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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잉태하여 낳는 존재 1

LNCK 2023. 12. 7. 18:17

[데스티니] 22. 룻 1 - 잉태하여 낳는 존재 - YouTube

◈룻, 잉태하여 낳는 존재 1      룻1:1~5     데스티니 22강   ☞시리즈 보기

◑도입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는 데스티니가 있지요. 
데스티니는 뭐냐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이 아무 생각 없이 여러분을 창조하신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창조하신 분이 있으세요. 

여러분은 우연히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계획하고 지으신 분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을 창조하시고 디자인하실 때는 
계획을 가지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너는 한번 연습 삼아 한번 만들어 보겠다' 그래서 실패했으니까
'네 인생은 실패로 살아라' 이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고, 
아주 섬세한 계획을 가지고 만드셨어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게 하고, 
어떤 인생을 살게 하고, 다 그런 기대와 계획 가운데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들이,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 대로 살 것인가, 살지 않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목적대로 선택하면서 갈 때   *예정+자유의지
거기 하나님께서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축복을 준비해 놓으신 계시고 

그 데스티니의 길을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다른 것들을 선택할 때, 
사실은 인생은 무의미하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베스트인지를 알고 계세요.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 유일한 분이세요. 

저희는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중국 속담에도 보면 '새옹지마'란 말이 있잖아요.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화인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왜냐면 미래를 읽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주인 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까지도 알고 계신 분이시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까지 알고 계신 분이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가운데 최고로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고 
가장 최선의 삶을 주기 원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시니까 그래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최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기대가 있지, 
자녀를 저주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부모가 그럴진데, 하늘에 계신 완벽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한 좋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요. 

가장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고, 
그 계획 가운데 우리가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분이세요. 
참된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분이세요.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계획을 알고 
그 데스티니를 알고, 그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안에, 우리 하나님께서 많은 기쁨들과 행복들과 만족들과 축복들을 
준비하고 계세요. 이걸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데스티니 설교 22번째예요. 
이 정도면 여러분, 아마 똑같은 얘기를 수 십 번 들으셨으면 이제 다 외우셨죠?

▲오늘은 특별히 룻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룻기는 성경에 등장하는 책 중에 참 독특한 책입니다. 

여러분 룻기가 기록된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성경과 모든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습니다. 
'그냥 대충 좋은 얘기니까 집어넣자' 이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뒤에 따라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선택하셔서 기록하신 책들이지, 
그냥 이유 없이 기록된 책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창세기는 어떤 목적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의 이야기들을 기록하셨어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왜 기록하셨어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하신 거죠. 

출애굽기는 '구원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기록하신 이야기고 

레위기는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인지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성경과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각각의 목적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룻기는 무슨 목적으로 기록되었을까요? 
근데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룻기는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룻기 이야기는 이게 성경에 왜 기록되는지 찾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물론 메시지가 몇 가지 있기는 한데, 
영적으로 해석하면 메시지가 나오기는 한데.. 
룻기의 기록 목적을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목적을 찾아보면, 
나오미가 기근으로 인해 모압(지금의 요르단)으로 넘어가죠.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며느리를 얻어요. 오르바와 룻.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이 먼저 죽고, 아들 둘이 죽고, 
그래서 과부 세 명이 남아 있다가 
이스라엘에 이제 풍년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죠.
그 때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잘 살았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그냥 별로 뾰족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건가?' 
뽑아낼 만한 영적인 메시지도 찾기 어려워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룻기를 기록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것은, 룻기 제일 마지막에 보면 그 이유가 살짝 나옵니다. 

룻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게 룻기가 기록된 유일한 이유입니다.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에요.

그러니까 오벳이 할아버지고, 오벳의 어머니가 룻이잖아요. 
룻이 오벳을 낳았는데, 다윗의 할아버지죠.

이 이유 하나 때문에, 룻의 이야기가 사실은 성경에 기록되게 됩니다. 
근데 왜 오벳을 낳은 것이 중요하냐면 
오벳을 통해서 이새를 거쳐 다윗이 왔고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통로가 된 사람이 룻이었죠.

