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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장 하나님의 불을 체험하라

LNCK 2023. 12. 8. 21:37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839131

 

◈하나님의 불을 체험하라         출3장1-11

 

출애굽기 2장과 3장 사이에는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40세가 된 모세는 출애굽기 2장에서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에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쳤습니다.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에게

그 40년의 세월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정말 별 볼일 없는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 80세가 되어 다 늙었으니 모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자기 양 한 마리 없고, 자신이 치는 모든 양은은 전부 장인의 양이니

모세는 정말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세월을 더 보내다 보면 90세, 100세가 될 것이고, 조금 지나면 죽을 것이고,

‘인생이란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죽어가는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불을 만나는 모세

 

모세는 출애굽기 3장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보통 때처럼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리우는 호렙산에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가만히 보니까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떨기나무 숲 속에 불이 났습니다. 일종의 산불이 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람이 불거나 하면, 나무는 타버리고 불은 꺼지거나 더 붙거나 해야 하는 법인데

그 불은 이상합니다.

불이 나기는 났는데 나무도 타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옮겨 가지고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생각했습니다.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3절)

이상한 불이니까 가서 자세히 불구경 하겠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불을 보고 ‘떨기나무가 이상하네. 어찌해서 불 가운데서 저렇게 나무가 타지도 않고 있는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하나님도 모세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4절)

‘여호와의 사자’라고 기록된 그 분이 곧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가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러자 모세가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음성을 듣고 모세는 황급하게 신을 벗습니다.

‘신을 벗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그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니

내가 너로 내 백성을 건져내는 구원자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80세부터 120세까지 남자만 60만 명이 되는 그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40년의 그 어려운 세월을 보내게 되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뒤로

일생일대의 대 변혁을 경험합니다. 평범하고 아무 이력서 낼 것도 없는

그런 목자가 대 출애굽의 지도자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다가 사라질 존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출애굽의 구원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전환된 것이고 삶의 목적에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불을 만난 때와 장소를 보십시오. 어디 소망을 걸만한 때와 장소였습니까?

모세의 나이 80세가 되었던 때입니다. 80세면 인생에 무슨 소망을 갖겠습니까?

그저 살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갈 나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미디안 광야 사막, 있는 것이라고는 가시떨기 나무밖에 없는 그곳에

무슨 인생이 변할 일이 있으며 무슨 소망가질 일이 있겠으며

무슨 능력 받을 일이 있겠으며 무슨 비전을 가질 일이 있겠습니까?

 

모세가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모세는 소망이 없는 때, 소망이 없는 장소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고 그곳에서 모세가 여호와를 만나게 되자

모세의 인생은 획기적인 변화를 하게 된 것이고

평범한 인물이었던 모세가 비범한 인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모세에게 소망을 주었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었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었고, 모세에게 꿈과 희망을 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하나님의 불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대부흥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을 우리가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불은 무엇이며 무슨 기능을 행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불

 

모세가 처음 만난 하나님은 ‘불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를 기록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말합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도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라” (히 12:29).

 

성경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불 가운데 나타나신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의 불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오셔서 함께 계신다는 상징으로서 불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불은 지옥의 불과는 다릅니다. 지옥불은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생애의 바퀴를 불사르고 인생을 멸망하게 하고 교회도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은 붙기는 붙어도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붙으면 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붙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불꽃같은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불붙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불이 임한 경우를 보면 어느 경우에도 나쁜 경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인도할 때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이스라엘의 진영에는 불기둥이 임했으니 얼마나 밝겠습니까?

바깥은 캄캄한 어둠일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이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불기둥은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임직시키고 나서 회막으로 나와서 제단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내려왔을 때,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제물을 태운 장면이

레위기 9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떨어져서 제물이 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엎드려서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임하는 곳에 놀람도 있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경배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얼마나 외로운 선지자입니까? 여러 가지 핍박 속에서도

그는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모두 850명과 싸웠습니다.

말 그대로 850대 1로 싸운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담대히 선포합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왕상 18:24).

 

그리고는 “너희 신은 어디 잠깐 외출을 나갔느냐? 잠깐 낮잠을 자느냐?

어째서 불이 내려오지 않느냐?” 하며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얼마나 놀립니까?

