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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마16:13-20, 고전16:19 2011.02.13.
인명진 목사 2011년 설교 스크랩 ☞ ▣교회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지만 인생이 세 기둥에 얹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인생을 지탱하는 첫 번째 기둥은 가족입니다.
가정이 든든해야 우리 인생이 든든하고 가정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가정은 우리의 인생을 떠받치는 큰 기둥입니다.
2) 두 번째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가정에서 가사일을 하든지
한 평생 일을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인생을 떠받치는 일이 재미있어야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직장에 가는 발걸음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라면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여성들이 늘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죽을 때가 된 것입니다.
일은 우리 인생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입니다.
3) 나머지 하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신앙과 교회입니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신앙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불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기둥만으로는 삐거덕거리기 싶습니다.
신앙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목사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즐거워서 그 인생이 행복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 때문에 고민하고 상처받고 어려움을 당해 인생이 불행한 사람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일,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즐거워야, 그 인생이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가정이 행복해야 하지만, 우리 가정에 많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일도 재미있어야 마땅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때문에 짐이 되고 아픔이 되고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교회생활에 걱정과 근심이 있고 상심과 마음 아픈 일로
교회를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저 자신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모태신앙으로 철이 없었던 시대에는 교회가 한없이 좋았고
목사님이 천사처럼 보였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의 불의한 모습, 목사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속았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좋은데 교회는 틀렸구나,
예수님은 믿어도 교회는 다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몇 년 동안 교회를 떠나 무교회주의자로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 때문에 교회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기도 했습니다.
<밀양>이란 영화를 보면 교회에 실망한 여인이 위선적인 장로님이
예배드리는 집에 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교회에 가졌던 분노와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제가 보더라고 교회 안팎에는 돌팔매질을 받기에 마땅한 위선과 불의와 타락의
부끄러운 모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되고 겸손하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듣고 보셔서 아는 대로 지금 한국 개신교의 위기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교회가 타락되었습니다. 부패와 불의가 가득하고 거짓과 가증스러움이
교회 안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한국교회가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세계 교회 역사가 2000년이고 한국교회 역사가 127년인데
이 교회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부끄러움과 타락된 모습이
시대마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라고 불릴 수 없을 만큼 타락했던 때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있었고 지난 2000년 동안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아 보려는 개혁이
오늘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교회는 벌써 망해서 없어져야 할 집단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타락하고 거짓과 불의에 가득 찬 국가는 망하지 않은 국가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제국은 부패와 타락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세교회의 타락은 로마제국의 타락보다 더 심했습니다.
국가만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교회만큼 부패한 곳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부패와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 찬 교회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시간 관계상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중세시대 지금의 천주교의 부패는 극심했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의 부끄러움이 중세의 천주교 안에 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의 치부와 사치가 극에 달했으며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무지한 교인들을 속이고 협박해서 돈을 모으고 사치하고 자식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헌금을 하면 다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헌금을 강요해서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치부해서 자식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천주교의 사제들의 독신제도는 교회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세 천주교에서는 성직자들이 밖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허용을 했지만
다만 법적으로 자식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재산은 물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록이 교회 역사가운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의 부패와 음란이 극에 달해
성당 안에 신부의 조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이라는 조직이 생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이 읽지 못하니까
신부들이 자기 마음대로 교회에 순종하고 충성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천주교에서 절기를 따라 바꾸어 입는 성직자들의 옷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타락과 불의가 가득하자 마르틴 루터라는 젊은 신부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개혁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천주교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위에 세워보자고 생긴 교회가
우리 개신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틀림없이 하나님은 깨끗하고 공의를 따르는 개신교를 선택하시고
불의와 타락과 음란이 가득한 천주교는 버려야 합니다. 천주교는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천주교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교세도, 천주교의 기독교적 영향력도 개신교만 못지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패하고 타락했던 천주교와 함께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천주교가 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전한다는 것이 사회적인 평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부패한 교회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 것일까요?
어떻게 이것을 설명할 것입니까?
▲한국교회의 역사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일정시대에 일제는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요구했습니다.
이 일로 한국교회가 양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신사참배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므로 목숨을 다해 거부해야 한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옥사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성직자들이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일제와 타협하고 우상을 섬기고 배교자가 되었습니다.
목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해방 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믿음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옥중성도입니다.
이들이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한 지도자들은 교회를 떠나거나 수찬정지(성찬식 배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두 세력이 서로 싸우다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
배교한 사람들과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고
경상남도와 부산 지방 중심으로 갈라져 나간 것이 고신파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당연히 목숨을 내걸고 감옥에 가고 죽어간
신앙의 정조를 지킨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정조를 버린 이들을 더 크게 하시고 발전시켜주시고
더 왕성하게 일하게 하시고, 더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설명할 것입니까?
저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국가, 조직, 단체는 타락하면 다 망하지만 교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끄떡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겉보기에는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2000년 동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무서운 곳입니다.
사람이 이러고저러고 시비를 걸고 함부로 나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니, 사람이 타락하고 불의해도, 그 사람은 망할 수 있지만
교회는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때가 되면 고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고친 교회가 그래서 또다시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 고치고 설치다가는 부정을 타게 됩니다.
