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학: 바울의 일생 5강 (이근목사) - YouTube
◈예루살렘 공의회,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배경 행15:1~41 ☞시리즈 보기
'바울의 일생 5강' 녹취
▲1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오다 (4강 복습)
4강에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갔습니다.
사도바울이 안디옥에서 출발 → 실루기아를 거쳐서 구브로 섬의 살라미, 바보를 거쳐서
→ 밤빌리아의 버가로 → 그 다음에 비디시아 안디옥 → 이고니온, 루스트라, 더베를
지나가는 장면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많은 사람들의 모함으로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은 지경에 이르러서
다시 일어나게 되고, 더베로 가서 다시 회복하게 되고,
다시 모든 여정을 되돌아 오는 여정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앞서 4강에서.
그리고 버가에서는, 갈 때는 그냥 지나갔지만
돌아오는 길에 버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앗달리아 항구를 통하여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오는
1차 전도 여행의 여정을 마치게 됩니다.
이제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파송교회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평안하게 쉬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또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나왔던 흔적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증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불거진 문제
안디옥은 유대인들도 자유로운 곳이고, 이방인들도 자유로운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안디옥 교회를 '이방인 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그리스도인으로서 동등한 조건으로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안디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유대 문화에 적응된 사람들이 안디옥교회에 와서 보면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경건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경건한 문화거든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크리스천이 되었다 해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유대인들의 (유대교)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 유대인의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크리스천으로서 생활하는 그 모습을 봤을 때
자기들하고 뭔가 다르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교리적인 문제, 어떤 신앙적인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이 살아왔던 문화와 전통의 차이점으로,
그들이 어떤 갈등을 겪게 되는 곳이.. 바로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이 안디옥교회에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교회죠.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안디옥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방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근데 처음에 온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하여서, 안디옥교회에 있는 많은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넬료 사건 이후에, 또 행12장의 체포된 이후에
베드로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떠났거든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가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갈2:11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을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이 갈라디아서의 장면을 통해서 '아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로 갔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데요.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긴 하지만, 유대인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에 방문해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할 때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방인 가운데 역사하시고,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이미 이방인들에게도 허용된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베드로는 안디옥교회에 와서,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어울리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누굽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베드로는 이제 그냥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모든 교인들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됩니다.
베드로는 모든 크리스천의 표본이 되는 거죠. 모범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베드로를 따라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정통 유대인들이, '어 베드로가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교제하네?'
그 장면을 보면, 전혀 경건하지 않게 보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베드로는 참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고 있어요.
베드로가 누구를 만나면 '아 베드로가 저 사람을 만난다'하고 소문이 쫙 나기 때문에,
몸짓 하나 말 하나 하기도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도 그랬습니다.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어울리고 있는데
계속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문화적인 차이가 있고, 베드로는 양쪽 문화 사이에서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그거 하나로 성도들과 교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이렇게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고 있을 때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다라고
스스로 자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베드로가, 안디옥 교인들하고만 교제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안디옥 교인들과 어울리고 있다가, 유대지방 예루살렘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들을 또 크리스천이겠죠. 그들이 등장하게 되니까,
베드로가 그 자리를 슬며시 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유대인 방문객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라는 말입니다.
근데 이 모습을 보고 바울이 화가 났어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갈2:14절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바울도 성격이 참 대단하고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는 모습이 대단하고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베드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진짜 뭐가 문제가 되냐면,
바로 은혜로 받은 복음과, 유대교 배경에서 믿은 복음의 차이가
여기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하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뭘 주장하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지만,
할례를 받아야 그 구원이 완성이 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다 이방인들로 구성된 사람들입니다.
구레네 사람, 구브로 사람, 그리고 안디옥 사람
교회의 리더들이 이방인들로 주로 구성된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유대교의 율법을 들이대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너희가 받은 구원이 확실한게 아니다'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 시점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행15:1~2
그 후에 베드로는 어떤 일이 있었던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고,
유대에서 온 교인들하고, 안디옥교회의 리더들하고는, 적지 않은 논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까
이것은 '굉장히 큰 동요였다' 라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그들이 논쟁 argue 한 정도가 아니라
어떤 큰 말다툼이 일어났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크리스천들은 안디옥에서, 율법을 가지고,
이 이방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정확하지 않다 라고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큰일이 벌어진 거죠. 난리가 난 거죠.
