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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고별사 삼상12:1-25 ☞<고별, 작별설교 모음>
◑도입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고
또 다른 나라 백성들이 왕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면서
‘우리도 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을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었다.
또 이것으로 인해서 오는 후속 결과, 그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부르짖게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은 그렇게 큰 죄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큰 죄로 말씀하고 계신다.
‘또 저희가 나를 버리고 나를 좇지 아니하고 왕을 구한다’ 하는 말씀이다.
또 나를 의지함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사는 그런 생활에 대해서 불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제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쳐서 그 나라를 보호하게 계신다. (우리 가정, 교회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로 하여금 쳐들어오지 못하게. 그거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저걸 건드렸다가는 우리에게 화가 많다.
그런고로 항상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을 가지도록,
또 두려운 마음을 가지도록 해서.. 하나님이 그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하냐면
‘언제 대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지켜주실까?
뭔가 좀 왕이 있던가? 군사가 있던가? 뭐가 좀 있어야지 마음을 놓지,
이거 아무 것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하나님만 믿고 산다는 것,
이거 참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왕을 주십시오’ 하고 이렇게 부르짖게 될 때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악과 완악함을 아시면서도 왕을 허락하신다.
그래서 사울이라는 왕을 이제 세웠고
또 사울이 왕이 되매 그 왕권, 왕의 제도를 확립해 주셨다.
이제는 백성들이 사울을 섬기게 되었고
또 사울은 자기가 하나님이 택하신 왕이라는 것을 믿고 백성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제 왕 정치가 시작된다...
◑1. 기도하기를 쉬는 죄
이제 그 다음 말씀을 조용히 들어보시기 바란다. 사무엘이 말한다.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 그건 왜 그런가?
왜 기도하다가 쉬게 되는 것인가?
아마도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도 나타난다.
기도하기를 쉬는 때가 언제인가?
① 일이 잘될 때, 일이 잘되고 평안하면 기도 안 하게 된다.
꼭 죽을 지경이 되어야 기도하거든요. 그렇지 않는가?
우리가 이 새벽에 기도할 때도 일이 잘될 때, 일이 더 잘될 때 열심히 기도해야 되겠는데,
일이 잘되고 평탄하고 모든 일이 잘되면 바빠서 못한다나? 이런 사람들 많아요.
이렇게 된단 말이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아야 된다.
② 또 하나 있다. 너무 일이 안될 때, 너무 어려울 때 그때는 절망해서, 시험 들어서 기도를 쉰다.
‘이런 때는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을 거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해요. 스스로 절망해서 기도하기를 쉰단 말이다.
③ 그리고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게으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희미해지면서 게을러져서, 나태해져서
그만 기도하기를 쉬게 되는 것이지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암시된 내용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백성을 위한 기도를 말하고 있다.
자식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 어머니의 기도가 끊어지면 안 된다.
혹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가 끊어지면 안 된다.
꼭 그것을 알아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절대로 쉬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남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또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혹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는 그런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대 중단이 없어야 된다. 계속 기도해야 한다.
▲1912년 4월에 열린 남아공에서 기독교 컨퍼런스가 있었습니다. (펀 글_
그 당시에는 교회가 일반적으로 영적 힘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2백명이 넘는 목사, 선교사 및 신학생들이 함께 모여
이 문제를 연구하고 함께 집중 토론했습니다.
그 토론 결과, 당시 사역자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는 토론하면 할수록 점차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죄로 귀결되었습니다."
we were gradually led to the sin of prayerlessness
as the deepest roots of the evil
그것은 삼상12:23절에는 ‘죄’라고 규정했지요.
아무도 이 죄로부터 쉽게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 다 기도가 부족하고
그만큼 영적인 무기력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의 영적 삶의 맥박입니다.
맥박이 쉬지 않고 뛰듯이,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죠.
◑2. 또 한 가지 있다.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그랬다. 삼상12:23
기도하고 또 하나는 의로운 도를 가르쳐야 한다.
그는 백성들을 향해 말한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잘못되어도 기도하고 잘 되어도 기도하고 너희를 위하여 나는 한평생 기도할 것이요,
또 하나는 계속해서 가르칠 것이다. 그런고로 가르침을 들어라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가르쳐야 된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지식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배우고, 행동 속에서 배우고, 계속 배워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감성과 우리의 의지가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야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그 기억 속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해야 될 그 가슴, 그 마음에
쓸데없는 것들이 들어가 있고,
이렇게 되면 그 길이 잘못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로운 도로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그렇게 말한다.
▲(펀글) 오늘날 '목사의 말이라고 다 옳으냐?'라고 하면서
'교인들이 너무 순진해서 목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
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기독교계 내에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목사의 말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며
목사의 말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사가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설교하면 그것은 결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성도 영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을 선포해 주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잘못을 지적해 주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참된 설교는 사람이 듣기에 좋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려 깊은 조언'도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독특한(잘못된) 생각이 하나 있어요.
아주 위험한 생각인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라는 명분을 갖다 붙이면
무조건 옳은 줄 알아요.
사무엘이 이런 얘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 삼상12:23
다시 말하면, 자기가 나라를 위해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하겠다는 얘기예요.
