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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연결하는 복음

LNCK 2023. 12. 11. 17:30

'세대를 연결하는 복음'  (2023.12.10) - YouTube

◈세대를 연결하는 복음       눅1:18~38         ▣ 청년, 젊은이 관련 글 

눅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이돌처럼 떠오르는 스타가 있습니다. 
클라우스 메켈레 라는 지휘자인데요. 1996년생이니까 올해 27세 입니다. 

그런데 불과 24살의 나이에, 오슬로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발탁됐고 
작년에는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RCO 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마에스트로 그러면
카라얀처럼 머리가 희끗한 노 지휘자를 연상하는데
메켈레는 20대에 이미 '젊은 거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가 봤더니만, 아버지가 첼리스트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또 할아버지가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러니까 음악가 집안입니다. 

특히 12살에 전설적인 지휘자 요로마 파눌라, 이분은 시벨리우스의 제자였는데요.
핀란드에서 지휘자들을 양성하는 대부입니다. 
이분을 만나서 지휘를 공부한게,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합니다.

메켈레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지휘하는 그 영상을 제가 봤는데요. 
새파란 청년이 머리 힐끗한 단원들하고 호흡을 맞추는 거, 이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메켈레는 나이든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를 잘 끌어내고, 소통하는 
그런 리더십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이 카리스마적인 거장들은, 자기 칼라가 분명해서 
자기 스타일로 다른 사람들을 맞추도록 이끄는데, 

오히려 메켈레는 나이 많은 베테랑 연주자들의 그 역량을, 하나하나 끌어내 가지고 
이렇게 소통해서, 그래서 협업해서,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제가 사실 음악을 잘 모르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다른 관점, 다른 관심 때문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 자체가 하늘에서 그냥 천재가 뚝딱 떨어진게 아니라 
윗세대로부터 만들어져 왔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젊은 마에스트로가, 윗 세대 베테랑 연주자들의 연주를 이끌어 냄으로써
더 아름다운 심포니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음악에서도 세대가 연결되고 소통하는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그것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두 세대가 
어떻게 복음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는가를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한 사람은 나이가 많고, 한 사람은 젊습니다. 

한 사람(사가랴)은 예루살렘에 사는, 제사장 가문의 남자이고요. 
한 사람(마리아)은 나사렛에 사는 그 시골 동네에 소녀입니다. 

누가가 의도적으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복음이 어떻게 이 두 세대의 만남 속에서 잉태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안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나이든 세대의 침묵과 기도가 있고요. 
-또 하나는 젊은 세대의 용기 있는 순종이 있습니다.

이 두 개가 같이 만납니다. 그래서 복음이 잉태됩니다. 
자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를 
역사의 주연으로 아름답게 사용하시는 그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우리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등장인물은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죠.

사가랴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어른 세대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탄생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인데 
늙어서도 자식이 없고 그래서 소망이 없습니다. 

근데 천사가 나타나서 '너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거다. 
그 아들은 위대한 선지자가 될 거고, 메시아 시대를 열어가는 선구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소망을 주는 메시지입니까. 

그런데 천사의 말에 사가랴가 어떻게 반응하죠?
할렐루야! 그러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막 찬양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의외입니다. 
18절을 보시면, 한마디로 좀 못 믿겠다는 반응입니다. 
'나도 늙었고 내 아내도 너무 나이가 들어 가지고
생물학적인 생산 기능이 이제 다 죽어버렸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진짜 그게 사실이라면, 좀 더 확실한 표징을 주셔야 합니다..' 이런 반응입니다. 

▲사가랴는 경건한 사람인데도, 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고 의심했을까요? 
큰 문맥 속에서 우리가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경험이 많고 나이든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묵시가 (지난 4백년 동안) 닫혀 있었던 세대입니다. 

평생 계시를 경험해 보지를 못했던 겁니다. 
말씀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은 했는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세대의 한계와 고정관념 때문에, 또한 나이 때문에
지금 말씀을 주시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한 겁니다. 

뭐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자기 주장이 강해지면서, 또 고집도 세어진다고 합니다. 

이거는 나이가 들면서, 뇌의 연결망인 시냅스가 줄어들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억력도 조금씩 감퇴해서 퍼뜩퍼뜩 생각이 안 올라오고 
또 새로운 경로로 사고하는 것보다는, 익숙한 경로로 사고하려는 것이 
나이든 사람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죠.