이 이유 이유 하나 때문에, 룻의 가정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게 되는
그런 대단한 영광을 갖게 됩니다. 


◑1. 룻이 보여주는 메시지가 있어요.
뭐냐면 "우리는 이 세상에 뭔가를 낳는, 출산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계획하신 그 열매를 어떻게 잉태하여 출산하는가> 
하는 걸 보여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태초부터 계획하셨고 
그 방법을 태초부터 가지고 계셨고 
거기에 사용될 사람들을 태초부터 부르고 계셨어요. 

그리고 룻이라는 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아이, 그 열매를 출산할 것들을 계획하셨어요. 

그리고 룻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들을 순종하며 선택하며 좇아갔을 때, 
그를 통해서 오벳을 얻게 되는 이 이야기가, 룻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우리 하나님께서 무언가 출산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무언가 이 땅 가운데 낳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그냥 와서 대충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곳에 50년을 사시던, 80년을 사시던, 
살아간 인생만큼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그 잉태한 결과들을 땅에 출산하는 존재로 여러분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이걸 알아요. 그래서 속담도 있잖아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런 것이, 사람이 이곳에 살다가 가면, 
그 인생의 걸음걸음을 통해서 잉태하는 것들이 있고, 
잉태한 것들이 결국 열매가 되어서, 이 땅 가운데 출산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그 열매를 세상에 출산하고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여러분 이 아브라함은 평생의 삶을 통해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잉태하고 낳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별명이 뭐예요?
'믿음의 조상, 믿음의 아비' 잖아요. 

그래서 믿음을 잉태하고 출산해야 되는 것이 아브라함의 데스티니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인생에 보면,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믿음을 잉태하도록 하세요. 

처음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도, 믿음으로 떠나야 되고요. 
조카 롯을 떠나보내는 것도, 믿음으로 떠나보내야 되고 
전쟁에서 롯을 구원하기 위해 뛰어든 것도, 믿음으로 뛰어들어야 되고 
결국 마지막에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믿음으로 바쳐야 돼요. 

그래서 이는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평생의 모든 삶의 스토리들이 "믿음을 잉태하는 과정들"이에요. 

항상 믿음을 잉태하기 위해선, 뭔가 선택을 해야 돼요.
그 선택을 함으로써 믿음을 자기 삶 가운데 잉태를 해요. 

그리고 그 믿음의 걸음을 걸어갔을 때, 어느 때가 되면 
그 믿음이  이 땅 가운데 뭔가 결과물로 출산이 돼요. 
그리고 그것을 유업으로 이 땅 가운데 남깁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유업으로 축복을 받는 거에요.
'아 믿음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아브라함이 걸어가면서 남겨주었던 믿음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구나!' 
후손들이 그 유업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거죠. 
이것이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다윗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평생의 삶을 통해서 
<예배>가 무엇인지를 잉태했던 사람이에요. 

수많은 시편을 씁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도 쓰고, 
압살롬에게 배신당했을 때도 쓰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중단 없이 연속해서 계속 예배하는 다윗의 장막을 만들고.. 

이런 잉태 과정을 통해서, 다윗도 <예배>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열매를 이 땅 가운데 출산하게 되고, 
그 유업들을 믿음의 후손들이 누리게 되는 거죠. 

'아 다윗처럼 예배하는 거구나' 
요즘 '다윗의 장막'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출산했던 열매들이잖아요. 
그 <예배>의 유업들을, 후손들인 우리가 지금 보고 배우고 따르고 있는 거죠. 

엘리야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그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잉태해야 됐어요. 

마른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하고 
기근이 들었을 때 까마귀를 불러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제단 위로 불이 떨어지게도 하고... 
엘리야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그의 삶 가운데 잉태하고 결국 출산을 합니다. 

그리고 그 출산을 통해 얻어진 열매(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됨)들을, 
후손들이 누리게 되는 거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외 없어요. 
바울은 <열방>을 유업으로 얻고요. 
이사야도.. 다니엘도.. 예레미야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인생을 통해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그 열매를 출산하는 삶들을 살았어요. 

