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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중에 부르는 노래 시편121:1-8 ☞▣고난/영광의 신학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대지진이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 후쿠시마 지역에 살던 기독교인들도, 교회도 함께 피해를 입었습니다.
졸지에 말입니다.
그럼 시121편의 말씀,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편 그늘이 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런 말씀이 과연 맞나요? 하나님이 일본 교우들을 쓰나미에서 과연 지켜주셨나요?
굳이 일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신실한 믿음의 형제 자매들 가운데도
질병과, 사고와, 극도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시121편처럼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를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영향을 받았고 또한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
듀크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스탠리 하우어워즈 Stanley Hauerwas 입니다.
그분은 기독교 윤리학자인데, 현재 살아있는 신학자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분입니다.
그분은 학문 영역에서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있어서도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도 존경받을만합니다.
얼마 전, 그분이 자서전 <Hannah's Child>를 펴냈고,
최근에 풀러 신학교에서, 그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 중에서
자신이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 신문에서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마음에 아픔을 느꼈고 동시에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조울증을 겪는 아내와 함께 살아야 했던 쓰라린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아내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에게 당한 상처에 대한 분노를 남편에게 쏟아 놓았고,
증상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을 남편 때문이라고 비난하다가, 결국 남편을 떠납니다.
스탠린 하우어워즈 박사는 조울증 아내를 견뎌내면서 아들을 키운 이야기와
그 상황에서 겪은. 미칠 것 같은 외로움과 분노와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그 아내는 약 10여 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학문적으로 심오하고 영적으로 풍요로운 그분의 글들이
그처럼 지옥 같은 일상에서 쓰인 것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고 또한 감탄했습니다.
그분이 겪은 고난을 알고 그분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과 상처와 고난과 환난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헨리 나우웬(뉴윈) Henri Nouwen 신부도
한 때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맨하탄의 리버사이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현대판 예언자라고 불렸던
윌리엄 슬로운 코핀 William Sloan Coffin 은 참혹한 사고로 인해 20대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본문 시121편, 이 말씀이 정말 맞나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121:1~4
그렇다면 시편 121편에서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틀리지는 않을 텐데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말,
그리고 모든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재난’이 무엇인지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재난입니까?
재난 혹은 재앙이란 우리의 삶을 흔드는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사업이 망했다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든가, 질병에 걸렸다든가,
지진 같은 자연 재해를 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외적인 일들이 언제나 우리의 삶을 흔드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일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삶의 뿌리까지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재난 혹은 재앙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많은 저술을 남긴 폴 투르니에 Paul Tournier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 The Adventure of Living>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의사는 인생의 성공을 저해하는 최대의 장애물이
신체적인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체적 질환과 같은 장애물은 의료 기구와 의술, 의사의 조언으로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적 요인에 기인한 장애물들은 쉽게 제거하기 어렵다.” (170쪽)
맞는 말입니다. 어떤 사태를 만나서 “이크! 꼼짝없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일도 “이거, 큰 일 났네!”하고 두려워 떨면 그것이 큰 일이 됩니다.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1편을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양에 있는 모든 물로도 작은 배 하나를 침몰시킬 수 없다.
그 배 안에 물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일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
그것이 우리 내면으로 침투하기 전까지는!” <A Long Obedience, p.43>
▲그러습니다. 재앙 중에서도 가장 큰 재앙은 내면의 동요입니다.
낙심과 절망과 두려움입니다.
그것이 우리 내면에 들어오면, 우리의 인생은 서서히 침몰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내면이 든든히 서 있는 한, 그 어떤 재앙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죄인에게나 의인에게나 동일하게 비를 내려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그 비가 재앙이 되지 않습니다.
그 비가 그의 마음까지 적시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은, 그 비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 젖어 버립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일본을 강타한 초대형 재앙을 지켜보면서도 *2011년 설교
여전히 시편 121편을 고백하고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이 믿는 사람만을 편애하기 때문도 아니고,
제가 늘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경험하고 살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다 당하는 일들을 당해 왔고, 또한 앞으로도 당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는 “주님은 나를 모든 재앙에서 지켜 주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재앙은 하나님을 잊고 그분을 떠나 홀로 허우적대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 재앙 중에서도 가장 큰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재앙이 되지 못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스탠리 하우어워즈가 자신의 고난 이야기 중에 말한
한 대목이 제 마음속에 깊이 와 닿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학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고난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전 이런 질문에 뭐라 답변해야 좋을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제가 기독교 신학자로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변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우리의 인간성은 그런 질문을 자꾸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침묵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이해하는 ‘정답’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기독교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 ‘정답’은 기독교를 ‘설명’으로 전락시킬 뿐입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답이 없이 사는 방법을 배우면 (또는 신뢰로써 살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저의 주장이 최소한 제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제 인생이
왜 무진장 흥미로운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본에 일어난 일을 두고 망발을 서슴지 않는 분들은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이 고백을 읽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우어워즈 박사님의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대답을 내놓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할 때까지 정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모른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살피시고 돌보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더욱 가까이하고 그분 안에 머물러 살면,
우리는 재앙을 만나도 재앙을 겪지 않을 것이고,
죽음을 만나도 죽음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고난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제 말이 아니라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매일같이 지옥 같은 투쟁을 하고, 미칠 것 같은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하나님을 놓지 않고 그분께 의지하며 자신의 삶이
무진장 흥미롭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고백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시편 121편을 노래하고 고백하렵니다.
믿는 사람들도 거대한 쓰나미에 속절없이 휩쓸려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런 일이 저에게 닥치면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을 알면서도,
저는 여전히 “하나님께 모든 재앙에서 나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노래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피해야 할 재앙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며,
제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저의 노래와 고백에 동참하시기를 청합니다.
지옥같이 괴롭고 외로운 삶을 통과해 내도록 스탠리 하우어워즈를 지켜 준 것이
바로 이 노래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지켜 줄 것도 바로 이 노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멘.
주님,
저희의 주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저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주님을 알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믿음
변치 않도록 붙들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