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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2차전도여행 P2

LNCK 2023. 12. 23. 15:41

성경대학: 바울의 일생 7강 8강 (이근 목사) - YouTube 
◈사도바울의 2차전도여행 P2       행17:15~18:28
   (아덴, 고린도, 에베소) 


◑바울의 <혼자> 아덴 전도          17:15~34

바울이 방문한 아덴은 우상과 철학이 판을 치는 도시였습니다. 약 5세기 전에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 활동 무대가 바로 아테네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들어갈 때 처음 눈에 띈 건물이 바로 산 위의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아크로폴리스, (고대 아테네의 바위지대에 있는 성채, 유적지 단지) 
그리고 아테나 여신을 위해서 세운 파르테논 신전, 굉장히 웅장하고 크죠.
직경 2M 높이 10M의 기둥 46개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입니다. 

그리스에 가면, 아크로폴리스 라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성채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유명한 신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디오니소스 극장, 제우스 신전.. 이런 것들이 많이 있는 곳이죠. 

지금도 이런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바울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그 건물들이 고스란히 위용을 뽐내고 있는 그 도시에 들어간 겁니다. 

바울이 가보니까 정말 대단했을 거예요. 
우상, 그리고 철학.. 이런 것들로 굉장히 난리인 그런 아테네 도시에 들어가고 보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해야 될 일은 말씀을 전하는 거였습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회당을 찾았고,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경건한 사람들과 또 말씀을 나눴고, 
또 장터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17:17 '(아덴의)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아덴이 속한 아가야 지방은   *그리스 남부
마게도냐하고는 또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리스 북부

아덴은 철학의 도시였기 때문에, 어떤 이론을 가지고, 어떤 말을 가지고도 
사람들과 변론할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이 아테네 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곳 사람들은 '어, 또 다른 철학인가 보다' 하고 바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장터' (아고라) 라는 곳에서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라고 합니다.  17:17

요즘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토론을 벌이는 곳을 '아고라'라고 하는데,  *다음 아고라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아고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했지만, 
일찍이 민주주의와 토론문화가 발달했던 그리스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대중들이 함께 토론하고, 자기 주장을 폈던 곳입니다.
거기에는 철학자들이, 자기 철학을 설파하기도 해왔는데,
바울이 거기 시장(아고라)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당시의 아테네는, 두 가지 철학이 팽배했던 시절입니다.  
-에피쿠로스 주의 즉 쾌락주의, 
-스토아 철학, 즉 금욕주의, 

에피쿠로스-쾌락주의는, 우리가 말하는 그런 성적 문란한 사상을 뜻하는게 아니고요, 
이들은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난 평안을 얻기 위해서 쾌락을 얻어야 되는데, 
이런 쾌락이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이런 식으로 해서 
쾌락을 느껴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낸다... 이런 식의 철학이고요. 

스토아- 금욕주의는, 외적 권위나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금욕과 극기의 태도를 갖고자 해서 마음의 평정을 얻는 사상이죠.

그들은 바울을 '말쟁이'로 폄하했는데요. *스페르몰로고스
원래 곡식을 쪼아먹는 새를 뜻하였으나, 후에 쓰레기를 주워모으는 사람을 가리켰으며, 
점차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귀동냥해서 얻어 듣고, 그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것인 양 도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17: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아레오바고' - 이는 문자적으로 '법정' 또는 '아레스의 평의회'라는 뜻으로 
주로 종교와 교육,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하던 곳이었죠. 

바울이 끌려간 아레오바고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아덴인들의 '비공식적 집회'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이 견해는 바울의 연설(전도)가 어떤 법이나,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반면에 이를, 바울의 가르침 내용을 심문하기 위해 열린 공식 법정으로 보는 학자도 있죠.
이 견해는 디오누시오 라는 아레오바고 관원에 대한 언급 사실에 의해 뒷받침됩니다(34절). 

걸론적으로 이것이 반드시 법적 재판의 형식을 띤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적 집회의 성격임에는 분명합니다. 안 그러면 '아레오바고'라는 말을 쓸 이유도 없죠.