어느 중년 여성이 양재역에서 택시를 타고 예술의 전당으로 가야 되는데 
'예술의 전당'이란 말이 생각이 안 나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택시 기사 아저씨한테 '아저씨, 전설의 고향으로 가 주세요' 

근데 또 신기하게 그 아저씨는 알아서 예술의 전당으로 데려갔답니다. 
뇌의 시냅스가 줄어 가지고, 이렇게 퍼뜩퍼뜩 말이 안 떠오르는 겁니다. 

사가랴도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런 어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죠.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도, 바로 그대로 받아들이질 못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짜 표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기까지, 사가랴의 입을 막아 버리십니다. 눅1:20

나중에 62절을 보면, 말만 못하는게 아니라 귀도 닫혔던 것 같습니다. 
사가랴가 아들을 낳기까지 열 달을 철저히 세상에 소음과 단절된 침묵 속에서 
보내야 했던 겁니다. 

▲근데 왜 하나님께서 하필 딴 것도 아니고, '침묵'을 표징으로 주셨을까요? 

첫 번째는, 인간이 입을 닫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죠. 

두 번째는 사가랴를 교훈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 경험과 고집에 갇혀서,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네 경험과 생각을 내려놓고, 이 말씀을네 안에서 더 익혀라 숙고하라' 이 말입니다. 

 

열 달 동안 (세례요한 탄생까지) 사가랴가 침묵 속에서 뭘 했을까요?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이 이전에 이미 주셨던 약속과 계획이 무엇인가? 
아마 그 근본부터 다시 성경을 묵상했을 겁니다.

엘리사벳이 열 달 동안 아기를 임신했다면, 
사가랴는 열 달 동안 말씀을 임신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출산했을 때, 
사가랴는 그 잉태했던 말씀을 출산합니다.  
그게 68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이렇게 나오죠.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인데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안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내게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침묵하며 숙고해 봐야 합니다. 

말씀을 충분히 품고, 잉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보고, 그때 입을 열어 찬송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지나치게 많은 소음에 둘러쌓여 살아갑니다. 
하여튼 핸드폰, 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는데요.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젊을 때는, 오히려 세상의 소음과 오락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습니다. 

침묵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들어야 할 소리를 못 듣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내 눈앞에서 말씀하시고, 
나한테 내밀어 주시는 은혜가 있는데도... 받지를 못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구원의 일을 일으키시는 순간에 
우리에게 '잠잠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일으키실 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십니다.  출14:13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말씀합니다. 사30:15

특히 연세가 드실수록, 의도적으로 침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훌륭한 랍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내 선생님들보다도 내 친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내 친구들보다도, 내 제자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슨 말인가요? 
사람이 나이 들어갈수록 선생님, 천구, 제자 순으로 많아지게 되는데,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된다는 건데요. 
이게 쉽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해야지, 연세가 드셔도 계속 성장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침묵이 필요한 이유는 
침묵 속에서 진짜 해야 할 말을 잉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귀를 막고 입을 닫게 하신' 것은
'그냥 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이런게 아닙니다. 

진짜 말해야 될 때,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말씀을 잉태하고 숙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묵묵히 침묵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연세가 드시면, 말을 해도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들어주니까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는 침묵조차도 값진 침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숙고하고 인내하는 침묵 속에서 
진짜 해야 할 말이 내 안에서 숙성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침묵>

시편 71편에 보면, 다윗이 노년에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시71: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이든 사람은, 후대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전해야 될 사명이 있는 거죠. 
복음의 능력을 모르는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전해야 되고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윗세대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가랴처럼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말씀을 잉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10달 동안 침묵함으로 사가랴는 
복음의 새 시대를 제일 먼저 전하는, 그 영광의 찬송을 바로 내뱉습니다. 

눅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바로 베네딕투스 라는 아름다운 영광의 찬송이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겁니다. 

'내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면 정작 들어야 할 말을 못 듣고 
진짜 해야 할 말을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다리고,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는데요. 
세상이 요란한 이 시대에 
세상의 소음은 차단하고. 침묵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숙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소란한 시대 속에서, 복된 소망의 노래를 
다음 세대들에게 들려주시는 복된 어르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침묵과 기도 속에서 
말씀을 우리 모두 숙고함으로써 
우리 인생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을 
찬송하고,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서 복음을 아름답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의 어른 세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인물은, 순종으로 복음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입니다.