그리고 세상은, 좋던 싫든 이 사람들이 출산해 나온 열매들을 가지고 
그 영양권 안에 살게 돼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잉태하게 하시고, 
여러분이 인생을 다 끝냈을 때는 
그 잉태의 출산물들이 이 땅 가운데 남겨지게 될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이 유업들을 가지고 
그것을 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모르겠지만  *죄의 유업을 남기는 경우엔 저주
하여간 우리가 낳아놓은 것들의 그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 이것이 우리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방법이고 패턴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창조하실 때부터 심어 놓으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뭐냐면, 이 세상에 무언가 깊고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냥 자기 인생이 아무 의미 없이, 낭비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물론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너무 많은 상처와 실패를 통해서 
다 포기하고 히피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결과, 자기 원래 마음이 망가진 것이지,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건 아이들 키워 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아이들한테 '뭐 될래?' 그러면 
그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저희 어릴 때는 대통령이었어요. 
근데 요즘은 뭐 '아이돌 가수'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그 종류하고 메뉴만 바뀌었지, 내용은 동일한 내용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에요. 
이 시대에는 아이돌 그룹이 대통령보다 더 영향이 있나 봐요. 

어쨌거나 우리 마음 가운데 뭐가 있냐면
'이 세상 가운데 깊고 중요한, 의미 있는 것들을 남기고 싶다'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가운데 심어 놓으셨어요.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을 이 땅 가운데 남기고 싶은 소원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일이에요. 
우리의 데스티니에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그냥 이 땅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살다가 사라지는 
그런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 땅 가운데 의미 있고, 중요한 것들을, 중요한 영향력들을 미칠 수 있는... 
미쳐야만 하는... 그런 데스티니를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품인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작품이 있겠어요?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인생이 낭비되는 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세요.

이 땅 가운데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잉태하고 
그것들을 유업으로 세상 가운데 남기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는,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낳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잉태해서 낳는 존재>예요. 

이것은 마치 육체의 자녀를 잉태해서 낳음으로, 세상에 남기는 것과 비슷해요. 
영적으로도 우리는 인생을 통해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그 결과로 무엇인가를 낳습니다. 

그럼 무엇을 잉태하고, 무엇을 낳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 인생의 존재하는 의미이고, 
또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에 대한 평가일 거예요.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네 인생을 통해서 뭘 잉태하고, 뭐를 낳았느냐?' 이 평가를 받을 거예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인생은 꼭 좋은 것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사단은 우리 인생을 왜곡시키고 파괴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 잉태하지 말아야 될 것들도 잉태하게 돼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그러잖아요.  약1:15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잉태하기도 한다는 거죠.
이건 하나님의 계획하신 거가 아니에요

근데 사단이 우리의 데스티니를, 꼬이게 하고 망가뜨리므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것들을 잉태하고 출산하게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원에서 오원춘 살인 사건,
이런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이 세상에 죄를 잉태해서 두려움과 공포를 낳고,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낳고... 그것을 자기 인생의 결과로 남겨 놨어요. 

참 슬픈 일이에요. 우리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처음에 디자인하실 때, 
이런 인생의 출산물들을 낳으라고 디자인해 주신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땅을 축복하길 원하셨고
이 땅 가운데 생명과 소망의 열매들을 낳기 원하셨지, 

'이 사람의 삶을 보니까, 나에게도 소망이 있구나. 
이 사람의 삶을 보니까, 정말 이 땅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 땅 가운데 위로가 있고, 소망이 있구나!' 
뭐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통해 낳기 원하셨지, 

'억울하다. 분하다. 두렵다' 뭐 이런 걸 낳기 원하신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것들을 출산하는 삶들도 있다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 인생에 대한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다는 거예요. 

잉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잉태한 후에도 계속 책임을 지게 된다는 거죠. 

지금 여러분은 어떤 것을 잉태하고 계시고, 
무엇을 출산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조심하십시오. 조금 지나면 여러분이 잉태한 것들이 세상에 나올 거예요. 
아이는 10개월 있으면 나오는 거죠. 20개월 30개월 계속 뱃속에 머물러 있는게 아닙니다. 