 

그러자 그들이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내면서 까지 기도하지만 불은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 제물을 사르고 물도 다 태우고,

도랑도 태우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를 단칼에 죽이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0장 9절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슬픈 말씀이라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라. 차라리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낫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항복해라. 너희의 죄가 이제는 분량이 차버려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로 만드시기를 작정했느니라. 고로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증거하려니 얼마나 슬프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예레미야가 이런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으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중심에 불붙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사도들과 120문도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전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흉내 낸다해도 전도가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불, 성령의 불이 우리 속에서 타오를 때에

우리는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120문도가 성령을 받을 때에 심령이 뜨거워지고 은사도 받고

방언도 말하고 갖가지 신령한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

 

만약 성령의 강한 역사가 성경 말씀에만 있고 우리에게 체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불은 우리의 심령에 임할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면 방언이나 은사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뜨거워져서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높아지고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없는 심령이 되며,

긍휼한 자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 심령에 붙어야 합니다.

 

단지 성경책 속의 불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실체로 체험되는 불이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불은 체험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라” 하는 말보다는

이 불을 체험해서 평범한 나 같은 사람도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불같은 성령의 능력과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모세가 받았던 그 불을 나도 받기를 원합니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서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불의 특징

 

▲뜨겁게 붙는 능력

하나님의 불은 첫 번째로 붙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불은 붙기는 붙되

파괴시키지 않고 오히려 부흥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하나님의 불이 당신의 삶에 임하게 되면

사람들이 와서 불붙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술 먹고 방탕하며 죄짓던 사람이 갑자기 어떻게 저렇게 바뀌었는가?

하나님이 계신가보다” 하면서 구경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불이 행하는 역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꾸중을 받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하나님은 미지근한 신앙을 싫어하십니다.

그런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입에서 토하여 내치겠다는 말은

그런 신앙이 하나님에게는 구역질의 원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뜨거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붙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뜨겁다’, ‘불이 붙었다’는 것은 열심이 있고 열정적이고, 뭘 하나 해도 마음을 써서 하고,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뜨겁다고 합니다.

 

불이 붙은 사람은 기도도 뜨겁습니다. 기도 한마디도 뜨겁게 나가고, 봉사도 뜨겁고,

찬양을 해도 뜨겁고, 전도를 해도 뜨겁고, 사랑을 해도 뜨거운 것입니다.

 

위대한 다윗도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시 69:9).

우리말로 번역된 ‘삼킨다’는 말은 영어로는 ‘consume’(태운다)이란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우기는 태우는데 없어지지 않은 채 자기를 뜨겁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주일에만 와서 예배드리고 주일날 외에는 교회에 관심도 없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만 하루 나와서 예배 잠깐 드리고, 헌금 하고 가는 사람은 신앙생활 망치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망치기로 결심한 사람은 계속해서 그렇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겠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불이 체험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우리 심령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에 불이 붙게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폭탄이 터지듯이

터져나가게 될 때에 교회는 놀랍게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대전에서 허랑방탕하며 술도 많이 먹는 건달중의 상건달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는 제가 변했습니다. 말씀으로 변했고 성령으로 변했습니다.

대흥침례교회가 그 당시에 이삼백 명 정도 모였는데 교회가 불이 폭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하더니

불과 이년 만에 이천 명을 넘었고 지금은 칠천 명이 된 것입니다.

교회 부흥은 이 하나님의 불이 우리 심령에 터질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화하는 능력

말라기서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방문하는 그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말 3:2-3).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습니다. 금을 연단할 때에 원광석을 가져다

불을 일곱 번 때면 불순물은 다 제거되고 순금이 나옵니다.

이처럼 성령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면 우리는 정화됩니다.

 

욥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고난의 단련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정금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약점, 숨겨 놓은 죄, 은밀한 허물, 은밀한 모략, 모든 정죄 받을 죄,

이런 것들을 성령의 불길은 태워 버립니다. 성령의 불은 질병을 태우고

귀신과 우리의 죄를 태웁니다. 악한 귀신들은 성령의 불이 오면

바짝 태워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무엇으로 이기겠습니까? 인간의 재주로 이기겠습니까?

윤리 도덕으로 이기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무슨 타이르는 말로 해서 되겠습니까?

성령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자유스럽게 역사할 때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불은 정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빛을 비추는 능력

불은 빛을 비추는 능력이 있어 불이 있는 곳은 어둠이 물러갑니다.