근데 사람들이 아레오바고 라는 곳에서도 사도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주1)

근데 재밌는 거는, 소크라테스가 언제 죽었냐면 BC 400년이고, 
지금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는 AD 50년이 넘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사도바울이 활동하던 이 시기에는 
지금도 잘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나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학이
아주 전성기를 이루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이곳에서 철학적으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기는 그 아테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게 되죠. 

▲그때 아테네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행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바울의 설교에,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요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항상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어요. 
바울이 여기서 또 만난 사람들이 있거든요.                   

17: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덴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나중에 이 디오누시오 가
아테네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본문 행17장에 안 나오는 또 한 명이 있습니다. 

고전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스데바나가 고린도전서의 편지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고린도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데바나를 '아가야의 첫 열매' 라고 말했습니다.  고전16:15

아가야는, 아덴과 고린도를 포함하는 그리스(발칸반도) 남부 지역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행정구역 중 한 곳이었죠.

무슨 말이냐면, 고린도에 살고 있던 스데바나가,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아테네에 왔다가, 아테네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가야에서 예수님을 믿는 첫 열매가 되었다'라는 것이죠.

사도바울의 다음 행선지가 아덴에서 고린도로 넘어가게 되는데 
스데바나 때문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스데바나가 고린도에 와서도, 복음을 증거해 달라고 강력히 초청했겠죠.                         

그리고 당시에 여행은, 주로 오늘날로 치면 '민박'입니다.
숙박업이 오늘날처럼 크게 발달해 있지 못하던 시절에, 
낯선 도시에 가면, 지인의 집에 머무는 것이... 문화였습니다. (50년 전까지 한국도 그랬죠)

그러니 누가 초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도시를 방문하기가 아주 쉬웠다는 것이죠. 초청자가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까요.
    ☞성경의 아덴과 오늘 대도시 유사점 https://rfcdrfcd.tistory.com/5709628


◑바울,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다    18:1~18:22

그래서 바울은 아덴을 떠나서, 스데바나와 함께 고린도로 향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고린도는 아가야의 행정수도 입니다. 
철학이 발달한 곳이 아테네(아덴)이었다면, 
고린도는 행정수도였기 때문에,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이방인들, 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고린도는 타락한 도시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고린도를 왜 타락한 도시 라고 말하냐면, 고린도는 굉장히 운동 경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올림픽이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는데, 
고린도도 그리스 지역에 속해 있으니까, 자연히 스포츠 경기가 고대로부터 발달했죠.

그래서 나중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 쓸 때는 이런 표현을 많이 합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게 고린도의 백그라운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여러분들, 운동 경기하는 거 많이 보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하듯이, 
우리도 주님의 상을 받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라는 표현을 
고린도 교회에게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놀랍습니다. 
앞서 2차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시작되었는데, 
주님은 동향 (소아시아,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를 예비해 두셔서
바울의 전도팀이 빌립보에서 큰 도움을 입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에 혼자 내려와 있습니다.  
그의 전도팀은 각각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고린도에서 예비해두신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낯선 선교지에 갈 때도, 사실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루디아 같은,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기도 가운데,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AD 49년에 로마 황제가 로마에서 민족 봉기를 일으키는 '유대인들 추방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약 2만여 명이 되는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한 유대인들을 
로마 시에서 다 추방을 시키게 됩니다. 

아굴라의 고향이 바로 고린도입니다. 그래서 고린도로 내려오게 됩니다. 18:2
아굴라가 남편이고, 브리스길라가 아내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천막을 짓는 일이었기 때문에, 
고린도에서 천막 짓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거죠.
'바울이 그들에게로 가매' 18:2

그리고 함께 일하고, 함께 살게 됩니다. 그들 부부는 바울에겐 여호와 이레와 같았습니다.

'(바울과)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18:3
'함께 살았다'고 했으니, 바울이 아마 하숙생처럼 식사도움도 받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브리스길라가 자기 남편인 아굴라보다 이름이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기 외에도 성경에 몇 군데 더 나오죠. (18:26, 롬16:3, 딤후4:19). 
이는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브리스길라의 신앙이 아굴라의 신앙보다 더 신실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바울의 선교에 매우 헌신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이었죠(롬16:4).

