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0 주일예배 // 골로새 교회의 거짓 교사들 (골11강) YouTube
◈골로새교회의 거짓교사들 골2:16~23, 막10:45 ☞이전 글 보기
본문 골2:8~23절은 골로새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거짓 교훈에 대해서
바울이 책망하고,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바울이 A - B - A' 구조로 기록했습니다. 주1)
골로새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더니 거짓 교훈이 거짓 교훈의 실체가 도대체 뭔가요?
학자들마다 약간 논란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 구절에서, 즉 사도바울은 세 가지로
골로새 교회를 힘들게 했던 거짓 교훈의 내용을 말하고, 또 반박합니다. (16, 18, 21절)
◑거짓교사들이 골로새 성도들을 비판한 세 가지
▲2:16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 말은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비판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하면, 거짓 교사들입니다.
근데 거짓교사들이 왜 성도들을 비판했나요?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또 절기, 초하루, 안식일 때문에
지금 성도들을 비난하고 있다는 겁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대부분 다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이 에바브라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골로새 지역에는, 굉장히 큰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유대교에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죠. 아마 유대인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구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야 너희들은 구약 성경에 보면, 이런 거를 먹지 마라 그랬는데 왜 먹냐?
또 이런 거 마시지 마라 그랬는데 왜 맘대로 먹고 마시냐?
이런 절기들을 지키라고 했는데, 왜 너희들은 지키지 않느냐?'
'먹는 문제'
먹는 것은 주로 고기와 연결이 됩니다.
레위기에 보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이 있고
또 먹지 말도록 한 부정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 같은 거죠.
'마시는 문제'는 포도주입니다.
근데 포도주는 구약 성경에서 누구한테 금했느냐?
-제사장들
-스스로 나실인 서약을 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게 했습니다.
그 외 일반 성도들에게는 포도주를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짓교사들은, 성도들이 아무 거나 먹고 마신다고
지금 골로새 성도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죠.
'절기, 초하루, 안식일'
이것은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날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날들입니다.
절기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거죠. 유월절, 무교절, 맥추절, 초막절, 나팔절 등 이런 절기들.
초하루(월삭)는 매달 첫 날,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거죠. 민28:11등
안식일은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겁니다.
유대교인들이 지켰던이 거룩한 날들을
예수님을 믿게 된 이방인들에게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거죠.
골로새교인들이 안 지킨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 문제는
분명히 일반 성도들한테는 포도주를 금하지 않았는데,
거짓교사들은, 성경을 원래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한 거죠.
즉 단1:8절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청년들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당시 바벨론에서, 왕의 음식과 포도주는 신들에게 먼저 드려졌던 음식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과 친구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에는 일반 성도들한테는 포도주를 금하지 않았는데,
다니엘이 이방 궁정 상황에서 스스로 포도주를 금한 예를 들어서,
거짓교사들이 무리하게 '모든 성도들에게' 금지조항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모든 축제와 문화는, 이방우상숭배와 연관이 되어있었죠.
당시 이방인 지역에 흩어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한(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결심했느냐?
그들 스스로 잔치 음식인 고기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는 거죠.
학자들은 여기 나오는 '먹고 마시는 문제' 또 '절기를 지키는 것'을
'울타리 규례'라고 칭해요.
이교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자신의 믿음을 보호하기 위한 결단으로, 마치 울타리와 같은 규정들이라는 거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유대인들보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의 숫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를 지키는게 중요했죠.
그러니까 골로새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거짓 교사들은
율법주의적인 성향을 가졌던 거죠. 그리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신앙생활 하고 있었던 거죠. 거짓교사들은 유대교와 혼합된 기독교를 믿은 거죠.
▲2:18절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해라'
'정죄'라는이 표현은
NIV는, disqualify 로 번역했는데 *부적격
축구할 때 운동선수들이 반칙을 하면 레드카드를 줘서 퇴장을 시키잖아요.
그와 같은 뜻으로, 어떤 사람이 성도한테 레드카드를 주는 거죠.