이제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은 안디옥교회를 떠나게 되고
안디옥교회는 이제 굉장히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율법주의적 구원론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구원론이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모이게 된 배경
그런데 바울이 또 하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안디옥에서 큰 논쟁을 유발하고 떠난 유대교-크리스천들이,
그들이 안디옥에서 길을 계속 가면, 연이어 갈라디아 지방으로 들어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갈라디아교회에도, 안디옥에서와 똑같은 큰 논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소식을 바울이 듣게 되죠.
바울이 1차전도여행 때 들러서 개척했던 갈라디아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로 인하여 갑자기 혼란스럽게 됐다 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초신자 교회입니다.
이제 막 태동하는 그런 교회이기 때문에, 신학이나 신앙이 아직 견고하지 않은데
다른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해서 교회를 흔들어 놓으니까
갈라디아 교회들이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참고로, 갈라디아는 지방 이름이고,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는 '도시'이름이죠.
소아시아, 갑바도기아, 마게도냐, 아가야.. 다 '지역(지방)' 이름들이죠.
그 (남)갈라디아 지방에 속한 도시가 비시디아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입니다.
바울의 1차전도여행 도시들이었죠.
바울이 1차전도여행 때 방문해서,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써서 보낸 것은, 바로 이 도시들에 보내서 회람시킨 것입니다.
'갈라디아'라는 어떤 한 도시에 보낸 게 아니라요. 갈라디아는 도시가 아닙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됐습니다.
근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문제는 그 성격상,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 그 복음이 얼마나 확실한가 확증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예수님의 사도들과, 그곳에 있는 리더들을 만나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확증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됩니다.
갈2:1절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바울은 유소년기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학할 때, 예루살렘에 6년 가량 있었고,
그 후로 고향 다소에 내려가 있다가,
33세 때, 예수 믿는 사람들과 스데반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있었던 적이 있었죠.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다메섹에서 회심하고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15일간 머물렀고, 갈1:18~19
(그 후에 고향 다소로 내려가 10년간 지냈고, 다소에서 바나바의 픽업을 받았죠)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목회할 때,
예루살렘 교회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안디옥교회의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행11:30 이때가 두 번째 방문이죠.
-이번에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행15:1~2, 갈2:1
이번은 1차전도여행 후에 방문한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는 디도를 데리고 함께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들러서 갔습니다.
행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그래서 이 세 사람이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14년 전에,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는
자기를 다 피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완전 분위기가 틀려졌죠.
바울을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행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이제는 바울이 진정한 전도자로 인정을 받게 된 거죠.
근데 여기서 우리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막후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굉장히 큰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1, 2위 서열에 해당되는 사람인데,
얼마 전에 안디옥에서, 바울에게 공개적으로 큰 면박을 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갈2:11
저 같았으면 굉장히 약이 올랐을 것 같습니다.
'바울, 많이 컸네' 이렇게 베드로가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교회의 최고 어른인 자기를 면박주었던 바울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어쩌면 되갚아줄 기회가 된 거죠.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배는 비슷했을 것임
베드로는 바울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잘 설명하고,
안디옥에서 바울을 경험했기 때문에
바울의 신학과, 바울의 성품을 이미 다 파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도들에게
'바울은 이미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열정적인 사도와 같이 되었다' 라고
소개해 줬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 오해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바울을 영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1차전도여행 때 있었던 많은 일들을 간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15:4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곳의 이방인들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또 예수님께 돌아왔는지 그들에게 간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며,
은혜의 복음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모두가 바울처럼만 생각하지 않고
그곳은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복음'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안디옥교회와, 갈라디아교회에서 일어난 논쟁이, 거기서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행15: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차라리 잘 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문제를 해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서, 교회의 대표들이 다 모여서 1차 공의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단 총회'죠.)
행15:6~7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아마도 이 회의는, 그냥 한두 시간 있었던 회의가 아닙니다.
며칠을 거쳐서 벌어진 그런 회의였고,
굉장히 진지한 회의, 그리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그런 회의였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변론이 오가고, 베드로가 말하고, 바울과 바나바가 이야기하고,
또 유대지방에 사는 유대인-크리스천들이 또 발언을 했을 것입니다.
할례와 절기 준수 문제가 집중 토의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규례를 따지고,
또 그것과 오신 메시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엄청난 논쟁을 벌였을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행15:7~11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그리고 베드로는 이런 설명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 고넬료를 만났는데, 이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행10장
또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픈한 것을
내가 인정하고, 그 일에 내가 증인이다.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성령이 임하고
그가 주님을 영접한 것을 보니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여기서 베드로가 이런 증언을 하지 않았다면,
여기에서는 어떤 결정도 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중에 가장 수제자인 베드로가 이런 증언을 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을 것을 앞을 내다보시고
미리 고넬료를 통해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증거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죠.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이 다녔던 1차전도여행을 통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 증언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최종 결론을 내려야 했습니다.
