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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테스트 하십니다

LNCK 2024. 1. 1. 06:17

◈하나님은 테스트 하십니다 P1    출15:21~25, 신8:1~3          출처보기

  God tests before he promotes.    (재발행)

 

◑하나님은 사명을 맡기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두루 걸쳐서 보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택하여, 어떤 특별한 임무를 맡기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여러 사명자의 일생을 보면서,

스스로 진지하게 한 번 질문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택하셔서, 어떤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는가?’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내가 정말 거듭나고,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녀라면, 내가 맡은 사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감당하고 죽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진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면,

우리는 그저 목적 없이, 이리 저리로 표류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닷가에 가 보면, 거기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조각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조류가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표류합니다. 어디에 도착할 지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불행하게도 상당수 많은 비율의 크리스천들이

마치 그 바다의 표류하는 나뭇조각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 승진을 못해서 그렇습니다.

    승진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시험에 낙방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신자들이, 물 위의 나뭇조각처럼, 표류하는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신앙적 목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을, 특별한 사명에 부르셨다는 그런 확신도 없습니다.

 

물론 교회는 안 빠지고 다니고, 크게 남의 눈에 드러나는 죄는 짓지 않고,

헌금도 드리면서, 그렇게 일평생 교회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기가 일평생 무슨 사명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으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특별히 맡기신 사명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면..

‘낫싱’, 특별한 게 없었다.. 라고 대답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일생을 살았는데,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어떤 변수나 기여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은 대단히 서글픈 일입니다.

그 신자는 사실상 세상에 안 살았던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상당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사실은 이렇게, 아무 사명감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때우다시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진지하게 응답했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에,

특별한 목적과 사명을 갖고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자기 고유의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진지한 응답이 아직 없었다든지,

아니면 과거에 한 때 그것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앙이 퇴보되거나, 무감각해졌다는 것입니다.)

 

 

◑시험은, 괴롭지만, 합격하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매년 연말이 되면, 회사는 재무결산을 합니다.

그 해에 거둔 실적과 영업이익을, 정확하게 산출해 냅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학기말에 진급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그래서 학생이 정말 그 과정을 잘 배웠는지 확인하고,

혹시 진급시험에서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학생은, 다음 학년으로 진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학년을, 한 해 다시 다녀야 합니다.

 

▶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매년 그런 결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금년 한 해에, 주님이 나를 통해 특별히 가르쳐 주신 일이 무엇인가?

그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신앙성장, 영적 성장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금년에 내가 극복한, 즉 승리한 죄는 무엇이며,

내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변화되지 못하고, 몇 해 전 과거와 똑같은 모습은.. 무엇인가? 어떤 분야인가?

 

여러분, 만약 학생이, 학기말 시험에서 Fail 학점을 받는다면,

대단히 실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었는데, 다시 재수강하게 되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수없이 재수강을 매년 반복하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데..

그만큼 우리가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들은 시험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합니다.

시험 준비나, 시험을 치르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좋은 것은,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승진이 있고, 다음 학년으로 진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또한 패스하기를 바랍니다.

시험을 치고, 합격점을 받아야, 학년이 올라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많이 배워도.. 별로 다른 게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들의 시험을 예로 들었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 각자 신자들을, 그렇게 시험하십니다.

 

제가 평소에 곰곰이 생각하며, 진지하게 관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고,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도님들이, 교회에서 수없이 많은 설교와 가르침을 듣고도,

실제로 영적인 성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한 해, 두 해,

심지어는 그 이상 수년 동안, 교회에서 배우고, 또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성장이

제대로 일어나는 성도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왜 그럴까?’ 하는 것이, 제가 오래 동안 관찰하고 연구하는 과제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설교도 쎄고, 또 도전도 강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성도들의 삶을 보면,

설교를 설렁설렁하게 하는 다른 교회의 성도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이

더욱 충만의 복을 받고, 더욱 기뻐하며, 더욱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당연할 것 같은데..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제가 수년간 아주 관찰을 거듭해서 내린 결론은,

성경을 많이 배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자원을 갖고서도,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아주 작게 배우고서도,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핍박당하는 지역에 사는 성도들이 그럴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어떤 학생은, 부자 아버지를 두어서,

집에서 참고서, CD교재, 컴퓨터, 인터넷.. 모두 아낌없이 다 사 줍니다.

공부 잘 하라고요!

 

그렇게 하면 학교에서 공부 1등할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그런 학생이 공부 잘 하는 경우도 소수 있겠지만,

오히려 공부를 더 못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바닥에서 헤맵니다.