'너 퇴장이야, 너는 하나님 백성이 될 자격 없어!' .. 이게 '정죄'의 원래 뜻입니다.
그렇게 정죄하는 근거가 무엇이었느냐?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로 인해서
'꾸며낸 겸손'은 '자발적 겸손'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긍정적인 뜻보다는,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어요.
겸손은 좋은 말이지만, 뭔가 꾸며내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겸손한 척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겸손은 부정적인 겸손이죠.
'그 본 것을 의지하여'
지금 천사숭배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우쭐거리는 겁니다.
자기들이 본 것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 앞에 정말 자신을 높이는, show up 하는, 교만하게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겸손과 천사 숭배'는 무엇이냐? :18
학자들은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1) 천사숭배..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천사를 숭배하는' 거죠.
왜 사람들이 천사를 숭배하겠습니까?
꾸며낸 겸손으로!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 내가 직접 나가기는 자격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나가겠다.. 라는
그런 뜻에서 '스스로 꾸며낸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거죠.
원어적으로 '자발적 겸손'인데, 부정적 의미의 겸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천사를 숭배하고, 천사에게 기도하는 겁니다.
2) '천사숭배'의 두 번째 해석은,
'천사가 예배드리는 것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 것을 의지한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사6:1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6:2절에 스랍들, 바로 천사들이죠. 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아요.
그러면서 6:3절을 보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바로 이 천상의 천사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것을 보고 들으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호라, 나는 바로 부정한 사람이로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 거죠. :5
계시록 4장과 5장에도 하나님 보좌에서 천사들이 찬양하고 예배하는 모습들이 나오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18절에 '천사숭배'란,
'천사들이 드리는 그 예배를 보고 참여하는,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 나름의 성경적 근거는 사6:1~5절이죠. *천사를 숭배하는 것과 구분 요
그러면 그 앞에 나오는 '꾸며낸 겸손'은 무엇이냐?
대부분 '금식'으로 이해를 합니다.
바로 그 천상의 체험, 그 천상의 예배에 참여하려면
자신들을 철저하게 준비시켜야 되는데, 그게 바로 '금식'으로 나타나는 거죠.
23절에서,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이 한 번 더 반복됩니다.
두 번째 거짓교사들이 가르쳤던 내용은, '유대적 신비주의'였어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냐? 천상의 예배,
천사들이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고,
그때 본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그것을 의지하고,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는' 사람들이 거짓교사였고,
'그것을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가 그렇게 떠벌린다는 뜻이에요. :18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레드카드(정죄 :18)를 남발하는 사람이 바로 여기 나오는 거짓교사들이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21절과 23절에 세 번째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21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이것은 바로 거짓교사들의 슬로건 중에 아마 하나였죠.
율법주의와 관련해서, 자기를 '부정 unclean 하게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거짓교사의 슬로건이었다는 겁니다. 이건 금욕주의죠.
2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3절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자의적 숭배'
참 무서운 말인데, 스스로 만들어낸 예배입니다.
뒤에 이어져 나오는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을 봐서
'자의적 숭배'는 뭔가 하면,
천상의 천사들의 예배를 거짓교사들이 환상으로 봤다는데
'그 예배를 흉내내는 예배'로 봅니다.
'자의적 숭배'는 그 다음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과 연결되어져 있죠.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고행'입니다. '금욕주의'입니다.
특별히 헬라 로마 시대에는 플라톤주의가 유행했는데,
몸과 영을 나누는 이원론이 지배했던 시대였죠.
몸은, 죄악 덩어리고 욕망 덩어리입니다. '몸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라고 생각해서
몸을 학대하는 것이, 마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길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되어졌던 적이 많습니다.
거짓교사들도 금식하고, 몸을 학대하면서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냐?
'천상의 체험을 누리는' 것을 그들은 기대했다는 거죠.
이것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정리해서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면
첫 번째는 율법주의였습니다. :16
두 번째는 신비주의였어요. :18
세 번째는 금욕주의였습니다. :21, 23
근데 이 세 가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대해서 바울의 3가지 반박은 무엇인가요?
