 얻으려니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로 멸망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모르드개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훌륭한 영적인 멘토는, 영적인 시각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적인 덕담이나 삶의 요령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명을 거부한 에스더에게

특별한 심판을 내리심으로써 에스더가 파멸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말은 오늘날 목회자가 하기 힘든 말입니다.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그러나 모르드개는 참된 멘토였기 때문에,

자신의 명성에 위험이나 먹칠 될 수도 있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왕후의 위...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 멘티의 소명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출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 중에

왕후의 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가이오를 멘토링 해주었던 사도요한

요한3서의 세 주인공, 가이오, 데메드리오, 디오드레베는 다 남성입니다.

 

남성들은 우리 사회의 위기 지점에 있으며,

교회의 남성 사역은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같이 탈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20-2021 학년도에

"미국 대학은 5년 전에 비해 150만 명의 학생이 감소했으며

남성이 감소의 71% 를 차지했습니다." *여성은 29%라는 말

 

이것은 Covid-19로 인한 일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40 년 동안 남성은 2년 또는 4년제 학부 프로그램에 입학한 학생의

비율이 점점 더 적었습니다.

또한 남성은 학위 프로그램을 마칠 가능성도 적습니다.

 

대학 통계가 성공이나 사회 척도를 정의하는 특성은 아니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회 경제적 계급, 인종 및 지리적 지역에 걸친

남성이 점점 더 덜 참여하고, 동기 부여가 적으며

 

이것은 결국, 건강한 아버지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신호를 보내는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또한 「타임」지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보다 독신일 가능성이 더 높고,

부모와 함께 살 가능성이 더 높으며,

독신 여성보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가능성이 적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젊은 남자들은 교회에서 나이 든 남자들에 의해 멘토링 (또는 제자 훈련)

되지 않습니다. 멘토링을 요청하지 않는 청년도 많고

멘토링을 해 줄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도에 대한 성경적 모델은 (부인할 수 없이) 삶의 멘토링입니다.

더욱이 멘토링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성숙한 신자에게 의무가 있습니다. *본문의 사도요한처럼

 

영적 멘토가 되기 위해 성경 학자, 목사 또는 실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교회는 상처,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 멘토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세대 간 관계가 절실히 필요하며,

젊은 남성들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러한 우정에 더 개방적입니다.

 

밀레니엄 세대는 20 대 후반에서 30 대 후반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경력의 전성기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방향타가 없고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멘토링의 가치와 그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족과 교회에 미칠 수 있는

다운스트림 효과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북미 남성의 대다수는 현재 또는 음란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성적인 문화에 살고 있으며,

 

많은 크리스천 남성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이는 더 깊은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남자들에게는 약물 남용, 분노 문제 또는 다른 죄문제로 힘겨워합니다.

이는 멘토와의 관계로,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들입니다.

적어도 멘토의 기도는, 젊은 남성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될 것입니다.

 

북미의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아버지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소년들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 채

자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텔레비전, 인터넷, 대중 문화를 통해

남성다움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웁니다.

 

당신의 교회는 아버지 없는 소년들을 위해, 그 틈에 설 기회가 있습니다.

남성 여러분, 어린이 사역에, 남학생 사역에 자원 봉사하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긍정적인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혼자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소년이 여러 명의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승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그 청년과 그의 미래의 자녀, 손주, 증손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장기적인 영향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기본적인 일들을 잘 하는 것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제자도에 집중하십시오.

그들에게 경건한 남자, 남편, 아버지가 되도록 가르치십시오.

 

모든 교회가 제자도의 부르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 보십시오...

 

◑본론3. 죽으면 죽으리이다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 부분은 모르드개의 설득(13, 14절)이 에스더를 충분히 감동시켰음을 시사한다.

 

나중에 '수산'에서 대적들 5백 명과 하만의 아들 10명을 하루에 죽였던 사실(9:12)을 감안한다면,

당시 '수산'에 살던 유대인들의 숫자는 장년 남자만 해도 최소한 1천 명 이상은 됐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것은 숙명적인 체념을 하는 여인의 나약성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함 없이, 의연히 동족을 위하여 희생할 것을 결의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이 말 속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희생마저도 감수하고자 하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있습니다(창43:14).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안이숙 사모님의 유명한 책 제목이죠.

백 마디 말보다 삶으로써,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안이숙 사모님 1908~1997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