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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로마시민권

LNCK 2023. 12. 13. 11:46

◈바울과 로마시민권          행22:3            출처

 

◑바울과 로마시민권                          ☞  바울 연대표 

 

우리가 ‘로마 시민권’이라고 하면

‘아 이거는 무조건 좋은 거고, 바울이 항상 로마 시민권 때문에 덕을 봤다’라고만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라는 것을,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나라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미국 시민권을 주죠.

당시에도 로마제국은, 제국의 역량을 확장해 가는 차원에서,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외국인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주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똑똑한 민족이고, 민족 애국심이 뛰어났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갖기를 주저하는 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로마 시민권을 갖는 것은, 유대인적 민족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도 간주하는

소위 극우파 유대인들도 많았다는 거죠.

 

특히 유대인은, 유대교에 대한 종교성이 강했기 때문에,

더욱이 쉽게 로마인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인이 되면 로마법을 지켜야 하고

로마법을 지킨다는 것은, 곧 우상을 섬겨야 된다 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의외로 로마 시민권에 대해 배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은 종교적, 민족적인 배교자로 취급을 했다는 것이죠.

 

당시에는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도 여러 나라에서 그렇죠)

그래서 돈이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취득하면,

유대인들은, 그들을 민족 반역자로 취급하는 일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울이 가진 로마 시민권은

유대인들에게는 비호감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소수만 로마시민권을 가진 것을 보면, 질투심도 작용했을 수 있죠)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 앞에서 로마 시민권을 떳떳하게 내밀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여행을 위해서 소지하고 다녔지만, (청동으로 된 마패 같은 것)

항상 자기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권을, 유대인 앞에서 불쑥불쑥 내밀지는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때만 보여주는 거죠.

 

물론 바울 자신이 시민권을 받지 않았더라도, 바울 부모가 취득한 것이지만

바울은 동족에게 똑같은 취급을 당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도 과거에 일본의 친일파가 있는데

그 친일파 부모를 가진 자녀들도 비슷한 차별을 당했었죠.

 

그리고 바울의 부모가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것은,

아마 국제적인 무역을 하려면, 그 시민권이 사업에 꼭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돈이 들어도, 그것을 취득했고, 바울은 자녀라서 물려받은 것이었죠.

 

이 바울의 로마 시민권은, 전도여행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로마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의 갈 수가 있었고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맞아 죽을 것 같이 되는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에는 뜬금없이 로마 시민권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 알 수 있는 건요.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할수록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꾸 더 많이 생기게 된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조선인이 친일파를 싫어했듯이, 극우파 유대인들은 바울을 싫어하게 되는 거죠.

물론 그것이 바울을 핍박한 모든 이유는 아니었더라도요)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에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그 이유 중에 한 가지는, 어쩌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민족 배반자이기 때문에

항상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그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이 그런 시각(변절자)으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유대교에 대한 종교적 변절자 + 민족적 변절자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바울에 대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폭력적이고 집요한 반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나중에 보면 40명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지나가는 길에 매복하겠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라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왜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것을

바울이 가진 복음과 + 로마 시민권을 통해서

그 당시에 종교적+민족적인 분위기를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바울의 연대기 작성이 어려운 이유

이미 많은 학자들이 사도행전과 서신서 그리고 많은 고대 문헌들을 참고해서

바울의 연대기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아직 완전한 일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연대기도 사실은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추측이 많이 담겨 있는 연대기입니다.

 

그래도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어느 정도는 맞춰 갈 수는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특정한 사건이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어떤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지는 판단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왜냐면 편지를 쓴 거거든요.

