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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손 붙잡고 물 위를 걸으라

LNCK 2024. 1. 9. 10:50

https://www.youtube.com/watch?v=_JrspUTR84g  신년집회
◈주님의 손 붙잡고 물 위를 걸으라       마14:22~33      2024.01.08.

"주님의 손 붙잡고 물 위를 걸으라" 
이번 신년특새 주제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전해야 되겠다'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크다'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요? 
우리가 믿음이 더 깊어지길 원하고, 큰 믿음을 갖기 원하는데 
'믿음이 크다'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요? 

'믿음으로 살며,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져 간다' 이건 또 어떤 의미일까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올해 새 한 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삶을 다 내어 맡기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삶을 다 내어 맡긴다' .. 이게 믿음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죠. 
근데 그 이유가, 왜 주님이 그렇게 우리의 삶을 
우리가 모두 맡겨 드리기를 원하실까요? 

여러분, 믿음은 삶을 다 내어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아주 놀라운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이 커졌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철저한 순종의 삶이 여러분의 믿음을 키워 갑니다. 
순종하면 믿음은 자라나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먹고 마시고 삶을 나누셨습니다. 
그 당시에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삶을 함께 사는 거였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삶을 다 그대로 배울 수가 있었던 자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의 믿음이 아주 크게 성숙하지 못한 모습들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이,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봤어요. 그리고 자기가 직접 떡을 나눠주었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정말로 놀라운 권세로 그 일을 이루신 것을 봤어요. 

그런데 그 일 이후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주님보다 먼저 호수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떠나가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서 물결이 거세지고 배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 
진짜 거짓말처럼,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까지 경험한 제자들이, 풍랑이 일 때 
그냥 완전히 쉽게 두려움에 빠져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금방 두려움에 빠집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면, 두려움에 정말 쉽게 빠집니다.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짜 위기 상황을 만나면, 우리 믿음이 다 드러납니다. 
그 실상이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분이 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믿음의 반대말은 염려, 근심입니다.         
믿음이 깊은 성도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두려운 걸까요?
믿음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내 생각, 내 경험에 따라, 이미 다 판단해서, 내 스스로 상황을 다 정리해 버린 겁니다. 

 

믿음을 사용해 보지도 못했어요. 내 생각이 완전히 모든 것을 다 깔끔히 정리해 버렸습니다. 
'아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해도 안 돼! 아휴 다 끝나버렸어, 소용없어! 
아휴 이런 일이면 이건 어렵지...' 이렇게 그냥 자기 마음에 다 정리를 해버린 겁니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믿음을 소용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에서 학습된 절망이 있습니다. 
이미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내가 내 삶 속에서 배워서 
'이런 일이면. 나는 안 돼지'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절망해 버립니다. 
세상에서 학습되어진 절망의 구조에 빠져 버릴 때가 있어요. 

두려움은 진짜 우리가 믿음으로 꼭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움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개입) 가능성'마저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부모가 자녀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요즘 저출산 원인
그리고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빠지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진짜 무서운 거죠. 사랑하는 관계까지도 포기하게끔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포기해 버립니다. 
믿음 없이 사는 삶이, 하나님을 포기하고 사는 삶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도 포기하고, 하나님도 포기해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자기 생명, 자기 삶도 포기해 버리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여러분 말씀은, 정말 위기 상황에 빠지고, 세상 두려움에 빠졌을 때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새겨진 주의 말씀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두려워서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본문 마14:27절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여러분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안심해라. 내가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이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주님께 내 삶을 맡겨 드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옆에 동행하심을 내가 믿음으로 취하면, 그러면 요동치 않습니다. 

시편 16:8절에 다윗이 늘 고백했죠.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내 앞에 모시고, 그리고 내 오른편에 계신 주님, 
근데 우리는 주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는 거예요. 

주님이 내 옆에 나와 동행하신 것을 다 잊어버린 채로 
'어떡하면 좋지, 어떻게 해야 되지?' 
'돈을 어디 가서 빌리지?' 
'내 자녀의 어떤 문제, 어떻게 하지?' 계속 그러면서 사는 겁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이 진짜 놀랍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내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16:8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믿음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아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니까,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겁니다. 