마지막 결론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가 내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동생
15:13~21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죠.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고 쾅쾅쾅 하고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바로 '공의회' 라는 이 공식적 회의에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면, 그래도 예수님하고 외모가 닮지 않았겠어요?
예수님을 닮은 야고보가 딱 일어나서, 모든 회의의 결론을 딱 말했을 때
그 말의 힘은 대단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결정은, 이후에 이방인 교회들의 설립과 발전에 중요한 결정이었고
이방인 선교의 문을 활짝 열은 것입니다.
자 이방인들에게도 이제 공식적으로 문이 열렸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이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결론에 딱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을 내린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실 다 유대인이에요.
어릴 적부터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고, 그 규례를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될 건 있다면서,
율법에서 자유롭지만
'우상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해야 된다' 라는
기본적인 것들은 꼭 지켜야 된다 라고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20
'다만...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
이 어투는 강제적 명령이라기보다는, 권면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
29절에서 '우상의 제물'로 다시 언급됩니다. 이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의미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관한 논쟁은
이방 선교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 중의 하나였죠.
예루살렘 총회는 우상의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으나
고전8:1-13, 10:27,28, 갈2:11-14에서 바울은 각자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 섭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로 빗나가는 신앙을 경계하는데 있었죠.
'음행'
예수를 믿으면, 심령이 변화되어, 자연스럽게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게 되지만,
아직 초신자인 이방인 성도들이, 혹시나 복음의 자유를 남용해서 방종하게 될까봐.
미리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율법 조항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면 이렇게 살게 된다..는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
목매어 죽인 짐승은 피가 체내에 남아 있기 때문에,
'피채 먹지 말라'는 율법 규정과 동일하죠.
구약에서 피를 먹지 못하게 규정한 것은 피가 생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레17:11
복음은 율법에서 자유하는 것이지만,
아주 기본적인 규정 4개만 제시해 주었는데,
'이것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게 된다'는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종이 부연 설명을 해 준 것입니다.
부차적으로,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대인 크리스천들과도 괜히 강대강으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던 거죠.
이런 4가지 부가적 계명은,
당시 이방인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자유함을 얻되
방종하지 말라는 기본적인 건전한 상식입니다.
나중에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하지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라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벌써 당시부터 '나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것 때문에
너무 방종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썼는데, 그 책에서 야고보(사도)는
삶으로 구원을 얻느냐, 행위로 구원을 얻느냐..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당연한 이러한 삶이 뒤따른다'를
야고보서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 라는 것은
어쩌면 너희들이 '믿음으로 받은 구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죠.
교리적인 문제를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야고보서입니다. 주2)
나중에 예수님의 신성, 예수님의 인성, 삼위일체, 성경의 정경화,
이런 모든 일들이, 공의회의 결정으로 되어졌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그 뒤로 계속 발전해서, 기독교회의 중요한 교리들을 다 결정한 거죠.
▲바울과 바나바는 기쁜 마음으로 이 소식을, 빨리 안디옥교회로 돌아가서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 즉 안디옥교회 출신이 안디옥교회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공의회 결정을 이야기한다면, 성도들이 믿겠지만, 공신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또 예루살렘교회에서 파견을 나가야 되죠.
여기에서 어떤 결론이 벌어졌는지를 대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뽑은 사람이
유다와 실라 입니다.
행15: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교회에 도착해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그 은혜의 복음이 정확하다 라는 것을 공증해 주었어요.
유다와 실라를 보낼 뿐만 아니라, 그들 편에 예루살렘교회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게 15:23~29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내용은 24절입니다.
15:24절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내용인즉, 유대에서 야고보가 보냈다고 했던 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수장 야고보 (사도)가 보낸 적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면서
안디옥교회를 혼란스럽게 했고, 이어서 갈라디아교회까지 혼란스럽게 했던
그 유대적-크리스천들은,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 임의로,
안디옥교회와 갈라디아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골로새교회 역시 유대거짓교사들로 인해 혼란을 겪었는데,
그들은 아마 골로새 지역에 살던 유대교-크리스천으로 봅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실라는 바울과 바나바의 2차전도여행에 동행하게 되지요.