바울은 바울은 편지를 쓴 거지, 역사서를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은, 편지에 생략해 놓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적인 연대기를 구축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면

어떤 사건은 빠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갈라디아서에서 있는 어떤 사건과 맞췄을 때,

연대기를 구축하는 건 어느 시점으로 이것을 해석해야 하느냐라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사도행전이나 갈라디아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원래의 목적은 예수님의 구속사적인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원래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 글에다가 역사적인 물증을 남겨 놓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역사적 사실 위에다

구속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역사적인 사실 위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가셨던 구속사적인 그 일들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린 역사적인 사실도 알아야 되고,

그 이후에 함께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방법을 같이 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이 쓴 편지들을 우리가 잘 종합해서

바울의 일생을 하나하나 짚어가 보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성장 배경

 

바울의 나이를 AD 1년으로 잡고 그때 정도 태어났을 것으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끌어 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어린 시절부터 로마 시민권이었다는 것은

부모님이 경제력이 있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환경에 있었다라고 알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천막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가족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천막을 짜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라고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바울이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이미 엄격한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다섯 살 때부터 구약 성경을 철저하게 배우기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유대의 문헌들을 다 암송하는 그런 나이가 바로 열 살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회당에서 종교 교육을 받았고

또 교육이 발달한 다소에서 그의 기초적인 지식이 쌓여 갔다면

기초적인 지식과 또 종교적인 지식이 바울에게는 골고루 갖춰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나는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바울의 시민권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바울은 헬라 문화와 로마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엄격한 유대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라는 거죠.

 

밖에 나가면 헬라 문화를 가지고 있고 로마 문화를 접하고 있지만

집에 오면 유대인 정통 유대인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 바울은 어릴 때부터, 이중 문화 가운데 살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소는 수사학과 철학이 굉장히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필체에도 수사학적인 표현 굉장히 글을 쓰는 문체가 뛰어난

바울의 필체를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다 어릴적에 받은 바울의 교육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바울이 13살 정도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부모는 바울을 유대인 랍비로 키우고 싶었던 거 같아요.

 

사도행전 22: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야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바울은 다소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자랐냐면 바로 '이 성 예루살렘에서 자랐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청소년기가 바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은

정통 유대인들의 정규 코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은 다소에서 다소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는

청소년기를 지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23:6절에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레위지파만 성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였던 바울은 성직자는 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될 순 없었던 거죠.

 

그리고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두개인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될 수 있는 건 바리새인이었죠.

바리새인이라는 건 우리가 잘 아는 랍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랍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바울이 택한 길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더군다나 바울은 유대에서 가말리엘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렇다면 바울은 정말 정통 코스를 밟게 된 거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가말리엘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중받는 인물이었고

바울이 이 밑에서 공부하고 자랐다면, 나중에 바울은 이 과정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밑에서 열심히 공부했고요 율법을 지키고 율법의 모든 규율의 순종하기로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밑에서, 보통 13세에 공부를 시작했다면

5년에서 6년 정도를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랍비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냐면 그곳에서 인턴을 하든지

아니면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교육을 다 받은 후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랍비(인턴)로서의 활동을 하는 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간이 약 13년에서 14년의 기간인데

이 기간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야만 됩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다 끝난 후에 다시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는 산헤드린 공회원의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추정을 하냐면, 보통 바울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에는 하나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예수님 활동 기간에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자기 바울서신에, 한 줄이라도 짧게 언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없죠.

 

이 기간에,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물론, 갈릴리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전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후에, 고향 다소에 돌아가 랍비(인턴)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결혼했을까?

여기에 또 하나 재밌는 거는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결혼을 했을까, 독신으로 살았을까?

라는 것에 의문을 갖고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구 신학자들은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결혼을 했을거다' 라고 추측을 합니다

왜냐면 바리새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들에게 결혼은 필수라고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달고 사는 유대인들에게는요

결혼은 그냥 의무사항입니다.

 

그래서 아마 바울도 바리새인으로서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만약에 일을 했어야 한다면, 그도 결혼을 했어야 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왜 한 번도 자기 가족에 대해서, 서신서에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바울이 율법에 충실한 과거를 살았다고 볼 때,

바울은 아마도 결혼을 했으리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신학자는이 바울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바울이 이혼했다’ 라는 말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추측입니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추측일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바울이 경험적인 측면에서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건 바울은, 자신의 가정에 관해서 자신의 가족에 관해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빌립보서 3:8절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라고

바울이 말을 할 때, 어쩌면 여기에 바울의 가족도 포함되지 않을까? .. 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