 

그런데 어떤 가난한 학생은,

부모가 컴퓨터도 못 사주고, 책도 제대로 못 사주지만,

공부를 1등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또한 교육이 잘 되는 교회 교인들이 그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배우는 것은 가득하고, 교육 자원도 많은데.. 실제로 그 삶의 열매는

그렇지 못한 신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비단 우리 교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제가 보니까, 다른 교회들도 모두 비슷합니다.

 

교회에 많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고,

잘 가르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성경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또한 배웁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하고,

그렇게 신앙이 변질되기는..

성경을 안 배우는 사람들과 별반 다름이 없더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신자들이 많이 배우지만, 시험에 계속 낙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만 낙방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낙방하고, 다음 해에 또 미끄러지고, 그 다음 해에 또 Fail 합니다.

그래서 성장이 없습니다.

 

배우기는 배우고, 출석은 꼬박꼬박하는데,

실제로 하나님이 삶에서 시험을 딱 주시면,

그냥 미끄러져 버리니까.. 많이 배우고도, 아무런 진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 배운 사람과 상태가 거의 똑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교회에서 배우는 것도 필요하고, 자기 개인적 연구도 필요하지만,

본인 스스로, 실전에서, 즉 평소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시험을 이기며 살려는.. 부단한 노력과 애씀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앞서,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매일 시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그걸 깨달아야.. 시험에 이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 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까.. 시험에 늘 낙방하고,

그래서 수년을 교회에서 배워도, 아무런 진보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후에

출14장에 홍해를 건넌 사건이 나오고

15장에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역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1절.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우리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 받은 이후에,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가장 첫 번째로 하신 일은 ‘시험 test’이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25절.

 

출애굽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애굽의 군사들을 물리친 후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특별히 미리암이 소고를 치며, 그 찬양을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기쁨의 찬양이 있은 후에,

그들이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마라의 쓴 물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기갈과 목마름은,

사실 하나님의 시험이었다고, 위 본문 출15장25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험’은 어떻게 보면, 그들이 구원 받은 이후에, 구원 받자마자

처음부터 그들에게 닥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이런 하나님의 시험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요..

 

예수님도 보십시오.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제일 처음 당하신 일이 ‘광야에서 시험’ 당하신 일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험이 무조건 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과하기만 하면, 승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험을 금방 통과하셨는데,

광야에서 출애굽 백성들은, 시험에 자꾸 미끄러지다보니,

그들은 40년을 계속해서 시험을 치르고, 또 치러야 했습니다.

 

▶여러분, 출애굽 백성들은 마라에서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4절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하면.. 우리는 시험에 낙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대기를 던져서, 쓴 물을 달게 하실 계획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마라(쓴 물)로 인도해서, 그들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뭔가를 예비하고 계시면서도,

그 중간에, 우리를 괴롭게 하셔서,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린다고 하시면서,

어째서인지 제 사정은, 몰라주시네요.

제 주위를 보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게 아니라, 사탄이 다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사탄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으로 믿는, 즉 불평은 불신앙이 됩니다.

 

그런데 신자가, 문제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불평대신에 하나님을 찬양하면,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2절에 보시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난 40년 내내, 그들 백성들을 테스트 하셨다고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신8:2

 

그런데 출애굽 백성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시험test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고, 40년을 지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8:2절, 모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40년간이나, 그들을 시험하셨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시험보기 전에 ‘시험 본다’ 하고 말을 하고, 시험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보니까, 시험 보기 전에 ‘시험 본다’는 말씀을 주지 않으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매일, 매 순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신8: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다 보고나서

‘지난 40년은, 여러분을 시험한 것이었다’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보기 전에가 아니라,

시험을 보고 나서, 그것은 시험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시험을 보시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네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하려 하심이라!’ 신8;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네가 겸손한지 아니한지 보자.’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인지.. 한 번 보자’

 

여러분, 하나님은 매일, 매 순간,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욥7:17~18

 

시험은 좋은 것입니다.

시험에 합격해야, 승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승진시키기 전에, 반드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여러분, 신자들이 교회에서 수년을 배우고도, 진보가 없는 것은,

그들이 시험에서 늘 미끄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미끄러지는 이유는,

자기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지 못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험에 반드시 합격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승진을 받으시는,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테스트하십니다 P2         사55:11, 롬2:15          출처보기

 

만나는 하늘에서 매일 내렸습니다. 그것을 이틀 분량을 거두어들이면, 먹고 남은 분량은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는 하늘 양식, 생명의 양식을

매일 새롭게 거두어들이고, 매일 새 만나를 섭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1주일에 한 번, 만나를 거두어서, 먹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먹은 만나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만나는.. 그 다음 날에는 반드시 부패해 버립니다.