우리 성경에 보면,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갔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15: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그런데 실라가 아마 그곳 안디옥에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면, 곧 이어서 실라가 바울과 바나바의 2차전도여행에 동참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어지는 구절인 15:34절에 '(없음)' 이라고 되어 있죠.
그런데 성경 그 페이지 아래 각주에 보면
'어떤 사본 이렇게 해서 실라는 그들과 함께 유하기로 작정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래 오리지널 성경에는 :34절의 (없음)이 맞습니다.
그런데 각주의 내용은, 후대의 성경필사자들이, 주석을 집어넣은 것이죠.
그래서 원래 오리지널 성경의 정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음)을 고집하는 거죠.
어쨌거나 실라는 안디옥교회에 남아서, 바울의 2차전도여행에 동행한 것입니다.
▲바울, 갈라디아서를 쓰게 되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으로, 바울은 마음이 더 뜨거워졌어요.
그때 바울에게 제일 걱정되는게 갈라디아교회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1차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던 지역입니다.
갈라디아는 지역(道)를 뜻하고, 그 지역에 속한 도시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더베 등이라 했습니다. 이들이 '갈라디아교회들'인 거죠.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안디옥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편지를 써서 보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갈라디아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배경 상황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갈라디아서를 한번 읽어 보면
갈라디아서가 다르게 여러분들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가만히 보면은 그곳에 '안디옥 사건'이 나오고
'베드로를 만나 책망한 사건'이 나오고,
그 다음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정해진 사건들이 언급'되어지는 것을 보면,
이 모든 일이 있은 후에 갈라디아서를 쓴 것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정신없이 편지를 쓰고, 갈라디아 교회에 보냈는지
안디옥교회 돌아와서 편지를 보내는지..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예루살렘 공의회가 끝나자마자,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됩니다.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거짓교사)들이 갈라디아 지방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할례를 받지 않았으면 그 구원은 가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거 '다른 복음'이거든요.
그러니까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말한 내용이
갈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 교회에, 바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어떤 사람들이 와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
가짜라고 말하며,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이는데, 그런 다른 복음은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설명하고 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신득의,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하죠.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율법이나 형식이나 규례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설명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임을 설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조금 더 나가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의 예를 통하여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게 됩니다.
그것이 갈3장, 4장에 나와 있는데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우리는 약속의 자녀다.. 라는 것입니다.
갈4: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종이 아니다 라는 거죠.
율법이나 어떤 것에 얽매이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받아들인 존재가 되었다 라고
사도 바울이 강렬하게 피를 토하면서 이야기하는게 갈라디아서입니다.
또 바울은, 이신득의 의 적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무시한 율법주의는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지만,
자유한다고 해서 방종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바울은 짚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롭게 되고,
은혜의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자유를 자기를 위한 정욕으로 쓰는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 써야 된다 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유함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다'라고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갈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빨리 그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 바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편지만 보내고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편지는 이미 보내놨고, 그 교인들이 안전한지, 흔들림이 없는지,
견고한지... 그것을 자기가 빨리 가서 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 바나바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2차 전도 여행을 떠납시다.
빨리 떠나서 그곳에 있는 교인들이, 그곳에 있는 성도들이 잘 믿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하고 출발한 것이 2차전도여행입니다.
◑2차전도여행 AD 49~52년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사실 바울이 제안한 전도여행은 고생길이었습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도들이었고
그런데 그들에게 이제 전도 여행을 떠나자라고 제안을 했을 때
마가와 실라가 동행하게 됩니다.
실라가 합류를 하게 되고, 또 마가가 합류를 하게 되어서
바나바와 바울은 4인이 함께 2차전도여행을 출발하게 됩니다.
이때가 AD 49년에서 52년 경으로 보시면 되겠는데요.
▲안디옥에서 그런데 출발 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15:38~39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이 일 때문에 심히 다투어' 라고 되어 있는데, contention, disagreement
여기서 '심히 다투다'는 '파록시스모스' 라는 단어입니다.
같은 단어가 딱 한 번 더 쓰인 성경 구절이 있는데 히10:24절입니다.