▲1. 첫번째로 율법주의와 관련해서
17절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것들은'
먹고 마시는 규정들, 절기 규례를 뜻하죠.
'장래 일의 그림자'
하나님이 이런 율법 규정들을 주셨을 때는, 완성품으로 주신게 아니라
앞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래에 완성될 일에 그림자로 주신 것이지,
완성품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계속 이야기합니다.
'몸은' (그림자의 실체는)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설명한다 라고 하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몸'은
그림자와 대조되는 '실체'로 이해합니다.
몸은, 즉 실체는 바로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지금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율법의 이런 규정들은, 바로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셨을 때 그 이루어질 온전한 구원,
그런 새로운 삶의 모습들, 그것을 비추어 주고 반영하는 그림자이고,
실체인 '몸'은 바로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다...
갈3:19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해 바울이 가장 강조하는게 무엇이냐?
당시 유대인들이 절대화시켰던이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이것을 가장 깊이 고민하고, 이 문제을 연구해서 표현한 것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야기하죠. 율법은 무엇이냐?
'약속하신 자손(그리스도)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다' 갈3:19
율법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라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히10:1절도 한번 보시죠.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니라'
바로 그림자와 같은 것(율법)이 있고, 그것의 실체는 그리스도라는 거죠.
율법은 그림자이고, 제사나 절기는 사람을 더 이상 온전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으니까요.
너희 거짓교사들은 지금 어떤 잘못을 범하느냐?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를 계속 붙잡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2. 두번째로, 신비주의와 관련해서 19절을 한번 보십시오.
이런 말씀들은 그냥 외워두시면 됩니다.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당시 신비주의자들은 천상의 예배에 참여합니다.
놀라운 환상을 보죠.
옛날에 기도원 같은데 가면, 입신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지금도 유튜브데 보면, 입신해서 보았던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바울은 뭐라고 평가하느냐?
그들은 그들이 보았고 경험했던 신비한 환상, 신비한 체험 때문에
'그들은 머리(그리스도)를 붙들지 아니한다' :19
이것이 그들의 치명적인 오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 몸은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19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자라가려면
머리와 연결되어져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신비주의자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늘 자기 신비체험을 우선적으로 붙드는 거죠.
이어지는 20절을 보면,
바울은 이런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던 골로새 일부 성도들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0
'세상의 초등학문'
이것은 앞서 2:8절에 나왔던 말이죠.
초등학문, '스토이케이아' 라는 말은 '기본 원리'들입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본 원리들이다' 라고 하면, 율법주의와 연결이 됩니다.
-'기본 영들이다' 라고 해석하면, 신비주의와 연관 됩니다.
'너희 골로새 일부 성도들, 거짓교사들을 따르는 자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고,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해 죽었는데,
마치 불신자들처럼 '세상의 기본 원리들을 따라서 살아가느냐, 거기에 순종하느냐?'
라고 바울이 책망하죠. :20
▲3. 세번째로 21절에 대한 바울의 반박입니다.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가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인데,
율법주의와 관련해서, 자기를 '부정 unclean 하게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이것이 거짓교사의 슬로건이었죠.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참고로, 21절과 22절에, 성경에 괄호( )가 있는데, 무시하시면 됩니다.
후대에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괄호( )를 넣었는데, 무시하는게 이해에 도움됩니다.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 라고 바울은 반박합니다.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22
율법주의의 금지 규례들,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 없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데, 왜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절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바울은 단칼에 얘기합니다.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아무리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굶기고 고행을 한다 할지라도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 이렇게 바울은 교훈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세 거짓 교사들의 세 가지 가르침을 소개했고,
그것에 대해서 3가지로 반박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율법은 (신앙생활에) 필요하죠.
또 신비적인 경험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금식과 고행도 필요하죠.
근데 이것이 언제 거짓된 교훈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보다 더 우선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것은 거짓된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야기했습니다.