무엇을 잉태하셨든지간에, 지금 여러분들이 잉태하고 계신 것, (*씨를 뿌리고 거두듯)
즉 지금 여러분들이 선택하고 계신 것이, 
조금만 기다리면 열매로 세상에 나온다는 거죠.

아이가 영원히 뱃속에 있는 것이 아니듯이.. 
뱃속에 있을 때는 잘 안 보여요. 

첫 아이를 낳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어요. 
별 어려운 일이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유학 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는 이렇게 저렇게 하고, 
쫙 계획을 세워 놨었는데 

첫 애가 딱 나오는 순간 모든게 다 깨졌어요. 
모든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고, 

얘가 밤에 자지도 않죠. 그러니까 밤에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좋은 의미로 충격적인 결과들이, 잉태 후에 또 연속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이런 결과가 있는 거구나'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근데 여러분 영적으로도 동일하다는 거예요. 
그 열매가 출산될 때까지는, 내가 잉태한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그랬잖아요.  약1:15
이 '사망'이라는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엄중한 것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조심하셔야 돼요.
성경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경고예요. 

'너희가 지금 무엇을 잉태하든지간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물은, 좋은 거든지 힘든 거든지
결국 자기가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결과물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벳을 낳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축복'을 낳는 여러분들이 되셔야지, 
'세상 가운데 저주와 사망'을 낳는 사람이 되면 안 되죠. 

▲유산을 조심하세요
또한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 선한 것을 잉태했어도 역시 조심해야 됩니다. 

왜냐면 여러분, 잉태된 것은 잘못하면 유산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정말 좋은 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을 우리 삶 가운데 잉태했다고 했더라도 
그것이 출산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중간에 사산되고, 유산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충성되게 
여러분에게 잉태하게 하신 것을 출산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룻의 이야기는 <잉태와 출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선택과, 선택의 열매를 얻는 얘기가 룻기입니다.          * <결단, 선택>관련글

그래서 룻의 이야기가 성경이 기록된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깊고 의미 있는 영향력을 남길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선한 것을 잉태하고, 그것을 낳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잉태하고 출산하는 우리의 데스티니를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또 내가 출산해야 될 유업은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출산할 수 있을까요? 

룻기를 통해서 <잉태와 열매에 대한 원리>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뭘까요?' 궁금해 하십니다. 
제가 데스티니 설교를 이제 30번 정도 하다 보니까, 

많이 들으신 분들이 이제 조금 감을 잡으시는데 
이걸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데스티니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항상 고민하는게 뭐냐면, 특별히 대학생들 같은 경우, 
'그럼 나의 데스티니는 삼성으로 가는 걸까, LG로 가는 걸까?' 

뭐 이런 걸 가지고 고민을 하세요. 그건 내가 별로 고민할 가치가 없거든요. 
그냥 시험 붙은 대로 가면 되는 거고요.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여간 이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듣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게 뭐냐면 
'그렇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뭘까, 
내 인생은 어디에 쓰임 받아야 될까?
나는 무엇을 잉태하고 낳아야 되는 존재인가?' 여기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십니다. 

▲근데 제가 데스티니에 대한 말씀들을 준비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다가 
아주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발견했어요. 
'아 우리의 데스티니를 이렇게 찾는 거구나!' 

이번에 제가 일본에 가서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했더니 
어떤 분들이 설교를 들으시고 저한테 와서 물어보셨어요. 
'제 데스티니가 뭔지를, 어떻게 찾는지를 좀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자기 데스티니가 뭔지 알면, 그대로 살고 싶은데,
그 데스티니가 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거예요. 

이것이 답의 전체를 다 커버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나의 데스티니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한 가지 발견했어요. 

그게 뭐냐면, 제가 이름을 붙였어요. '반대의 원리'

룻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여기 보면, 나오미와 룻의 집안에 씨가 마르는 얘기가 나옵니다. 
남자란 남자는 다 죽어버렸어요.  

