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다림 눅1:39-45 설교 스크랩, 정리
누가는 예수와 요한의 탄생에 대한 등장 인물들의 신앙적 반응을
찬송시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리아 찬가(the Magnificat)이고,
다음은 스가랴의 찬송(the Benedictus)이며,
세 번째는 천사들의 찬송(the Gloria in excelsis),
마리아는 처녀인데, 나사렛의 촌뜨기입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과 같이 영예로운 땅이 아니라,
당시에 하찮고 경멸을 당하며 부정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넓게 보면 사마리아 땅)
성경에 마리아의 가족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가족이 미천한 부류에 속하거나, 가족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에게 천사의 수태 고지는 상상할 수 없이 영예로운 사건입니다.
따라서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 자체만으로도 마리아에게는 엄청난 은혜의 사건입니다.
▲최근에 목회자를 청빙 하고 있는 교회의 한 장로님이 저에게 추천을 의뢰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목사님,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어요“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은 신학교 졸업생 과다 배출로 고통받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30년 전
대부분의 나라들엔 신학교에 학생이 지원 안 해서
일꾼 부족으로 사역의 정체 현상을 겪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 후보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사람이 없다니“
이것은 결코 숫자상의 문제는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질적으로 우리 시대의 이 민족사회, 우리교회가 필요로 하는
준비된 일꾼의 부족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쩌면 마리아와 요셉이 살고 있는 시대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계를 정복한 로마엔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훈련된 얼마나 많은 일꾼들이 많았고,
예루살렘에도 유대교의 엄격한 종교적 훈련을 받은 얼마나 많은 일꾼들이 있었는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 가운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은 뜻밖에 나사렛 땅에서 이름 없는
틴에이저 소녀 마리아를 선택하여, 구세주의 탄생이라는 기적의 일을 행하고자 하셨습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어떤 자질을 보셨는지를 보았고,
오늘의 본문은 마리아의 잉태 이후의 출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역사의 무대 위에 그녀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시점이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쓰임 받는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신다면
그가 나를 본격적으로 쓰실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쓰심을 기대하는 사람마다,
또는 하나님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사람마다,
어떻게 준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까요?
◑1. <기뻐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눅1: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의 구세주 잉태를 알고
"큰 소리로 불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큰소리'라는 단어는 본래 "기쁨의 부르짖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어서 44절에 보면, 엘리사벳의 아기(세례요한, 6개월 앞선)가
마리아가 잉태한 구세주이신 아기를 알아보고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고백합니다.
마리아 자신도 이 사건 후에 찬양하면서 47절에 보면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소식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당연한 라이프 스타일은
기쁨의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마리아의 인생의 장에
좋은 일만 예측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만일 마리아가 삶의 초점을 자신의 편안함과 안전함에만 맞추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으나,
그녀의 기쁨의 비밀은 하나님의 뜻의 실현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요?
요즘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늘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주님 한 분 만으로 과연 만족하는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했고,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했는데, 시16:11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주시는 기쁨, 능력
이런 것 말고도
뭔가 재력, 지위, 사람(인맥, 인연)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지금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집착’하는 것을 주님은 들춰내십니다.
예를 들면, 흠잡을 데 없는 부자 관원 청년에게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집착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하늘 보화만 바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막10:21 하시면서, 그의 물욕을 드러내셨죠.
아브라함에게는 물질을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물질에는 강하고 물질적인 집착이 없으니까...
대신 그가 집착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방해되는 한 가지(나의 집착, 우상)는 무엇인가요?
물질, 교만, 사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인가요?
나는 과연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요?
성경은 통 털어 그것을 강조하는데 말입니다.
인간에게 적당한 명예, 재산, 가정... 이런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들추어내시고
결국에는 그것을 빼앗아가실 것입니다.
오늘 밤, 내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한다면... 아무 집착이 없다는 증거요,
내 마음이 뭔가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집착하는 우상이 있다는 증거죠.
믿음과 신앙은 한 번 믿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믿은 이후로 계속 성숙해가야 하는데..
그 성숙은.. ‘내 구세주 주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단계로
끊임없이 자라가는 성숙입니다!
◑2. <교제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쓰심을 기대하는 사람마다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교제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유대에 속한 한 산동네로 달려가서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납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아기 세례 요한이 기뻐하며 뛰놀았죠.
이 장소가 어디일까요?
유대의 산지 마을이었던 엔케렘입니다.
성경에는 이 지명이 나오지 않지만, 오래동안 전승으로 내려오는 곳입니다.