▲고린도는, 지금 마치 올림픽이 열리듯이, '이스트미아 제전'이라는       주2)  
2년마다 열리는 큰 운동 경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운동 경기가 있다면 텐트(천막)가 많이 설치되어야 되죠.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에는 텐트 메이커들이 많았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이 뭘 했을까요? 이건 공식입니다. 
바울은 어느 곳이든지 도착하면, 제일 먼저 회당을 찾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에서 바울은 1년 6개월을 머무르게 됩니다.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18:11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리고 고린도에는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고린도 교회 역량이 컸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오래 머무른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텐트메이커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것도 있고, 
그 다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방인들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운신의 폭이 컸던 것입니다. 

롬16: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로마서는 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쓴 것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것임)
위 구절에 가이오와 에라스도가 나오는데, 고린도 교인들입니다.
왜냐면 고린도에서 지금 로마서를 써서 보내고 있으니까요.
가이오는 온 교회를 돌보아 줄 만큼 부자였고, 에라스도는 재무관으로 고위직이었죠.
고린도 교회에, 그런 고린도 사회 상류층 인사들도 포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처럼 쫓겨 다닐 필요가 없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회당장 소스데네 사건'이 있긴 했죠. 18:17)

▲그래서 마게도냐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하게 됩니다.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고린도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자 혼자였던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의 가세로 힘을 얻었습니다. 

앞서 P1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가는.. 빌립보에서 목회했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서
실라는.. 베뢰아에서 목회하고 있었는데,
교회가 어느 정도 든든이 서 가자, 디모데와 실라가 고린도의 바울에게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힘있게 전했던' 것 같습니다. 18:5

그런데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종종 그렇듯이 유대인들은 바울을 비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들을 때까지 좋아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또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때는 
그들은 회당에서 바울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당을 떠나야만 냈죠. 
그래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밀어내게 되고, 
바울은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처럼, 고린도에서는 쫓겨다닐 일은 없었습니다. 
근데 마침 그 유대인 회당에서 배척을 당하는 중에
회당에서 바울의 말씀을 들었던 디도 유스도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이방인이었지만 
말씀을 듣고 유대인으로,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사도바울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배척받은 바울을, 자기 집으로 오게 하고,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고린도교회가 시작이 되게 되었죠.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데살로니가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베뢰아교회는 잘 알 수 없고요, 
고린도교회는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은 여기에서 막 복음을 전하면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저를 마게도냐로 보냈는데, 내가 지금 아가야에서 이러고 있어도 됩니까?' 

이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1년 6개월간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다는 겁니다.  18:11

이제까지 방문한 도시들 중에는 최장 기간 머무른 셈입니다.
나중에 3차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을, 고린도보다 더 길게 머무르기는 했지만요.

그래서 비교적 안정적인 고린도 사역 가운데, 생각나는 곳이 어디에요? 마게도니아죠. 
마게도냐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믿음직해요. 믿음직한 누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는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디모데는 젊었고, 또 유약한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시점,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의 서두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들은 바울의 2차전도여행의 멤버들이죠. 
그래서 2차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이 두 서신을 기록하게 됩니다.

살전3: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살전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핍박에도 불구하고.. 살전에 나오죠)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렇게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와 내왕하는 일이 있었던 거죠.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설교할 때는,
사도행전 17:1~10절이 내용과 연결해서, 그 배경과 전후 사건을 이해하고, 
그 정황 가운데서 강해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로, <데살로니가후서>는 재림에 관한 바울의 강론이 주를 이룹니다.

왜냐면 <전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설명해줬더니  *살전5장
그들이 굉장히 그것 때문에 혼란스럽고 혼동을 느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두 번째 편지(살후)를 씁니다. 
먼저 감사와 격려의 이야기를 쓴 후에, 그 다음에 재림에 대해서 바른 설명을 하고서,
추가로, 재림을 기다리며 취할 수 있는 게으름을 경계하게 되었죠.

그래서 재림을 소망하지만, 게으르지 말고 
우리는 오늘 하루의 최선을 다하면서 삽시다... 이런 편지를 써서 가르치게 됩니다.
이게 바로 <고린도에서 1년 반 체류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2차전도여행의 막바지 때죠.