여러분 룻의 대 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거예요. 
근데 고대 근동에는, 자손을 계속 낳아서 자기의 가문을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죠. 
그래서 형사취수(수혼제) 제도까지 있었어요. Levirate

룻의 데스티니는 오벳을 낳는 것이었어요. 
오벳을 낳으려면 남편이 있어야 돼요. 

(*만약에 룻이 보아스가 아닌, 기룐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면, 
메시아의 계보가 그 라인으로 흘러갔을 것임. 기룐이나 보아스나 다 다윗의 조상. 서로 친족)

근데 이것을 사단도 알기 때문에, 사단이 룻의 데스티니를 막으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룻의 남편을 죽입니다. 

근데 룻의 남편만 죽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형사취수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 형제도 죽여야 돼요. 
그래서 기룐만 죽이면 되는게 아니라 말론까지 같이 죽였어요. 

근데 또 하나 가능성 남아 있는게 있었어요. 
'혹시 나오미가 늦게라도 아들을 낳아 가지고서 
얘가 커 가지고서, 혹시라도 룻의 대를 있게 하면 어떻게 하나?' 

그래 가지고서 아예 후환을 없애 버립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남편까지 죽여 버렸어요. *엘리멜렉

룻1:11~13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No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나오미를 통해서 늦게라도 아들이 혹시라도 나올까봐
사단도 성격이 아주 완벽주의인지.. 아예 그냥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말론과 기룐 뿐만이 아니고 
그들의 아버지인 엘리멜렉까지 완전히 막아 버렸어요. 

그래서 더 이상은 룻에게서 도저히 자녀가 나올 수 없도록.. 
완전히 막혀버린 거 같은 상황을 연출했어요.
그래서 오벳은 고사하고, 어떤 자녀도 나올 수 없도록 철저히 우물을 막아 버렸어요. 

 

▲이게 여러분 <반대의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하나님만 우리의 데스티니를 아시는 게 아니고, 
사단도 우리의 데스티니를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시려고 하면 
사단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것을 반대한다는 거예요. 

왜냐면 그것이 이루어지는게 사단은 싫거든요. 두렵거든요. 
그래서 그 문을 막아 버리려고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삭을 미워했던 원수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그 지역 사람들하고 관계를 잘해서, 우물들을 몇 개를 얻죠. 
그 우물을 통해서 양들을 치며 살았는데,  

고대 근동에서 우물은, 축복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물이 굉장히 귀하거든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물이 있어야 짐승들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우물은 절대적인 축복의 상징이에요. 

그런데 이삭 때, 주변에 이삭을 싫어하는 블레셋 원수들이, 우물들을 다 막아 버려요. 
왜냐면 우물에서 물이 나오면 안 되거든요. 
물이 나오면 이삭이 부흥하거든요. 이삭이 잘 살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물물을 아예 막아 버린다는 거예요. 

우리 인생에, 사탄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이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행하실 일을 사단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물을 막아 버리는 거예요. 
아예 거기서 물이 못 나오도록 조치를 취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안 풀리고, 가장 힘들고, 정말 안 되는 일들, 
완전 막혀버렸다고 생각되는 일들.. 그런 막혀버린 우물들을 찾아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데스티니일 수 있다는 거예요. 
도대체 사단이 내 인생에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단이 내 인생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끈질기게 공격하고 막아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관찰해 보는 거예요. 

이것은 제가 성경을 살펴보면서, 
또 한국의 데스티니라든지, 일본의 데스티니 라든지
이것을 연구할 때도 역시 똑같은 패턴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한국교회 가운데 "기도"라는 데스티니를 이루시려고 하니까 
사단이 이걸 막으려고 그냥 전쟁을 일으키고... 계속 이렇게 막는데 
결국 나중에 그게 좋은게 되죠. 합력하여 선을 이루죠.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데스티니가 뭔지 알고 싶어 할 때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봐요. 

물론 거기에 나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뭐 은사도 주시고, 또 잘 하는 기술도 주시기 때문에 
그걸 사용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반대 쪽에 
하나님의 뜻(데스티니)이 있는 경우도 참 많더라는 거예요. 

일본 같은 경우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사단이 계속 두려움을 줘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우물을 막아 버리잖아요. 