불신의 어둠이 물러가고 절망의 어둠, 방탕의 어둠, 우상숭배의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빛들의 아버지이며(약 1:17), 세상의 빛이요(요 8:12),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됩니다(마 5:14).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게 되면

이 빛이 발광을 하여 빛이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우리는 빛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 빛이 더 빛나게 되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빛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직장생활 할 때에도

“저 사람은 이상해 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알지 못하는 빛이 있어” 하며

그 사람에게 끌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의 불은 하나님의 불은 우리를 뜨겁게 하고 우리를 정화시키고

우리에게 빛을 비추게 해서 이 빛을 세계만방에 비추도록 역사합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릴 뜨겁게 하시고

우리 죄악을 태워 정화시키시고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불을 체험하려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숴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9).

여호와의 말씀은 곧 불입니다.

 

그리고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120문도가 함께 모여서 전심전력하여 열흘 동안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고, 은사가 임하고,

심령이 뜨거워지고, 방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가 그들 가운데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불이 우리 심령을 뜨겁게 하십니다.

특별히 모여서 성전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불을 받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레위기 4장에는 “제사장들은 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말씀이 여섯 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를 날마다 치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재가 막혀 있으면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서 불이 피워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모여서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으로

여호와의 불을 사모할 때에 우리 여호와의 불이 우리교회에 붙을 것입니다.

 

☞‘불’관련글

https://blog.naver.com/coldwater1cup/22328707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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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르기 원하시는 예수님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눅12:49

 

개역은 ‘불을 던지러 왔다’고 번역하는데,

공동번역은 ‘불을 지르러 왔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문자적인 번역인 것 같고, 후자는 의역을 했는데, 참 의미가 실감나는군요.

 

뭔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내면은

조금 더 참으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강력한 에너지로 충만해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표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오늘 이런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봅시다.

 

연탄불도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데, 하물며..

저의 집은 제가 중학교 때까지 아궁이에 연탄을 피워 방을 데웠습니다.

 

뜨끈한 아랫목은 참으로 좋았지만 자다 일어나 불구멍을 막아야 했고,

연탄을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은

연탄이 저의 가족에게 주는 따뜻함과 훈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지르러 오신 불은 어떤 불인가요?

그 불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불이요,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곧 예수님이시고, 그 불은 오늘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라고 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불은 이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 번져 나갈 것입니다.

 

그럼 이 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요?

"때가 차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막1:15)고 하셨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에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이다. 가치관, 행동,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바로 복음입니다.

내 안에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빌3:6-11)

라고 말한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왜 내 안에 이 불이 타오르지 않는가요?

그것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적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한 준비는 회개를 통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한 우리 안에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복음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내 안에 이 불이 타오를 수 없습니다.

 

▲감옥에서 불을 받다

그런데요. 2월 23일에 늦추위가 왔어요.

2월 달이 보통 따뜻한데, 2월 23일이 얼마나 추운지

우리 정치범 독방은 0.7 평입니다. 팔을 벌여서 운동을 못 해요.

0.7평이 얼마나 좁습니까. 그래서 운동이라야 앉았다 섰다 그것밖에 못 해요.

 

1974년 2월 23일입니다. 그래서 나(김진홍 목사)는 해마다 2월 23일이 되면

하루 금식하고 혼자서 부흥회를 합니다.

1974년 2월 23일에 받은 은혜를 회상하며, 매년 그 날이 되면 혼자 부흥회를 하는 겁니다.

 

그해 그 날, 감방이 너무 추워서 감당을 못 하겠어요.

추위가 심해지니까 칼 가지고 다리 뼈를 후벼 파는 것 같아요. 뒷골이 띵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 내가 성경을 펴고, 성경에 '불'字를 찾았습니다.

'불'자를 찾으면서 시간도 보내고, 추위를 이겨야지...

 

창세기부터 '불'자를 찾아오다가

신약에 가서 눈이 번쩍 띄는 '불'자를 찾았습니다.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모태신앙으로 신학을 졸업하고 신학생 때부터 설교를 하면서

누가복음을 수십 번을 읽었을 텐데, 나는 거기에 이런 말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9절을 읽고 제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야 성경에 이런 말씀이 다 있었나?'

예수님이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는 겁니다.

 

그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신 주님, 나한테 불 좀 던져 주십시오.

너무 추워서 정신이 혼미합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 했는데

 

그 다음 '불'자가 사도행전 2장 1절입니다.

오순절 성령 불이 임해가지고, 성령의 역사가 임했던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보였더니'

그때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오순절이 왔습니다.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거기에 줄을 칩시다.

기독교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오순절 성령의 불이 임해서, 전체 위에, 각 사람 위에

성령 충만의 역사가 일어났고,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데, 3절 4절 읽어 내려가는데, 제 몸이 훈훈해지는 겁니다.