 

우리는,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만나는 매일 새롭게 거두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거두고,

매일 만나를 새롭게 먹는 삶을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거두는 훈련을, 40년이나 계속했습니다. 매일 거두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철저히 훈련했던 것입니다.

 

만나를 먹는 것.. 저는 이것이 그저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들어 보세요.

 

광야 백성들은, 그 당시에, 각자가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귀로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갖게 된 것이,

      지난 6천년 역사로 보면,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영어나 독일어 등 일상적 언어로 번역하고,

또한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어서, 성경을 대량 인쇄해서 책으로 보급했던 때는 약 16세기 때부터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약교회 시대에서도,

무려 1500년 동안, 신자들은, 자기 소유의 성경 없이 신앙생활 했습니다.

 

지금처럼 각자가 성경책을 소유하며 신앙생활 한 것은,

5백년 기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본문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난 15세기 동안의 신약교회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자기 성경 없이, 자기 성경이 없어서, 성경을 못 읽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이 기억력이 좋아서, 성경을 죄다 머리로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고, 

과연 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왔던 것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자기 양심의 음성>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이나, 또는 더 자주

교회나 모임에 나가서, 거기서 낭독되는 성경말씀을 듣거나,

또는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성경이 없으니까, 집에 오면, 더 이상 성경말씀을

개인적으로 읽거나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도 없이, 성경도 읽지 않고, 어떻게 신앙생활 했을까요. 

생각해 볼 때.. 그들은 자기 양심의 음성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기 양심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우리처럼 매일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때가 못 되었으니까,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고,

 

성경을 읽든지, 설교를 듣든지,

우리가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과 유혹의 갈림길에 부딪히게 될 때,

성경말씀이 생각이 나든지,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든지.. 그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신자들이,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냥 책 읽듯이 하고,

제가 보기에는, 그 성경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실제적 삶에서는, 그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의 삶에서,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늘 생각이 나야하고,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늘 내 귀에 들려져야 하고,

우리는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성경공부 과정을 아무리 많이 이수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의 삶에서,

시험을 이기는 훈련,

내가 늘 시험을 보고 있다는 훈련,

시험이 올 때, 내 양심의 음성이나, 성경말씀을 기억하면서, 거기에 내 스스로 순종하는 훈련..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성경공부, 성경읽기, 설교듣기만으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지식만 놓고 따지면, 아마 마귀가, 여러분보다, 성경지식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마귀가 성경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보십시오. 

그는 성경구절을 귀신처럼 많이 알고 있는, 성경박사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구절에 따라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마귀에 순종해서, 마귀가 해석하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엉뚱한 일을 추진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죄를 지었으면, 두렵고 떨어야 할 시기인데,

어떤 사람은, 그 성경말씀을 잘못 적용해서, 자기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성경에 ‘평안하라’는 구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반대로, 그때는 평안해야 될 때인데도,

말씀을 거꾸로 적용해서, 평안하지 못하고, 늘 벌벌 떨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맞지만,

다만 ‘문자로 기록된 성경책’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그냥 문자와 문장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내가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매일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자기가 크리스천의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자고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개인적인 성경이 없던 시절에,

성도들은, 자기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우리가 성경을 매일 못 읽는다 하더라도,

우리 각자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

매일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최고의 목표 달성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목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 만나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는..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매일 읽는다 해도,

그 말씀을 엉뚱하게, 마귀적으로, 잘못 적용할 수 있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기 의, 자기 공로에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매일을 삶에서, 여러 선택과 유혹의 상황에 맞딱뜨릴 때, 

그 성경말씀이 기억나든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가 기억나든지 해서,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그 유혹을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 시험을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설교가 쎄고,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우리 교인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교회 교우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말씀드린 것도,

‘자기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 그렇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지만, 늘 현실에서 유혹과 시험에 낙방할 때, 그렇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각자 성경을 갖고서, 또한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각자 개인소유의 성경이 없었던 지난 5천년 동안의 성도들보다 신앙생활을 훨씬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과거에 그들은 ‘양심을 통한 주님의 음성’에 민감했고,

거기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해 왔고,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무수히 배우고 읽어도,

‘그 주님의 음성’에 둔감하게 살고 있다면,

 

성경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경을 못 가진 그들의 신앙생활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체 주제를 알아채셨지요?

설교를 듣든지, 성경을 읽든지.. 그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반드시 평소의 삶에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훈련을 하는 것! 일상의 삶에서..