믿음은,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신뢰의 관계를 바탕으로 자라나게 돼 있어요. 

여러분 이제 믿음 생활 하시고, 그리고 주님 바라보시니까 
우리 교우분들 중에 점 보는 분 안 계시죠? 
우리 청년들 중에 타로 점 보는 사람 없죠?

그런데 그렇게 점을 보면, 그 사람을 막 신뢰하게 되고, 그 점괘를 신뢰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리고, 엉뚱하게도 점괘를 따라 사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무의식 중에, 그게 바탕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큰 실수요, 내 평생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평생 그분께 내 삶을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진짜 믿음인 거죠. 신뢰의 관계죠. 

그런데 신년이 되면, 점집이 우리를 미혹합니다. 
'용하면 되지.. 잘 살게 되면 되지.. 
내 문제만 해결되면 되지..' 근데 그건 오래갈 수 없는 관계라는 거예요. 
시작부터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삶의 헌신을 전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님이시다. 구원자시다.' 우리가 왜 고백하고 믿습니까? 

예수님이 이미 먼저 당신의 삶을 우리에게 다 내어 주셨으니까 
이미 우리가 신뢰의 관계로부터 믿음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관계라는 거예요. 
이건 정말 놀라운 사랑의 은혜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은, 물결이 높이 일 때 두려워했습니다. 
주님이 바라봐지지가 않고, 물결과 풍랑이 보이는 겁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두렵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사실 그때가 가장 두렵습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맡겨 드리고, 주의 말씀의 온전히 순종했을 때, 
그들의 삶에 위기와도 같은 순간인 거 같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게 됩니다. 진짜 놀라운 거죠. 

베드로가 자기 믿음을 사용합니다. 풍랑이 이는데 주님이신 것 같아요.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 그가 믿음으로 걸음을 떼서 물 위를 걷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가요? 

근데 베드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주님 곁에 나아가길 원했어요. 
주님이 말씀하시면 부족하지만 믿음을 사용한 거예요.  

믿음을 사용했더니, 그가 순종의 걸음 가운데 물 위를 걷습니다. 
주님 바라보며 걸은 거예요. 

그러나 바람을 보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한 거죠. 
마14:31~32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주님이 그의 손을 붙잡으신 거예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져들어갈 때 
주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신 거 아니에요. 
'믿음을 가지라, 의심하지 말라' 

여러분 저는 이게 책망이라고 들려지지가 않더라고요. 
'야, 주님이 진짜 베드로를 사랑하시는구나. 제자를 사랑하시는구나' 
그의 손을 잡아 배로 올려 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는 교우들에게, 믿음의 도전을 꼭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어요.   

여러분, 조금 두려운 거 같지만, 믿음의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요, 주님이 계시니까요! 
주님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믿음의 도전을 이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 우리가 믿음의 도전을 할 때,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누립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누리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예수님을 부인하고 삽니다. 

십자가 은혜와 사랑은 여전히 모든 이에게 주어져 있는데, 믿어야 누릴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사용해야 하는 겁니다. 
죄사함의 용서도, 믿음으로 자기 것으로 취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실 성령님의 역사도, 믿음으로 내 것을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사실 우리가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달려갈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유정옥 사모님이라고 들어보신 분 계실 겁니다. 
이분이 홀로 서울역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나님 주신 마음이 있어서 시작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렇게 사용하시나' 하실 정도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돕고 기도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역할을 하시는데, 

이분이 그런 사역의 초창기에,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 행복하다>
이런 책을 쓰셨어요. 그 책에 이제 작은 본인의 경험과 기록들이 다 담겨 있는데 
그중에 "경기 대진표의 이름을 바꾸기" 라는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나는 요즘 내 삶의 모든 경기에 임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것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이름 대진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윗도 그 경기에 대진표를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 장군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 대진표를 보면, 누가 봐도 다윗이 진다. 

그런데 다윗의 이름을 바꿔 '하나님' 대 골리앗 장군,  *대진표 바꾸기
누가 봐도 골리앗이 진다. 

모세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 
양치기 모세 대 바로왕, 
누가 봐도 그냥 보면 양치기 모세가 진다. 

