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1Kxyed0PFJg
◈절대 속지 않으려면 승천하라 유1:1~15 2023.11.26.
'절대 어떤 종류의 (종교적, 신앙적) 속임수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승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승천'이란, 우리 각자 나의 승천을 뜻하는데,
죽고 나서 승천이 아니라, 오늘 현재 예수 믿는 성도가
그 영혼의 실체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따라 '승천'해서 하나님 보좌 앞에 거하는 것을 뜻함.
성도가 오늘 이 세상 현실을 살고 있지만, 영혼의 실체가 동시에 승천해서 천국에 가 있다는 것을 뜻함)
최근에 제가 어떤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어요.
저희가 운영하는 <십자가 복음방송>의 말씀을 유튜브로 접하고 나서,
좀 솔깃한 부분이 있어서 계속 듣게 되면서
자기 마음의 경계심을 풀지 않고, 적어도 6개월간은 내가 조심스럽게 살펴보리라...
하는 그런 결심을 했다고 그래요.
그렇죠. 당연히 조심해야 되죠. 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거짓에 대해서도 속지 않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내가 6개월 동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살펴본다고.. 속지 않게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여러 설교 방송을 들을 때, 그 사람이 누구든지,
신학대학 총장이든지, 교황이 설교를 하더라도
승천을 말하지 않으면 다 거짓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누가복음에서 분명히 밝힌 것처럼, 승천의 한 과정입니다.
왜 성도가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습니까?
왜 세상에 대해 죽어서, 다시 부활했습니까?
하늘에 대해 살기 위해서에요.
그리고 '하늘에 대해서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이 승천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승천의 생활화'는, 신앙적인 거짓에만 속지 않게 해주는 게 아니에요.
일반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도, 절대로 누구에게도 속지 않으려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경계심을 흐트러지 않아야 되겠다' 이런 결심을 하는 대신에
승천하면 됩니다.
여러분, 나 홀로 골방에서, 예수님 따라서 (예수님 안에서) 내 마음이 승천하는 일에는
아니 혼자 골방에서 승천하는데 무슨 오류가 있겠습니까?
무슨 속임수가 거기에 끼어들 수가 있습니까? 무슨 손해가 생기겠습니까? No
내가 내 마음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겠다는데
거기에 무슨 오류가 끼어들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승천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지금 천국 보좌 앞에 있는 상태
그리스도의 전 사역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사역을 무효화 시킨다는 것은
진리안에 거할 수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진리안에 거하여야만 속임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거든요.
그것은 영적인 거짓으로부터만 속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진리안에 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재정적인 측면에서 사기꾼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안 속아요.
그리고 그 누구의 어떤 말과, 어떤 약속과,
내게 감정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어떤 태도에 대해서도 절대 속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승천하면 그렇게 됩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승천하게 되면, 내가 나에게도 속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게 아닌데, 나는 그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게 내가 나에게 속는 거거든요.
결국 죄와 저주 속에 빠져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평생을 속은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아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오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사람에게도 속고, 나 스스로도 속고, 다 속고 사는 게 됩니다. 천국이, 승천이 있다니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불행하십니까?
그래서 '이러이러하게 됐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가지면 좋겠다.
내 아내나 남편이나 내 자녀들이나 나의 미래가 이러 이러하면 좋겠다' 하는 바램을 갖잖아요.
그게 다 속는 거예요.
나의 모든 불행은, 내가 5감각에만 속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만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에겐 현재 천국이 있습니다)
여러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불행합니까? 속는 거예요.
재정적으로 궁핍해서 불행합니까? 속는 거예요.
재정적인 궁핍은,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몸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도, 내게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행하게 사는 것은) 다 속고 있는 거예요.
(*내가 승천해서, 내 영혼의 실체가 보좌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면, 불행하지 않습니다)
울고 불고 내가 죽을 것 같은 우울증에 빠져도
5감각의 현실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거기에 속아서 그러는 거예요.
왜 속습니까?
마음이 승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음이 이 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에요.
'본능의 지식을 따라 멸망한다'는 말이 본문에 나와요.
:10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본능의 지식'이 뭡니까?
마음이 승천하지 못한 상태에서 죄적 본능을 말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마음이, 오감에 갇혀버렸어요.