▲바울의 데살로니가 행을 막은 사탄의 패착

살전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데살)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바울은 '마게도냐 인의 환상' 때문에, 늘 마게도냐에 대한 사명감, 마음의 짐이 있었죠.
그걸 사탄이 어떻게 알았는지,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막은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추정하자면
데살로니가 성도 야손과 형제들은 서약서(성경엔 '보석금') 를 쓰고 풀려났습니다.  17:9

그러니까 야손과 믿는 형제들은, 바울과 절대 만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울과 만나면 바로 성도들은, 당국에 체포될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못 가는 것입니다.
대신에 디모데를 보냈죠.  *자세한 내용은 P1

그런데 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고, '신의 한 수' 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사단이 막지 않아서' 데살로니가에 갔었다면, 
그래서 대면해서 그 성도들에게 가르쳤다면,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탄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데살로니가 전후서가 성경에 없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 얼마나 큰 데미지 입니까?
바울은 천국에 가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사단이 막은' 결과... 바울이 할 수 있었던 대안은,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전후서가 이 세상에 나왔던 것이고,

바울은 여기서 뭔가를 깨달았나 봅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바울은 서신서를 저술하게 되는데, 
'바울서신'이라고 알려진 약 12~13권의 편지를 펴내게 된 것입니다.

'바울서신'은.. 어쩌면 바울이 생전에 발로 밟으며 선교했던 것보다
더 큰 파괴력을 기독교 역사에 미쳤습니다. 
왜냐면 바울이 발로 밟으며 선교했던 것은, 바울 당대에 그쳤지만 
그가 서신을 써서 남긴 성경들은.. 그 후 2천년간 온 세상에 열매를 남겼으니까요!

그러므로 '사단이 막는' 일이 생겨도, 
그걸 하나님이 또한 허용하시는 일이 있더라도, 
성도는 크게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더 큰 역사, 더 큰 열매가 기다리고,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즈음에 아가야 지역에 총독이 바뀌는 일이 생깁니다. *고린도가 속한 그리스 남부
이 시기를 틈타서, 유대인들은 아마도 바울을 어떻게든 좀 몰아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회당장 소스데네 는 '이때가 기회다' 라고 생각해서 
고린도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모함해서, 바울을 새로 부임한 총독에게 고발한 겁니다.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근데 새로 부임한 갈리오 총독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갈리오 총독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판단을 해보니까, 이것은 로마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 자체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서, 케이스를 기각시키고
법정에서 다 내쫓아 버린 거죠. 

18:14~16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근데 여기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모였는지 모르고, 
이 회당장 소스데네가 막 선동했을 때, 이 사람들이 같이 모여들었는데, 
군중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뭐 무슨 운동경기 인줄 알고)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고린도 사람들, 군중들이 화가 나서
자기들을 선동했던 회당장 소스데네를 때립니다. 18:17
바울을 고소했던 무고죄에 대한 응징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헷갈리는게 있어요. 소스데네 와 스데바나 
두 이름이 비슷해서, 가끔씩 들으면 헷갈립니다.

스데바나는 아가야의 첫 열매로서, 고린도 교인입니다.
스데반과 비슷한 이름으로 기억하면 쉽습니다. 둘 다 신실한 성도였죠,

소스데네는, 나쁜 회당장이죠
소스라치게 놀라운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됩니다.   

앞서 고린도에는 하나의 회당이 있고, 그 회당장이 그리스보(8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회당장이 소스데네로 나옵니다. 규모가 큰 회당에는 때로 한 사람 이상의 
회당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죠.

어쨌든 고린도에서, 1년 반이 지나서, 드디어 소요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젠 떠날 때가 됐다 라는 신호입니다. 

◑바울,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를 들르다 

고린도 → 겐그레아 → 바다건너 → 에베소 → 가이사랴 → 예루살렘 → 안디옥 
이런 여정으로 2차전도여행을 마칩니다.

▲겐그레아 에서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겐그레아 항구로 가게 됩니다. *고린도에서 11Km 떨어짐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외항 外港입니다. 아마 고린도에는 큰 배가 댈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큰 배를 이용할 때는, 11킬로 떨어진 겐그레아에 와서 타고 내렸던 것입니다. 

거기서 에게 해를 건너서, 에베소로 가게 되죠. 뱃길이 그런 경로였나 봅니다. 