사람이 교회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다 자식을 기르지만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식을 나무랍니다.
그런데 나는 내 자식을 나무라지만 다른 사람이 내 자식을 욕하고 나무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자식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됩니다.
조카라도 그렇고 손자손녀라도 말하면 안 됩니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야 합니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만 나무랄 수 있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나무랄 수 있는 것입니다.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구스 여자를 만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일로 미리암과 이 모세를 비방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와 미리암과 아론을 불러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시며
그 자리에서 미리암에게 나병이 걸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잘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지 40년 가까이 되었는데 교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절대로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개혁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동역하는 목회자들의 잘못을 내가 고쳐보겠다고 나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생 동안 원칙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70년대 산업선교회를 할 때 정부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정부에 붙잡혀가서 매도 맞고 고문도 당하고 옥살이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노회나 총회나 교회가 저를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를 빨갱이다 정치목사다 목사도 아니라며 온갖 말로 비방하고 탄압을 했습니다.
노회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저와 같이 앉았다가 무슨 어려움을 당할까 (빨강색 조력자로 몰릴까봐)
두려워 아무도 저와 함께 앉지 않아 늘 혼자 먹었습니다.
제가 노회에 갔다가 눈물을 흘리지 않고 돌아온 때가 없었습니다.
그 설움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은 정부에 아부하고 축복하고 그 덕으로 출세하였습니다.
산업선교회를 없애려고 하고 저를 제명해서 내쫓으려고 얼마나 핍박하였던지
그 억울함이 가슴에 한이 맺혔습니다.
정부로부터는 육체적인 고통을 당했지만
정신적으로 교회 때문에 당한 고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마음속에 언젠가 독재정권에 대해 한마디 바른말도 못하고
정의를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핍박하는 이들을 심판하겠다,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 갔는데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자기들만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목사냐 정말 교회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틀렸으니 한국교회를 고쳐야 한다, 한번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보니,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들과 함께 엄청난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잘못을 죄를 모르시는가?’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저들을 통해서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구나
‘내가 잘못하면 미리암처럼 나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역사의식도 없고, 많은 잘못을 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저도 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나라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을 정죄하고 고치고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한 번도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때 나온 것이 제 유명한 신앙고백적 주장인 ‘구더기론’입니다.
예전에 시골은 다 재래식 화장실로 여름철이 되면 구더기들이 많았는데
그 구더기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릅니다. 어떤 구더기는 한 참 올라가고
어떤 구더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다 위에 있는 구더기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집니다.
그러니 위에 있는 구더기나 아래 있는 구더기나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위에 있는 구더기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가 누구를 비판하겠습니까? 누가 누구를 정죄하겠습니까?
중세시대의 타락한 신부들이나, 개혁하겠다던 마르틴 루터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서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몫이니 사람이 나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여러분이 다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한국교회의 타락과 부끄러움을 보고 눈감고 그냥 침묵하면 되는 것입니까?
비겁한 것이 아닙니까? 묵인하는 것이 아닙니까?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까? *2011년 설교
한국교회의 불의에 분노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이 모습을 보고 그냥 앉아 '하나님께서 하시겠지?' 눈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개혁해보아야겠다고 바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개혁연대를 조직하고 인터넷 신문을 만들어서 교회의 비리에 대해 고발할 것인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분노가 있고 화가 나는 그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좋은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서
교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 분노하는 것을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좋은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하는 일에
우리의 기도와 관심과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갈릴리교회이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 세습이 나쁘다고 하면서, 여러분의 돈을 자식에게 맡깁니다.
여러분이 가진 돈이 하나님의 것인데, 왜 돌려드리지 않는 것입니까?
교회 세습을 비판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런 정도의 삶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권주의가 나쁘다, 목사들이 명예를 탐하고 돈쓰고 선거하는 것이 나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안에서 명예를 탐하지 않겠다, 총회장이나 노회장이 되려는 욕심을 버리기로
스스로 약속을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사랑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헌금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직자들의 타락을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우리들 스스로는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물량주의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는 힘을 긍정적으로 에너지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개혁(改革)이라는 단어의 개(改)자가 자기 기(己)에 아비 부(父)자를 쓰는 것입니다.
자신부터 고치고 애비를 고칠 때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아버지가 같이 변해야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부끄러운 모습인데, 눈감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분노가 쌓이고 화가 나지만, 그 (비판하는) 힘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좋은 모습을 가꾸고 만들어서
내가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마태복음 13장 말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원수들이 그날 밤 나쁜 씨를 뿌려 가라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가만두라고 합니다. 가라지 빼려다 곡식이 다칠 수 있고 잘하려다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추수할 때 하나님이 직접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 교회는 보배가 담긴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질그릇과 같지만 소중한 보배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면 헐뜯고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되고, 이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위로받고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사람이 함부로 비난하고 헐뜯고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에 눈을 감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나고 분노하는 힘을, 좋은 교회를 만드는데 쏟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이 교회라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지혜와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일이고 교회를 개혁하는 일입니다.
이런 모습의 신앙, 이런 모습의 노력이, 우리 갈릴리교회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1년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