사가랴가 천사의 방문을 받은지 6개월이 지난 다음에 
마리아도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근데 이 마리아는, 사가랴와 참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사가랴는 예루살렘에 살았는데,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전이 있는 도시,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사람들이 항상 주목하는 곳입니다. 
근데 갈릴리는 변두리에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낙후된 시골입니다. 
특히 나사렛이란 지명은, 그때까지 (구약)성경에서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가랴가 천사를 만난 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룩한 성전이었죠.
하지만 마리아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사렛의 평범한 그 장소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참 다르죠. 

마리아가 그때는 요셉과 정혼한 처녀였다고 합니다. 
당시 처녀가 정혼하는 나이가, 오늘날하고 다릅니다. 
빠르면 12살에서 늦어도 15살, 오늘날로 말하면 중고등학생 나이입니다. 

더구나 당시 문화에서 아무런 권리도, 주목도 받지 못하던 여성 아닙니까. 
근데 그런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문안 인사를 합니다. 

28절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 인사를 받고 놀랄 수밖에 없죠. 

'나는 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가난한 시골 소녀인데 
나 같은 사람한테 왜 이런 말을 하시나? 
내가 무슨 은혜를 받았다는 건가?' 이렇게 반응하는데요. 

자세히 보면, 좀 청소년스러운 반응을 하는 겁니다. 
그때 천사가 본론을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아이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요. 
1:32 '그가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영원한 왕으로 다스릴 것이다.' 
중요한게 '다윗의 왕위'입니다. 

삼하7: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시면서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로마의 지배를 받는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어갈 
예언하신 그 메시아를 얼마나 고대해 왔겠습니까? 

천사의 말은 뭐냐면 
'마리아, 네가 잉태할 아기를 통해 바로 이스라엘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이 말입니다.

사가랴가 처음 천사의 방문을 받고서  질문했을 때, 사가랴는 좀 어리둥절 했는데요. 
근데 마리아는 똑부러지게 또 질문합니다. 이것도 좀 청소년스러운데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지금 요셉과 약혼한 건 맞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고 동침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이 말이죠. 

당시에 율법주의 시대에 결혼하지 않는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 
도덕적으로 큰 비난을 받죠. 더더군다나 약혼자를 배신했다 그러면,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는 거죠.

▲이런 마리아의 질문에 천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두 가지인데요. 

1) 하나는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다' :35
그리고 '그 아기는 거룩한 아기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36 

2) 두 번째는 예를 들어 줍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아 임신할 수 없는데, 아이를 가진지가 6개월이나 됐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6~37

마리아가 이 천사의 응답의 말을 다 이해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예수님을 잉태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고 격렬한 논쟁이 지속되는데요. 
고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다 이해 못 합니다. 

이스라엘이 고대했던 메시아,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위대한 인물이지, 
신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좀 관례적으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이해했던 내용은 
첫 번째는 '자기 민족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성취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이 두 가지입니다. 

마리아가 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응답합니다. 
그게 38절이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단순하고 위대한 순종입니다.
이 마리아의이 응답을, 교회 역사 속에서는 '순종의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피아트 미히' 라틴어인데 '나에게 이루어지지다' 이 말입니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이니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십시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 
평범하고 어린 소녀의 단순한 순종을 통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의 순종을 보면, 사가랴와 좀 비교가 됩니다. 
사가랴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세요.'  (노인 답습니다)

근데 마리아는 단순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뜻을 이루는데 저를 쓰시기 바랍니다.' (젊은이 답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받은 소식이, 사가랴가 받은 소식보다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늙기는 했지만 
역사 속에서 성경을 보면, 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 아닙니까. 사례가 있었습니다. 
사례는 있었는데, 그럼에도 사가랴는 믿지 못했습니다. 

근데 마리아는 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누구도, 처녀가 아이를 임신해서 낳았던 전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미리 계산하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 마리아의 순종이, 모든 성도들이 따라해야 할 모범으로 칭송받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마리아가 위대한 것은, 그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의 순종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어린 소녀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이해한 그만큼만 
'예, 제가 순종 하겠습니다.' 
그렇게 응답한 태도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적용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에는 뭔가 이렇게 콜링을 하거나 
또 하나님이 뭔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으면 
어른들은 마리아처럼 오히려 즉각 순종하고, 
청년들은 거꾸로 사가랴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고 합니다. 