히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spur, stimulate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와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다투었을까?'라고 하지만
좋게 표현한다면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서로 격려하면서
그들의 여정을 따로 나누어서 갔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그들이 심한 감정 싸움을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전혀 다른 여정을 가게 만들어 놓으셨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바울의 여정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는 또 다른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2차 전도여행을 떠나고, 나중에 3차 전도여행은
그 모든 여행지가 "유럽에" 중점을 두게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선교가,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영원히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항상 바울의 편지에는 바나바가 등장을 하게 되고요,
또 바나바의 말년 편지(딤후서)에는,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이 마가를 찾을 정도로,
마가는 친숙한 사람이 이미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와 같이 갔던 마가
어쨌건 바나바는, 2차전도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떠나게 되고, 더 이상 사도행전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바나바는 자기 고향(구브로)에 대해서 더 연민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마가를 데리고, 어쩌면 그가 실패했던 곳(구브로 근처)에 다시 데리고 가서
다시 훈련을 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다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실라와 합류해서, 바나바와 다른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안디옥에서 북쪽인 길리기아와 갈라디아로 떠나게 되죠.
갈라디아 지방은, (더베, 루스드라, 비시디아 안디옥) 1차 전도여행 때는
구브로 섬에서, 밤빌리아를 거쳐 방문했지만,
이번 2차전도여행 때는 배를 타지 않고, 안디옥에서 육로로 곧장 갈라디아로 가게 됩니다.
갈라디아로 넘어오려면 아마누스 라는 산맥을 넘어야 됩니다.
당시에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고속버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걸어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바울과 실라가 이 험준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도중에 다소를 경유해서 지나게 되는데,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다소를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 항상 바울은 '다소' 자기 고향을 지날 때,
다소에 관하여 어떤 특별한 언급이 없었을까요?
어쩌면 바울은 '말하기 힘든 어떤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기 고향 다소에서 당한 일들이 너무 끔찍해서, 거기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쨌든 바울과 실라는 2차전도여행 때, 1차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더베, 루스드라,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등지를 제일 먼저 찾아갑니다.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1차 때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내다버렸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지만,
2차 때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어쩌면 루스드라도, 바울은 가기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를 돌로 쳐서, 죽여서 성밖에 내다버린 곳이니까요.
그러나 바울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루스드라로 갔을 때,
이번에는 디모데라는 귀한 제자를 만난 것입니다.
딤후1:3~5절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렇게 디모데가 바울과 실라의 전도 여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정에 합류할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키게 됩니다.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그냥 이방인의 모습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디모데를, 2차전도여행에 합류를 시키면서
디도와 달리,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즉 디모데는 유대인들에게는 모계사회니까 유대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헬라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합니다.
이는 어쩌면 앞으로 모든 여정 가운데 만나야 될 유대인들에게
'이 디모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바울이 권면했던 바울의 지혜일 수 있습니다.
고전9:20~21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처럼 되고, 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없는 자들에게는 없는 자처럼...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그들을 얻고자 함이다'
이렇게 바울은 디모데를 그들의 여정에 동참시키게 됩니다.
▲이제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서, 바울은 그 위쪽으로, 즉 소아시아(성경에 아시아)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아시아에서 대표적 도시는 에베소입니다.
아시아는 에베소교회를 위시한 계시록2~3장에 나오는 7교회가 있는 지역이죠.
이제 여행 여정상, (여행에 동선 낭비가 없어야 된다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동선 낭비가 없으려면, 사도 바울은 당연히 갈라디아에서 아시아로 가야 됩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무시아 앞에 이르러서 비두니아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거기도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6:7
남쪽에서 왔는데, 북쪽(비두니아)과 서쪽(아시아)이 다 막혀버린 것입니다.
동쪽만 트여있는데, 거기는 산악지대고, 사람들이 거의 살지도 않습니다.
남쪽도 트여있는데, 거기는 빠꾸 back해서 되돌아가는 길이고요.
그야말로 진퇴양난, 사면초가를 만난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터키가 아니라, 유럽으로, 즉 마게도냐로 바울이 가기 원하셨던 거죠.
그래서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16:9~10
그리고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마게도냐로 가게 되죠.
그런 와중에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나게 되고요.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나게 된 경위는, 다음 6강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
주1)
갈라디아는 현재 터키지방의 동남북지역으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지역을 가리킨다.
북쪽을 북갈라디아, 남쪽을 남갈라디아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북갈라디아(Galatia)는 현재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Ankara)가 있는 이교적 지방을 말하고,
남갈라디아는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중에 복음을 전했던 루가오니아와 비시디아 지방,
비시디아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같은 도시가 있는 남부 지역(행13:14-14:26)을 말한다.
주2)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고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었대요.
그래서 사람들은 야고보를 '낙타무릎'이라고 별명을 짓게 되는데
나중에 AD 62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이
이 야고보를 끌고 성전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난간 밑으로 떨어뜨렸고,
그리고 돌로 쳐서 죽게 했습니다. 야고보는 그렇게 순교하게 됩니다.