그런데 양치기 모세의 이름 대신에 '하나님 대 바로 왕', 
누가 봐도 바로 왕이 진다.

나는 요즘 내 삶의 대진표를 다시 짜고 있다. 
내 이름을 빼놓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정옥과 말기암이 싸우면, 누가 봐도 유정옥이 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말기암이 싸우면, 누가 봐도 말기암이 진다.

나는 하루 종일 내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문제들과 
나 혼자 끙끙대면서 맞섰던 모든 일들에 대하여 
내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께 넣는 '대진표 이름 바꾸기' 작업을 한다. 

그러면 나에게 맹수처럼 달려오던 그 많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꼭 이기고 말겠다는 안달도 없어지고, 
오히려 적수가 안 되는 상대방 선수에게, 차나 포를 떼어주는 여유와 
넉넉한 인심과 사랑을 베풀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오는 것은 당연히 부전승 임을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유정옥 사모님이 진짜 믿음을 사용한 거죠. 믿음을 사용한 거예요. 
여러분 진짜 한번 자기 삶에 적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 삶의 문제가 있다. 어려움이 있다... 
내가 문제와 싸우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내 이름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면, 두려울 것이 없는 거죠. 
대진표가 바뀌면 담대한 것이죠. 

세상 물결이 크게 우리를 덮쳐오는 것 같아도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면 
은혜의 파도가 우리의 삶을 뒤덮는 것입니다. 

내 것을 움켜 쥐어야 안전할 것 같은데...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서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는 거죠. 
나를 사랑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겁니다. 

날 위해 간절히 기도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근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했더니 
그 모든 것을 더 하시는 은혜를 믿음 가운데 누리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을 해 주셨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내 것으로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 임마누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어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 믿음을 사용하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믿음이 연약한데.. 나는 큰 믿음을 가지지 않았는데.. 
나는 예수 믿은지 얼마 안 됐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했어요. 

여러분 겨자씨의 크기 아시죠? 저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이스라엘 다녀오셔서, 겨자씨를 보여주셨어요.

제가 막 너무 기대를 했어요. 근데 무슨 종이를 이렇게 보여주시는데, 
겨자씨가 너무 작아서 없어질까 봐, 거기 종이에 겨자씨를 테이프로 붙여 오셨더라고요. 
진짜 볼펜으로 점 하나 찍은 거 같았어요. 
진짜 말도 안 되게 작은 겨자씨, 그만큼만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신다는 겁니다.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세상의 방식을 묵상하게 합니다. 
이상하게 전도 나갔다가, 성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 당해서 오시는 분도 계세요. 
'예수 믿으세요!' 했다가 
'예수 믿어 봤자죠. 그게 뭡니까, 뭐가 일이 잘 됩니까?' 
'그렇지 나도 생각해 보니까, 예수 믿고 잘 되지 않았지' 

그래서 예수 전도하러 나갔다가, 세상의 전도 당해서 돌아오는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위기의 상황을 만난 우리들에게, 세상의 방식을 알려줘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냐 하면, 온통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니 주님을 잊고, 주님과의 교제의 끈 놓게 되는 거예요. 
세상도 구원의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 방식대로 살아, 그래야 구원받아'     *세상에서 잘 살아
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때 주의 손 붙잡고,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제가 이전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청년이 있었어요. 
참 귀한 청년인데, 이 청년은 태어날 때부터 근육의 힘이 없는, 그런 특별한 병을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병명을 병원에서도 이렇게 특정하기가 어려운, 
그러나 근육의 문제 때문에, 활동이 좀 힘들어요. 
그래도 혼자 다니고, 또 공부도 하고 했던 참 귀한 청년입니다. 

늘 믿음 안에 밝고, 또 컨디션 잘 관리해서, 누나와 함께 새벽예배도 나오고... 
그런데 어느 해에, 본인이 진짜 일본 단기선교를 청년들과 같이 가기를 원해서 
기도하면서 몸 관리도 열심히 해가지고, 일본 단기선교도 다녀왔습니다. 

자신이 좀 붙은 거예요. 그래서 그 청년은
그해 여름에 미국의 '창조과학 탐사'를, 청년들 팀이 꾸려져서 가는데 
거기에 가려고 신청을 했어요. 