여기에 ‘마리아 방문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엔케렘은 예루살렘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4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예루살렘 외곽의 작은 마을입니다.
그럼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친족 엘리사벳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2백 킬로를 (걸어)갔다는 얘기가 됩니다.
적어도 사흘 길 이상을 걸어간 것이죠.
마리아는 기뻤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같은 사람을 쓰시겠다는 선언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기뻐만 한 것이 아니라, 이 기쁨을 나눌 대상을 찾았고
그래서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입니다.
39절에 보면 이때에 마리아가 빨리가서 40절에 엘리사벳을 만나게 됩니다.
왜 하필이면 엘리사벳을 찾았을까요? 친척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36
더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것이
가능한가를 설명하면서 엘리사벳의 예를 든 것입니다.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물론 이 두 여인의 경험에는 본질적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 이전이었고, 남자 없이 잉태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두 여인 에게는 공유하는 경험이 있었는데,
곧 같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끼리 끌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공감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만남으로 형성되는 그룹을 사회학적으로 homogeneous 그룹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치유의 경험이 발생합니다. 나눔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제에는 위로, 모방, 치유 그리고 변화의 강력한 경험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삶을 위해 소그룹의 교제가 필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약 3개월 간의 엘리사벳과 의 교제를 통하여, 미래를 직면할 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미래의 사역을 위해 이런 교제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3. <찬양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마리아의 기쁨은 한걸음 더 나아가 찬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본문 바로 다음 문단이 바로 "마리아의 찬가" The Magnificat입니다.
46절에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하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찬양하면서 출산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태교 교육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에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게 있습니다.
뭐냐면, 마리아의 노래가 엘리사벳의 축복에 대한 화답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왔을 때 어떻게 축복했나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5
그런데 마리아가 48절에 보십시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8
지금 마리아가 자신이 ‘복 받은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지요.
이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엘리사벳의 축복에서 비롯됩니다
젊은 세대(마리아)가 자기가 복받은 세대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윗세대(엘리사벳)의 축복 속에서
그렇게 자기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의 찬가는,
물론 마리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노래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전부터 불러왔던 한나의 노래, 시편에 많은 찬양들이
이 마리아의 노래 속에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의 노래의 리메이크 판입니다.
과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불렀던 노래,
그 중에서도 삼상2:4~8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여러분 이 한나의 노래 속에서, 마리아의 노래가 나온 거죠.
한나는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를 심판하신다’는 그 소망을 노래합니다.
마리아도 역시 한나를 따라서, 그 의로우신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보통 여자(처녀)가 아니었어요!
마지막 54~55절을 보면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 마리아의 찬가를 보면
마치 마리아가 하나님의 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대변자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참고로, 안이숙 여사의 책 <죽으면 죽으리라>를 보면,
젊은 미혼 여성 안이숙이, 평양의 온 신사참배 반대 성도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자기 혼자의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대변인처럼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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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젊은이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젊은 세대의 힘은,
무조건 윗세대를 부정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건한 윗세대와의 연결 속에서 세상을 이길 힘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며, 저는 우리 자녀 세대와 청소년들, 청년들을 많이 생각합니다.
또 사춘기 자녀들 반항하는 청년들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우리 부모님들도 생각합니다.
사춘기, 이거 갑자기 찾아오는데요.
불청객처럼 느껴지죠.
아닙니다. 사춘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의 영혼과 몸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작업을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부모에게도 축복이고, 자녀에게도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우리 부모 세대보다 더 낫고, 강한 세대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 세대가 그런 세대로 세워질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또 하나는 세상의 가치(물질주의, 세속주의 등)에 대한 저항입니다.
순종과 저항이 같이 가야 합니다. 순종과 저항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윗대의 믿음의 유산을 전수받은 자녀가
세상의 정신을 거스르고, 세상을 번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의 역할은 그러면 무엇입니까?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순종의 사람,
‘예’라고 순종하도록 돕고 기도해야 되고,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니요’ 라고 맞설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미 주신 거룩한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찬양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 중에 거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찬양할 때,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 하시고, 능력을 행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때로 우리가 찬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찬양이라는 단어가 너무 종교화된 까닭입니다.
찬양은 영어로는 PRAISE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칭찬, 칭송’ 입니다.
여러분, 칭찬받으시면 소감이 어떠신지요? 기쁘시지요? 삶의 에너지가 생깁니다.
이것이 칭찬의 능력 곧 찬양의 능력입니다.
칭찬하는 관계, 칭송하는 공동체에는 건강함이 있습니다.
이 건강함은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저의 기도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뻐하고 교제하고 찬양하면서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