'이 율법의 규정들은 그림자다. 그 그림자의 실체는 누구냐? 그리스도다.
신비적인 경험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거짓교사)이 범하는 치명적인 위험과 잘못은 무엇이냐?
머리 대신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고, :19
그들이 본 경험을 붙잡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정말 금욕주의 고행에 빠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칭송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금욕과 고행이, 육체를 따르는(육신대로 사는 것) 것을 금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23
결론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느냐?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율법도 자기 자리를 찾고,
신비적인 경험도 자기 자리를 찾고,
고행도 자기 자리를 찾는다는 겁니다.
◑적용
▲첫번째, 율법주의에 대해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쭉 돌아보았을 때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율법주의의 통제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교회에서 틀었던 대부분의 메시지는 무엇이냐면 '뭐를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뭐 하지 마라, 뭐 먹지 마라'
그래서 청년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목사님, 예수 믿으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왠만하면 다 죄니까요.'
제 자신도 과거에 청년시절에, 정말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그럼 해야 되는 것은 뭡니까?
'주일을 지켜라, 헌금 해라'
'(주일 지키고, 헌금 한 다음에) 그 다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죠?'
'......'
제가 청년 시절에, 교회 오면 허구한 날 들었던 이야기가 '회개하라' 였어요.
당시에 저는 약 2년 동안, 하나님을 정말 한번 만나 보려고
이빨 깨물고 수련회에 참석해서, 매 시간마다 제 모든 것을 정말 집중을 해서
하나님만 만나 보려고,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한번 들어보려고,
2년 동안 들었던 말씀 '회개하라'에 의거해서
제가 무릎 꿇고 3살 때부터 잘못했던 것을 다 기억해내서 2년 동안 반복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련회에도 참석해서, 하나님이 제게 은혜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했죠.
집회 마지막 시간이 됐을 때, 저는 정말 그렇게 느꼈어요.
'하나님, 제가 회개하고 회개했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무엇하며 살아야 되는지, 이제는 길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근데 마지막 날 집회에 참석했는데, 또 '회개하라!' 그랬어요.
제가 집회장소를 도중에 뛰쳐나와 버렸어요.
'이놈의 교회는 도대체 회개하라는 거 말고는 할 말이 없나?
아니 돌아서라(회개하라) 그랬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방향을 가르쳐 주지는 않고,
무조건 회개하라, 돌아서라는 말만 반복해서 하는데...'
제가 그때 얼마나 열 받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집회장소를 뛰쳐나와 가지고...
저는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가장 큰 놀라움은,
제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셨어요.
정말 대화가 되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제 삶의 모든 고민을 그분과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시 저도 집안이 어려웠기 때문에 '의대를 가라'고
부모님들과 온 가족들이 막 저한테 닦달을 했어요.
근데 제가 한번 집회에 갔다가, 그때 목사님이 이렇게 도전했어요.
'오늘날 과학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주의와 무신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과학 분야에서 입증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야 됩니다.'
제가 그 말에, 아멘하고 받았어요.
저는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정말 증명하고 싶었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질문을 하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저한테는 놀라운 답변들을 주셨어요.
저는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충격받은게
제가 과학사를 쭉 공부하다 보니까
정말 경건한 분들 중에, 존 뉴턴 같은, 케플러 같은 과학자들은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이 뭐라고 이야기했느냐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두 가지의 놀라운 언어를 주셨다.
하나는 성경이고, 하나는 수학이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답답했습니다.(이해가 퍼뜩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수학이라는데,
제가 그 말 뜻을 좀 깨닫게 해 주십시오. 수학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수학의 깊은 증명 과정과 복잡한 풀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지혜의 오묘함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뜻인듯)
저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기뻤던게 뭐냐면
'내가 삶에서 가지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답을 주실 수가 있구나'
그리고 예수님 만나고, 정말 제가 자유를 얻은 것은,
그 전에는 1등 하는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건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1등 하기 위해서 제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그런데 제가 1등을 했을 때는, 잠깐 찰나적인 기쁨 뿐이었어요.