즉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하는 것에 자기 마음이 갇혀버렸습니다.
그럼 그 마음이 갇힌 상태에서, 지식이 생기잖아요.
그 모든 지식은 다 속임수라는 거에요. (승천하지 않은 상태의 지식이니까)
▲본문 <유다서>를 기록한 이유가 4절에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을 말하고, 이단을 말하는 거예요.
'이들은 경건하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방탄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제, 홀로 하나이신 권세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4
라는 말씀을 하세요.
'가만히 들어온 이 몇 사람'은
그 당시에 교회를 흔들던 영지주의자들을 말해요.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육체는 더러운 것이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더러운 육체를 입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니까, 따라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부인됩니다.
결국 (오늘날 신자들이) 영지주의자들처럼 부인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라 승천해야 한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생활화해야 될 필요를 못 느끼고
말씀 속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그 말씀을 듣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신 예수님,
결국 누가복음의 말씀을 인용해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간다'는 얘기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이미 예고하신 대로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얘기예요.
▲ 그런데 누가는, 이렇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자체를 '승천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승천할려니까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고, 다시 부활해야 되고,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길이 곧 '믿음의 도'라는 거예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하기 위하여',
<유다서>를 기록했다고 말씀하시잖아요. :3
그래서 '십자가 생활화'는 곧 '승천의 상활화'를 말합니다.
'승천'이 따르지 않는 십자가는.. 그건 가짜입니다.
목표 없는 출발점인 거예요.
이 '승천'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모든 거짓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의 도를 지켜낼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과, 보통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삶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나를 속이더라도..
그 사람이 이미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죠 (*5감각의 현실 세상이 전부인줄 아는 것)
예를 들어 나에게 와서 얘기하는 사람이 '돈이 최고다'라고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이 이미 속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A가 '돈이 최고다'라고 믿고 있는 그 상태에서
나를 속일 의도가 없이 나와 만나서 교제한다 할지라도
이미 그 사람 말의 전체가 다 스스로 속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속고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내 마음이 오감각에 갇혀 있는 상태,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며, 그들과 교제 관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그의 속임수에 빠져버리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예수를 믿어도)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는 이유입니다.
왜냐면 거짓에는 기쁨이 없어요.
오직 진리, 참 믿음 속에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겁니다.
내가 남편하고 대화를 하고 있어요.
남편은 전체 인격 자체가.. 지금 속고 있는 거예요.
왜요? 마음이 '승천'하지 않고 있는 한,
남편이 오감에 갇혀 있는 마음의 상태에서는
죄적 자기 본능에 의해서 생기는 지식을 따라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교회를 흔들어 놓고,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현혹되고 미혹될 경우에,
우리 자신이 믿음의 도를 지키지 못하고, 구원해서 떨어져 나간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그래서 본문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 장로의 *<야고보서>기록
동생이에요. 그래서 AD 70~ 80년 어간에 유다가 순교했을 것이라 믿고,
그 기간에 이 <유다서>가 기록됐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유다서>를 기록한 목적은
결국 교회와 교인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이단 사상과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심을 고취시키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근데 <유다서>를 끝까지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느끼시겠습니다만
베드로후서 2장과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잖아요.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음이라.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의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을 보면,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개가 토하였던 곳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이렇게 믿음에서 떨어짐을 독자들에게 경계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베드로후서 2장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유다서>에 거의 반복하다시피 다시 쓰셨을까요?
유다서의 앞에 보면, 일반적인 구원에 관해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급하게 자기 마음의 결심을 바꿔서
베드로후서 2장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가, 살짝 보완해서 <유다서>를 써서 보낸 겁니다.
그런데 그 다시 보완을 한 부분이, 특별하다는 거예요.
'위경'이라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이 아니고 위경이라는 책들이 있는데
주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까지 만들어진 문서들이에요.
그 책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지만
신뢰성도 의심이 가고, 또 오류도 많이 담고 있어서
정경 66권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위경'이라고 분류된 책들 중에
<모세 승천기>와 <에녹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근데 이 <모세승천기>에서 본문1:9절을 인용했고
<에녹서>에서 본문1:14절을 인용합니다.
이 점이 특이하다는 거예요.