근데 제가 청년부 담당목사로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고, 
또 계속 숙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긴 일정인데,
이 청년이 건강상 감당할 수가 있을까? 

근데이 형제가 너무 간절해서, 
누나와 또 청년들이 함께 옆에서 잘 돌보며 다녀오겠다고 하니, 
저도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주간 정도 청년들이 각자의 일정으로 먼저 들어갔다가 
'창조과학 탐사' 떠나는 바로 전날에, 집결지로 다 모이기로 돼 있는 일정인데,
이 청년이 창조과학 탐사 떠나기 며칠 전에, 미국에서 감기에 걸리게 된 거예요. 

뭐 감기니까 뭐 쉽게 생각을 했는데, 이게 미국에서 폐렴으로 발전이 된 겁니다. 
아마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감기가 폐렴이 되고 나니까, 폐렴이 발전되는 과정이 너무 급속해서,
폐의 근육이 잘 움직여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하여간 보험이 있든 없든 병원에 꼭 빨리 가라고 계속 안내를 해줬는데, 
병원에 갔는데 조금 시기가 늦어진 거예요.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오후에, 그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지금 위기 상황이라 응급처치 중이고, 의료진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기도요청을 해온 거예요. 

아, 한국에 있는 제 마음이 막 무너지는데 
'아, 청년을 미국에 괜히 보냈구나, 어떻게 하나? 이 일을 어쩌나?'

근데 제가 그때를 지금 되돌아보면 
기도하기보다 온갖 (혼적) 생각으로 마음의 그냥 뒤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담임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주일이 지나자마자 월요일 오전에, 제가 비행기를 타고 LA 병원으로 무작정 갔습니다. 
그냥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렌트카 해 가지고 병원으로 바로 갔어요. 
솔직한 제 마음은 한편으로는 '청년의 장례를 치르게 되더라도 내가 치른다. 
내가 담당 목사니까!' 그런 마음으로 갔어요. 

근데 가 보니 부모님들이 계셨는데, 미국에 중환자 1인실이 있습니다. 
거기에 지키고 계시는데, 의식이 없는 청년에게, 그냥 온갖 기계들이 몸에 달려 있어요. 
제가 목사지만 너무 마음이 아픈데,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뭘 했냐? 그냥 아침이면 병원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래서 그 형제 옆에서 있어주고, 기도하고, 말씀도 읽어드리고, 

또 부모님을 이렇게 상담처럼 또 이야기 나누고, 
그래서 제가 미국 생활에 조금 더 익숙하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을 부모님 숙소에 장을 봐서 갖다 드리고 
저녁 늦게는 퇴근하듯이 병원에서 나오고... 
일주일 동안 그냥 그 일만 했어요. 

그리고 그냥 의식이 없는 청년을 병원에 두고, 한국으로 또 돌아왔습니다. 
근데 그 과정에 한 300여 명이 넘는 중보기도자들이 카톡방에 꾸려졌어요.

'이 청년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할 분들 카톡방에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시차가 있으니까 한국 시간으로 아침 저녁으로 기도제목이 업데이트 됐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는 뭐 다른 거 쓰지 않고, 기도 제목 올라오는 것 보고 기도만 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기도의 놀라운 일들이 쌓여졌는데, 

의료보험이 없이 미국에서 중환자실 1인실을 계속 사용하고, 검사하고, 온갖 것을 하니까 
병원비가 10억이 넘어가 버렸어요. 

청년은 의식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나...' 
그런데 기도가 참 놀랍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미국 정부의 긴급 보조금이 승인이 돼서 
병원비가 탕감이 되고, 
이 청년이 진짜 세상을 떠날 것 같았는데 생명이 유지되어서 
대한항공을 통해서 의료 장비 다 달고 한국병원으로 이송이 돼서, 
결국은 생명이 살아났어요. 

근데 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고, 이 모든 과정에서 시력을 거의 잃게 됐어요. 
그래도 이 청년이 건강이 그렇게 회복된 다음에 
어머니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삶을 누리게 됐어요. 

기도자들이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누구보다 이 청년의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하셨어요. 어머니가 믿음이 참 좋으셨어요. 

그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고 저는 믿어요. 