나머지 순간은 또 1등을 하기 위해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또 살아가야 되었던 거죠.
(지금 율법주의 설명하는 중)
근데 제가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제게 자유를 주셨던 말씀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10:45
예수님이 오신 것은, 1등 하기 위해서 오신게 아니라는 거죠.
대신에 섬기려 오셨다는 거죠.
1등해서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려고 예수님이 오신게 아니고,
대신에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다.. 막10:45
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야 바로 이게 새로운 삶이구나!
더 이상 1등 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재능이라도, 남을 사랑하고 섬기고 헌신하는데 사용하는 것,
바로 그것이 주님이 보여주신 길이구나'
제가 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이렇게 바꾸었을 때
제 속에 비로소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남을 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내 야망이 아니라, 남을 부요하게 하고, 남을 섬기는데 초점을 맞출 때
그때 내 삶 속에 한 번도 경험하지 보지 못했던 기쁨과 즐거움이 솟아나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의미가 있기 시작을 했어요.
저는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가장 즐겁고 가장 기쁜 일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분들이, 하나님이 주신 세상이잖아요.
여러분, 공부하는게 얼마나 재밌어요?
하나님이 주신 세상 속에서, 공부도 거기에 한 영역에 속하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을 통해
하나님이 만드신 영역인 공부를 하면서,
결국 그 공부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은 마음껏 섬기는데,
내가 공부해서 내 재능을 쏟아 부을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우리 가정을,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섬기면
그렇게 사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요?
그러나 우리가 율법주의에 묶이게 되면 무엇이 없느냐?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신비주의에 대해서 적용하면,
제가 예전에 가장 무서웠던게 신비주의였어요.
제가 신학교를 갔는데, 귀신 잡는 전도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만나기만 하면 귀신 때려잡았던 이야기를 자랑스레 하더라고요.
또 성도들을 만나면,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어요.
나는 한 번도 천국 입구에도 못 가봤는데, 벌써 다 가봤대요.
또 제가 충격받은 게, 저희 집사람이 대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했거든요.
미혼 때, 매일 저하고 싸웠어요.
근데 한번 집사람이, 수련회에 갔다가 은혜를 쎄게 받았어요.
그래 가지고 사람이 완전 달라져 돌아왔어요.
신앙도 없던 지매가, 그때 엄청나게 은혜를 받아서, 갑자기 하늘의 사람이 돼 버렸어요.
예언하고, 영분별 하는 은사도 받아왔어요.
그때 제가 2년 연애하면서, 우리 자매가 신앙적으로 깨어나게 해달라고,
영적으로 성숙시켜 달라고 늘 기도했었는데,
수련회 갔다가 너무 세게 은혜를 받아와 가지고...
그런데 집사람이 그렇게 세게 은혜를 받고 나니까,
제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왜냐면 '우리 자매를 보니까, 저렇게 한방에 끝낼 거를
내가 왜 뼈빠지게 성경공부를 가르쳤나?
성경말씀에 순종을 가르친다고 난리를 쳤나?'
우리 자매를 보니까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산에 들어가서, 한 방에 끝내고 돌아온 거예요.
근데 제가 우리 자매를 쭉 보면서 두 번 놀랐어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시니까, 다 알더라고요.
뭐 자세히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두 번째 놀란게 뭐냐? 그렇게 놀라운 은사를 체험해도, 사람은 잘 안 바뀌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성품의 성숙, 신앙인격의 성숙은.. 은혜를 받은 이후에도 오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지금 바울이 이야기하잖아요.
거짓교사들이 눈에 본 것(천사의 예배)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여러분, 누가 천상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는, 육신적 생각과 삶을,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제가 외국에서 공부할 동안에, 한국에서 신학교 다닐 때도
제일 헷갈렸던 것이 '대언(예언)의 문제'였어요.
모든 이단적 가르침에 배후에 '가라사대'가 있습니다. *습관적 예언
지금도 성도들 중에, 용하다는 권사님들 찾아다니는 분도 있잖아요.