그러나 사무엘이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공의 편에 서게 해 주세요!” :23b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 민족이 무조건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봅시다. 지금 대한민국에 돌아가고 있는 경제적 윤리,
성적 윤리, 아이들의 학교문화, 이 상태 그대로 그 나라가 잘 되어도 되겠습니까?
잘된다는 게 뭐예요?
죄악이 관영하고, 죄악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있는 나라 안에
무조건 나라를 위한 기도, 경제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국방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도 바벨론의 포로로 팔아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다 해서 무조건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는 것은,
자기는 올바른 기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 이기세요. 당신의 뜻이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믿음의 기도라는 것이에요. 이게 라합의 믿음이었습니다.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2개가 다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그런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자기 자신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도 - 즉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그들에게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들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면서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설교 사역을 준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자녀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도’를 가르치면서 기도해야지
그런 것들은 까마득하게 다 무시해버리고
무조건 ‘남편이, 자녀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 .. 이건 올바른 기도가 아니지요.
올바른 기도가 아니면, 그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 나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조금 기다하다가.. 흐지부지 기도를 중단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목회자로서, 섬기는 영혼의 소중함과 고결함을 내게 가르쳐준 일화 (펀 글)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지금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10여 년 전,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 그 때를 되돌아보면, 한 가지 부끄러운 것은,
그 당시에 정말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섬김’보다, 제가 개인적으로 더 고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 진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목사로 있어야 하나, 개척을 해야 하나,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하나, 유학을 가야하나?’
그런 시기에, 어느 날 아침 일찍 경찰서에서 제게 전화가 왔다.
‘한 50대 여자분이 길에서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는데,
이 분이 누군지 신상파악이 전혀 안 되고, 주민등록증도 없고,
그런데 단 하나, 소지품으로 성경책이 있는데, (아마 새벽기도 다녀 오시다가)
그 안에 메모지에, ‘OOO 목사님’이라고 제 이름이 적혀 있으니,
경찰서로 좀 와서, 죽은 사람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찰서에 가서, 그 여자 분의 시신을 보니
제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성경책 속에 끼어있었다는 그 메모지도 보았는데,
제 이름이 종이 제일 위에 씌어있었고, 그 아래에 몇 가지 기도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맨 먼저 제 설교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과
-저와 제 가정을 위한 중보기도제목들이 두세 가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쯤에, 지문 감식을 했는지, 그 분의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그 여자 성도님은 청량리 회기동에 사시는 분인데, 집 근처 교회를 다니시고,
딸이 안산에 사시는데, 딸네 집에 오면
안산의 딸 집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제가 안산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시절에,
그 분이 우연히 새벽예배에 오셨다가,
제 설교를 듣고서, 제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두시고,
‘저 목사님을 위해서 내가 이런 중보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그 분 나름대로 기도제목을 몇 가지 적고,
(저는 그 분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저를 위해 계속 기도를 해 주셨던 모양입니다.
이 사건은,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제게 무척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분의 죽음을, ‘객사’한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제게는 그 사건이 굉장한 의미를 심어주었습니다.
‘중보기도하는 영혼은 아름답다’는 것이죠.
어떤 한 분이, 나와 일면식도 없는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 한참 제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 진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이런 귀한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내 인생을 집중해야 되겠구나’
하는 귀한 교훈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내 생애에 어떤 전환점을 마련해 준, 참 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분은 참 허무하게 돌아가신 것 같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분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떤 특별한 전환점을 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분의 죽음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한 성도의 영혼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비록 다른 교회 교인이었지만)
내가 섬기는 성도의 영혼은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
그러므로 내가 성심을 다해 섬겨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그 분의 죽음을 통해, 내가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을 하게 되었고요.
소중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겨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3. 세 번째는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삼상12:24
생각하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라. 오늘 우리가 살면서 하나 하나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오묘하다. 놀라운 것이다. 깊이 생각해야 된다.
▲저는 몇일 전에 저 북한에 갔을 때 나진, 선봉, 청진에 갔는데
일부로 제가 조그마한 손에 드는 라디오를 하나 사 가지고 갔다.
갔다가 새벽에 저녁에 방송을 들어보았는데 아주 잘 들린다.
특별히 저 자신으로서 행복했던 것은
제 딸이 극동방송에서 아나운서로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 방송을 들었다.
두 시간 동안 하는 방송을 죽 들으면서 얼마나 참 깨끗하게 들린다.
북한에는 방송을 듣는 사람이 많다. 숨어서 듣는다. 몰래 듣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통계에 의하면 300만이 된다고 그런다. 많은 사람이 새벽과 밤에 듣는다.
이것은 낮에는 안 들린다. 꼭 밤에만 방송이 들린다.
그러니 꼭 기억해야 된다. 우리가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 이걸 꼭 기억해야 된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
언제나 하나님 쪽으로 생각해야 되요.
하나님께서는 오묘하게 역사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런고로 여기에 보신대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
‘나 하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생각해야지요.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오직 그를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4
진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을 다하여 그를 섬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 것이며 계속 기도할 것이다.
-계속 가르칠 것이고 전할 것이고,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깊이 생각할 것이다.
▲지금 뭐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시는가를 보세요.
예외 없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확실한 경륜이 있다.
우리는 그 쪽을 생각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고
오직 그만을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될, 들어야 될, 또 행하여야 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