추위가 사라져버리고 몸이 훈훈했습니다.

 

이상해서 몸을 만져보다가 마룻바닥을 더듬어보니

냉장고 방이 온돌방으로 바뀌었어요.

사면 벽을 더듬어 보니까 스팀이 들어온 것 같아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 성령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불로써 함께 하시는구나'

너무 너무 감사해서 사방을 돌면서 절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절했습니다.

 

성령님이 불로 그 방에 오셔가지고 나를 지켜주신 겁니다.

그날 밤에 내가 다시 잠자리 들었는데, 내가 다시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옥에는 취침나팔을 붑니다. 특별히 찬송가 '전능왕 오셔서'

이걸 수인 세 명이 트럼펫 들고 올라가서 취침나팔을 붑니다.

'전능왕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 소리가 울려 퍼지면

온 교도소가 조용합니다.

 

나팔 소리 끝나면 '취침!' 그러면 잠자리에 드는 겁니다.

잠자리에 들어서 내가 놀란 것은

내가 서대문에서 남산 중앙정보부에 조사 받으러 다니면서 눈을 밟고 다녀서 동상에 걸렸어요.

동상이 가렵습니다. 이부자리에 들어가면 막 발이 가려워요.

 

그걸 긁다가 긁다가 잠들고 했는데

그 날은 가렵지 않아서, 일어나 보니까 발이 깨끗하게 동상이 사라졌어요.

발이 아주 서대문에 들어올 때처럼 깨끗했습니다.

 

얼마나 감격 했는지요. 너무 감사가 넘쳐 가지고

막 성령님이 나한테 물결처럼 임하시는 겁니다.

너무 감사해 가지고 목이 터져라고 찬송 불렀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아 멋있는 찬송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내가 너무 너무 감사해서 울면서 불렀습니다.

교도관이 달려와서 '73번 중단해,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교도관님 죄송합니다. 성령이 불로 나한테 임하셔서

찬송 안 부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교도관님 이해하십시오.

내가 심장 터져 죽는 것보다 찬송 하는 게 낫지요?'

 

그랬더니 '73번이 또라이가 됐나?'

제가 '맞습니다. 제가 돌아버렸어요. 성령님이 불로 내게 오셔서 내가 돌아 버렸어요.

교도관님도 들어오세요. 같이 돕시다.'

 

그랬더니 '진짜 돌아버렸네!' 혀를 차면서 가 버렸어요.

찬송 부르다가, 손뼉 치다가, 기도하다가, 울다가 밤을 세웠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해서요. 여러분,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여러분, 지금도 성령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경에서 연단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하시고

역경을 이기게 하시고, 사명자로서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다음날 하루 금식 했습니다.

첫 끼를 금식하고

히브리서 12장 마지막 절 '여호와께서는 소멸하시는 불이심이라' 읽고 기도하고

 

점심 때 또 밥을 받아 가지고 변소통에 집어넣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감격에 넘쳐서 '주님, 제가 성령 안에서 새사람 되었습니다.

옛날에 허물도, 부끄러운 것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새 출발하겠습니다.'

 

 

▲불을 받은 에반 로버츠

 

여러분은 혹시 에반 로버츠(Evan Roberts)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는 20세기 초 영국 웨일즈에서 일어난 거대한 부흥운동의 주역이었습니다.

 

1904년, 그가 20대 청년으로서 주일학교 부장으로 봉사하던 어느 날,

한 집회에 참석했다가

 

‘주여, 나를 온전히 굴복하게 하소서’라는 주제에 깊은 감동을 받고

그날 이후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안에서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온전히 굴복하기로 결심합니다.

 

‘주여, 제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제가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드려서 헌신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도 못한 광부의 아들이었지만, 목사님께 가서 의논합니다.

처음에 그는 ‘제가 설교해도 되느냐?’고 요청했지만, 허락 받지 못했고,

대신에 사람들과 같이 모여 기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가 섬기던 작은 교회에서 17명과 더불어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 사람씩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에반 로버츠는, 기도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너를 통해 10만 명의 불신자들이 주께 돌아올 것’이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사실 그 기도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기도회의 불길은, 웨일즈 전역에 영적 부흥의 불길을 퍼뜨리며

그가 본 환상 그대로 웨일즈에서만 10만 명의 불신자들이 주께 돌아오게 되었고

이 영적 각성의 소식과 부흥의 불길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1904년에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