그 내면의 음성에 따라 시험을 이기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 내린 만나가, 하루가 지나면 변질되어, 거기서 냄새가 났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씀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 성경말씀이, 우리 삶에 적용되지 못하고,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들은 말씀, 읽은 말씀, 배운 말씀은.. 다 냄새나는 것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즉 만나를 주십니다. 

그렇게 날마다 말씀하시는 (즉, 만나를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저 성경을 무슨 책 읽듯이 매일 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매일 주시는 음성을 받아서, 그 음성에 순종해 보십시오. 

그 말씀을 주시는 것은, 위 구절에 의하면, 반드시 그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이 매일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 보십시오.

그런 삶이 1년 365일 쌓이고, 3년, 5년이 쌓인다면,

얼마나 풍성한 열매가, 즉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겠습니까!

 

여러분 창세기 1장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무슨 놀라운 창조가 매일 일어났습니다.

 

비록 그렇게 거창한 천지창조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매일 말씀하시고, 내가 거기에 순종하면,

내 삶에도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오늘도 매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매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또한 성경을 읽어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또 듣기는 들어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역사가,

내 삶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 말씀을.. 우리가.. 귀로 듣는지 아니 듣는지.. -그 말씀을.. 우리가
순종의 삶으로 듣는지 아니 듣는지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테스트 하십니다.

 

단순히 성경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그 하나님의 음성이 반드시 내 양심에, 내적인 음성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지난 5천5백 년 동안, (최근 5백년을 제외하고)

개인적 성경이 없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양심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각자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또한 각자가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양심을 통해 내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배우지만,

      실제로 성도들의 신앙은, 늘 제자리걸음을 맴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늘 승리하지 못하고, 그 음성에 불순종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듣는 성도는,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면서, 그 죄를, 그 다음 번에는,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성도는,

      한 번 죄를 짓고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계속 짓고, 계속 넘어집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그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의 내면적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그 다음번에 하나님의 음성을 예민하게 더욱 잘 알아듣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래서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마치 귓밥이 쌓여서, 소리를 잘 듣지 못하듯이,

그 다음번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듣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무감각한 신자가 되고 맙니다. 

계속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아프게 받고서, 돌이키게 되겠지요.

 

정리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 설교를 듣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성령으로 변화된) 양심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대체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어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러분께, 내 지난 신앙여정의 비결 하나를 나누고 싶소.

나는, 내 양심에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항상 들으려 했고,

그 음성에 순종하려고 애쓰며.. 지금까지 살아왔소.”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성자로 추앙 받는,

그의 신앙적 삶의 성공의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말이, 맞다고 봅니다.

 

오늘 신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는 이유는,

      첫째는, 그것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에 불순종해도, 당장 무슨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무슨 문둥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집에 불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잃는다든지.. 무슨 재앙이 보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낙방해도, 실패해도,

자기 삶은, 어제와 거의 똑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무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관련글/하나님의 진노(의 성격)

 

어떤 사람은, 4년 과정의 의대를 무려 15년에 걸쳐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매년 졸업시업에 낙방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얼마나 가련한 인생입니까.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떤 크리스천들은, 매년 그렇게 수없이 낙방하면서도, 희희낙락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전혀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가만히 관찰해 보았더니

신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은 우리는,

1. 하나님의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시험을 즐거워하고, 시험을 이겨서,

하나님께 승진의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신자들이 설교를 듣고, 성경도 읽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 양심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니까, 순종도 못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성경말씀을 통해서, 내 양심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반드시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음성에 순종해 나가는 삶을 꾸준히 살아가면서, 내 삶이, 그 음성을 분변하는 일에, 더 민감해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삶을 통해서 모두 다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고, 

또한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더 읽으실 분 ..............

 

여러분,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앞에 두고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 시험은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죄를 짓지 않았고, 아직 타락하기 전이어서,

오늘날 우리처럼 ‘부패한 양심, 전적 타락한 양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소곤거리는 소리 정도로 듣는다면, 그들은 아마 그 음성을

트럼펫 소리처럼 크게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 이전에, 아직 그들의 양심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귀의 달콤한 유혹의 음성에 넘어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시험이 그만큼 교묘하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의 양심은,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아서, 부패한 양심이고, 전적 타락한 양심이라서, 

양심 자체가 잘못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면,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도,

그 속 양심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부패하고 타락한 양심의 본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속에 부어졌습니다. 우리는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된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은 아직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는, 어쨌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며, 시험을 이기는,

그런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 나갑시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