내용은 베드로후서 2장과 똑같은데,
위경을 인용해서, 유다가 이 <유다서>를 기록할 때에
베드로후서 2장의 말씀에, 무엇을 보태고 싶어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그게 <모세승천기> 와 <에녹서> 입니다.
모세승천기는.. 제목을 봐서 알듯이, 모세가 승천했다는 말일테고,
에녹서의 에녹도, 살아서 승천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9절에 인용한 그 미가엘 천사가 모세의 시체를 거두어 가려고 할 때
마귀가 나타나 가지고 (모세승천기에 있는 내용이에요.)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기 때문에, 범죄자라서
모세의 몸은 내가 취해야 된다' 라고 주장을 할 때
하나님께 위임을 받은 미가엘 천사가
'네 이놈 물러나지 못할까? 못돼 먹은 놈!' 이러지 않고,
그 마귀에 대한 판결을 하나님께 의뢰했다 라는 얘기가 나와요. :9절 참조
근데 이 내용이
지금 이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가
어떤 점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베드로후서 2장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어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는 거예요. 바로 승천입니다.
▲그래서 '경건'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요.
에녹서를 인용한 부분에 보면
애녹이 (애녹서라는 위경에서 예언하기를)
'주께서 많은 거룩한 자들, 즉 천사들을 이끌고 내려와서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리라' 하는 얘기가 나와요. :14~15
그런데 그 '경건'이라는 게 무엇이냐면,
왜 에녹의 입을 빌어서 심판을 얘기하며, 경건을 얘기하느냐?
'경건'이란,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승천한 상태에서
이 땅을 사는 모습을.. 경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함으로 연결을 시켰다'는 얘기가 나와요.
이 '방탕함'이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가 '성적으로 방탕하다'는 뜻이에요.
:4 '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성적으로 방탕하다'는 얘기가 무슨 뜻입니까?
그의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 승천을 하지 못하고, 땅에 남아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꼭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방탕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땅에 남아 있는 한.. 무조건 '방탕'하게 됩니다.
▲근데 거짓 교사들이나 거짓 신앙인들이 '승천'을 잘라서 버린 거예요.
그걸 우리는, 에녹서, 모세 승천기라는 위경을 (승천 내용을) 인용하고 싶어하는
유다의 관심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이 '승천'을 잘라내서 버리니까
마음이 이 세상 오감각에 갇힌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을 등지고, 마음이, 영적인 의미에서 성적으로 방탕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3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믿음의 도'는 그냥 믿음이에요.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운다'
그러니까 믿음의 이론이나, 믿음의 교리를 위해 힘써 싸운다.. 이런 뜻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 '믿음의 도'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유다도,
야고보 장로도 그랬고, 사도 베드로도 그랬고, 사도 요한도 그렇고,
모두가 다 목격자들이에요.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운다'는 얘기는
목격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따라, 보좌우편까지 가는 것에 힘쓰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도를 위해 힘을 써서 싸워야 되느냐?
우리가 마음으로 하늘로 올라가야 되는데 왜 싸워야 되느냐?
믿음의 세계 안에서조차, 우리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전부 거짓말로 '우리 마음이 이 땅에 남아 있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무조건 하늘로 올라가세요. 무조건 올라가야 돼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한,
꼭 믿음의 세계의 신앙 언어가 거짓이라서 속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삶에서 다 속아요. 다 속아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승진이 발표될 때가 됐다면
내 마음이 믿음의 도를 힘써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일에 힘써 싸우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승진이 발표 시점에서, 내 마음이 그대로 땅에 머물러 있잖아요?
-승진을 해서 기쁜 것도 속는 것이고,
-승진 안 했다고 우울하고 슬픈 것도 속는 것입니다.
기쁠 일이 아닌 것을 기뻐하며,
슬플 일이 아닌 것을 슬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승천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오감에 갇혀서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내 몸으로 만나는 일에 대해서, 내가 일희일비하는 모든 게 속는 거예요.
울어도 바보 같은 것이고,
웃어도 바보 같은 것이에요.
다 속아서 하는 것이니까!
'거짓'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베드로후서 2장에서 '거짓 교훈에 넘어가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유다서에서, 거의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와서 얘기하는데
에녹서 와 모세승천기 라는 위경에서 일부 말씀을 발췌합니다. 이유가 뭐예요?
