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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된 것은

LNCK 2023. 11. 9. 10:43

https://blog.naver.com/karamos/220251948801 

 

◈내가 나 된 것은       고전15:9-11        2013.05.19.    ☞ ▣ 은혜 관련글 모음

 

◑이해할 수 없는 바울의 기쁨과 감사

 

우리가 가진 성경 중 신약성경에는 바울이 쓴 편지가 많이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바울은 감사와 감격

그리고 기쁨 가운데 살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바울은 무엇이 그렇게 기뻤던 것일까요?

무엇이 바울을 감사하게 하고 감격하게 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바울의 형편이 그렇게 기뻐하고 감사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세상 사람들처럼 아내나 자녀에게서 얻는

소박한 행복을 맛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세상의 권력의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변변한 직장이 있어서 하는 일이 재미있다거나, 직장에서 진급하는 보람이 있다거나

월급을 타는 재미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돈을 쓰는 기쁨이 있던 것도 아니고

세상 명예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착고를 채우고 감옥에서 고생을 하였으며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매를 맞아본 경험은 있겠지만

장성해서 누구에게 매를 맞아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어느 구석도 바울이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행복한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편지 곳곳에서 바울의 기뻐하는 모습을 감사와 감격에 흠뻑 젖어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옥에 있을 때 썼다는 빌2:18절에 보면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이 이렇게 기뻐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은혜가 넘치므로,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도 기뻐하기보다 슬퍼하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웃음 한번 크게 웃어보지 못하는 힘들고 짜증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바울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도 이런데

바울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 수 있었는지

바울은 한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았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처해 있는 모든 환경을 넘어서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그렇게 기쁘게 하고

감사와 감격 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즐겁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감사와 감격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감격하고 감사하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는 헬라어 원문에 '카리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보통 그레이스 grace, peace of God 이라고 합니다.

 

◑1. 헬라어 카리스(은혜)는 너그러움 이라는 뜻입니다. merciful kindness, benevolence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 입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나를 너그럽게 대해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시비비를 가리신다면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부부로 살아가지만

남편이 생각하는 것들을 아내가 다 알고,

아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남편이 다 안다면.. 우리 중 하루도 같이 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니다.

시비비비를 가리지 않으십니다. 따지지 않으십니다.

우리 생각을 다 아시지만 모른 척 하고 눈감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몰라서 따지지 않고 벌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른 척하시고 눈감아 주시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면에서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 하나는 개인적인 부족함을 너그럽게 보아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바울의 외모에 대해 학자들이 연구한 것에 의하면 키는 작고 배는 나오고

이마가 튀어나와 성질이 급하고 아주 까다로운 성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인관계가 좋지 않고 옹고집이고 독선적이고 인격적으로 원만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간적인 약점이 많았을 것이라는 것이.. 바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전15:8절에서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스스로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모자라는 자신을 많은 결점이 많은 자신을 탓하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신 것을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처럼 부족한 사람을 감히 사도로 세워주신 것에 감격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저(인명진 목사)도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지은 죄를 일일이 다 아시면서도

저와 같은 사람을 목사로 세워주신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몸 둘 바를 모를 일입니다.

 

제가 40여년 목회를 하면서 교계 안에서 총회장을 하거나 어떤 자리에 가는 것에

한 번도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간단합니다.

 

물론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저 같은 죄인이 목사가 된 것만도 감사한데

감히 총회장이나 그 어떤 자리를 바라는가 하는 이유였습니다.

목사도 감당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조건을 따지자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격도 그렇고 12사도들처럼 생전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그 모든 부끄러움을 덮어주셨습니다.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너그럽게 보아주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눈감아 주시고 너그럽게 봐주시고 따지지 않으시고

감히 그리스도의 사도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너그럽게 보아주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목사 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 들어가기가 5대1, 6대1, 재수, 삼수,

사수를 해야 합니다. 목사고시도 3분의 1은 낙방을 합니다. *1980~2000년 경에 그랬죠.

 

그런데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던 40여 년 전에는 누구나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이 부족한 사람도 신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같으면 신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같이 모자란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목사가 되게 하시기 감사합니다.”

그런 감사가 있었습니다.

 

요즘 신학생들은 머리는 좋고 똑똑한데 그런 감사가 없습니다.

자신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신학교에 들어간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저같이 부족한 사람들, 소장사하다가 실패하고 쌀장사하다가 실패한 사람들,

병들어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입만 열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팔삭둥이와 같은 나를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셨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당연히 목사가 될만한 사람이고, 장로가 될만한 사람이고

권사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줄만한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우리 마음속에 교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 ‘카리스’는 예쁘게 보아준다, 인정해준다는 뜻입니다.

affords joy, pleasure, charm, loveliness, favour

 

우리나라 속담에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란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다 빨갛게 보입니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기만 한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없습니다.