하루는 이 청년이 회복이 돼서 꽤 시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저와 우리 동역자들에게, 음성 파일 하나를 녹음해 보내줬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주신 마음이 있어서, 요한복음을 영어로 암송하려고 작정을 하고 
먼저 요한복음 1장을 영어로 암송해서 녹음파일을 보냈다는 거예요. 
제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청년이 이제 눈이 거의 안 보입니다. 
그냥 빛 정도를 인식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영어로 성경을 암송하려면 얼마나 많이 귀로 들었을까요? 
근데 그 음성 파일을 보내주면서 '자기가 이거 도전한다'... 
제가 '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렇구나'

이 청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여전히 믿음으로 도전하며 하나님 바라보는 일이 있구나'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감사한게, 이 청년이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 그게 기적 중의 기적이다' 

'생명이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구나.. 아 이게 진짜 기적이구나!' 

여러분 우리가 정말 어려운 일을 만나면, 주님 없는 듯이 살기도 합니다. 
근데 그때 주님 붙잡아야죠.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할 자가 없다' 하셨는데 
성령께서 내 안에 일하시니, 우리가 여전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으면 
우리는 일어납니다. 주의 손잡고 물 위를 걷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주의 말씀이 세상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정말로 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는 안 돼죠.

여러분 병이 들면, 의사가 처방해 준 대로,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게 가장 좋은 길이죠. 
배움의 길에 있으면, 교사의 말에, 선생님의 말에 순종해야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면,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죠. 
그래야 사는 겁니다. 

오늘 말씀 주님께서 배에 함께 올라 주셨어요. 이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마14:32
예수님이 갑작스럽게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에요. 

자세히 보면, 베드로의 손을 잡아 주신 거예요. 
그리고 그와 함께 배에 오르신 겁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14:32   

배에 올랐다는 의미는, 가장 힘겹고 어려운 문제에 휩싸여 있는 그 아픔, 고통, 
그 문제의 중심에, 주님이 함께 있어 주셨다는 거예요. 

물론 성경은, 그 이후에 풍랑이 잔잔해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베드로의 손을 잡고 고난의 한복판에 들어와 함께 해 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믿어지기 시작하면, 문제는 작아 보이게 됩니다. 
그토록 커 보이고 '어떻게 하나,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나?
이 일은 다 끝난 거 아닌가?' 

근데 이 문제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면 
왜 이렇게 작아 보이기 시작하는지? 

여러분 믿음을 사용하고,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기쁨을 맛보며 
그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산과 같은 문제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콩알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콩알 집어서 던져 버리면 됩니다. 
여러분, 진짜 아마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들은
'이 말씀이 도대체 뭐야?'
그런데 저는 이때 꼭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이 나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시 보면, 
그렇게 커 보이던 문제가,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주님 안에서 그거 날려 버리는 겁니다. 


▲물결이 거셀 때에, 바람이 그치고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도 중요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손을 잡으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거죠. 
믿음으로 걷게 되는 거죠. 

그러면 삶의 문제 앞에 흔들리는 것 같지만 
주의 손을 붙잡고, 문제를 떠안고 걸어가는 겁니다. 

문제를 안고 가다 보면, 이 문제가 
'내가 왜 이 문제로 그렇게 힘들어 했지?' 
그리고 그 문제를 다 내려놓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 삶에서 문제가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고난이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제가 한 해를 시작하고 또 매해 지날 때마다 
뉴스에서 늘 '올해는 경제가 위기입니다.' 매년 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물가 때문에 어렵습니다.' 매년 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의 삶에는 늘 문제, 고난의 일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근데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감사했던 때가 언제였나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아도, 기쁘고 감사한 때가 있었죠. 
그때는, 내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누군가를 섬기고, 함께 기도하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의 문제 가운데, 손을 내밀어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우리의 아픔에 찾아와 함께 해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문제도 아시고, 아픔도 아시는데 
주님이 우리의 아픔을 함께 겪으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고 
문제 해결을 먼저 구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 알기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만 아니라, 두려움을 넘어서서, 주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역사가 우리 안에 있을 줄로 믿습니다. 
자 오늘 이 시간, 합심하여 기도하고 그리고 안수기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