그래서 이렇게 위경서에서 말씀을 인용했기 때문에
'유다서를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걸 과연 정경에 넣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라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가 길게 됐어요.
근데 결국은 에녹서나, 모세승천기에 있는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부 필요한 부분을 인용했을 것이고,
그래서 정경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인데, 저는 아주 잘한 거라고 봅니다.
이 위경서가 끼어들어옴으로써
저자 유다가 베드로후서 2장에 어떤 관심을 더 보태고 싶었는가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승천'이죠.
그리고 '승천'이라는 이 부분이
우리가 앞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도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키 key 가 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얘기가 되어 왔어요. 승천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하늘 보좌 우편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거기에 지금 올라가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에 의해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그 앞에 부분에서 인사말을 그렇게 써요. :1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불러내십니까?
'부르셨다'는 건 '세상에서 불러내셨다'는 거예요.
'성도가 하늘로 올라와서 하나님을 유일하게 상대하게 하시려고' 불러내신 거예요.
그래서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직면하는 상태가 아니면
(승천을 모르고 가르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믿어도 속는 것이고, 믿어도 속는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속는 거예요.
그들의 말에는 참이라는 게 하나도 없게 되고요.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마음은 '승천'하고 봐야 되는 겁니다.
승천하여 하나님을 직면하고 봐야 되는 겁니다.
내가 승천해서 하나님을 직면한 상태로서
하나님의 존재감이 내 삶 속에서 1등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승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속는 거예요.
우리에게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유일한 거예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와 직면하면 좋다' 이거 말고는 다 속는 겁니다.
뭘 해도 좋지 않아요.
아무쪼록 베드로후서와 똑같은 내용을 가져고와서 유다서를 쓰면서
특별히 위경의 내용들을 보태서 인용하면서
유다서를 쓰신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의 마음을
우리가 잘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다는 아주 급한 마음일 거예요.
베드로후서 2장이 교인들에게 회람돼요. 그런데 마음이 급한 겁니다.
거짓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때,
베드로후서 2장에다 '승천'이라는 관심을,
'승천'이라는 주제를 집어넣어야 되겠다...
그래서 일반적인 구원론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급하게 계획을 바꿔서 이 편지를 쓴 거예요.
에녹은.. 살아서 승천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내용을 인용했는데.. 승천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다 알았을 거예요. '이 인용은 모세 승천기에서 왔다'
그리고 경건이라는 걸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마음이 승천한 상태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습이 경건이다.'
그러므로 에녹서에서 심판을 얘기한다는 것은,
승천한 애녹이 심판에 대해 예언한 내용이 무엇이냐
(에녹이 직접 쓴 게 아닐지라도)
"마음이 하늘로 올라온 상태에서 살지 않는 모든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 대해
주의 심판이 임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판 때는
그 천국에 머물던 천사들이 함께 대동할 것이다."
계속해서 천국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이 가 있어야 될 천국의 문제를
우리 앞에 제시해 놓으십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승천하셔서 모든 속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지 않고 진리 안에 머물면, 행복은 저절로 올 것이고
이 세상의 삶은, 아버지의 사랑과 주권에 의해서 저절로 진행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여 이끌어 가는 나의 삶,
그것은 세상 사람들 눈에 볼 때, 성공이라 하더라도 성공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실패라 하더라도 실패도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의 주권이, 그 뜻이 이루어져 가는 것일 뿐이지요.
세상 사람들 눈에 번영이라고 보이는 것도 번영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쇠하는 것이라고 보여도 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의 뜻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양에 현혹되지 않아야 됩니다.
우리는 모양에 또 속아요. 계속 모양에 속아요.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번영, 이게 잘 되는 거라고 속는 거예요.
세상 기준으로 번영이 잘 되는 게 아니에요. 성공이 잘 되는 게 아니에요.
세상 기준으로 실패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에요.
세상 기준으로 쇠락해지는 것도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오감각에) 다 속고 있는 거예요.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반드시 날마다 승천하여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를 대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거짓뿐인 세상,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거짓이 쇄도하는 세상, 어떤 것에도 속지 않을 수 있는 승천의 비결을 붙잡고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