근데 제가 정말 참 외국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할 때
과거 1500년 동안 최소한 기독교 영성의 중심지는 수도원이었어요.
제가 수도원에서 나왔던 과거의 자료들 쭉 살펴보니까, 제가 정말 충격 받았어요.
과거 수도원에서도 공중부양이 있었어요.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막 천장으로 올라가고,
고대 성도들이 방언하고 예언을 했어요.
근데 제가 충격받은게 무엇이냐?
그분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놀라운 환상과 예언의 말씀을 주실 때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실 수 있다고 그걸 인정해요.
근데 그 분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하나님이 그거 주실 때, 없다고(안 받았다고) 생각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100% 순수한 말씀을 주시지만,
받아들이는 우리들, 해석하고 표현하는 우리들이 때가 묻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우리 입장으로 (왜곡해서) 해석, 이해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의도대로 해석하고, 알아차리고,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자신들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는 거죠. 자기 부인이 꼭 필요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환상이 주어질 때는,
표현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데 집중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거죠.
저는 그제서야 제 질문이 풀렸어요.
그분들이 가장 강조하는게 무엇이냐?
놀라운 환상을 보고,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뭘 해야 되나? '내려놓아라'
왜나면, 하나님은 그 경험만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은사에 비하면
그것(본 것, 들은 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더 큰, 더 놀라운 말씀,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
네가 과거에 본 것, 들은 것, 체험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놔야 된다.
새롭게 주시는 말씀, 새롭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받아들이려면,
이전 것들을 내려놓아야 된다...
저는 제가 이것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소위 신비주의자들을 대하는데 공포가 제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본문은 이야기하죠.
여러분들이 놀라운 환상과 체험, 그게 (우연히) 생길 때마다 어디로 달려가야 되느냐?
그걸 사람들한테 떠벌리는데 사용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달려가셔야 돼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으셔야 돼요.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붙잡으셔야 돼요.
모든 충만은, 내 체험, 내가 보았던 환상에 있는게 아니고, 주님 안에 있습니다.. 라는 것을
굳게 붙잡을 때, (우연히 생기는) 환상과 체험도 제자리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의도적으로 자꾸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됐고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금욕주의도... 여러분, 고행 한번 해보십시오.
정말 산 속에 들어가서 정말 평생 고행하고,
이 세상이 주는 풍족한 음식 다 내려놓고
몇 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고...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은혜스럽지 않나요?
이것은 기독교 전통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고 나서부터 돈과 사람이 교회로 몰려오기 시작을 했어요.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세속화 되어 갔어요.
이 세속화된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신실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막으로 나가세요.
사막으로 나가서 자기 평생을 고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세상이 줄 수 있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내려놓았어요.
그런데도 사막의 교부들과 기독교 영성가(신비주의자)들을 쭉 살펴보시죠.
그런 철저한 금욕주의, 고행을 통해서도
사람은, 육신의 생각들, 육신의 욕구들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하죠.
육신의 그 생각들을 꺾을 수 있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만이
우리들의 육신적 생각과 행동을 꺾을 수가 있습니다.
고행이, 금식이 우리의 욕망을 꺾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만이,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율법주의, 신비주의, 금욕적인 노력이 모든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합니다.
바울도 로마서라든지 서신서에 보면, 이 모든 것들 부정하지 않아요.
이 모든 것들을 무엇을 위해서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고의적으로 추구하진 말아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머리 대신 그리스도,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할 때,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지혜가 있습니다.
참된 거룩함과 참된 성숙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본문의 A - B - A' 구조
A : 8절, 먼저 거짓 교훈에 대해 경고
그것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누구든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게 해라
사람의 전통, 세상에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B : 2:9~15절이 중심 내용
참된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다.
이렇게 참 복음을, 바울이 설교로 가르쳤죠. 이렇게 참 복음을 교훈한 다음에
A' : 오늘 본문 2:16~23절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울이 설명을 합니다.
이 교훈들이 왜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바울이 반박하는 내용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