어느 면을 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의 단점은 사실 그 사람의 장점입니다.

또 그 사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의 단점입니다.

 

흔히들 남녀가 교제할 때, 상대방의 어떤 특별한 점이 좋아서 사랑하고 부부가 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 좋아하고 매력적인 점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똑똑해서 결혼했는데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장점으로 보인 것이, 살아보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인 것입니다.

 

▲제 친구의 부인 중에 성격이 유별난 사람이 있습니다.

금방 웃다가 토라지고 간을 빼줄 것처럼 아양을 부리다가 화를 내기도 합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같이 살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 친구가 어떻게 살까 걱정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는 “여자가 그렇게 변화가 있어야지 늘 한 가지 모습이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합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들의 좋은 면만을 보십니다. 예쁘게 봐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못하는 것도 대견하게 보아주십니다.

아이들이 버르장머리 없어 보여도 부모들은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그렇게 귀엽게 예쁘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하나님께 예쁘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인생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께 꾸중을 들을만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바나바와 다투기도 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 자신의 은인입니다.

초대교회 가장 어른인 베드로와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을 모른 척하시고

바울이 주님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것, 결혼도 안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는 것만을 보시고

대견해하시고 인정하시고 알아주시고 예뻐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바울을 감사하게 하고 감격하게 했습니다.

 

◑3. 셋째로 ‘카리스’라는 말에는 참다, 인내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기에 예쁘니까 참아주시고, 인내해 주시는 거죠.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꾸중하실 일이 매를 때리실 일이 있지만, 참고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들 가운데 성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매를 맞아도 많이 맞아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가볍게 견딜 만큼 매를 때리시는 것은

참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특별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잘못, 하나님을 거역했던

큰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 마땅한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을 때

하나님께서 불같이 진노하시고 매를 때리셨으면 견딜 수 없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참아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마치는 말

바울의 삶은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기쁨이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행복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이 효도하고 손자들이 재롱을 부려서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직장을 주시고, 돈을 많이 벌게 하셔서, 건강을 주시고,

사업을 잘 되게 하셔서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바울과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진정으로 감격하고 감사한 것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너그러우심, 자신을 한없이 예뻐하시며 인정해주시며

오래 참으시며 기다려주시는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차원 높은 감사와 감격 신령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는 얼마나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얼마나 기쁨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 감사와 감격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입니까?

바울에게는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왜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까?

바울에게 있었던 깨달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해주시는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너그럽게 보아주시는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감사와 감격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에 늘 감사와 감격,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데이빗 링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있었다.      1953.10.28.출생 in Jonesboro, Arkansas

그래서 생후 18분 동안 그의 뇌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했다.(애가 숨을 안 쉬니까)

데이빗은 18분 후에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의 뇌는 이미 산소 부족으로 손상되었고, 그 결과 그는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다.

그는 비록 살았지만, 뇌성마비의 행동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가 그래도 14살까지는 비록 뇌성마비였지만, 그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탁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데이빗을 격려해주었고, 기분을 밝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14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마저 암으로 소천 했다.

 

자기를 지극정성으로 돌봐 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싱글 마더 인 듯)

데이빗은 다른 가족들의 가정을 이집, 저집 전전하면서 돌봄을 받아야 했다.

 

여러분이 만약 뇌성마비 소년 데이빗이라고 한 번 가정해 보시라!

그에게 전적이며 절대적으로 의지할 대상이요, 도움의 원천인 어머니가 죽었다.

 

이제 진짜 그를 반겨주고 기쁘게 맞이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사춘기 소년이... 죽고 싶지 않겠는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으며, 삶의 소망이란 깡그리 다 사라지고,

그렇게 철저한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야 했었다.

적어도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처절한 절망 가운데 데이빗 링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의 삶은 놀랍게 바뀌었다. 절망, 한숨, 탄식, 괴로움은 다 사라지고

이제 데이빗 링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간증을 통해, 큰 도전과 은혜를 나눠주고 있다.

 

그는 Just As I Am (바로 나처럼) 이란 자기 간증 책을 써서 출간했는데,

이 책은 장애우 뿐만 아니라, 많은 비장애우 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앞에 가로막힌 너무나 극복하기 어려운 큰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우조차 이루기 어려운 일들을 하나씩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긍휼로 자기를 변화 시키신 것처럼,

당신도 ‘바로 나처럼’ 변화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도전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