그런데 결국 그 막힌 것을 뚫고 나와야만, 그의 데스티니 이루어지는... 
결국 뚫고 나와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막아놓은 우물 곁에 가보세요. 
내 인생이 막혀 있는 우물이 어딘지? 

어려서부터 사단이 나를 집요하게 공격했던게 뭔지? 
그 막혀 있는 우물, 안 풀리는 곳,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런게 어쩌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심어 놓으신 것일 수도 있어요.

정말 막혀 있고 안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음 한 구속에는 계속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요. 

이거는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막힌 우물에 가보면, 
거기서 여러분의 데스티니를 발견할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룻의 인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룻의 데스티니는 '(메시아의 조상을) 잉태하여 낳아야 하는' 존재예요. 
그러니 사단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 가능성들을 다 막아버리는 거죠. 

룻의 남편뿐 아니라, 그 집안에 씨를 다 말려 버렸습니다. 
오벳을 잉태해서 낳는 그걸, 사단은 다 파괴하고 싶어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그거 아세요?
사단이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절대로 막을 수 없는게 있어요. 
그건 뭐예요?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 또 우리 주변에서 보는 믿음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사단이 이것을 막으려고 무지하게 애를 써요. 

모든 우물들을 꽉꽉 다 메워버린 것 같은데 
결국 끝에 가보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고 난 후에는, 반전이 일어나요. 
그래서 오히려 그 막아 버린 것들이, 그의 데스티니를 
더욱더 풍성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그래서 사단은, 감사한 것은
항상 좋은 일만 하는 거예요. 

우리 인생에 뭔가 방해하려고 하는데, 결국 끝에 가보면 
그걸 하나님이 선하게 쓰셔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이루신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십자가의 반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속 '믿음'을 얘기하시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만 자꾸 쳐다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라!' 

나는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고.. 
사단이 이렇게 막고 있고, 저렇게 훼방하고...
그래서 내 인생을 맨날 꼬이게만 하고... 
그 가운데 내가 낙담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안 일어나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뭐냐면, 이렇게 낙담해야만 할 그런 상황들, 조건들, 
원수가 막아버린 우물, 이게 십자가를 딱 통과하고 나니까 
오히려 더 놀라운 반전의 결과를 가져오더라는 거죠.

사단이 막아놓은 우물을 파 보니까, 그 안에 오히려 오랫동안 막혀 있었기 때문에 
더 풍부하고 더 풍성하고 더 질이 좋은 어마어마한 물들을 얻게 되는 거죠.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역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또는 원수가 99가지의 길을 다 막아놓으시고, 요것 한 길 열어놓으셨다'고
그런데 그게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면, 너무나 잘 된 거죠.
괜히 엉뚱한 길로 갔더라면, 시간, 물적, 인적 자원을 엄청 낭비했을 텐데,
모든 길이 다 막히면서.. 그런 자원들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스토리들을 보십시오. 
어느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성경 인물의 패턴이에요. 

예수님의 데스티니는,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사단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무지무지하게 노력합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시고, 사단을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잖아요. 
그 십자가를 통과하는 순간, 사단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승리로 결론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요셉도 마찬가지예요. 요셉은 총리가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단이 반대하는 일을 합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계속 집어넣잖아요. 

노예가 되게 하고, 노예에서 죄수가 되게 하고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도록 집어넣는데 
결국 끝에 가서 뚜껑을 열어 보면 
요셉이 거기 보내지는 덕분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당시에 가장 강력한 나라에 총리가 되는.. 그런 반전이 일어나는게 십자가라는 거에요.

본문의 룻도 마찬가지예요. 
룻의 인생을 파괴하기 위해서, 마귀는 끝까지 반대를 했지만 
결국 룻이 돌아왔을 때, 보아스를 통해서 오벳을 낳게 되는 반전이 일어나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에도 분명히 사단이 막아 버리라고 하는 공격이 있을 겁니다. 
그 공격이 없다면, 그건 우리 데스티니가 아닌 거예요. 

분명히 사단이 막으려고 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막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십자가를 통과하게 될 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게 되면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거예요. 