바울은 자기의 동역자들과 함께 이제 떠나게 됩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리고 고린도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었는지, 
유대인들이 서원했을 때는 머리를 깎지 않고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또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것을 지키는 장면이 있는데, 뭘 서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바울이 이 즈음에 '그 서원한 것이 풀리는' 날이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겐그레아에 와서, 사도 바울은 머리를 단정하게 깎습니다.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머리를 깎았더라'
나실인의 서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원 중에는 '머리를 깎지 않는, 삭도를 대지 않는' 규율이 있죠.
그게 끝났으니까, 이제 머리를 단정하게 깎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겐그레아 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는데, 뵈뵈 입니다.
롬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겐그레아 에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며 전도하여 거둔 열매인 
여집사 뵈뵈가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롬16:1~2

나중에 사도바울이 3차전도여행 할 때, 
고린도에서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로마의 보내는 편지를 들고 간 사람이 
바로 겐그레아의 뵈뵈 자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편지 후반부에 '내가 겐그레아 교회 일꾼으로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뵈뵈 자매도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에 보면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롬16:2

빌립보교회에 루디아 자매가 있었듯이,
고린도 겐그레아 에는 뵈죄 자매가 있었습니다. 
또 브리스길라 라는 동역자 자매가 있었죠. 
하나님 나라의 역할에는 여성도 굉장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베소에서
18:19~22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겐그레아에서 에게해를 건너서 에베소에 들립니다. 경유한 거죠.  18:19~22
사울, 대전, 대구, 부산처럼.. 뱃길이 그렇게 되어 있었나 봅니다. 겐그레아-에베소-가이사랴

바울은 2차전도여행의 출발지, 자신의 파송교회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를 경유하게 됩니다. 

비록 경유지 이지만, 에베소 지역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도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이곳에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게 에베소와 인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에 그렇게 가려고 했는데 못 갔지만,  행16:6
바울이 이제야 들어간 그 에베소!

굳이 지도로 말하자면, 
행16장에서 드로아 지역에서 막바로 에베소로 갈 수 있었지만, 성령이 막으셔서 못 갔고,
이제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마게도냐로 갔다가, 그 아래 아가야로 갔다가
다시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에베소로 았으니, 크게 삥 둘러 유턴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는 돌아가야 될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말합니다. 
'작별하에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났다' 라고 말씀합니다.  18:21

"꼭 오겠다"라는 겁니다. 
약속대로 바울의 3차전도여행은, 에베소를 방문합니다. 

그런데 에베소를 떠나면서, 이곳에도 사람을 남겨 놓는데 
바로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남겨 놓게 됩니다. *18:26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은 배를 타고 가이사랴로 갑니다.
가이사랴에서 육로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선교 보고를 한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되는 여정으로, 모든 여정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8:22

가이사랴 예루살렘 안디옥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형은 약 3년의 시간이 걸렸고요. 
여행거리는 약 5천KM 된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2차전도여행 때 엄청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꾼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이걸 다 일일이 기억을 못 해도 됩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꼭 놓치지 말아야 될 거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바울과 또 그 사람들을 이끌어 가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됩니다. 
바울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에 남는게 아니라, 강의가 여러분의 가슴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아 바울이 그런 열정을 가졌었구나...'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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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아레오바고에서 재판을 받았던 소크라테스
그때로부터 약 5세기 전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자기의 철학을 막 주장했을 때 
소크라테스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고소하죠. 
왜냐면 소크라테스가 자기 철학을 가지고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또 신을 믿지 않는다 라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회부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의 죄목으로 약 500명의 재판관이 투표를 하게 되는데 
찬반 투표로, 이게 사형이냐 아니냐 라는 그 재판이 있었던 곳이 바로 아레오바고 입니다.

거기서 약 60여 표 차이로 인해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언도를 받고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자기는 죽을 죄를 짓지 않았지만, 나는 이러해서 나는 이러이러한 철학으로 해서 
이런 사상으로 인해서 내가 이 지경을 당하게 됐다'라는 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입니다. 


주2) 이스트미아 제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4대 대회 중 하나로 
개최지인 고린도 지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고린도 근처에서 2년마다 열린 경기로,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경의 고린도전서 9:25에 바울이 예로 든 운동경기가 바로 이스트미안 게임이다. 
이스트미아 게임은 고대 그리스의 4대 경기 중 하나로, 
4대 경기는 이스트미아, 올림피아 제전, 피티아 제전, 네메아 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