지난 주간에 저희 교회에서 '생애 주기 life cycle 컨퍼런스' 가 있었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청년들에게, 자기 다움과 탁월함에 대해서 가르쳐 오고 
또 청년들 안에서 그것들을 끌어내려고 힘쓰시는 귀한 교수님이 같이 함께 하셨는데 
참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탁월함'이라는 것은, '자기다움'에서 나오고 
또 무엇보다 '세상의 문제와 고통에 응답하는 데서 나온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문제를 볼 때 '예, 제가 부족하지만 한번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응답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리스판스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다는 거죠. 거기서 어빌리티 가 있죠. 

도전하고 요구에 대해서 "응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데, 
그게 바로 리스판스빌리티 입니다. 책임감입니다. 
그분은 교회가, 책임지는 청년들, 책임감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직장에서 상사가 무슨 일을 시키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 
이렇게 반응을 한다는 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괜히 안 나서도 될 일,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그냥 고생하고 손해보면 어떡하나? ... 그런 두려움이 많은 겁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태도로, 몸사리고 책임을 회피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탁월함을 실현할 기회도 사라집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서 '예, 제가 그 일 하겠습니다' 책임 있게 응답합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이 됩니다.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을 여는 선구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에게 요구하시는게 이런 겁니다. 
내게 주어진 도전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를 맡기시고, 그 일을 감당할 능력도 주십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전해주신 초기 선교사님들을 보면 
대부분 20대 초반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헌신했습니다.

이 길 멀고 낯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뭘 보고 왔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이 '가라!' 하시니까 순종해서 온 겁니다.

세브란스 병원과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가 조선에 선교사로 올 때 
약혼자와 나눈 대화가 있습니다. 약혼자가 묻습니다. '그곳에서는 뭘 먹고 사나요?'

언더우드가 대답합니다. '모르겠소' 
'병원은 있나요?' '모르겠소' 

'그럼 당신이 조선에 대해서 아는게 뭔가요?'
'내가 아는 것은 그곳에 주님을 모르는 천만의 백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약혼자가 언더우드와 파혼했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혼자 조선으로 옵니다. 
(여기서 여선교사를 만나서, 조선에서 최초의 서양식 결혼을 하죠)

그렇게 낯선 나라에 와서 청춘을 바쳐서 복음을 전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나라가 5천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맛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분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순종했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순종한 겁니다.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저도 나름 순종해서 왔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야~ 목사가 된다는 게 정말 다 뭔지 잘 모르고 왔구나. 
내가 알고는 절대 못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목사가 되겠다 그랬더니만 
당시 불신자시던 저희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면서 막 이렇게 반대를 하실까봐  
걱정을 했는데, 아무 반대도 안 하셨습니다. 

너무 쿨하게 반응하셔 가지고 제가 오히려 약간 마음에 섭섭했는데 
저희 아버님이 목사가 뭔지를 잘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반대를 안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다 몰라도.. 아는 만큼만 순종하면 됩니다. 
그 단순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를 뒤바꾸는 변곡점을 만들어 가십니다. 

저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오늘 마리아의 순종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세상은, 공부도 잘하고, 스펙도 좋고, 외모도 멋있고, 키도 크고, 
인성까지 갖추고... 이런 조건들 다 완벽해야 살아남는다. 
안 그러면 이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된다... 그렇게 말하는데요. 

그래서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는 세대들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 인간적인 조건을 보고 
'얘는 좀 쓸만하겠다. 내가 데려다 써야 되겠다.' 그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딱 한 가지!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원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부족하지만 맡겨주시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이겁니다.

이 단순한 순종, 책임 있는 응답만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께 들려서 쓰임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필요한 자원도 주시고, 
사람도 붙여주시는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가장 우둔한 자, 바보를 여기 데려다 놓더라도 
가장 지혜자로 만들 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 자녀들 인생을 붙드신다면, 
주의 말씀이 성취되는 복이 우리의 자녀들의 인생에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이 세상에 탄생하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나이든 세대는 나이든 세대대로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새 시대의 주역이 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 복음이 이 두 세대를 모두 필요로 합니다. 
젊은 세대의 역할이 다르고, 연세 드신 세대의 역할이 다르지만 
복음은 이 두 세대를 연결해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갑니다

우리 교회의 어른 세대들이, 침묵 속에 말씀을 품고 기도함으로 
우리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능하신 일들을 말하고 전수하는 
복된 어른 세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지금은 다 이해 못 하더라도 
아는만큼 순종하고 책임있게 응답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복된 청년세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복음 안에서 연결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아름답게 수종드는 
저와 여러분,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