오히려 그것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어마어마한 양의 물들이 
그 안에 저장되게 되고 
훨씬 더 깨끗한 물들이 그곳에서 나오게 되는...
이것이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환란은 우리에게 저주가 아닙니다. 
분명히 로마서 5장에서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그랬어요.
열매를 낳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단이 저주로 막아버린 우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앞에 가서 서 계셔야 돼요. 

이것은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좌절하고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에요. 

'내 인생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그때 그 사건만 안 일어났으면..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장애만 없었으면..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경제적인 어려움만 없었으면.. 
우리 부모만 잘 만났으면.. 
내가 공부만 좀 잘 했으면..' 

이런 수많은 막혀 버린 것 같은 그런 우물들이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거죠.
그게 마지막 결론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막힌 우물이 다시 한번 트여지게 될 때 
거기서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하게 되는지를 보기 원하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사실 저는요, 저의 데스티니 중에서 가장 꼴찌에 있는게 뭐라고 생각했냐면 
목사였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장래에 제가 목사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제가 말을 아주 심하게 더듬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목사하고 저하고는 가장 거리가 먼..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예수를 믿고 나서도 목사를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딱 하루 생각해 보고 때려쳤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공포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꿈을 꾸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이렇게 메신저(설교자)로 살 거라고 하는 건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실은 거기에 제 데스티니가 있다고 하는 건 
나중에 알게 된 거지요. 

그런데 제가 십자가를 통과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저주처럼 보이는 것들을 축복으로 바꾸셔서 
그걸 통해 일하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분명히 아는 것이 한 가지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만 통해서 
우리 인생을 쓰시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 잘하는 걸 통해서만 쓰신다면 
잘하고 능력 많은 사람들만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지만 

은사도 별로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은.. 그럼 그 인생은 뭐에요?
우리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은 저는 그런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강점으로 일하라" 
이게 제가 싫어하는 제목이에요. 
제 인생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저는 강점으로 일하지 않았어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강점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내가 잘하는 걸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고, 

능력은 하나님께 있는 거지요. 무슨 우리 능력은 다 도토리 키재기죠.
그걸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가 진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정말 소망 없다고 생각하는 거,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나님이시죠! 아멘! 

제 인생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셨어요. 
제가 잘하는 거 가지고 하라 그러신 하나님이 아니셨어요. 

물론 내가 잘하는 것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것만 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거는 사단이 완전히 막아버려서 전혀 가능성 없는 것,
수많은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 
그곳에 사실은 진짜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반대의 원리>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막혀버린 우물가 앞에 섰을 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는 겁니다. 

거기서 '이것 때문에 나는 안 된다'고 선택할 건지, 
아니면 '아 그래서 여기에 나의 내스티니가 있구나' 
그 믿음을 선택할 건지... 거기서 여러분의 인생이 갈리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진짜 안 풀리는 것들, 장벽이 있는 것, 그런 거 있으세요? 
-나는이 사건 때문에 못하고,
-나는 대학을 못 나왔고
-나는 몸이 약하고.. 말을 못하고..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거기가 바로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있는 곳일 수도 있어요. 
거기서부터 '오벳'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언제? 
십자가를 통과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결국 롯이 오벳을 낳는 거예요. 
믿음으로 나아갈 때, 결국 여러분은 오벳을 낳게 될 겁니다. 

언제? 십자가를 통과할 때!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걸 막을 자가 아무도 없어요. 

오히려 막으려고 하는 자의 시도가, 더욱 풍성한 오벳을 낳게 되는 
그런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할렐루야! 
그게 우리의 십자가의 소망이잖아요! 

룻의 소망이 깡그리 없어진 때가, 바로 룻이 나오미를 좇아가기 시작한 때예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오벳을 낳는...
룻이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는 그 일이 시작된 거죠!


◑2. 룻이 보여주는 잉태의 두 번째 원리는 <선택>이에요.      ☞ <결단, 선택>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는데 있어서,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예요. 

앞서 설명했듯이, 십자가를 통과하여 믿음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을 얘기해요.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을 잉태하고, 그 잉태한 것을 낳게 될 겁니다. 
(뿌리는 것을 반드시 거두게 될 거예요)

잉태와 출산의 원리는 꼭 좋은 것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평생을 통해서 안 좋은 것들, 악을 잉태해서, 
사망을 낳는 사람들도 있어요. 
반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소망과 생명을 낳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인생이 무엇을 잉태할 것이냐는 
선택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오늘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 
이런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선택들이 
결국 여러분들이 후에 어떤 열매를 낳을까를... 결정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쉽게 결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지나가면서 쉽게 하는 선택,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무엇이 들어갈 것인가, 
오늘 내가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읽을 것인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 이것이 결국 잉태하는 거예요. 잉태! 
그리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출산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1. 이런 선택 중에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선택이 있는데, 그건 뭐예요? 
'어떤 신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에요. 

-나를 정말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거짓 우상을 따를 것인가?

이 선택은 다른 모든 선택을 다 뒤집어엎고도 남을 만한 절대적인 선택이에요. 

본문에 보면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가 있었어요. 
오로바, 룻

두 사람 모두에게 사단의 저주가 동일하게 임합니다. 
남편이 죽고 자녀를 낳을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때 나오미는 이스라엘 땅으로 갈 것을 결정합니다. 
이제 오르바와 룻에게 선택이 주어집니다. 

-시어머니를 쫓아서 이스라엘 땅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냥 모압 땅에 남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요. 

두 사람은 상반된 선택을 합니다. 
큰며느리 오르바는 모압과 모압 신에게로 돌아갔고, 
롯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갔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1:14~15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그런데 룻이 돌아가지 않고 나오미를 붙좇죠. :14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는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16

이 <선택>이, 룻을 축복의 통로가 되게 했어요. 

맞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는 
물론 하나 하나의 선택이 데스티니의 결과를 낳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전에 근본적으로 이루어야 될 절대적인 선택이 한 가지 있어요. 
그건 뭐예요? 어느 신을 쫓을 건가 하는 거예요. 

-나를 창조하신 참 하나님을 좇을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거짓 우상을 좇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돼요. 

▲2. 선택의 원리에서 중요한 두 번째는 
선택한 것을 끝까지 좇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잉태는,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고 
-아니면 유산될 수도 있고 

설령 우리가 건강한 것들을 건강한 아이를 잉태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출산이 돼서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르는 거예요. 
중간에 사산되거나 유산될 수 있다는 거예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올바른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예요? 오르바처럼 중간에 포기하는 거죠. 
그와 동시에 오르바의 데스티니도 유산, 사산되어버리고 말았죠.

만약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가 없다면, 
올바른 선택으로 시작을 했지만, 끝까지 좇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중간에 돌아가 버리니까... 오로바의 길에 들어서고 마는 거죠. 

만약에 오르바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좇아왔다 그러면 누가 보아스랑 결혼했을까요?
당연히 오르바가 결혼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업무를 자의 순서를 좇아서 결혼하는 거거든요. 
오르바가 큰며느리였기 때문에 당연히 룻보다 오르바가 먼저 선택권이 있어요. 

그렇다면 오벳은 누구 아이가 되는 거예요? 오르바의 아이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에 여덟 번째 책은 <룻기>가 아니고 "오르바기"가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너무나 불행한 것은, 중간에 소망이 없어 보이자 
오르바가 포기하고 돌아가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데스티니가 룻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소망이 있을 때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항상 포기하는 건 뭐냐면, 뭔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믿음을! 
우리를 포기하게 하려고, 사단이 끊임없이 우물을 막아 버리는 겁니다... 

룻기에서 '나오미'는 성령님에 대한 예표예요. 
나오미는 '기쁨'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소망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도 성령님을 좇아갈 거냐?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 가운데도 우리 하나님을 좇아갈 거냐?
성령(나오미)을 좇아갈 것이냐?' 
거기서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갈리는 겁니다. 

여러분 끝까지 좇아가셔야 돼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게 있다면, 사명을 주신게 있다면
중도에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르바 되고 맙니다.
룻은 끝까지 붙좇았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